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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 건지,
그대로 동작을 멈춘 연호.
내 팔과 다리도 그 상태로, 움직이질 않았다.
“지, 지금........”
그 때, 연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연호의 목소리에 정신이 멀쩡해진 나는 아래를 쳐다봤다.
그 순간, 연호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내 팔이 눈에 들어왔다.
놀란 나는 연호의 허리를 감싸던 손을 얼른 뒤로 뺐다.
그런 다음, 연호가 등을 돌리기도 전에
방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해 달렸다.
“사귀어줄게.”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연호의 목소리.
나는 뒤에서 들리는 연호의 목소리에,
잠시 멈춰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라는 생각에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면서 얘기했다.
“너 무, 무슨 말 한 거야?”
“사귀어준다고. 고마운 줄 알아.”
“뭐......?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줄게? 내가 사양이야!
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무의식중에 했던 행동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방까지 들어와서 고백한 주제에.
고마운 줄이나 알아.
그 대신 네가 곤란해 할 것 같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줄게.”
‘사귀어 줄게.’부터 시작해서,
‘비밀로 해줄게’까지,
‘줄게’라는 식의 어투가 상당히 거슬렸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반항 한번 못해보고,
내 방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집이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 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 벨이 울린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뒤,
폴더를 열어서 액정화면을 봤다.
엄마였다.
엄마라는 이름이 뜨자,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엄마, 왜?”
“오랜만에 외식하자. 연호랑 같이 나와.”
“뭐?”
엄마는 외식하자는 말과 함께 장소를 얘기해준 뒤,
전화를 끊는다.
나는 연호랑 같이 나오라는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왠지 그 행동을 한 이후부터는 연호를 보기가 민망했다.
그 때,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연호.
나는 갑자기 들어온 연호 때문에 놀라서,
연호 면상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귀신이라도 봤어? 왜 그렇게 놀라?”
“어, 어? 아, 아니. 하하. 왜?”
“위에 잠바라도 걸쳐.”
“뭐, 뭐? 지금? 지금은 안 되는데?”
“무슨 볼일 있어? 아빠가 전화 왔어. 외식하자고.”
“아, 너한테도 전화 왔어?
.......뭐야. 두 분이서 따로따로 연락한 거야?
........알았어, 나가있어.”
“준비할 게 뭐 있다고.
그냥 앞에서 대충 입고 나가.”
“얼른 안 나갈래?”
앞에서 버티는 연호를 보면서 주먹을 쥔 채로,
이를 악 물었다.
그제 서야 웃으면서 문을 닫고 나가는 연호.
나는 연호가 나가자마자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
그 때, 계속 문 앞에 서있었는지,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서 내 손을 잡은 채로 끌고 나간다.
“왜 이렇게 서둘러! 아직 시간도 넉넉한데!”
“넉넉하긴. 너 지금 오토바이 타고 갈 생각 하는 거야?”
“뭐? 그럼 뭐 타고 가는데?......설마 걸어가는 건 아니지?”
“네가 어떻게 가든지 내 알 바 아니지.”
“뭐?.......그럼 우리 둘이 따로 간다는 거야?”
“당연하지.
지금 엄마, 아빠,
우리한테 따로따로 전화한 거보면
같은 장소에 있질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 텐데.
그리고 아빠랑 통화했을 때, 너 어디 있는지 물어봤었어.
그 때 내가 모른다고 대답했거든.
그래서 따로따로 전화한 것 같아.”
“........뭐?
그럴 필요가 있어?”
일부러 한 집에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 않은
연호의 행동이 이상했다.
나는 연호한테 이 질문을 하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연호는 내 질문에 망설이는 듯싶더니,
이내 입 꼬리를 올리면서 피식 웃는다.
“.......조심하자는 차원에서지.”
“뭐?”
결국 마지막에 한 연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연호는 오토바이, 그리고 나는 돈 몇 천원을 들고
버스정류장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나도 오토바이에 타서 편히 가고 싶었는데.
축 쳐진 어깨로 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했다.
나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질 않았다.
나는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면서 불안해했다.
그 때, 문자 한 통이 온다.
[왜 이렇게 안 와.]
연호의 문자였다.
혼자 가버린 주제에.
나는 핸드폰을 째려보면서,
그대로 종료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런 다음,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도로 주위를 살피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거의 포기상태로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그 때 전화벨이 울린다.
당연히 방금 전에 문자 보냈던 사람이겠지.
나는 그 생각에 문자를 확인하는데,
연호가 아닌 신 형민이었다.
[지금 시간 돼?]
신 형민의 문자를 확인한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답장을 보내려고 했다.
그 때,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잘 됐다, 싶은 마음에 문자를 했다.
[미안한데........내가 급해서........
혹시 우리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와줄 수 있어?]
문자를 보내면서도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신 형민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다.
나는 문자를 보낸 뒤, 온몸을 웅크린 채 땅을 쳐다보고 있었다.
“와달라고 할 땐 언제고.
오건 말건 관심도 없는 거 같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헬멧을 쓴 채, 오토바이에 앉아있는 신 형민이 보였다.
“루돌프냐? 코가 왜 이렇게 빨개?
그러다 콧물 나오겠다.”
나를 보면서 안쓰러웠는지,
자신의 헬멧을 나한테 씌워주는 신 형민.
“어? 헬멧 하나 더 없어? 너는?”
“부탁하면서 헬멧까지 신경 쓰냐? 급하게 나오느라 놓고 왔어.”
“아.”
나는 멍하게
신 형민을 쳐다보면서 서있었다.
“뭐해. 얼른 타. 늦었다면서.”
“어, 어. 맞아. 늦었지.”
신 형민의 말에 재빠르게 뒤 자석에 내 몸을 실었다.
그리곤 신 형민에게 도착할 장소를 얘기해주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출발하지 않는 신 형민.
신 형민은 갑자기 뒤로 손을 뻗어서,
내 팔을 잡는다.
그러더니 일부러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한다.
나는 놀라서 신 형민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떼려고 했다.
“가다가 뒤통수 깨지고 싶으면 네 맘대로 해.”
앞에서 신 형민이 끔찍한 상상을 하게끔 얘기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던 나는,
팔을 떼려다 말고 다시 신 형민의 허리를 꽉 잡았다.
그와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출발하는 신 형민.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신 형민 때문에,
얼굴을 신 형민의 등에 파묻은 채,
힘겹게 가야 했다.
그런데 가던 도중,
속도가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이상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신 형민의 오토바이는 멈춰있었다.
“야, 뭐해. 다 도착했어.”
알고 보니,
엄마와 만나기로 했던 장소였다.
“고마........”
웃으면서 얘기하려는데,
갑자기 신 형민의 표정이 굳는다.
신 형민의 표정 없는 얼굴에, 말을 하려다 말고,
신 형민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쳐다봤다.
그 자리에는 연호가 서있었다.
연호와 내 눈이 마주치자,
연호는 아무렇지 않게 내 쪽으로 다가온다.
“뭐하다 이렇게 늦었냐?”
“버스가 안 와서........하하. 그러게 누가 혼자 가래!”
주먹 쥔 손으로 연호를 위협하고 싶었지만,
신 형민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 나머지
연호를 째려보는 것에서 그쳐야 했다.
그 때, 뒤에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들리자, 얼른 고개를 돌려서 얘기했다.
“고마워!”
내 말에 손을 내미는 신 형민.
신 형민의 행동에 당황한 나는,
멀뚱히 신 형민의 손을 쳐다봤다.
그러자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헬멧. 내 오토바이에 탄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었어?”
“아, 맞아! 헬멧.”
어쩐지. 앞이 흐릿하게 보인다 했더니.
이런 추운 날씨에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헬멧을 벗으려고 했다.
그런데 머리에 낀 건지,
아니면 당황해서 잘 빼질 못한 건지,
제대로 벗겨지질 않는 헬멧.
나는 뒤뚱거리면서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는데........
그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꼭 감은 채로 어딘가에 떨어졌는데.......
부딪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상한 나머지,
눈을 살며시 떠서 주위를 둘러봤다.
나는 누군가의 팔에 안겨있었다.
“헬멧 하나,
제대로 벗지 못해?”
누군가의 목소리에 위를 올려다보니, 연호였다.
떨어지려 할 때 바로 나를 잡은 건지,
연호의 팔이 내 허리에 둘러져있었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선,
얼른 연호의 팔을 내 몸에서 떼어내려고 하는데.......
그 순간,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쳐다봤는데........
신 형민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062
신 형민은 우리 둘을 번갈아보더니,
시선을 돌려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신 형민의 오토바이가 점점 멀어지자,
나는 옆에 있는 연호를 밀쳐버렸다.
그러자 연호는 오토바이가 떠난 자리를
얼굴로 가리키면서 얘기한다.
“뭐냐?”
마치 내가 잘못이라도 한 듯 얘기하는
연호의 행동에 저절로 주먹이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행동들이 멈춰버렸다.
나는 연호 얼굴 앞에 주먹을 내민 상태 그대로 멈춰있었는데,
갑자기 연호는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주먹 쥔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주먹 쥔 손을 자신의 손으로 자상하게 펴주더니,
펼친 내 두 손을 자신의 양쪽 볼에 올려놓는다.
나는 연호의 행동에 놀라,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 순간,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하는 연호.
“키스하려는 거 아니었어?”
“......뭐?!내가 미쳤어?”
그 말과 동시에 연호를 세게 밀쳐냈다.
그러자 뒤로 나가떨어지는 연호.
나는 연호가 땅에 엉덩방아를 찧자,
놀라선 말을 더듬으며 얘기했다.
“하하, 괘, 괜찮아?”
“너 죽을래? 아.”
꼬리뼈를 만지면서 얘기하는 연호.
나는 연호가 넘어지자, 놀란 나머지 얼른 앞으로 다가가선
연호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왔으면 얼른 들어오지,
거기서 뭐하고 있어!”
뒤에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연호 팔을 잡은 내 손을 얼른 떼어냈다.
내 행동에 연호가 더 놀란 듯, 나를 본다.
“우리 도착했을 때부터 나와 있었어?”
당황한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얘기했다.
그 때, 연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발을 뗀다.
“오버하지 마.
그러다가 더 들키겠다.”
연호는 마지막으로 내 귓가에 속삭인 뒤,
어두운 표정으로 먼저 안에 들어간다.
나는 연호가 한 말에 혹시나 엄마가 들었을까,
하는 불안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그 때, 내 쪽으로 다가오는 엄마.
나는 엄마가 다가오자,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내 손을 잡고 조용하게 얘기한다.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어, 어? 아니. 왜?”
예상치 못한 엄마의 말에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으면서 대답했다.
“연호 표정이 어두워보여서.
