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중도층 지지 하락 대응 방안 고민, 수도권 의원 “중도서 이길 후보 필요”
친윤 “탄핵 반대-反이재명 결집” 맞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인용 가능성이 크다. 중도층 민심을 가져와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이길 수 있는 대선 후보가 나와야 한다.”(국민의힘의 한 수도권 의원)
“조기 대선이 열리더라도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지지층 여론을 이끌고 가야 한다. 중도층 공략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국민의힘 ‘친윤석열계’ 재선 의원)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중도층 지지율이 하락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 중도층을 두고 이견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
“더 이상 강성 지지층만 봐선 안 된다”는 ‘중도 공략파’와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반(反)이재명’ 세력을 결집해 대선에 나서야 한다는 이른바 ‘체제 전쟁파’의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
대선 행보의 보폭을 넓히고 있는 당내 대선 주자들도 중도층 공략을 두고 분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도층 지지율 하락이 계속되면 당내 분열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與 내부 “중도 공략 메시지 내놔야”
국민의힘에선 이날 한국갤럽이 이달 18∼20일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이 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중도층 지지율은 크게 하락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중도층 지지 격차가 5%포인트에서 20%포인트로 벌어졌다.
중도층 가운데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9%로 한 주 만에 9%포인트 상승했으며 반대한다는 응답은 25%로 전주보다 7%포인트 떨어졌다.(한국갤럽이 2월 18∼20일 무선전화 면접 100% 방식으로 실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중도층 민심에 민감한 여당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선 “강성 지지층만으론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날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의원(경기 성남 분당갑)은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어 (이들과) 단결하면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 (규모로는) 30% 정도”라며 “하루가 한 달에 해당하는 중압감을 갖는 조기 대선 국면에선 빨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또 “우리 당에서 중도층에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반면 민주당은 오히려 중도층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중도층에 맞는 정책을 실행으로 옮길 진정성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결국 승리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이번 조기 대선에서 지면 다음 총선에서 수도권 여당 의원들이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108석 중 수도권 의원은 19명이다.
● 당 지도부 “일단 분열 막아야”
하지만 친윤계와 영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탄핵심판 최종 선고를 앞두고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3월 중순 심판 때까지 탄핵 반대 당론 스탠스를 견지할 수밖에 없다”며 “윤 대통령 탄핵과 구속 사태의 본질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알리는 것이 중도층을 포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윤계 재선 의원도 “조기 대선은 정책 대결이 아닌 체제 전쟁으로 갈 것”이라며 “‘이렇게 정권을 빼앗겨선 안 된다’로 가면 지지층이 결집한다”고 했다.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발동 이유로 주장한 반(反)국가 세력과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싸움이라는 이른바 ‘체제 전쟁’의 프레임을 이어 가야 한다는 것.
당 지도부는 일단 분열을 막아야 한다면서도 중도 확장에 대한 고민을 내비쳤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원외 당협위원장들과의 만찬에서 “내 가장 큰 임무는 (당내) 분열을 막는 것”이라며 “우리 내부에 (윤 대통령) 탄핵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뭉치자’만 해선 잘 안 돼 고민”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민주당 이재명의 ‘중도 보수’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의견이 최근 지도부 비공개 회의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중도층 지지율 하락세’ 관련 질문에 “겸허히 수용한다”라면서도 “한 번의 여론조사로 어떤 추세를 평가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 “與 극우본색” 비판하며 우클릭 지속, 이재명 ‘노동 이슈’ 등엔 좌클릭 기조
“중도확장 실체 없인 부메랑” 지적도
“국민의힘의 ‘극우클릭’으로 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이 커지고 바뀐 것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은 23일 “국민의힘이 극우본색을 드러내며 형식적 보수 역할조차 포기한 현 상황에서는 민주당의 중도 보수 역할이 더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자신이 내세웠던 ‘민주당=중도 보수’ 주장을 두고 당 안팎의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국민의힘을 ‘극우내란당’으로 규정하면서 화살을 여권으로 돌린 것.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재명의 중도 확장 기조가 대선 공약으로 구체화되는 등 실제 변화로 나타나지 않으면 신뢰 하락으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 “국민의힘은 극우” 주장하며 중도 공략
이재명은 이날 “실용적 대중 정당으로서 좌우나 네 편, 내 편 가릴 것 없이 국리민복에 필요한 일을 잘해 내면 된다”며 조기 대선을 앞두고 실용주의 노선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이재명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공조를 근간으로 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내에서도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 보유 주장이 나오는 등 우클릭 노선을 취하는 양상이다.
이재명이 제시한 중도 보수 노선을 두고 당내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등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과열될 조짐을 보이자 국민의힘을 향한 ‘극우 공세’로 방향을 전환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의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주장에 대해서는 “초부자감세 본능”이라며 “수백억, 수천억 원 보유자가 서민인가. 극우내란당이 또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다.
● 노동 이슈엔 ‘좌클릭’에 與 “사기극”
노동·복지 등 전통적 지지층이 민감하게 여기는 분야에선 ‘좌클릭’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혼란을 키우고 있다. 이재명은 21일 양대 노총을 찾아 ‘노란봉투법’ 재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잘 성장하게 되면 진보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주 4일제와 국민소환제를 내세운 것도 전통적 지지층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재명의 중도층 공략에 대해 “선거전략상 의도적인 우클릭”이라며 “이재명은 인생 자체가 사기고 범죄인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재명이 국민의힘을 더 오른쪽으로 밀어내는 정치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라면서도 “이재명이 과거부터 여러 분야에서 말을 많이 바꿔 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