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립산재예방보상연구원 임직원의 예방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이탈리아 국립산재예방보상연구원 임직원의 예방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교황
교황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사회, ‘버리는 문화’ 노예 될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9일 이탈리아 국립산재예방보상연구원 임직원의 예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사회의 “버리는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한편, 여성 노동자의 사고 증가와 임신한 여성을 외면하는 사고방식을 비판했다. 교황은 ‘당신이 생산적일 때 가치가 있다’는 말에 요약된 끔찍한 논리는 연민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Francesca Sabatinelli / 번역 이정숙
노동자의 존엄성이 항상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사고 발생시 종종 그 부담은 “가족이 짊어지게” 된다. 보호하지 않는 사회는 점점 “버리는 문화의 노예”가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9일 이탈리아 국립산재예방보상연구원(이하 INAIL) 임직원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직장 내 보호의 가치를 피력하며 이 같이 강조했다. 교황은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특히 보건 및 운송 분야에 대한 불만사항”이 증가하고 “여성 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직장에서 여성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임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성에 대한 사전 거부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성은 임신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 입장에서) 덜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채용한 이후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 직장에서 내보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성에 대한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이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버리는 문화의 노예가 된 사회
교황은 사고 예방을 비롯해 부상자를 동행하고 그 가족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도 INAIL의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며, 아무도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호하지 않으면 사회는 점점 더 버리는 문화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기보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에 굴복하게 됩니다. 버림을 일삼는 끔찍한 논리는 ‘당신이 생산적일 때 가치가 있다’는 말에 요약돼 있습니다. 생산적일 때 가치가 있고, 생산적이지 않을 때 가치가 없다는 건 끔찍합니다. 그래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회사의 부속품에 머무는 사람만 중요하고 산재 피해자들은 한쪽으로 밀려나거나 짐으로 간주돼 가족들의 선량한 마음에 맡겨집니다.”
생명과 건강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교황은 작업장에서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사고 증가의 원인 중 하나라며, 생명과 건강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돈 몇 푼이나 개인의 이익과 바꿀 수 없습니다.” 교황은 버리는 문화가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는 항상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이는 정당화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인간 빈곤을 드러냅니다. 인간 존엄을 최고로 여기는 올바른 가치 위계질서를 상실하면 관계가 무너집니다.” 교황은 “사람을 중심으로 하려면 업무의 의미와 업무의 질, 업무 장소와 교통수단에 대한 보살핌이 기본”이라며 “노동력이 저하되면 민주주의는 빈곤해지고 사회적 유대가 느슨해진다”고 말했다.
“안전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전 규정을 짐이나 불필요한 부담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건강을 잃었을 때 비로소 건강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을 따르기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원격 근무와 같은 좋은 해결책을 선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공동체의 일부로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립되게 해서는 안 된다. 교황은 “가정과 업무 환경의 명확한 분리”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며 “가정은 소비의 장소이고 기업은 생산의 장소라는 생각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은 생산한 만큼만 가치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키우고, 생산의 세계 밖에서는 그 가치를 잃고 오로지 돈이 많아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교황은 INAIL의 활동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에 따라 필요한 것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궁핍하고 버림받을 위험에 처한 이들을 “보고, 가엾이 여기고, 가까이 다가가고, 상처를 싸매고, 책임을 지며 복음의 비유를 삶으로 실천하는” INAIL의 활동 덕분이다.
“보고, 가엾이 여기고, 가까이 다가가고, 상처를 싸매고, 책임을 지라고 반복해서 당부드립니다. 이는 어떤 좋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항상 손해를 감수하는 일입니다. (...)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장애의 얼굴을 들여다 보길 바랍니다. 신체적 장애를 비롯해 심리적, 문화적, 영적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으로 방치하는 행위는 우리가 저마다 자신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무관심은 절망적인 사회를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숫자의 논리에서 벗어나 산재 대상자를 고유한 한 인간으로 대한다는 의미다. 단순히 “부상자”라는 표현으로 환원되지 않고 구체적인 이름과 얼굴이 있다고 교황은 부연했다.
“수식어(형용사)가 아니라 주어(명사)를 말해야 합니다. 그들은 한낱 ‘부상자’가 아니라 사고를 당한 구체적인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수식어를 남발하는 데 익숙합니다. 너무 많은 수식어를 남발하는 문명 안에서는 주어의 문화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부상자가 아니라 사고를 당한 한 사람, 구체적인 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교황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 곧 연민이 “여성이나 노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며 “연민은 매우 인간적인 것”, 무관심과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무관심의 문화에서 살고 있습니다. (…) 연민과 온유한 사랑은 하느님의 방식을 반영하는 태도입니다.”
“하느님의 방식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세 단어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친밀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가까이 계시며 숨지 않으십니다. 둘째, 자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십니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 때문에 자비로우십니다. 셋째, 온유한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온유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하십니다. 친밀함,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담긴 자비, 온유한 사랑이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친밀함은 약함을 나누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장벽을 허물고 인간성이라는 공통의 소통의 지평”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상처를 감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피해자는 보상을 받기 전에 먼저 보살펴 달라고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금전적 보상은 그 사람을 환대하고 경청하는 데서 그 가치를 얻습니다.” 끝으로 교황은 “책임을 진다는 것”은 부상으로 퇴직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비극에 대해 “통합적” 방식으로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짓 동정”이 아니라 창의적인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는 “자선”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행위”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연설 말미에 우리 이웃의 “상처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고, 형제애의 길을 찾도록 하자고 초대했다. 아울러 피해자에 대한 법 관련 보험이 존재하기에 앞서 연대와 사랑으로 대표되고 “다양한 차원에서 인류를 돌보는” 보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무관심은 절망적이고 안일한 사회를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의미에서 절망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