혹시 싸웠나 했지........
어쨌든 들어가자. 아빠 기다리시겠다.”
“네.”
나는 엄마 뒤를 따라가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연호,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연기자 해도 되겠네.
그 전 일들을 타인이 모를 정도로
연기한 연호가 대단해보였다.
나는 연호의 연기실력에 감탄하면서
엄마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안에서는 연호와 새 아빠가
음식을 시켜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 뒤를 따라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선,
연호 옆에 앉으려는데.......
엉덩이 쪽에서 딱딱한 의자의 느낌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연호의 손이 의자 위에 있었다.
나는 연호의 손을 보자, 얼굴을 붉히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연호한테 소리쳤다.
“뭐, 뭐야.”
내 말에 연호는 아무 표정 없이 다른 쪽 의자를
자신의 얼굴로 가리키면서 얘기한다.
“여기 앉지 마. 저 쪽으로 가서 앉아.”
“뭐?!왜.”
“......”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한테 진짜 화난 건가?
방금 전까지는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심해지는 연호의 행동에, 그 전 일들을 떠올려 봤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꽉 매우는 장면 하나.
신 형민의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장면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연호를 노려봤다.
하지만 나와는 시선을 마주치려하질 않는 건지,
계속해서 다른 쪽을 본다.
“그래! 간다, 가!”
연호의 행동에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때, 새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옆에 앉으면 어때,
아리야. 여기 앉아라.”
새 아빠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친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쪽으로 다가가, 말없이 앉았다.
“아리야. 많이 먹어라.”
“네.”
나는 새 아빠의 말에 미소를 보이면서,
연호 쪽으로는 시선조차도 주지 않았다.
도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일부러 연기하는 거야,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시선을 회피하는 거야?
연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혼자서 여러 추측들을 해봤지만,
아무런 해답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조용히 있다가,
옆에 있는 엄마를 툭툭 치면서 소곤거렸다.
“엄마.”
“왜?”
“나 숙제 모르게 안 해놓고 와서, 먼저 갈게.”
“먼저 가게?........알았어. 열쇠 가져왔지?”
“응.”
나는 엄마에게 조용히 얘기한 뒤,
새 아빠에게 인사했다.
“가려고?”
“네. 먼저 가볼게요. 숙제 때문에.”
새 아빠에게도 얘기한 뒤,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연호를 쳐다봤는데,
연호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연호의 무관심한 행동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씩씩거리면서 집으로 걸어가야 했다.
걸어가면서도 연호의 행동에 대한 의문점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눈 깜빡할 새에 집 근처에 도착했는데.......
그 때, 내 뒤쪽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주위가 캄캄해서 그런지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도
가볍게만 느껴지질 않았다.
두려워하며 걷던 나는 결국 무서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발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귀신인가?
귀신이란 생각이 들자,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면서,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 때, 또 다시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악~!!”
나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앞을 보고 마구 달렸다.
정신없이 달려선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고 했다.
그 때, 내 손 안에 있던 열쇠가 쓱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위로 올라간다.
나는 열쇠가 가는 방향에 따라 시선을 위로 옮겼는데.......
연호의 얼굴이 보였다.
“뭐, 뭐야?”
연호의 얼굴이 바로 위에서 보이자,
고개를 뒤로 저치고 있던 나는 똑바로 서선 얘기했다.
그러자 무언가 이상한 듯, 인상을 찌푸리는 연호.
나는 아무 말 없이,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은 채
연호를 바라보기만 했다.
“......분명히 화난 것 같은데, 뭐 때문에 화났는지를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뭐?.......그걸 진짜 몰라서 물어.”
“진짜 화났나 보네? 알 수 없다고만 얘기했는데도 화내는 걸 보니까.”
“......엄마한테 비밀로 해야 되는 건 맞지만,
옆에 앉지 말라는 건 너무 심했잖아.”
”그거 때문에 화난 거야?
.......근데 그러지 않았으면?
그러지 않았으면 더 일찍 들킬 수도 있고,
조금씩 의심했겠지.
안 그래도 우리 둘이 얘기하다가 음식점에 늦게 들어오는 거 발견해서,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했을 텐데. 안 그래?”
“.......”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쓰다듬더니 집으로 들어가는 연호.
나는 연호의 행동에 멀뚱히 서 있기만 했는데,
그 순간 ‘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내가 개 취급 받은 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연호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분명 연호는 집에 들어갔으니까,
귀신이 아닌 이상 내 뒤에 있을 리는 없고.
나는 이상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밀, 그리고 의심이란 단어를 쓰면서 얘기했어.
즉, 둘은 비밀로 해야만 할 상황이거나 관계인 거지. 안 그래?”
다 일고 있다는 듯이 얘기하는 남성의 목소리에,
누군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남자는 신 형민이었다.
신 형민과 내 눈이 마주치자마자,
신 형민은 내 쪽으로 점점 다가온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신 형민을 보는데.......
그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 나오려 한다.
나는 놀라서 이리저리 살피는데........
그 때,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몸을 숨기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과 몸을 딱 붙이고,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발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주위를 살피려는데,
그 때,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들키면 오해라도 할까 봐?”
“뭐, 뭐? 아니.”
나는 혹시라도 안에서 연호가 들을까,
조용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신 형민.
신 형민의 시선에 가까이 붙어있는 게 이상했던 나는,
신 형민과의 거리를 점점 넓혀갔다.
그 때, 신 형민이 우리 집 앞에
왜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너 음식점에서부터 나 감시한 거야?”
“내가 정신 나갔어? 거기서부터 너를 따라다니게?
.......그냥 그 때 느낌이 이상했거든.
넘어지려는 너를 받쳐준 것뿐인데,
내 눈에는 단순하게 보이질 않았거든
.......너희 둘 지금 가족 이상의 관계지?”
#.063
신 형민의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장 아니라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무 말도 못하는
내 모습에 미소를 짓는 신 형민.
모든 걸 다 알고 있듯이 얘기하는 신 형민의 행동에
어떤 얘기든 꺼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말을 지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전화 온 것 같은데.”
신 형민은 자신의 손으로 내 주머니 쪽을 가리키면서 얘기한다.
그제 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주머니 쪽으로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액정에 뜬 이름을 보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하지 않은 연호였다.
연호라는 두 글자를 보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려왔다.
“뭐해, 받아야지.”
“어, 어. 받아야지.”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지금 이 상황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폴더를 열어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냐?]
“어, 나 잠깐.......연지 만나러. 연지한테 전화가 와서.”
[뭐? 아.......]
연호의 목소리가 들리던 도중,
핸드폰이 손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연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했던 나는 주위를 둘러보는데........
신 형민이 내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도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연호가
이상한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빼앗으려고 콩콩 뛰면서 손을 높이 뻗었다.
“얼른 안 내놔?”
하지만 내가 손을 뻗으려하면 할수록
신 형민은 더 높이 손을 뻗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손을 뻗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이 닿는 느낌에 위를 올려다보는데........
신 형민의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이 떨어지려는 게 보였다.
“안 돼!”
나는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면서
핸드폰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핸드폰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온몸을 다 내던졌을 때,
물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멈춰있었다.
“이거 어쩌냐?”
그 때, 바로 앞에서 들리는 신 형민의 목소리.
신 형민의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고는 앞을 보는데.......
핸드폰이 배터리와 분리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땅에 엎어진 상태로 핸드폰 배터리를 집었는데,
내 행동에 뭐가 그리 우스운지,
위에서 크게 웃고 있는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만 들어 신 형민을 째려봤다.
그러자 신 형민은 헛기침을 하면서 내 앞에서 쪼그려 앉는다.
나는 신 형민을 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보면서 울상을 지었는데........
신 형민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귓가로 울려 퍼졌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다 너만 보고 있는 거 알아?”
나는 신 형민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은 나를 불쌍한 사람 보듯이
내려다보면서 내 옆을 지나간다.
사람들의 시선에,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진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땅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과 배터리를 주웠다.
그리고는 뛰어가려는데........
누군가 내 얼굴을 잡고 있는 느낌이 들면서
앞이 캄캄해져왔다.
뒤이어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있어.
이렇게 너 가려주면서 가는 내가 더 쪽팔리니까.”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신 형민이 인도하는 쪽으로
따라 걸어가야 했다.
그 때, 몇 걸음 걸어가는가 싶더니, 발걸음을 멈춘다.
나 또한 덩달아서 발걸음을 멈췄는데,
그제 서야 갑갑했던 느낌이 없어지고,
앞이 훤히 보였다.
“뭐, 뭐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네 얼굴 가렸으니까,
그 사람들도 자세히는 네 얼굴 모를 거야.”
“고.......
아니지! 너 내 핸드폰 어떻게 할 거야!”
나는 키 차이 때문에 차마 신 형민의 목덜미는 잡지 못하고,
소매만 잡은 채로 얘기했다.
그 때, 내 앞에 다른 한 손을 내미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요구하는 손짓에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핸드폰 달라고. 내가 고장 냈으니까, 내가 고쳐올게.”
“어, 어? 진짜?”
나는 고쳐온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핸드폰을 신 형민에게 건네려고 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여러 생각들.
신 형민이 핸드폰을 고치고 난 다음에
안의 내용들을 확인해보면 어쩌지?
핸드폰 안에 있는 내용들 중에 하나라도
연호와 사귄다는 증거가 있으면 어떡하지?
나는 온갖 추측들을 하면서,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돼, 됐어.
내가 그냥 고치지, 뭐. 하하.
아니면 고장 난 게 아닐 수도 있잖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 때, 옆쪽에서 불이 번쩍 하고 들어오더니
익숙한 차 한 대가 보인다.
나는 익숙한 차가 보이자,
고개를 내밀어서 자세히 차를 살펴봤다.
그와 동시에 엄마와 새 아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린 채, 뒤로 등을 돌렸는데.......
내 앞을 지나가려던 새 아빠 차는, 갑자기 내 앞에서 멈춘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살짝 뒤를 돌아봤는데.......
그 때,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쯧. 그것도 숨긴 거라고.
바보가 아닌 이상, 너인 줄 다 알겠다.”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을 노려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 때, 새 아빠가 창문을 살짝 열어서는
고개를 내 쪽으로 뺀다.
“지금 집에 도착한 거야?”
“아, 아니요. 아까 도착했는데,
잠깐 볼일 있어서 밖에 나왔어요. 하하.”
어색하게 웃고 있을 때, 옆에 앉아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신 형민에게 둔다.
신 형민은 뭐가 그렇게 떳떳한지
얼굴을 숨기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누구니?”
“남자친구?”
엄마의 물음에 나는 신 형민을 보고 있을 때,
새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친구’라는 말에 놀란 나는
머리를 강렬하게 흔들면서 얘기했다.
