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엄마가 없다고 놀릴 때마다
아빠마저 없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게 소리치라고 차마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한쪽만 있다는 건
불편한 것일까요
부끄러운 것일까요
사라지기 좋은 계절이란 걸 압니다
채팅하던 사람이 자살을 한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조문을 가고 싶은데 사는 곳을 모릅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종교 전파자를 가끔 만납니다
귀찮아할 때까지 경청합니다
인상도 좋고 눈도 선한 당신들
최선을 다합니다만
나의 걱정거리가 지천이고
지척인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택시를 타면 미터기를 걱정합니다
라디오는 왜 기사가 원하는 주파수만 트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오후 4시부터 정체라서
불안과 불온이 밀려옵니다
새가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날아갑니다
나무 위 빈 둥지가 불현듯 궁금합니다
알 대신 무엇이 웅크리고 있을까요
관찰과 관찰자의 차이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내 숨통을 조이는 역할을 타인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한다는 생각
딸아이는 자라면서
관계라는 말도 습득해갈 것입니다
대답이 뻔한 질문들을 다분히 나에게 던질 것입니다
당황하는 척을 하면서
감당해야 할 물정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4.12.30. -
현대인과 “불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더 풍요로운 시대, 과학의 발전으로 미지의 영역들이 하나 둘 신비를 벗었지만 여전히 인간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미래란 언제나 불투명한 것. 그렇기에 약간의 상상력만 있다며 얼마든지 “걱정거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내 숨통을 조이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스스로”일지도 모릅니다. 삶이 수많은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되어 있기에 인간은 불안을 “알”처럼 품은 채 위태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형심 시인〉
chris sheeris George Skaroulis Adagio Silvia Schmid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