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녀 왔습니다.
하루동안 갑자기 일들이 마구 꼬여서 수습하느라 바빴던 하루였는데,
어찌보면 공연보는 날이라 정신이 빠져있어 그랬던 듯도 싶습니다.
이 관람기는 제 개인적인 감상을 담는 건 물론이고,
무대 장치등에 대한 객관적 부분들도 되도록 자세히 써보려고 합니다.
DVD 나오기 전에 미리 상상해 보세요 ^^
세트 리스트는 당연히 기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따로 정보를 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 쓰는 편의상 존대말은 생략하겠습니다.
쓰기도 전부터 엄청 길어질 거라 예상이 되는군요.
자, 그럼...
< U2 Live May 24th,2005 - Boston, Fleetcenter >
그리 고운 말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이 보스턴의 날씨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 아주 정확한 표현이 있다 - '지랄스럽다'.
하루에도 서너번씩 바뀌어 대서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우산을 가져나가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을만큼 변덕스러운 도시.
최근 1주일 동안은 줄창 흐리고, 비가 오다 말다 하고 있었다.
5월 24일 화요일, 이 날만은 좀 괜찮길 바랬는데...예외는 없었다.
공연의 분위기는 조금씩 감지되고 있었다.
새벽에 공항에 나갈 일이 있어서 지하철을 탔는데,
보스턴 내의 거의 모든 일간지 엔터테인먼트 섹션
탑 기사를 유투가 장식하고 있었다.
24,26,28 일에 걸쳐 치뤄지는 보스턴 공연이 열리는 장소는 Fleetcenter.
이는 지난 Elevation 투어 때와 똑같은 곳인데,
평상시엔 NBA 의 보스턴 셀틱스가 홈구장으로 쓴다.
필자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30 분 정도 거리인데,
다른 일때문에 7시 20분이 되서야 출발하게 되어 택시를 잡아타야 했다.
(시작 시간이 7시 30분이었다)
도착한 뒤에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에서
동행하기로 한 형을 한동안 기다리다 공연장에 들어섰을 땐
이미 오프닝인 Kings of Leon 의 연주가 시작된 후였다.
미국 공연문화에서의 오프닝은 우리나라처럼 구색맞추기가 아닌,
신인 뮤지션들이 거쳐가야 하는 필수적인 코스로 취급받는다.
그만큼 비중이 높기 때문에 공연 시간도 보통 40 분 이상할 정도로 길다.
하지만 이 시간은 말 그대로 본 공연 전의 워밍업이라,
사람들은 크게 집중해서 보지 않고 여유롭게 본 공연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킹스 오브 레온은 현재 나름대로 주목받는 신예 밴드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미 공개된 많은 사진을 통해 확인한 바였지만,
이번 투어의 무대는 기본적으로 지난 번과 같은 형태였다.
모든 악기와 장비가 배치된 중앙 무대가 있고,
그 무대 바깥쪽으로 크게 한바퀴를 도는 원형 무대.
지난 투어와 다른 부분은 중앙 무대의 모양이 Vertigo 뮤직비디오에서 볼수 있는,
여러겹으로 둘러진 회색 원들이라는 것과,
바깥쪽의 큰 원이 하트 모양에서 그냥 둥그런 타원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 무대 위쪽에 각 멤버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4칸짜리 스크린도 같았다.
그 동안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상태였지만,
오프닝이 끝나고 유투의 테크니션들이 나와 장비를 체크하기 시작하자
본인도 슬슬 흥분되고 약간은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일전에 순수하게 공연 관람만을 위한
미국여행까지 계획하도록 만들었던 (물론 실행되진 않았던)
바로 그 유투의 공연을 눈앞에서 보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자리가 스탠딩 플로어는 아닌 구역이 었지만,
가장 비싼 표인만큼 무대 위의 사람 얼굴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거리라
세팅하는 모습만으로도 묘한 기분에 휩싸이기 충분했다
드디어 공연장 전체의 불이 꺼졌고 엄청난 함성으로 가득찼다.
에지와 아담, 래리의 실루엣이 무대로 걸어 나오는 게 보였고,
필자는 완전히 몸이 굳은 채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희미한 조명이 서서히 들어오며 에지 특유의 기타톤으로 울려퍼지는
City of blinding lights 의 인트로...그리고 잠시후 바깥쪽 큰 원의 어디선가
나타난 보노는 두 팔을 벌리고 천천히 걸으며 특유의 포효하는 듯한 표정을 선보였다.