“절대 아니니까,
지금 이 상황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세요!”
나는 강력하게 부정하면서
신 형민에게 얼른 가라는 표시를 했다.
그 때, 미소를 지으면서 새 아빠와 엄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신 형민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더니 내 귀에 자신의 입술을 댄다.
신 형민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었기에
불안해하면서 눈만 살짝 옆으로 돌려, 신 형민을 노려봤다.
그 때, 신 형민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부 비밀로 할 테니까,
안심해.”
그 말을 하고는 내 옆을 지나가는 신 형민.
신 형민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옆에 누가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앉아있는 연호가 보였다.
연호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자, 뒤를 돌아본다.
그러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서는 나한테 다가온다.
그것도 인상을 찌푸린 채로.
“중간에 왜 전화 끊었어?”
연호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면서,
연호한테 만신창이가 된 핸드폰을 보여줬다.
그 때, 엄마가 빠르게 들어온다.
엄마의 행동과 표정들이 무언가를 궁금해 하는 눈치여서,
엄마가 나한테 다가오기 전부터 불안해했다.
“아리야, 너 아까.......”
“아까? 뭐? 아, 우리 밥 먹었을 때 나간 거? 왜? 하하.”
‘아까’라는 말을 꺼내자,
불안해진 나는 급하게 다른 얘기로 덮어버리고,
얘기하지 말라는 신호를 눈빛으로 표현했다.
그러자 말을 하려던 엄마도 헛기침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왜? 아까 무슨 일 있었어?”
“어? 아무 일도 없었어. 하하. 아까 우리 간 것 때문에 화나서 그런 걸 거야.”
나는 연호에게 대충 둘러댄 뒤,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눈을 비비면서 침대에 누우려는데.......
배터리와 분리되어 있는 핸드폰이 보였다.
나는 제발 되기를 바라면서 핸드폰 배터리를 다시 끼웠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켜는데........
다행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핸드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핸드폰을 침대에 뒀다.
걱정스러웠던 문제 하나가 해결되니,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오늘 하루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그런지, 기운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로 걸어가선 누웠다.
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스르르 감겨왔다.
몇 시간 동안을 잠에 깊이 빠져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떴는데.......
핸드폰이 번쩍거리면서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왔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액정을 보는데.......
액정에 뜬 이름은 연지였다.
나는 연지의 전화를 받으려고 폴더를 열려는데.......
그 순간, 끊기는 전화.
나는 이상해서 이것저것 클릭해보는데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나와.]
연지의 문자에 급해진 나는 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때, 기지개를 펴면서 방에서 나오는 연호.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연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방으로 들어가 대충 교복을 갈아입은 뒤,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밥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나는 늦었다면서 얼른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연지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연지가 기다리는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아, 네가 전화 왔을 때 일어났어. 하하.”
“그, 그래서 머리가.......
아, 맞아! 근데 너희 집 앞에 어떤 여자 한 명 서 있더라?”
연지의 말에 앞을 봤다.
그 때, 보이는 사람은 이 주희였다.
이 주희는 등을 보인 채, 전봇대에 기대어있었다.
나는 늦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몇 분 동안 이 주희를 지켜보면서 연지와 얘기했다.
그 때, 문소리가 들린다.
문소리가 들리자, 뒤돌아있던 주희는 고개를 살짝 돌려
우리 집 쪽을 바라본다.
집에서 나오는 사람은 연호였다.
연호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오토바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앞으로 잘 가다가 갑자기 멈추는 연호.
혹시 우리가 몰래 보고 있는 거 알았나?
나와 연지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연호를 조용히 지켜봤다.
그 순간, 이 주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연호.
그러더니 우리가 들리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연지는 나를 툭툭 치면서 조용하게 얘기한다.
“연호, 저 여자랑 사귀는 거야?”
#.064
“여, 연호랑 저 여자랑........?
아니야! 연호 지금 사귀는 사람 없어! 하하.”
나는 연지의 등을 툭툭 치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연지.
털털한 척 얘기했지만,
연지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아리야, 뭐해.
얼른 학교 가야지, 안 그러다가 늦겠다.”
그 말과 동시에 나를 끌고 가는 연지.
나는 연지한테 끌려가면서도 불안한 표정으로
연호가 있는 쪽을 바라봐야 했다.
연지의 손에 이끌려 학교에 오면서도
연지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너 어디 아파?”
“........”
연지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입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교실에 들어와서는, 바로 내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런 다음, 책상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있었다.
“어? 너 문자 온 것 같은데?”
그 때, 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지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던 문자가 아닌, 스팸문자였다.
나는 다시 풀이 죽어서는 책상에 기대려는데,
창문이 보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다가가서는,
밖을 바라봤다.
밖에는 많은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연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1교시가 시작될 때까지 창문에 딱 붙어서 지켜봤는데.......
연호와 이 주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연호가 보이지 않자,
수업이 시작됐어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책상에 기대어있었다.
그러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연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학교야?]
문자를 보내고 몇 분을 기다렸지만,
연호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수업을 듣지도 않은 채,
핸드폰만 바라보면서 몇 시간동안을 엎어져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나를 흔들어 깨우는 누군가.
나는 고개를 들어, 눈을 비비면서 옆을 봤다.
“야, 일어 나. 지금 점심시간이야.”
“저, 점심시간?”
나는 눈을 비비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전부 떠들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교실을 나왔다.
“아리야! 어디 가!”
연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복도로 나와
연호의 교실로 걸어갔다.
연호의 교실 앞에 도달했을 쯤,
왠지 모르게 떨려오는 느낌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고개를 숙였다.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걸어가는데........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하지만 나는 고개만 숙인 채,
그 사람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연호 교실로 걸어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연호 교실 분위기도 떠들썩했다.
나는 복잡한 교실 분위기에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주위만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 때, 어떤 남학생 한 명이 교실을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복도로 나오는 남학생의 모습에
나는 얼른 그 남학생에게 달려갔다.
“저기 있잖아, 혹시.......연호 왔어?”
“아니, 안 왔는데.”
“아.......알았어.”
안 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로 돌았다.
그 때,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신 형민의 얼굴이 보였다.
신 형민은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다른 쪽으로 걸어간다.
나는 신 형민을 보고 있다가,
발걸음을 돌려 교실로 걸어갔다.
교실에 들어가서도
책상에 누워있기만 했다.
그렇게 한 시간, 한 시간이 지나가다 보니,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됐다.
“너 오늘따라 이상하다? 왜 그래?”
“어, 어?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이 사실을 친한 친구에게도 알리지 못한다니.
나는 한숨을 쉬면서 밖으로 나갔다.
연지와 여러 얘기들을 하면서 걸어가고는 있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어? 잠깐. 나 이쪽에서 살 게 있어서. 너 먼저 가.”
“어? 알았어. 잘 가.”
나는 연지에게 급하게 말한 뒤,
손을 흔들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마지막 내 모습을 보면서 한숨 쉬는 연지.
나는 연지의 행동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연지와는 다른 길로 걸어갔다.
그 때,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누군가.
나는 걸어가다 말고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학생, 학생 몇 살이야?”
늙은 아저씨 한 분이
서계셨다.
“잠깐 나랑 얘기할 수 있어?”
“네?........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했다.
그리고는 그 아저씨의 뒤를 따라가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내 손을 잡는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자,
나는 걸어가려다 말고 멈춰서는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신 형민의 얼굴이 보였다.
“네가 여긴 어떻게 왔어?”
신 형민의 얼굴이 보이자,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얘기했다.
신 형민은 내 질문에 한숨을 쉬면서
앞에 있는 아저씨를 말없이 본다.
그러자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면서 말없이 도망간다.
“쯧쯧. 점심때부터 이상하다 했더니.
너 바보냐?
방금 네 행동 보는데,
유괴범 따라가는 유치원생 같더라.”
“뭐?!
.......어쨌든 구해준 건 고맙게 생각할게.
잘 가.”
신 형민의 마지막 말에 기분이 상했던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다른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내 쪽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신 형민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유괴 당하려는 어린애 구해줬더니
그냥 가는 거야?”
“하하. 유괴당하는 어린애?
........알았어. 커피 한잔 사줄게.”
“그래?”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끌고 가는 신 형민.
나는 단순히 몇 백 원짜리 커피를 말한 거였는데.
신 형민이 나를 끌고 간 곳은 비싼 커피전문점이었다.
나는 입을 쩍 벌리면서 커피전문점을 바라봤다.
그 때, 멍하니 서있는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신 형민.
“자, 잠깐!
나, 나 돈 그렇게 많지 않은데? 하하.”
나는 그 말과 동시에 버팅기기에 돌입했다.
그 때, 나를 보면서 미소 짓는 신 형민.
“어떻게든 되겠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한 마디를 남겨놓고,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신 형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신 형민이 안내하는 쪽으로 걸어가서 앉았다.
“앉아있어.”
“자, 잠깐. 나 진짜 돈 별로 없는데? 하하.”
“됐어.”
신 형민은 카운터 앞으로 걸어가더니,
위에 달린 메뉴판을 본다.
그러더니 직원에게 무언가를 주문한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지갑을 열었다.
지갑에는 달랑 이천 오백 원밖에 없었다.
그 때, 카운터에서 커피를 받아,
이쪽으로 걸어오는 신 형민이 보였다.
한 잔이 아닌, 두 잔을 들고 오는 모습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자.”
나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는 신 형민.
나는 말없이 보고 있다가
나에게 건넨 커피를 다시 신 형민에게 줬다.
“네가 두 잔 다 먹으면 안 될까? 하하. 내가 지금 돈이 없어서.”
“......”
말없이 다시 나에게
커피를 건네는 신 형민.
“내가 설마 너한테 내라고 하겠냐?
더군다나 돈도 별로 없다는 애 데려와서.”
신 형민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하면서
커피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뜨거운 커피를 조심스럽게 마시고 있었는데........
그 때, 옆에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사귀고 있었던 거야?”
신 형민의 말이 들리는 순간,
입에 있던 커피를 앞으로 내뿜었다.
“........죽을래?”
그 때, 앞에서 들리는 신 형민의 목소리.
나는 신 형민의 목소리에 입을 닦으면서 앞을 봤다.
내가 입으로 뿜었던 커피는
전부 신 형민의 얼굴에 묻어있었다.
“하하. 괜찮아?”
어색하게 웃으면서 옆에 있는 휴지로
신 형민의 얼굴을 닦아주려고 했다.
신 형민은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열이 받았는지,
옆에 있는 휴지를 힘껏 뽑아서 자신의 얼굴을 닦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내 엽기적인 행동을 보고는 소곤거린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휴지 한 장을 뽑아
신 형민의 얼굴을 닦아주려고 할 때,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휴지로 닦다 말고 옆을 째려본다.
