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있었던 추억들을 정리해서 저희 과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봤어요. 근데 읽어본 친구들 반응이 괜찮더라구요.. 그래서 님들께도 보이고 싶어 이렇게 띄워봅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다보니 매냐님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재미없어도 이해해주세용 *^^*
제목: 6개월간의 즐거운 일탈.. 그리고.. 컴백 스쿨~
하룻밤 꿈과도 같았던 지난 6개월이었다. 잠시 이전의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아니, 결국 현재의 나를 뒤바꿔 놓았으니 현실이 된건가... 어찌보면 긴 시간동안 먼지 속에 묻혀 잠들어있던 잃어버린 내 10대를 흔들어 깨운 건지도 모른다..
10대의 기억과 함께 그리움으로 추억되는 이름이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힘든 시간에 그들이 함께 있었다.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실패해요, 쓰러지세요, 당신은 일어설 수가 있으니.." 좌절하던 순간에 그들이 내게 그렇게 희망을 얘기했다. 나의 10대... 그 페이지 한편에 그들이 밝은 웃음 짓고 서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때론 그리움에 가슴 아려서 쉽게 입밖에 낼 수 없지만, 그래도 내게 그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환해지는, 그래서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런 존재이다..
눈 내리던 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난 그들을 그렇게 추억 속으로 남긴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2000년 2월.. 휴학 원서를 내고 학교를 나서며 난 평범하고 조용한 1년을 보내며 나를 돌아보리라 예상했었다. 반 년 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많은 시도와 도전이 있었던, 그러나 유달리 특별한 사건 같은 건 없었던 평범한 반년이 지나고 찾아온 8월의 어느 날. 난 내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 하나를 들었다. 서.태.지.가. 돌.아.온.다.고.. 태지오빠가... 평생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떠난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돌.아.온.다.니... 8월 29일 그의 입국날, 오전 내내 그리고 오후까지 초조와 갈등 끝에 결국 공항에 나가지 못했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갖가지 복잡한 심정은... 나, 공항에 나갈 자격이 있는 걸까. 서태지와 아이들 팬답게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떠나던 날 그의 당부처럼 4년 7개월간 그렇게 살아왔다고 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현장을 포기하고 집에서 저녁뉴스를 기다리던 중 공항을 지키고 있는 많은 팬들을 보았다. 모두 어른이 되었네. 그래... 지난 몇 년 간 내가 나이를 먹고 커버린 만큼 저들도 어른이 된 것이다. 5년 전 나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이젠 사회인, 대학생이 되었을 세월이 아닌가... 오래전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에 미소지었던 난 잠시후 할말을 잃고 말았다. 저기... 저 창백한 얼굴과 긴 단발머리, 화면에 걸어나오고 있는 저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광경에 침묵과 낯설음으로 일관하는 저 표정, 팬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저 눈빛은.. 마치 수도하고 돌아온 듯한 그 모습을 보면서 순간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었다.
조용하고 평범한 내 휴학생활은 그날로 끝이었다. 나에게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내가 휴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6개월 그 꿈같았던 시간들은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처럼 일탈을 두려워했던(이젠 과거형이다) 소심쟁이가 취업을 앞둔 4학년 마지막 학기에 그처럼 만사를 제쳐두고 무언가에 미칠 수 있었을 것인가. 불가능이다. 몽상가처럼 늘 머리속으로만 일탈을 꿈꾸고, 나도 태지보이즈처럼... 하면서도 그건 나에겐 이론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이제 그 실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럼 6개월 동안 내가 한 일은...? 이 얘길 하면 평소의 나를 보아오던 친구들,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들 한다. (평소에 내가 어떘길래.. 내가 무슨 조선시대 여인같았단 말인가) 먼저 하드코어의 '하'자도 모르는, 거기다 가사 외우는 일엔 무지 머리 나쁜(-_-;;) 내가 마치 수험공부하듯 며칠 밤 새벽까지 태지의 음반들으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따라부르기 성공(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겐 상당히 뿌듯한.. 게다가 핌프락이라는 걸.!). 사전녹화장을 비롯해 각종 공연 쫓아다니며(좋은 말로 '즐기러다니며') 슬램과 헤드뱅잉. 중고딩시절에도 해보지 못한.. 녹화장 앞에서 방청권 얻기 위해 10시간 이상 기다리기(솔직히 태지의 첫 사전녹화 있던 날 모 방송국 앞 인도에서 10시간 가까이 앉아 버티고 있자니 온 몸이 쑤시고 배겨서 다음날 몸져 누웠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_-;;). 그리고... 도대체 얼마 만에 목놓아 불러보는 '옵∼빠∼!'란 말인가...! (물론 평소에 오빠라 부를 사람은 많았지만 온몸으로 절절히 부르짖는 '옵∼빠∼!'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외에도 추억이 너무도 많다. 물론 항상 웃을 일만 있었던 것만도 아니지만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 되는걸.. 정말 다양한 사람 많이 만났다. 팬들 중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층은 역시 20대 초중반의 대학생(특히 평일 대낮에 방청권 기다리는 줄에서는 압도적 대다수) 그리고 직장인, 그 외에 고등학생, 간혹 중학생, 유부녀 팬들. 그리고 물론 여자에 비하면 소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처음엔 좀 놀라웠다) 많은 남자 팬들(속칭 '형 부대'). 하긴 우리나라에서야 썩 자주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해외엔 가수 좋아하는데 남녀 구분하던가(그리고 서태지는 우리 세대에게 가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도저히 만날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들을 알고 친해지고..(물론 결국 인연이 있었을테니 이렇게 만난 것이긴 할테지만 말이다) 하긴 녹화장 앞에서 인도에 앉아 10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보면 앞 뒤 사람들과 안 친해질래야 안 친해질 수가 없다(그럼 그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겠습니까.. 얘기 보따리를 풀고 앉아 있지요 ^0^ 근데 가끔 공부하는 분들도 보긴 했다. 시험기간 중인 것 같은..). 그러다 출출해지면 무슨 소풍 나온 사람들 마냥 옹기종기 둘러앉아 음식 풀어놓고 수다떨며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전녹화 처음 가던 날 앉아 기다리던 인도 위에서 짜장면 배달 시켜 먹는 팬들도 보았다(피자배달은 약과였다). 역시 철가방은 못 가는 곳이 없다(근데 그 철가방 아저씨 우릴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 의해 인터뷰까지 당했다).
