당신의 울음을 옮겨 적는 밤 외 1편
문지아
당신의 이목구비가 비로소 서사를 갖기 시작하였다
특이점 없는 무혐의 속 오늘의 날씨에서
의지를 가지고 바라보는 너는
가만히 나를 계하고 있었음이라
발화되기도 전
표정들과 함께 다 잠겨버린 소식들의 혀를
더 이상 구해내지 않음으로써 이해를 포기하며
각자 구기다 놓아버린 무용의 종이컵들처럼
사연은 점점 멀어져 간다
오직 한 사람의 표정으로만 성큼거리던 저녁
소용이 다 되어 떨어져 나가는 포스트잇처럼
이제 '세월'에서의 오늘이 곧 떨어져 나갈 뿐
당신의 울음을 옮겨 적는 밤
열정은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는 그런
내 눈에 이미 가득 차오르는 것이 계절임을 모르고
자꾸만 자꾸만 봄으로 뒷걸음질 치는 나는
드문드문
있다
건너갈 수 없는 하나의 몸을 오래오래 쫓는다
아무런 기억도 기억해 내지 않은 채
그저 전속력으로
지나쳐야만 했던
수세권이라는 말
나는 가장 큰 산이 자란 외딴섬에서 왔어. 감기는 전 지구적이라 기침은 훌쩍거리다 터진 게 아니라고 여권에 적어 대학원에 알렸던 겨울. 포스트잇처럼 붙여 놓았던 얼굴이 클릭 한 번에 전속력으로 떨어져 나갔지. 길 양쪽으로 가로수의 음모(陰毛) 사이 하천에 잠겨 한국어로 울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알았을까. 기숙사 창문이 펑펑 깨질 것 같을 때마다 우리는 은빛의 총과 칼을 녹여냈어. 움라우트 발음에 팔려 뿌리와 힘줄이 크레셴도를 띄도록 마구 붙이기도 했지. 당신은 뒤셀도르프 사람 같이 휙 몸을 돌렸어. 마법을 담가놓은 빗장뼈 속 사각형의 방이 주저앉았고 월드컵에서 일본이 독일을 상대로 역전승을 했다고 떠들썩댔던 그때에 말이야. 1층 베란다에 앉아 이변 같은 환절기와 계약했더라면 뷰 대신 기침을 달고 살았겠지. 아무리 수세권이 나의 생가(生家)라지만, 아 흔쾌히 빠뜨렸던 말
문지아
제주도 제주시 출생. 연세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 석사.
202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