그러자 소곤거리면서 우리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신 형민 앞으로 다가가서는 휴지로 신 형민의 얼굴을 닦아줬다.
“그, 근데 얼굴뿐이 아니라, 교복도 젖어서 어떡해.......?”
“걱정 마. 너한테 세탁해오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인상을 찌푸리면서 열심히 이곳저곳을 닦아내더니,
휴지를 책상 위에 놔둔다.
나는 말없이 신 형민이 모아놓은 휴지를 들고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휴지를 버렸다.
그리고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도 들지 않고 있을 때,
신 형민은 한숨을 쉬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난다.
설마 내가 방금 한 행동 때문에 화난 건가?
나는 신 형민이 일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위를 올려다봤다.
“나가자.
주위 사람들도 전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다른 조용한 데 가서 얘기하자.”
“으, 응.”
신 형민에게 미안했던 나는
그저 신 형민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했다.
신 형민이 걸어가는 쪽을 따라, 걸어가려는데.......
갑자기 가다말고 멈추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발이 멈추자,
나 또한 가다말고 멈춰서 앞을 봤다.
그 순간, 나는 얼어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앞에는 연호와 이 주희가 서있었다.
#.065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연호 쪽만 바라봤다.
그 때, 내 앞으로 다가오는 이 주희.
“어, 여기서 또 보내?
너희 둘이 여기는 어쩐 일이야?”
신 형민과 나를 번갈아보면서 얘기하는 이 주희.
나는 이 주희의 말에도 전혀 시선을 주지 않고,
연호만 쳐다봤다.
연호 또한 인상을 찌푸리면서
신 형민과 나를 번갈아본다.
연호의 행동에 오늘 연락이 안 되었던 것에서부터
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옆에 있는 이 주희가 신경 쓰였던 나머지,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그저 한숨만 쉰 채,
마지막으로 연호를 노려보고 연호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저 둘이 같이 있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니까,
너무 질투심 갖지 않는 게 좋을 걸?
그러다가 너만 더 골치 아파지니까.”
나는 씩씩거리면서 무서운 속도로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신 형민의 목소리.
‘질투심’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춰졌다.
발걸음을 멈춘 나는, 뒤를 돌아 신 형민을 노려봤다.
그 순간, 무언가 신발 쪽에서 물컹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신 형민의 여유 있는 미소를 보는 순간,
아래를 내려 봐야겠다는 생각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대신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질투? 내가 무슨 질투를 했다고 그래?!
그리고 너는 어떤 근거로 내가 사귀고 있다는 걸
확신하듯이 얘기하는 거야?!”
“지금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보니까,
질투하는 거 맞네.”
나를 약 올리듯이 얘기하는 신 형민.
나는 주먹 쥔 손을 조금씩 위로 올리려는데.......
그 순간, 쾌쾌한 냄새가 내 코를 찔러왔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내 아래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 나는,
조금씩 고개를 숙여 신발이 있는 쪽을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불안한 마음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신발을 조금씩 들었는데.......
내 신발에 깔려있는 개똥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얼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더럽기도 했지만, 일단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기에
얼굴을 감추는 게 우선이었다.
“한심하기는.”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살짝 고개를 들어,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노려봤다.
그 때, 내 다리를 누군가가 잡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내 똥 묻은 신발이
내 발에서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상한 마음에 신발이 있는 쪽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 신 형민이 내 양쪽 다리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가, 갑자기 뭐하는 거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개똥을 밟은 것도 부끄러운데.
사람들의 눈에 더 띄게 하는 신 형민의 행동에
나는 신 형민에게 소리치면서 다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그 순간, 내 몸이 공중부양을 한 듯,
위로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신 형민의 뒤통수가 보였다.
“뭐, 뭐야.”
“지금 너 업고 가는 내가 더 쪽팔리니까, 고개 숙여.”
신 형민은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몸을 숙이더니
왼손으로만 나를 받치고,
개똥이 묻은 신발 뒤꿈치를 오른손으로 잡는다.
그러더니 앞으로 걸어가는 신 형민.
몇 걸음 가다 말고,
옆에 휴지통이 보이자
미련 없이 신발을 휴지통에 버린다.
“자, 잠깐 그건 내 신발......”
“이렇게 더러워진 신발을 어떻게 신으려고 하냐?”
“뭐?!빨아서 쓰면 되는데, 얼른 내려 줘!”
“맨 발로 걸어가게?”
“뭐?.......다시 신발 꺼내야지!”
“그 냄새나는 신발 신고 갔다간,
주위에서 다 이상하게 볼 걸?
어쨌든 내가 버린 거니까,
신발 새로 하나 사줄게.”
“됐어!”
나는 신 형민의 말에 그 신발을 신고
집에까지 걸어갈 과정들을 생각했다.
그 순간, 개똥이 묻은 신발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신 형민의 등에 업힌 채로,
한동안 내려달라고 떼를 쓰다가,
결국 지쳐서 신 형민이 걸어가는 대로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눈이 감기기 시작했고,
그 다음부터는 검은 색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야, 일어 나.”
신 형민의 목소리와 함께 내 몸 전체가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건가?
나는 불안한 마음에 바로 눈을 떴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는데,
주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평화로운 듯,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잘못 느낀 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앞을 바라봤을 때,
누군가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아, 맞아. 내가 업혀있었지.
일단 지진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하고 있었다.
그 때, 뒤통수만 보이던 신 형민은 고개를 살짝 돌려,
나에게 얘기한다.
그것도 이를 악물면서.
“야, 빨리 일어 나.”
신 형민의 말에 나는 내 몸을 얼른
신 형민의 몸에서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를 놔주지 않는 신 형민의 손.
나는 신 형민의 행동에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나 내려오라고 깨운 거 아니었어?”
내 말에 살짝 뒤를 돌아,
내 발쪽을 바라보는 신 형민.
“내려주려고 보니까,
한 쪽 발은 맨 발인 게 지금에서야 보이네.”
“아, 맞아. 나 신발 없지.......
됐어. 여기부터는 빨리 뛰어가면 되니까 상관없어.
내려줘.”
나는 바로 코앞에 있는 집을 바라보면서,
신 형민에게 얘기한 뒤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 얘기를 듣고도 내려주지 않는 신 형민.
그러더니 위를 올려다본다.
“지금 불 다 꺼진 거 같은데,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나 보지?”
“이, 있을 수도 있지. 왜. 하하.”
나는 신 형민의 얘기에 불안해진 나머지,
계속해서 신 형민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는 여러 차례 내려가기를 시도했다.
그 때, 신 형민은 나를 받쳐주던 한 손을 옆으로 빼면서,
무언가를 요구하듯이, 손을 내민다.
“뭐, 뭐?”
“열쇠 달라고.
그 상태로 혼자 걸어가다가 유리조각에 찔려서
발바닥에 피라도 나면 어떡해?”
“하하. 내 신경까지 써주고.
눈물 나게 고맙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꺼내,
신 형민에게 건넸다.
그러자 신 형민은 집 앞으로 걸어가더니
열쇠로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신 형민은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더니,
거실 불을 켠다.
그리고는 살포시 나를 내려준다.
“불은 내가 켜도 됐는데........
이제 됐으니까, 얼른 가 봐.”
“걱정 마.
연호 지금쯤 그 여자랑 같이 있다가
바래다주러 가는 길일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편하게
소파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서는,
소파에 앉는 신 형민.
“그건 그렇고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뭐?.......누, 누가 누구랑 사귄다고 그래! 아까부터!”
“말 더듬는 거에서부터, 네 자신이 사귀는 거라고 이미 얘기하고 있네.”
그 말과 동시에
한숨을 쉬는 신 형민.
“이제 어떡하려고 그러냐?
그러다 네 가족 중에 누가 알게 되면 어쩌려고.”
신 형민의 말을 듣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신 형민을 바라봤다,
“날 왜 그렇게 보는 건데?”
신 형민은 소파에서 일어나 점점 내 얼굴 가까이로 다가온다.
나는 신 형민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때, 내 핸드폰 벨이 울린다.
나는 핸드폰 벨소리에 놀라,
주머니에서 얼른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 다음, 액정화면을 보는데.......
액정화면에 뜬 이름은 연호였다.
연호의 이름에 신 형민을 한번 보다가,
그대로 폴더를 닫아버렸다.
“받아도 될 텐데?”
“됐어.”
“오, 세게 나가는데?
그렇게 행동하면서 화났다는 걸 보여주는 건가?”
내 행동에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을 노려보다가,
다시 핸드폰 쪽으로 시선을 돌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때, 문 밖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열쇠를 열쇠구멍에 넣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온 것 같은데?”
태연하게 얘기하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말에 급하게 문 앞에 있는
신 형민의 신발을 왼손에 들고,
신 형민의 팔을 다른 오른손으로 잡은 채 내 방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나오지도 말고, 조용히 하고 있어야 돼!”
“왜?”
조용히 있으라는 경고를 날리면서 문을 닫으려는 순간,
여유 있는 표정으로 오히려 나에게 묻는 신 형민.
내 말에도 긍정적으로 대답하지 않는 신 형민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신 형민을 타이르듯이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그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조용히 하고 있어야 돼!”
마지막으로 경고를 날리면서 내 방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뒤를 돌았는데........
연호가 급하게 신발을 벗더니,
내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연호의 얼굴이 보이자,
나는 자연스럽게 내 방문에서 멀리 떨어졌다.
“너 방금 전 카페에서.......”
‘쿵’
연호가 방금 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하려는 순간,
내 방에서 어떤 물체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고개를 돌려 방 쪽을 바라봤다.
그 때, 연호도 내 방 쪽에서 나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내 방문 앞으로 다가가,
내 방 문고리를 잡는다.
#.066
“자, 잠깐만!”
연호가 내 방 문고리를 잡자,
불안해진 나는 내 방 문 앞을 두 팔로 막으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문고리에서 손을 떼더니, 나를 바라보는 연호.
“왜, 들어가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어쨌든 여자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거 아니라고. 하하.”
혹시라도 나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뒤쪽을 슬쩍 슬쩍 보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내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연호는
이내 뒤로 물러나더니,
자신의 뒤 쪽에 있는 벽에 기댄다.
“언제부터 그런 거 따졌냐?
........하긴. 내 방이 아니니까,
함부로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안에 뭐가 있는지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 의견은 존중할게.”
연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그에 이어서 끝난 것만 같았던
연호의 무거운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말을 끊었는데........
너 오늘 카페에서........”
‘카페’라는 말이 연호의 입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이 주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연호가 대충 무슨 얘기를 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쥔 채, 조용하게 얘기했다.