콘서트 예매 있던 날은 전날부터 예매 장소인 모 은행 앞에서 사전답사. 도처에 이미 은행 앞에서 밤새는 팬들이 많다고 하던데..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멀리서 슬쩍 한 번 보고 도저히 밤 샐 자신이 나지 않아 일찍 자고 새벽에 나갈 결심을 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오전 4시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하고 새벽 찬 공기를 맞으며 은행 앞에 도착하니... 4시 45분경. 예상하던 대로 역시.. 이미 8명이 밤을 새고 있었다. 그 후 약 3시간 반 가량 은행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는데 그나마 직원 한 분이 일찍 출근하셔서 다행이었다. 운명의 예매시각이 지나가고... 그렇게 피마르는(?) 우여곡절 끝에(사실 은행예매에서 원하던 표를 다 구하지 못해 하루종일 서울시내를 들쑤시고 다녔다 - 표구하러 다니느라) 원하던 2000년 12월 24일, 30일, 31일의 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환호와 즐거움 그리고 충격의 24일.. 콘서트가 끝나고 함께 간 사람들과 밖을 나섰을 때 눈이 내리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다같이 너무 즐거워하고 환호하고 행복해했다. 평생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그리고 30일의 콘서트를 즐기고 이튿날 다시 콘서트 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만큼 이례적으로 밤 10시에 시작해서 2001년 1월 1일 오전 5시에 끝나는 마라톤 콘서트! 생각만해도 가슴 설렜다.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태지 오빠'와 함께 맞는 새해인 것이다. 내가 갈 수 있는 콘서트 마지막 날이라(여행 갈려고 모아둔 비자금까지 탈탈 털었기 땜에) 아쉬운 마음에 그동안 틈틈이 실력을 늘려온 헤드뱅잉을(이것도 노력으로 얻은 것이다. 초기의 내 헤드뱅잉이라는게 얼마나 어설펐던지) 원없이 해댔더니(하도 여러 번 꺾어댔더니 나중엔 어지러워 정신을 못차렸다. 그래서 앞에 난간 붙잡고 더 열심히 해댔다) 콘서트 끝나고 보니 머리카락이 수세미가 되어있었다. 과도한 헤드뱅잉의 후유증은 다음날 목을 가누지를 못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결국 며칠동안 기부스를 하고(그만큼 뻣뻣했다는... )다녔다는... 그리고 하도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노래 따라 불렀더니 목이 다 쉬었다.
태지 오빠와 함께 새해 카운트다운을, 그리고 4000명 모두에게 주어지는 간식 세트(놀랍죠?).. 간식은 그냥 먹기 아까워(태지 콘서트에서 준건데..) 집에 가져와서 며칠 동안 나누어 먹었다.
전국투어 콘서트 모두 끝나고 이젠 정말 끝이구나 했는데 왠걸, 앵콜콘서트 하기로 결정됐다구요? 또 한차례의 예매전쟁 치르고 구입에 성공하여 드디어, 2월 3일! 팬들이 나무에 매달아 놓은 노란손수건에 감격해하며,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 그 그리운 이름 중 한 사람.. 양현석. 현석과 태지가 5년만에 한 무대에 섰다. 두 오빠들 무대에서 웃으며 포옹하는 거 보며 나 왜 이리 행복한 걸까.. 왜 이리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걸까. 지난 3번의 콘서트에서도 울지 않았었는데, 지금 나 아이처럼 기뻐서 울고 싶다. 그리움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다.. 저기 한 사람이 더 채워진다면 완전한 행복일 테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미소지으며 지켜보고 있겠죠..?
그 세 사람 앞에서 난 언제까지나 10대의 마음 10대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 세 사람을 보면 '옵빠∼'하며 10대의 어리광피우며 달려갈 것만 같고 그들도 언제까지나 '에구∼ 우리 애들 왔니?'하며 미소로 반겨줄 것만 같다.
젊어지는 샘물이라는 전설이 있던가. 내가 나이를 아직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그 세 사람은 언제까지나 내게 그런 샘물이 될 것이다. 내 마음 한편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숨쉬며 언제까지나 내게 10대의 희망 설렘 행복을 전해주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일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것을 실행에 옮기길 두려워했던 나...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다'고 했다. 대다수가 걷지 않는 길이라 해서 내가 나아가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제야 그런 용기를 얻었다. 태지보이즈... 돌아온 태지, 이젠 그 도전정신을 이어 받을 수 있는 내가 된 것이다. 지난 반 년 비록 활자로 된 지식은 얻지 못했지만(반년동안 영어를 멀리했더니 중학생 영어 수준으로 도태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_-;;) 내게 그 어떤 때보다 많은 걸 가르쳐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1년만에 복학해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달라진 내가 맞이할 이 일상은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 될 것이다. 즐거운 일탈, 험난하지만 즐거운 나만의 길을 꿈꾸며 새 봄, 새 학기를 맞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