그런 보노의 모습까지 보고 나자 - 말하긴 좀 뭣하지만 - 눈물이
주체를 못하고 주륵주륵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
이 첫곡을 할 때 이번투어의 새로운 무대장치인 거대한 발(foot 이 아닌 --;;)이
공중에서 내려왔던 것 같은데...개인적으로 거의 혼수상태였기 때문에 확실치 않다.
바로 이어지는 Vertigo.
그토록 조용하고 보수적인 보스턴 사람들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점프하고 춤추고 소리지르고 등등..
이때 펼쳐진 놀라운 광경이 있었는데,
지난 투어에서는 꺼졌다 켜지는 수준 정도였던 무대 외곽 전체를 두르는 조명이
아주 화려한 색깔을 내며 무대 전체를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나온 것이다.
또한 바깥쪽 큰 원 뿐만이 아니라 메인무대의 각각의 원에서도 같은 효과가 났다.
이때부터 필자도 약간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이어 Elevation 에서 부터는 제대로 공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곡은 이번 투어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Boy 앨범의 수록곡 The electri co. 였다.
혹시나 기억이 안 나는 팬들을 위해서인지,
조그만 스크린 하나가 따로 내려와 Boy 의 앨범 커버를 보여줬다.
같은 앨범의 The ocean 과 지난 앨범의 Beautiful day 가 이어지고
잠시 약간은 어두운 듯한 분위기로 바뀌며 Miracle drug 이 시작 됐다.
이 곡의 인트로가 나올 때 보노는 현대과학에 대한 얘기를 조금 했는데,
과학의 발달로 불치병을 치료하고 어쩌고 했던 건 분명히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 때문에 나온 말로 보였다.
(황우석 교수는 미국에서도 주요 매체 탑뉴스에 모조리 오를 정도로 큰 화제다)
아버지에게 바친다며 부른 Sometimes you... 에 이어
Love and peace 에서 보노는 다시 한번 특유의 (가끔씩 오버스럽다싶은) 쇼맨쉽으로
우리나라에서 과거 데모할때나 쓰던 하얀 머리띠를 이마에 맸다.
나름대로 멋잇으려고,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겠지만,
보노의 얼굴과 잘 어울리질 않아서 실제로는 상당히 코믹해졌다 --;;
래리는 잠시 바깥쪽 큰 원으로 나와 조그만 드럼셋을 연주했고,
후반부에 래리가 원래 드럼으로 돌아가자 그걸 보노가 치기도 했다.
뒤이어 부른 가장 정치적 노래 두곡 Sunday bloody sunday 와 Bullet the blue sky 까지
계속 머리띠를 하고 있었는데, Bullet... 의 브릿지 부분에서 선글라스를 벋고
그 머리띠로 눈을 가리고 무릎을 꿇고 포로같은 모습을 연출한 건 좀 괜찮았다.
미국의 용기있는 남녀 군인들에게 바친다며 시작한 곡은
Joshua tree 앨범의 Running to stand still.
노래가 끝날 무렵 스크린에서는 1948 년 UN 이 발표한 인권성명이 자막으로 올라왔다.
Pride 가 시작되며 다시 한번 광란의 도가니가 시작됐고...
마지막의 ' 오 오오오~ ' 부분을 반주 없이 관객들이 부르도록 유도한 보노는
갑자기 특유의 멋지고 진지한 중얼 거림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멀리서 다가오는 듯한 정적인 키보드 반주...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언제나 유투 공연의 최고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이 곡이 나오자
관객들은(물론 본인포함) 아직도 지치지 않았는지 두손을 들고 마구 뛰며 반응했다.
" And when I go there, I'll go there with you.." 를 다함께
목청껏 부르던 것은 정말로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멘트도 거의 없이 빠르게 진행된 메인 세트의 마지막은 One 이었다.
지난 투어에서는 잘 연주되지 않았던 이 곡을 관객들은 하나같이 따라 불렀고,
후반부에는 조명이 꺼지고 '모두 핸드폰을 꺼내라' 는 보노의 말에
수많은 작은 불빛들이 나타나 파도를 이루었다.
멤버들이 무대뒤로 사라지자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를 그치지 않았고,
잠시후 스크린에는 Zooropa 앨범 커버의 캐릭터와 부시 대통령의 사진등이
빙글빙글 돌면서 Zoo station 의 연주가 시작됐다.