“너, 너도 마찬가지잖아. 오늘 나만 그랬던 거 아니었잖아.”
“뭐?”
“너, 너 내가 문자 보냈을 때, 왜 답장 안 보냈어?”
나는 똑바로 연호와 눈을 맞춘 채, 얘기했다.
그러자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는 연호.
그리고는 휴대폰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는가 싶더니,
내 앞에 자신의 휴대폰을 들이민다.
[지금 학교야?]
“이거 말하는 거야?
지금에서야 봤어.
확인할 겨를이 없었거든.”
내가 보냈던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 주희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본 후로부터 얼마나 불안해했었는데.
다짜고짜 집으로 들어와서는 오늘 카페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화났다는 듯이 물어보기나 하고.
연호의 행동에 그 전 일들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여자에 대해서 아무 것도 얘기해주지 않으면서,
매번 같이 있고........
사실 아침에 너랑 그 여자랑 같이 있는 거 봤어.
그 다음부터 나도 얼마나 신경 쓰이고 짜증났는지 알아?!”
“짜증?”
연호는 ‘짜증’이란 말에 나를 몇 초간 보더니,
자신의 몸을 벽에서 뗀 채, 등을 돌린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여기서 그만할까?”
연호의 말에 움직이지도 않고, 그대로 멈춰있었다.
연호는 등을 돌린 채 몇 초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내 한숨을 쉬면서 밖으로 나간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는
연호가 나간 자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문소리.
“나 때문에 싸운 건 아니겠지?”
문소리에 이어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맞아. 신 형민이 있었지.
나는 신 형민의 목소리에 얼른 눈물을 닦았다.
그런 다음, 신 형민의 말이 거슬렸던 나는 고개를 돌려,
신 형민을 노려봤다.
그 순간, 갑자기 불을 끈 듯,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캄캄했다.
뒤이어서 답답한 느낌도 들었다.
“뭐, 뭐야!”
나는 앞에 있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위로 힘껏 들었는데........
신 형민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신 형민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놀란 나머지 신 형민을 힘껏 밀쳐버렸다.
내 힘에 의해 뒤로 밀쳐진 신 형민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얘기한다.
“뒤로 넘어질 뻔 했잖아!”
신 형민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얼른 문을 열어주고 나가라는 듯이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 때 신 형민은 갑자기 내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는다.
나는 신 형민의 갑작스런 행동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등을 돌린 채로 얘기했다.
“뭐, 뭐야!
왜 여기서 옷을 벗어!”
나는 눈만 가린 채, 슬금슬금 소파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서는
쿠션 하나를 들려고 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등에 부딪히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느낌에 하던 행동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물체를 봤다.
그것은 옷이었다.
옷?
갑자기 옷이 보이자, 이상한 마음에
고개를 살짝 들어 신 형민을 쳐다봤다.
“아아악!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얼른 안 나가?!”
나를 경악하게 만든 건, 신 형민의 맨 몸이었다.
신 형민은 위통을 벗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신 형민을 밖으로 내쫓으려 하는데,
신 형민은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는 듯이 그 자리에 서서 버틴다.
“너 같으면 이 추운 날에 이렇게 빨게 벗고 돌아다니겠냐?”
“아, 아, 그렇지. 하하.”
“이게 누구 때문인지는 알겠지?”
“누, 누구 때문.......?”
“당연한 거 아니겠어? 방금 내 옷에 대고 울어댄 누구 때문이지.”
“뭐, 뭐?
........네가 먼저 안은.......
어, 어쨌든........
그런 조금한 거 하나 때문에 옷 안 갈아입어도 될 텐데........”
그 때,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옷을 가리키는 신 형민.
“다른 건 묻어도 괜찮은데, 네 콧물까지 묻어서 말이지.”
“흠흠........어쨌든 다른 옷이라도 입고 있어!”
나는 고개를 돌린 채, 다른 쪽을 보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내 말에 신 형민은 어딘가로 걸어간다.
신 형민이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 서야 나는 고개를 돌려서 신 형민이 걸어간 쪽을 바라봤다.
신 형민은 자신의 방인 듯,
연호의 방문을 거리낌 없이 열더니
안으로 들어간다.
“야, 자, 잠깐만!
거기 함부로 들어가면.......”
나는 신 형민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연호 방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내 발길을 멈추게 한 신 형민의 모습.
신 형민은 윗도리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연호 서랍 속에서
옷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는 그 옷을 아무 말 없이 입는다.
신 형민의 행동에 내가 이 집안의 손님이라도 된 듯했다.
“이 옷, 내일 다시 너한테 주면 되는 거지?”
“어, 어?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 형민이 열어놓은 서랍을 조용히 닫았다.
신 형민은 이내 옷만 연호 옷으로 갈아입은 채, 밖으로 나갔다.
나는 신 형민이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조용히 문을 잠그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침대로 가서 누웠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 연호.
나는 방문을 바라보면서 문소리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 때, 열쇠소리가 들리면서 문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사람의 발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혹시 연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한번 말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는데........
연호가 아닌, 엄마와 새 아빠였다.
“자다 일어난 거야?”
엄마가 내 앞으로 다가오면서 얘기한다.
나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등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새 아빠의 목소리.
“연호는 어디 나갔니?”
“아, 아, 네.”
“어디 나간다고는 얘기 안 하고?”
“네, 네. 이제 곧 들어오겠죠. 하하.”
새 아빠가 나에게 연호에 대해 묻자,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으면서 얘기했다.
그런 다음, 얼른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연호한테 전화해 봐. 어디 있냐고.”
“어, 어? 좀 있으면 들어오겠지. 하하.”
계속해서 전화해보라고 얘기할까 봐,
그 말만 한 채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연호가 어디 있는지는 궁금했지만,
차마 먼저 전화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휴대폰만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얼마나 뒤척이면서 잤는지,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휴대폰과 배터리가 분리된 채 떨어져 있었다.
나는 분리되어 있는 휴대폰을 보자마자,
자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전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휴대폰에 배터리를 끼우고,
조심스럽게 버튼을 눌러 휴대폰을 켰다.
하지만 휴대폰에는 메시지라든지,
부재중 전화를 알리는 메시지가 뜨질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쉰 채, 방을 나가려고 문을 열려는데.......
그 순간, 내 방문을 벌컥 열고 엄마가 들어온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 듯,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나를 붙들면서 얘기한다.
“어젯밤에 연호 안 들어왔니?”
“어?
........아, 새벽에 나랑 거실에서 마주쳤는데.......
일 있어서 일찍 간다고 했어.”
나는 말을 더듬지도 않고, 엄마한테 거짓말을 술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아무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방을 나간다.
어제 밤에 나가더니.......어딜 간 건지?
엄마가 아무 의심 없이 넘겼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외박을 한 연호가 걱정됐다.
현재로서는 남자, 여자가 아닌 가족으로써 걱정되는 거니까.......
연락해도 되겠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연호에게 전화하려고 휴대폰을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휴대폰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액정화면에 이름이 뜬다.
액정화면에 뜬 이름은 연지였다.
나는 연지의 이름이 뜨자마자,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왜?”
“빨리 나와, 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 맞아!
나 어제 밤에 길거리 돌아다니다가 연호 봤는데.”
“뭐? 진짜?
어, 언제? 어디에서?”
“좀 천천히 좀 물어봐!
.......어떤 여자랑 같이 있던데.
아, 맞아! 너희 집 앞에서 연호 기다리고 있던 여자였던 것 같아.”
#.067
“연호 기다리던 여자?”
연지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얼굴.
그 사람은 이 주희였다.
나는 이 주희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입이 묶인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듣고 있어?”
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대로 휴대폰의 폴더를 닫아버렸다.
한참 동안 닫혀있는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
연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그대로 연호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연호가 마지막에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여기서 그만할까?’
연호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자마자,
나는 그대로 휴대폰을 침대로 던져버렸다.
그런 다음, 책상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책상 쪽으로 가려다 말고 뒤를 돌았는데,
엄마가 옷 하나를 들고 있었다.
“이거 누구 거야?”
옷 하나를 들면서 얘기하는 엄마.
엄마의 말에 옷이 있는 쪽을 보는데.......
신 형민이 어제 놔두고 갔던 옷이 보였다.
나는 옷이 보이자마자,
놀란 나머지 엄마 앞으로 얼른 달려갔다.
그런 다음, 엄마의 손에 있는 옷을 빼앗았다.
“왜, 누구 옷인데?”
“아, 치, 친구 옷이야.
내가 오늘 하루 입는다고 해서.......
하하. 어쨌든 나가, 나 학교 갈 준비해야 돼서.”
“친구? 남자친구? 남자 옷인 것 같은데?”
“.......저, 절대 아니니까, 이상한 상상 하지 마!”
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엄마를 내 방에서 밀어냈다.
내 방을 나가면서도 계속 궁금했는지, 나에게 물어보는 엄마.
나는 엄마의 끊이지 않는 질문에 내 방 밖으로 엄마를 얼른 내보낸 뒤,
문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그 때 보이는 신 형민의 옷.
그나저나 저 옷 빨래해야 한다는 걸 까먹었네.......
뭐, 어차피 그렇게 더러워진 것도 아니니까 상관없겠지?
나는 그 생각에 쇼핑백에 신 형민의 옷을 넣은 뒤,
대충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밖을 나갔을 때, 바로 보이는 연지.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어? 그 쇼핑백 뭐야?”
“어, 어?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쇼핑백을 뒤로 숨기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째려보는 연지.
“왜, 뭔데. 한번 보자!”
연지는 쇼핑백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으면서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학교에 도착할 동안 연지의 손에
쇼핑백이 들어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좀 보여주지, 도대체 뭔데 안 보여주려는 건데?
그럴수록 더 궁금해서 보고 싶어진다.”
연지는 투덜거리면서 쇼핑백을 잠깐 보더니,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연지 뒤를 따라가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그 때,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자,
치한이라는 두 글자가 바로 떠올랐다.
‘치한’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을 맴돌자,
쇼핑백을 들고 있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냅다 던졌다.
“야, 너 왜 그래.”
앞에서 가고 있던 연지는 쇼핑백을 던지는 소리에,
앞으로 가다 말고 멈춰 서서는 뒤를 돌아본다.
그러더니 아래쪽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진다.
나는 연지의 행동에 혹시 알고 있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고개만 돌렸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신 형민의 얼굴.
“참 곱게도 돌려준다.”
신 형민의 목소리에 아래를 보니,
쇼핑백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안에 있던 신 형민의 옷도 밖으로 빠져나와있었다.
“하하하. 그게 언제 거기로 갔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바닥에 떨어진 옷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다음, 신 형민의 옷을 들고, 신 형민에게 건네줬다.
