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술리 보리개떡
유월 초순 수요일은 소만과 하지 사이에 든 망종이었다. 망종은 24절기에서 아홉 번째로 봄이 초여름으로 건너온 계절이다. 어원은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심는다는 뜻이나 우리 지역은 보리를 베어 거두고 모내기가 한창인 철이다. 그러나 요즘 농촌 실상은 보리 재배 면적은 급감했고 벼농사마저 쌀소비 부진으로 창고마다 전년도 양곡이 쌓여 고심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 있다.
주중 수요일 이른 아침 변함없이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이웃 동 뜰에는 수국을 앞세운 여러 가지 꽃이 화사했다. 꽃대감 친구를 비롯한 다섯 사람이 각자 취향 따라 소일 삼아 가꾼 꽃이다. 특히 건너편 동에 한 노인이 가꾼 수국은 요즘 제철을 맞아 소담스레 피는데 가뭄을 이겨내느라 매일 아침저녁 물을 주고 있어 가꾸는 이의 정성이 대단하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대방동을 출발해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원역 앞에서 내렸다. 근교 들녘으로 나가기 위해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타 소답동과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나면서 회사원과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 부녀들이 탔다. 동읍 용잠삼거리와 행정복지센터를 지날 때까지는 사학재단 고등학생 등 승객이 늘었는데 나는 주남저수지를 지난 판신마을에서 내렸다.
날이 밝아왔던 아침 6시 집을 나서 버스를 갈아타고 이동한 판신마을에 닿았을 때가 7시였다. 들녘 마을을 하루를 시작하는 여정의 기점으로 삼아 주천강이 흘러오는 둑길을 따라 걸었다. 주남저수지 배수문을 빠져나온 주천강은 동판저수지 물길을 보태서 진영읍으로 흘렀다. 동읍 무점마을 앞 들녘은 동판저수지의 물로 벼농사를 짓고, 주남마을 앞은 주남저수지 물로 농사지었다.
들녘은 며칠 새 하루가 다르게 모내기가 진척되어 어린 모가 가지런히 줄지어 심어졌다. 벼농사는 전 과정이 기계화되어 트랙터가 무논을 다려 이앙기가 모를 내어 사람 손이 직접 닿을 일이 하나도 없다. 어디선가 드론으로 농약과 제초제를 뿌려준다는 현수막을 내걸린 데도 봤다. 주천강 강둑을 따라 걸으니 들녘 저편 아득한 곳에는 진영 신도시 아파트와 가술리가 드러났다.
주천강 천변 따라 몇 채 집들이 늘어선 남포리를 앞두고 들녘으로 내려섰다. 들길을 걸으니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는 트랙터가 지나면서 바퀴에 붙어 떨어진 진흙이 흩어져 있었다. 들판 가운데는 드물게도 비닐하우스를 세워 블루베리를 키우는 농장이 나왔다. 농로는 주남마을 근처로 이어지다가 고등포로 들었다. 물길이 흘러가는 들녘 가운데 약간 높은 곳의 마을이 고등포였다.
고등포는 신등마을로 이어져 그림처럼 아담한 시골 초등학교가 나왔다. 신등은 상등으로 이어지면서도 남쪽으로는 탁 트인 들판이 펼쳐졌다. 동읍에서는 용강, 용암, 용전, 용잠, 용정, 용산 등 용 ‘용(龍)’자 돌림 지명이 흔했는데, 대산에는 배의 뒷부분을 뜻하는 ‘등’을 붙인 지명이 나왔다. 상등에서 가까이는 장등이 보였고 가술 지나 송등이고 주천강 하류에 용등과 유등도 있다.
상등을 지나 들녘 농로를 더 걸어 대산 행정복지센터에서 거리를 지나다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한 잔 받았다. 집을 나서서부터는 3시간이 지나는 즈음, 판신마을에서 걸은 지는 2시간 흘렀다. 예전 면사무소 청사 바깥 쉼터에서 대기하다가 마을도서관 문이 열려 열람실로 들어 어제 뽑아두고 못다 읽은 책을 펼쳤다. 은퇴한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 전문가가 공동으로 엮은 책이었다.
두세 시간 독서삼매에 빠졌다가 때가 되어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는 국도변을 거닐었더니 ‘보리개떡’ 가게가 눈길을 끌었다. “보리쌀 귀해졌고 우리 밀 더 귀한데 / 가술리 국도변에 빵떡집 찾는 손님 / 지난날 배곯은 시절 아렴함에 젖는다 / 찰지게 비빈 반죽 전분이 발효될 때 / 술냄새 풍긴다는 불리는 술빵 개떡 / 그 어디 제과점보다 입맛 당길 집이다” ‘보리개떡’ 전문이다. 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