에지가 무선 마이크를 착용하고 바깥쪽 큰원을 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노나 래리가 한건 봤지만 에지가 무선 마이크한 건 처음봐서 --;;)
계속해서 Achtung baby 앨범의 The fly 와 Mysterious way 를 화려한 조명과
함께 불렀고 첫번째 앵콜은 거기서 끝이 났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겠지만,
나와야 하는 바로 그 곡을 아직 듣지 못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다시 한번 멤버들을 불러냈다.
정적인 My sweet lord 를 부른 뒤 All because of you.
그리고는 어쿠스틱으로 새롭게 편곡한 Yahweh 를 연주 했다.
이 때는 모든 멤버가 바깥쪽 큰원에 모여서 연주했는데,
래리는 드럼이 아니라 조그만 키보드를 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보노는 마지막으로 감사하다는 멘트를 했고,
새롭게 편곡한 40 를 연주했다.
이때 정말 특이했던 점은 에지와 아담이 악기를 바꿔
에지가 베이스, 아담이 기타를 쳤다는 점.
예상했던 대로 40 후렴구의 무한반복이 시작됐다(바로 그 가사처럼).
관객들이 합창하는 동안 보노는 조그만 조명을 손에 들고
객석의 여기저기를 한참동안 비추며 서있었다.
결국 조명을 바닥에 내려놓은 보노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고,
잠시 후엔 에지, 또 잠시후엔 아담이 무대 뒤로 들어갔다.
래리만이 남아서 드럼을 칠 때도 다 함께 부르는 40 는 계속되고 있었다.
래리는 마지막으로 아주 짧은 솔로를 펼친 뒤 사라졌다.
벌써 두번의 앵콜을 했지만 아직도 '그 곡'을 못 들은
관객들은 아직도 40 를 끝내지 않고 부르고 있었다.
(대략 생각하기에 같은 후렴구를 총 10분 이상 부른것 같다)
한참이나 노래는 계속 됐지만 결국은 불이 켜지고 공연은 끝났다 -_-;;
모두 아쉬움을 남기며 공연장을 빠져 나왔고,
티셔츠와 모자 열쇠고리 등등을 사기 위한 사람들은 판매대로 몰려갔다.
물론 그 '사람들' 에는 나도 끼어 있었고 --
티셔츠 하나와 프로그램 북을 사왔다.
그걸 담아 주는 봉투에 까지 버티고 투어 마크가 되어 있어서
이걸 버릴지 말지 아직도 고민중이다.
전체적으로 다시 되돌아 보면,
일단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정말 대단했고
지난 투어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을 보여줬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보다 화려했던 듯 --;;
사운드 역시 만족스러운 안정감과 다이내믹함을 선보였다고 본다.
이번 투어 최고의 화제거리인 세트 리스트 역시 그 동안 소외되었던(?)
곡들을 잘 데려와 골고루 섞어 준 대에 대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했어야만 하는 '그 곡' 을 정말 기어이 안 한 부분은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보노의 목소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 역시...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정적인 사람들이 사는 보스턴.
그 사람들을 그토록 흥분시키고 2시간 동안 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을 보며
지구 최고라 평가받는 유투의 라이브 실력이 세삼스럽게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그래서 보스턴을 유투의 '미국내 비공식 고향' 이라 하는 걸지도.
허리가 정말 부러질 것 같아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집에 돌아왔지만,
벌써부터 나중에 나올 DVD 를 기대하는 건 물론이고...
다음 앨범 발매후 할 투어에 어떻게 또 갈까하는 궁리를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내 주변엔 온통 어제 공연의 환영이 떠돌고 있지만 말이다.
첫댓글 ^^
아 이런 부러울데가...후기만 봐도 소름이 쫙쫙 돋아요...ㅠ_ㅠ 죽기전에 한 번쯤은 볼 수 있겠죠?;;
엘리베이션투어때 딥디로 발매한 공연과 같은 장소겟구여.. 머.. 부러울 따름... ㅡㅜ...
우아아.. 부럽습니다...T_T 4년 전 디트로이트 Elevation 투어의 감동이 다시 떠오르는듯... 으흐...
허억.. ...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기분.. 정말로 부럽습니다. ㅜ_ㅜ)
부러워요~!!! 아아, 보스턴 공연을ㅠㅠ...
iris님 공연관람기를 다 읽고나서 "부.럽.다." 외에 다른 생각이 나질 않네요. 정말...부러워 죽겠어요 ㅎㅎㅎ 저두 U2 공연 보고 관람기 쓰는 날이 빨리 왔음 좋겠네요 ^^*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당 ^^*
언제쯤 가보지..부럽습니다ㅜㅠ
엉엉 ~ 근데 '그 곡' 이라 함은...; 뭔가요;? with or without you 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