신 형민은 옷을 받아들더니,
한참 동안을 찡그린 표정으로 옷을 살펴본다.
“왜, 뭐가 잘못 됐어?”
“뭐가 잘못 됐어?”
이를 악물면서 내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신 형민.
그러더니 내가 가져온 신 형민의 옷을
내가 볼 수 있도록 쫙 펼쳐놓는다.
“이, 이게 왜?”
나는 신 형민이 펼쳐놓은 옷을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다시 옷을 접는 신 형민.
“너 내가 분명 어제 빨아오라고 했냐, 안 했냐?”
“해, 했지. 하하. 근데 깜빡할 수도 있는 거지! 그, 그러게 누가........”
말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신 형민이 껴안았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입이 묶인 것처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누가 뭐?”
나는 신 형민의 말에 얼굴이 빨개져서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신 형민의 목소리.
“왜 껴안았냐는 거지?”
“뭐, 뭐? 절대 아니야!
어쨌든 그런 조그만 거 묻어있다고 나 시키지 마!
누, 누가 그래 달랬어?”
나는 소리를 빽빽 지르면서 신 형민이 있는 쪽과는
다른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 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연호의 옷.
분명 신 형민이 연호 방에 들어가서 옷을 빌려서 입었었는데.
더군다나 내일 준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나는 신 형민이 했던 행동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다시 뒤를 돌아 신 형민에게 소리쳤다.
“어제 가져갔던 옷 가지고 왔어?”
신 형민은 아직 안 가고 서 있었는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뒤를 돌아 신 형민에게 물었을 때,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했다.
“옷? 좀 이따 줄게.”
“가지고 왔어? 그럼 지금 주면.......”
“좀 이따 줄게. 문자하면 이쪽으로 와.”
“.......어, 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멀어지는 신 형민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때, 나를 툭툭 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를 치는 느낌이 들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옆을 봤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얼굴은 연지였다.
연지가 있는지도 몰랐네.
“뭐해, 얼른 가자.”
“어, 어. 가야지.”
“근데 너희 둘이 무슨 얘기 한 거야? 옷은 또 뭐고?”
“아, 그런 일이 좀 있었어. 하하.”
연지에게 끝까지 말하지 않은 뒤, 반으로 들어갔다.
반으로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은 나는, 가방을 내려놓는데.......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폴더를 열었는데........
연호가 전화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만 이렇게 기다리는 건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수업시간 내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이 아리! 너 지금 책상 밑에 뭐야!”
그 때, 앞에서 들리는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책상서랍 속으로 휴대폰을 넣었다.
그 순간, 내 쪽으로 다가오시는 선생님.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진짜 시간만 본 건데.........하하.”
“.......한번만 더 아래 보면 그땐 진짜 휴대폰 압수다.”
선생님은 나에게 경고성 멘트를 날리신 뒤, 다시 앞으로 걸어간다.
그 때, 나를 안타깝게 보고 있던 연지는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인다.
“너 요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어, 어? 아니.”
“거봐. 또 아니라고 하지.
물으면 계속 아니라고만 하고.
얼굴에 풀이 죽은 게 보이는데. 뭔데 그래?”
연지는 기분을 풀어주려는 건지,
아니면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가볍게 보고 있는 건지,
나를 툭툭 치면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얘기한다.
“진짜 아니라니까!”
나는 큰 소리로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때, 앞에서 보이는 무서운 선생님의 눈동자.
나는 선생님의 무서운 눈빛에 다시 기가 죽어
스르르 자리에 앉았다.
그 후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 새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됐다.
나는 축 늘어진 어깨로 가방을 챙기려는데.......
그 때, 휴대폰 액정화면이 뜨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이름이 보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들고서 액정화면을 봤다.
하지만 액정화면에 뜨는 건, 이름이 아닌, ‘발신번호 표시제한’이었다.
나는 발신번호 표시제한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옷가지고 너희 집 앞에 있으니까,
10분, 아니 5분 내로 달려 와.]
“뭐? 5분?!
내가 마라톤 선수도 아니고.......
그나저나 너 거기는 왜 가 있어?”
내 말에 아무 반응도 없는 신 형민.
그래서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내 액정화면을 보니
신 형민은 이미 끊은 뒤였다.
나는 신 형민의 행동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꼭 연호 옷을 되찾아야한다는 생각에, 뛰고 또 뛰었다.
그러다보니 서서히 우리 집이 눈에 들어왔고,
신 형민의 모습이 보였다.
신 형민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지,
주위를 살피면서 수시로 자신의 손목에 차여진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딜 보고 있어?
.......아, 맞아. 아까 주기로 했던 옷 가져왔어?
가져왔으면 얼른 줘.”
나는 손을 내밀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주위를 둘러보던 신 형민은
내 말에 조용히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신 형민이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는데.......
그 순간, 내민 내 손을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기더니,
나를 자신의 품에 안는다.
나는 신 형민의 갑작스런 행동에,
신 형민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그 순간, 앞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모든 행동들이 멈춰졌다.
내 앞에는 삐딱한 자세로 서있는 연호가 보였다.
#.068
연호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신 형민의 품에 안겨 있다가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섰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더욱 꽉 안는 신 형민.
“야, 이거 얼른 안 놔?
너 일부로 나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거야?!”
그 말에 나를 한번 보더니
미소를 짓는 신 형민.
“응.”
미소 지은 얼굴로 얘기하자,
점점 주먹이 위로 올라갔다.
그 때, 내 가까이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대로 멈춰 있다가,
신 형민의 품에 안긴 상태로 조금씩 뒤를 돌아보려는데.......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볼 쪽이 쓰라려왔다.
나는 멍한 상태로 앞을 바라봤는데.......
아무 표정 없이 내 앞에 서있는 연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뜨거워진 볼을 한 쪽 손으로 감싸면서
몇 초간 말없이 연호를 바라봤는데.......
연호는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넋 나간 표정으로 앞만 바라봤는데.......
그 때, 앞에 누군가의 손가락이 두, 세 개씩 보였다.
나는 내 앞에서 얼쩡대는 손가락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을 봤는데,
신 형민이 내 볼을 유심히 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빨개진 볼을 내 손으로 가리면서 등을 돌렸다.
“너 한번만 더 아무 말 없이 그런 행동해 봐!
그땐 진짜 죽는다.”
“죽어?
죽이려면 지금 죽이지, 지금은 얌전히 들어가네?
......상처 받았다 이거야?”
나는 신 형민의 말에 고개를 돌려서
신 형민을 노려봤다.
“평소에 이런 일 있으면 짜증부터 내던 네가
아무 행동도 안 한다는 게 이상하잖아.”
나는 신 형민의 말에 방금 전,
연호가 우리 둘을 보고,
내 볼을 때렸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눈 밑으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나는 눈 아래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자,
손으로 얼른 닦아내면서 신 형민을 노려봤다.
“너........
갑자기 그 자리에서 날 왜 껴안았던 거야?!”
나는 방금 전 일들에 대해,
생각만 해도 화가 났던 나머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신 형민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팔짱을 낀 채 여유 있게 얘기한다.
“그게 궁금해?
......별 다른 이유 없어.
그 자식이 너한테 질투심을 느끼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실험해보고 싶을 뿐이었어.”
“뭐?!질투심?!그거 하나 확인하려고 이렇게 큰일을 벌여?”
“덕분에 뭐가 그 자식의 진심인지 알게 됐어.”
“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완전히 다 끝난 마당에!”
“끝? 아닐 수도 있어.
그만큼 널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더 배신감이 들었겠지. 안 그래?
관심 없던 여자였으면 누구랑 껴안든 신경이나 섰겠어?”
그 말과 동시에 내 가까이로 다가오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이 다가오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 얼굴부터 팔로 가렸다.
그 순간, 내 몸이 따뜻해지면서
위에서 신 형민의 얼굴이 보였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하도록 만든 건 나였지만,
막상 널 좋아한다는 결론이 나오니까
나로서는 기분이 별로 안 좋은데?”
멍한 상태로 신 형민의 말을 듣다가,
신 형민의 말이 끝나서야 정신이 든 나는 손에 힘을 가해,
신 형민의 몸을 확 밀어버렸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물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가려던 발걸음을 멈춰,
살짝 고개를 돌렸는데........
쇼핑백 하나가 신 형민의 손에 들려있는 게 보였다.
“아, 맞아! 얼른 줘.”
나는 손을 내밀면서 얘기했다.
하지만 신 형민은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라는 듯,
가만히 서있었다.
“그럼 처음부터 빌려가지를 말던가!”
크게 소리치면서 신 형민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리고 신 형민의 손에 들려있는 쇼핑백을 낚아채는 순간,
내 입술에서 누군가의 촉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얼른 뒤로 물러났다.
신 형민은 그런 나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등을 돌린다.
“내가 연호 마음까지 알게 해줬는데,
보답은 받아야하지 않겠어?”
그 말과 동시에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지는 신 형민.
나는 크게 소리치려고 했지만,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다니는 모습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쇼핑백만 손에 쥔 채,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집으로 들어갔을 때, 아무도 없는 듯 주위는 캄캄하고 조용했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연호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즉시 서랍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봉투에 있던 옷을 꺼내서 서랍에 넣으려고 했다.
그 때, 내 손을 잡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어두운 탓인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느낌만으로도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섰다.
그 순간, 갑자기 캄캄했던 방에 불이 켜지면서
연호의 얼굴이 보였다.
“쇼핑백 안에서 꺼낸 그 옷,
뭐야.”
굳은 표정으로 아래쪽을 보면서 얘기하는 연호.
나는 연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얼른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내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잡는 연호.
연호의 손에 쇼핑백이 잡히자,
나는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는데.......
그 순간, 쇼핑백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나는 뒤를 돌아보는데.......
쇼핑백은 이미 찢어진 후였다.
그리고 쇼핑백 안에 든 옷은 바닥 아래로 떨어져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연호의 옷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알을 품듯이 아래에 떨어진 옷을 감쌌다.
“지금 일어나기라도 하면, 그나마 때리진 않을게.”
“때, 때려?”
때린다는 말에 놀란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는 연호한테 따지듯이 얘기했다.
“너 지금까지.......
여자도 때리고 다녔어?”
연호의 말에 충격 받았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내 말에는 신경 쓰지도 않고,
내가 감싸고 있던 옷을 위로 들면서 얘기한다.
“이거 뭐야.”
“어, 어? 그, 그냥.......
하하.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나 내 방으로 가볼게.”
나는 냉큼 말하고는 얼른 내 방으로 뛰어갔다.
그 때, 다행이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문을 잠갔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연히 연호라 생각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왜, 왜?”
“문 안 열어?
......지금 이런 얘기 할 상황은 아니지만,
내 옷이 네 손에 있었던 이상,
이건 해결하고 지나가야겠어.”
“그, 그러니까 그건.......
어, 어. 엄마가 네 옷 비슷한 걸 의류수거함에 걸쳐놓은 게 보이더라고.
하하. 그, 그걸 우연히 발견하고 다시 가져온 거야! 고마운 줄 알아!”
나는 일부러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도록,
당당한 척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아무 말 없는 연호.
이제 갔나?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방문 밖.
나는 이상하단 생각에 살짝 방문을 열어,
주위를 둘러봤다.
그 순간, 보이는 연호의 얼굴.
그것도 가만히 서있지 않고,
의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하하. 뭐하는 거야?”
의자를 들고 있는 연호의 모습에,
일부러 태연한 척 웃으면서 얘기했다.
“나왔네? 너 안 나오면 의자 던지려고 했지.”
“하하하. 이 의, 의자를? 그러다 문 부서지면......?”
“그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고.”
“하하하........
그, 근데 일단 그 의자부터 내리고 얘기하면 안 될까?”
나는 연호의 팔을 잡아,
일부러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제 서야 연호도 자신이 들고 있던 의자가
위협적이란 사실을 알았는지, 그대로 내려놓는다.
나는 의자가 아래로 내려지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슬쩍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려는데........
문틈에 낀 연호의 발이 보였다.
연호의 발이 보이자,
나는 토끼눈이 돼서는 다시 내 방문을 열었다.
“왜 발을 문 사이에 끼어놨어!
나, 나한테 지, 지금 발 다쳐서 협박이라도 할 작정이었어?”
“아니, 이 옷에 대해서 꼭 듣고 싶어서.
난 궁금한 게 있으면 잠을 못 자거든.”
연호의 행동에 계속 말하지 않다가는
이 일이 되풀이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
연호가 내 뺨을 때렸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르자,
이번에도 이 옷을 신 형민에게 빌려줬단 사실이 밝혀지면
완전히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얼른 말해.”
옷을 내밀면서 얘기하는 연호.
나는 연호가 내민 옷을 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크게 얘기했다.
“사실은.......신 형민 옷에 뭘 묻히는 바람에.......
걔한테 맡는 남자 옷이 너한테 밖에 없어서........
네 서랍에 있는 옷 꺼내서 입고 가게 했어.......”
내 말에 몇 초가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는 연호.
연호가 아무 반응이 없자, 슬쩍 눈을 떠 위를 올려다봤다.
연호는 조용히 자신의 옷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듯 보였다.
나는 연호가 아무 행동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호는 휴지통 앞에 멈춰서더니,
들고 있던 옷을 휴지통에 버린다.
그러더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세게 닫아버린다.
나는 말없이 몇 분 동안
휴지통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음 날이 될 때까지
연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일 때문인지,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탁탁거리는 신발소리가 내 방문 밖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나는 가방을 매고 빠르게 방문을 열어,
거실로 나왔다.
연호는 신발을 다 신고 나갔는지,
집 어느 곳에서도 보이질 않았다.
연호가 보이지 않자, 급한 마음에 신발을 구겨 신고
밖으로 나갔는데.......
연호가 오토바이를 타고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 잠깐만!
나도 늦었는데, 나도 태워줘.”
연호가 보이자, 나는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앞만 본 채, 헬멧부터 쓰는 연호.
그러더니 살짝 내 쪽으로 고개만 돌려,
큰 소리로 얘기한다.
“이제부터 너랑 나는 특별한 관계거나........
그리고 가족관계도 아니니까,
나 봐도 네가 먼저 무시하고 지나쳐.
나도 앞으로 너란 사람, 없었던 사람으로 기억할 테니까.”
#.069
연호의 말에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있었는데.......
그 순간, 옆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아리야! 같이 가!”
다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감정을 잡을 세도 없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사람은, 연지였다.
연지는 나를 보며 힘차게 뛰어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옆에 있는 연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연호가 못 가도록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해할 수 없는 연지의 갑작스런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소리치는 연호.
“안 비켜?!확 치고 간다.”
“.......뭐?”
연호의 막 던지는 식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멍해진 연지.
그러더니 잠시 후, 다시 헛기침을 하면서 연호를 똑바로 본다.
“흠흠. 너! 소문 다 났던데.”
“소문? 무슨 소문.”
소문이라는 말에 쓰고 있던 헬멧을 다시 벗는 연호.
그러더니 인상을 찌푸리면서 연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연호의 강렬한 눈빛에 잠시 움찔거리는 연지.
“그, 그러니까........
그래, 너 이 주희랑 요즘 붙어 다니고,
다정하게 다니는 모습 여러 사람들한테 목격됐다고 다........”
이야기를 이어나려다 말고 갑자기 말을 뚝 끊는 연지.
갑자기 왜 그러지?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연호 쪽을 봤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바로 연호도 고개를 돌려버린다.
“근데 진짜 둘이 사귀는 거 맞아?”
점점 연호 앞으로 다가가서, 밀어붙이듯이 얘기하는 연지.
나는 연지의 행동에 혹시라도 연호가 짜증 섞인 말을
함부로 내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지 옆으로 다가가서 말리려고 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말리려는 순간,
연호가 내뱉은 말이 내 몸을 경직되게 만들었다.
나는 뻣뻣하게 굳은 채로 그 자리에 서있었는데,
그 때 부릉부릉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야, 뭐해. 우리도 얼른 가자. 이러다 학교 늦겠다.”
“어? 어, 가야지.”
연지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학교로 갔다.
학교는 전보다 더 떠들썩했다.
나는 떠들썩한 이유를 알았기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많은 애들 사이를 뚫고 반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반의 상황도 마찬가지.
내가 반으로 들어오자마자 일제히 내 쪽으로 몰려드는 학생들.
학생들은 무섭게 나한테 달려들어,
이것저것 큰 소리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지, 진짜로 연호랑 이 주희랑 사귀는 거래?”
“너도 이 주희랑 같이 있는 장면 목격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대?
그 여자, 연호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애들의 끊이지 않는 질문사례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졸다시피 했는데.......
그 순간, 나를 깨우는 한 여자의 말.
나는 그 여자의 말에 고개를 들어, 따지듯이 물었다.
“가, 갖고 놀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여자를 밀어붙이듯이, 무섭게 얘기했다.
그러자 여자는 내 행동에 겁을 먹었는지,
방금 전 대담했던 모습은 온대간대 없고,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 그게.......
네, 네가 언니라면서 아직 못 들었나 보네?
그 여자 저.......”
그 때, 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이어서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종 쳤으니까, 얼른 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말에 나는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내 자리로 가야 했다.
이 주희,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나는 수업시간 내내 그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게 골아 떨어져 있는데.......
내 몸을 툭툭 치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손길에 나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눈을 비볐는데.......
주위 학생들은 어딜 간 건지, 빈자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끝난 건가?”
“너 계속 잠만 잤어, 얼른 일어 나. 집에 가게.”
“어, 어.”
연지의 말과, 어리둥절한 이 상황에
그저 앉아있기만 하다가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하품을 하면서 가방을 챙겨 연지와 밖으로 나왔는데.......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듯했다.
“아리야, 같이 가!”
다급하게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가던 발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나를 다급하게 부른 사람은, 이 주희였다.
이 주희는 빠른 속도로 나한테 달려오더니,
내 팔을 잡으면서 얘기했다.
“걸음이 너무 빨라서.......
따라잡느라 힘들었네.”
갑작스런 이 주희의 등장에 졸음이 다 달아나는 듯했다.
나는 어색하게 입 꼬리를 올리면서,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그 때, 옆에 있던 연지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이 주희를 보면서 얘기한다.
“요즘에 연호랑 만난 적 있어?”
“연호? 응, 왜?”
“진짜?........그럼 요즘 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얼른 가자!”
연지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알았기에,
나는 옆에 있던 이 주희의 팔을 잡아
질질 끌고 가다시피 했다.
그러자 나에게 끌려가는
이 주희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연지가 있는 뒤 쪽과 나를 번갈아서 봤다.
“하하. 그냥 쟤가 하는 얘기 신경 쓰지 마.”
나는 언제 연지가 튀어나와서
다시 얘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지와 멀리 떨어져서 걸어갔다.
그렇게 집 앞에 도착해서야 이 주희와 헤어지고,
얼른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는지, 조용했다.
나는 가방을 방에 내려놓고,
교복을 갈아입은 다음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눈이 스르르 감겨왔다.
나도 모르게 몇 시간 동안을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그 때,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눈을 떴는데.......
바로 벽 쪽에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계는 10시로 향해가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잔건가?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주위를 살펴봤다.
그 때, 연호 방이 눈에 들어왔다.
연호 방이 보이자,
들어왔는지가 궁금했던 나는 벌떡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연호 방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 다음, 심호흡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빈 방.
아직도 안 들어온 건가?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슨 일이 생겼을까,
불안했던 나머지 옷을 대충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연호를 찾아다니는데.......
아무 곳에서도 연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연호를 찾다가,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하려니,
손가락이 추위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휴대폰 화면의
연호 전화번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예전에 연호가 갔었던 클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혹시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클럽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렇게 몇 십 분이 되어서야 도착한 클럽.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삐질삐질 흘렸는데.......
입구에 들어가기 전서부터 그 앞에 서있는
남자 두 명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짧은 치마에 얼굴을 화장으로 치장한 여자가 앞에 서있자,
미소를 지으면서 안으로 안내한다.
나는 그 틈을 타 얼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때, 내 앞을 막아 세우는 두 남자.
“안에 손님이 꽉 차서 들어갈 수가 없어요.”
“.......네?
방금 그 여자는 들어갔잖아요.
잠깐이면 돼요, 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요.”
나는 간절하게
부탁하듯이 얘기했다.
“사람들이 꽉 차서 서있을 공간도 없어요.”
짜증난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얘기하는 남자.
나는 그 두 남자를 번갈아서 노려보다가,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두 남자.
나는 지금이 기회다, 라는 생각에
무작정 두 남자를 뚫고 앞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두 남자의 손에 붙들려 밖으로 나와야 했다.
“지금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받아줄 수 없다니까!”
나한테 소리치는 한 남자.
그리고는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그 때, 쫙 빼입은 여자 한 명이 구경이라도 난 듯 나를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막지 않는 두 남자.
“저 여자는 들어가고,
왜 나는 못 들여보내는 건데요!”
방금 전에 있었던 여자의 옆 자리를 가리키면서 얘기했다.
그 때, 옆에서 나를 보고 있던 남자 몇 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길에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남자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익숙한 얼굴의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남자들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연호 옆에서 같이 있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연호의 친구라는 사실을 대충 알게 되자,
민망한 나머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 때, 또 앞에서 내 어깨를 밀치는 느낌이 들면서,
내 몸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아!”
그 순간, 팔 쪽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소리쳤는데.......
남자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돌린다.
나는 남자들을 째려보면서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런 다음, 통증이 느껴지는 팔 쪽을 살펴보는데.......
살이 까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나는 피가 나는 팔 쪽에 입을 대고 후후 불고 있다가,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서 절뚝거리는 다리로 걸어가려는데,
누군가가 내 앞을 막았다.
나는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가 내 앞길을 막자,
짜증이 났던 나머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딱딱하게 얘기했다.
“좀 비켜주실래요?”
그 말과 동시에 고개를 들어, 위쪽을 쳐다봤다.
그 순간, 내 입과 몸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내 앞에는 내 팔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연호가 눈에 들어왔다.
#.070
“꼴이 이 모양이니,
당연히 안 들여보내주지.”
연호의 말에 그대로 뒤를 돌아,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한 걸음 내딛으려 하면 할수록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있었다.
“쯧쯧.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 일에는 일체 관여하지 말라니까.”
한숨을 쉬며 얘기하는 연호.
나는 어떻게든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변명을 늘어놨다.
“나 네 일 관여하려고 온 거 아니야!
그냥 지나가던 도중에 발을 잘못 헛디뎌서
그 사람들이랑 부딪혔어!
그래서 말다툼 한 것뿐이지, 다른 이유 없었어! 하하.”
내 말에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 연호.
그러더니 어딘가를 유심히 바라본다.
나 또한 연호의 시선이 향하는 쪽으로 저절로 눈길이 갔는데........
연호가 바라본 곳에는,
내가 클럽 앞에서 남자 몇 명과 입씨름을 하고 있을 때,
지켜보고 있었던 남자들 몇 명이 서있었다.
“저, 저 사람들이.......”
“그래, 친구들이 잠깐 밖에 나와 있었어.
그 때 내 누나 비슷한 여자가 계속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날뛰다가,
결국 남자들이 밀치는 바람에 넘어졌다고 얘기하더라.”
“뭐? 그, 그럼 그 때.......”
나를 지켜보고 있던 남자들이
익숙한 얼굴이다 했더니........
연호 친구들이었구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너희 둘이 가족관계가 아니라,
애인사인 줄 알겠다.”
연호 친구들은 우리 둘을 번갈아보면서 얘기했다.
연호 친구들의 말에 화들짝 놀란 나와는 반대로,
무표정으로 친구들만 바라보고 있는 연호.
그런 연호가 보이자,
이 상황이 어색했던 나머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곳에서 달아나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연호의 목소리.
나는 가려다 말고 연호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만 돌려,
연호 쪽을 봤다.
“이 아리! 너 그 다.......”
연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만 쉰 채,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왜 얘기를 하려다 말아?
연호의 행동에 고개만 갸우뚱거리다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걸어가면서도 팔과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져
쉬다, 가다를 반복했다.
결국 30분 만에 도착할 거리를
1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흙투성이가 된 몸을 물로 씻어냈다.
그런 다음,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물만 닦아내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는데.......
그 순간, 지금 막 밖에서 들어온 연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연호와 눈이 마주치자,
방금 전 일에서부터 여러 가지가 마음에 걸려서
그대로 내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연호는 내가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아래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뒤,
책상서랍으로 걸어갔다.
그런 다음, 책상서랍에 있는 반창고로
상처가 난 다리와 팔 부위에 붙이려고 했다.
그 때,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
나는 놀라서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봤다.
그 사람은 연호였다.
“노크라도 하고 들어와!”
연호 면상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을 때,
무언가를 내 쪽으로 던진다.
나는 더 얘기를 하려다 말고,
날아오는 물체가 보이자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서 그 물체가 받았다.
“이게 뭔데.......?”
물어보는 순간,
손 안에 들어있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연고였다.
연고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놀란 두 눈으로 연호가 서있는 문 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연호는 그 연고가 나에게 던져준 채,
그대로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연호가 나가자 나는 시선을 돌려
연고를 뚫어지게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됐을 때,
나는 늦잠을 잔 탓에 빠르게 움직였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얼른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그 때, 뒤에서 나를 급하게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 너 가방은 어디다 뒀어!”
“가, 가방?”
‘가방’이라는 말에 나는 다시 몸을 틀어,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아리야, 다리 다쳤니?”
엄마는 등 뒤에 서 있다가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면서 얘기했다.
“어? 아, 이거 그냥 넘어진 것뿐이야. 하하.”
“그냥 넘어진 거? 상처가 심한 것 같은데. 약은 발랐어?”
“어, 바로 집에 와서 발랐지. 하하. 그럼 나 학교에 빨리 가야 돼서.......”
나는 시간을 확인하면서 얼른 방에 있는 가방을 들고 나가려는데,
그 때 뒤에서 벌컥 하는 문소리가 들리면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아리야, 연호랑 같이 가.
다리도 불편한데 그러다 더 잘못되면 어쩌려고.”
‘연호’라는 말에 부정하듯이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지금 막 방에서 나온 연호 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호야,
네 누나 다리 다쳤는데 학교까지 같이 좀 가라.”
“다리? 너 아직도 아파?
어제 연고 하나 주고,
그 연고 발라서 편하게 발 뻗고 잤으면 됐지.
엄살떠는 거야?”
“아니! 절대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나 혼자 갈게!”
‘엄살’이라는 말에 발끈한 나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나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 정도를 기다리니, 내 앞에 도착한 버스.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버스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 보였지만,
이 버스를 놓치면 지각이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버스가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사방에 사람들로 가득해서 갑갑했다.
하지만 늦는다는 생각에, 내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버스를 타고 가고 있을 때,
내 몸 뒤쪽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와 단순히 접촉이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내 몸에 손을 대면서 만지작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불길하고 이상한 이 느낌에 고개만 살짝 돌려, 옆을 바라봤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은 다른 곳에 둔 채,
내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아저씨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아저씨의 손길에
소리를 크게 지르려는 찰나에,
갑자기 버스를 세우는 버스기사아저씨.
뒤이어서 ‘칙'하는 소리가 들렸다.
버스기사아저씨 때문에 나는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그 아저씨의 손과 내 몸도 떨어졌는데........
그 순간,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나를 뚫어지게 보는 아저씨.
나는 그 아저씨를 향해,
욕을 시원하게 한 바가지 날리려고 했는데,
그 때 내 앞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어떤 여자.
“아저씨가 이 여자분 엉덩이 더듬는 거 다 봤어요!
기사아저씨, 빨리 이 문 다시 닫고 경찰서로 가주세요!”
여자는 변태아저씨의 손을 덥석 잡은 채 얘기했다.
어? 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에 나는 그 여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얼굴은, 이 주희였다.
이 주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멍한 상태로 이 주희를 바라봤다.
그 순간, 빠른 속도로 누군가가 내 옆을
쌩 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이 주희는 놀란 눈으로 동시에
누군가 지나간 자리로 시선을 돌렸는데.......
문이 열려있는 틈 사이로 그새 빠져나가,
뛰어가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우리가 소리친 뒤 몇 초 지나지 않아
열려있던 문이 닫히기는 했지만,
그 틈새로 빠져나간 아저씨.
옆에 있던 이 주희는 화가 났는지,
크게 소리친다.
“아저씨,
얼른 이 문 좀 열어주세요!”
이 주희의 우렁찬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학생들과
사람들은 전부 우리 쪽을 봤다.
나는 안 그래도 민망했던 상황인데
사람들의 시선까지 우리 쪽으로 향해있자,
서서히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주희의 팔을 잡고
귓가에 조용하게 속삭였다.
“난 괜찮으니까........
일단 진정해.
사람들도 전부 우리 보고 있고. 하하.”
내 말에 그제 서야 주위를 둘러보는 이 주희.
그러더니 헛기침을 하면서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본다.
그래도 내 일처럼 나서준 이 주희가 고마워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 주희와 많은 얘기들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학교 앞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에 내려서 이 주희와 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내 다리 쪽을 뚫어지게 본다.
“너 다리 다쳤어?
걷는 게 약간 힘들어보여서.”
“어, 어. 이제 별로 힘들지 않은데........
그리고 살짝 긁힌 거니까 괜찮아.”
이 주희는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내 다리를 보면서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괜찮다고 얘기하면서,
반에 도착하자 이 주희와 헤어졌다.
헤어진 뒤에 반으로 들어가니,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쏜살같이 내 앞으로 다가오는 연지.
“이제 종 치려면 몇 분 안 남았으니까, 우리 매점가자!”
“뭐? 매점? 갑자기 무슨 매.......”
“나 아침밥도 못 먹고 나왔어!”
그 말과 동시에 나를 억지로 끌고 매점으로 달려가는 연지.
나는 연지와 매점에 도착해서 여러 종류의 빵들을 고른 뒤에,
앉아서 오늘 버스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부 다 얘기했다.
“진짜? 뭐 그딴 놈이 다 있대?!
.......그럼 이 주희인가, 그 여자한테 고마워해야겠네.”
나는 연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앞에 있는 여러 개의 빵들을 바라봤다.
그 때, 나를 툭툭 치는 연지.
그러더니 내 바로 뒤를 얼굴로 소심하게 가리킨다.
연지의 행동에 고개를 살짝 돌려, 뒤쪽을 돌아봤는데.......
연호가 등을 돌린 채, 매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연호, 네가 얘기하고 있을 때,
우리 주변에 있었던 것 같은데?
........들은 거 아니야?”
“에이, 설마.
매점이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들렸겠어?”
내 말에 연지는 빵을 먹으라는 듯이, 나에게 빵 하나를 건넸다.
나는 연지가 준 빵 봉지를 손에 들면서 짧게 ‘Thank'를 날려준 뒤,
빵 봉지를 뜯으려고 했다.
그 순간, 버스에서 있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이 주희의 얼굴도 떠올랐다.
“왜 안 먹어?”
봉지를 뜯으려는 내 손이 멈추자,
이상한 듯이 나를 바라보는 연지.
“이제 좀만 있으면 종 치지?
.......나 먼저 들어갈게. 너 먹고 들어와!”
“뭐?!아리야!”
뒤에서 연지의 슬픈 목소리가 들렸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뒤를 돌아볼 세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땀을 흘리면서 힘겹게
이 주희 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밖에 나와 있던 반 학생 중 한 명에게
이 주희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한 뒤,
복도에 조용히 서있었다.
“어? 아리야, 왜?”
내가 이 주희를 부른 적은 처음이라,
이 주희도 당황스러웠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얘기한다.
나는 이 주희를 보면서 옆에 흐르는 땀을 닦은 뒤,
들고 있던 빵 하나를 건넸다.
“오늘 일,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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