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근(남, 32세, 가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 영어나 수학은 취미가 없었지만, 책을 참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3권 이상 읽었다. 그러니까 1년에 200여권을 읽었다. 매일 책만 읽고 있으니까 학교 성적은 좋을 수가 없었다. 진근의 아버지는 아들이 책을 좋아하고 매일 책만 읽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했다. 아들이 책을 사달라고 하면 무조건 오케이였다.
진근은 오히려 책은 읽지 않고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우습게 보았다. 그들과 대화를 해보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시야도 매우 좁았다. 사고도 아주 제한되어 답답했다. 책도 읽지 않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멋이나 부리는 여자 친구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 친구는 사귈 기회를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진근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좋아서 돈을 잘 벌었다. 처음에는 돼지갈비집을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제주도 흙돼지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가져다가 양념을 해서 팔았는데 그게 힛트를 쳤다.
식당 이름도 특이하게 ‘제주똥’이라고 지었다. 제주도에서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라는 의미이었는데, 사람들은 간판을 보고, ‘통’이라고 쓸 것을 간판업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실수로 ‘똥’이라고 잘못 써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제주통’이라고 이심전심으로 불렀다.
그런데 심보가 나쁘거나, 어렸을 때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했던 사람들은 ‘똥’에 한이 맺혀서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들으라고 ‘제주또~~옹’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엑센트를 ‘똥’‘에 두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파출소장이 바뀔 때마다 진근 아버지 간판에 ’똥‘이라고 쓴 것을 두고 문제 삼았다.
아버지 식당을 관할하는 경찰서에서는 아버지가 군사독재정권에 평화적인 투쟁방법으로 ’대통령‘의 가운데 글자인 ’통‘ 대신 ’똥‘이라고 의도적으로 쓴 것이 아닌지 특별조사를 했고, 혹시 상호등록을 했는지 여부도 확인했다. 아버지 성향이 의심스럽다면서 조상 중에 6.25 전쟁 중에 부역을 한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당시는 연좌제가 있었다.
다행이 아버지는 명함에는 ’제주통‘이라고 써놓았다. 경찰관은 아버지에게 이름을 바꾸는게 어떠냐고 종용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경찰에 불려가서 조사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벌써 아버지 사회적 체면은 땅에 떨어졌고, 품위 있던 명예는 똥이 되었기 때문에 오기가 발동해서 징역을 가면 갔지 상호는 절대 바꿀 수가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런 시비가 매년 벌어지고 있을 때 대통령이 마침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해서 경찰에서도 더 이상 아버지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지역에서 유명해졌다. 독재정권에 맞서서 목숨을 걸고 ‘똥’을 지켜냈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사람들은 아버지 식당에 와서 매상을 올려주려고 했다. 사람들은 회식에서 삼겹살을 5인분씩 먹고서도 이차로 아버지 식당에 와서 돼지갈비를 7인분씩 시켜먹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버지 매상 올려주려다가 배가 돼지 히프처럼 불뚝 튀어나와서 집에 들어갈 때는 사람이 들어가는지, 돼지가 들어가는지 동네주민들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한때는 아버지 식당에서 남자직원들이 30명 집단회식을 하면, 동네에서는 뒷산에서 멧돼지떼가 30마리 출몰했다고 119신고와 112신고를 집단으로 했다. 그래서 소방차 3대, 경찰순찰차 3대가 동시에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향토예비군 1개 중대, 민방위대원 50명이 동원되었다. 체중이 120킬로그램이 나가는 미국인 한 사람은 살찐 멧돼지로 오인되어 경찰에서 쏜 사냥총에 맞아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다행이 그 사람은 워낙 지방이 많아서 산탄총알이 피부만 조금 흠집을 냈을 뿐이었다.
갑자기 장사가 잘 되자, 아버지는 신바람이 났다. 모든 것이 돼지똥 때문이라고 믿은 아버지는 돼지가 똥을 눟는 사진이나 그림을 수십장 그려 식당 안에 도배를 했다. 사람이 대변을 보는 것과는 달리 돼지가 웅아를 하는 사진이나 그림은 귀엽고 자연스러웠다.
그것을 보고 식욕이 떨어졌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식욕이 넘쳤다고들 했다. 아주 극소수의 변비환자들만 그 사진을 보고 짜증을 내고 들어왔다가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 반면에 어떤 40년된 만성 변비환자는 아버지 식당을 단골로 다니다가 변비를 완전히 고치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다.
진근의 아버지는 어느 날 경기도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평소 아버지 식당으로 자주 오는 단골손님과 같이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 여자는 강남에서 기획부동산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주로 지방땅을 대규모로 사들여서 개발계획을 내세워 쪼개 파는 일을 하는 회사였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수립한 대규모 관광단지에 관한 지역개발계획이 발표되면 이를 근거로 해서 그 지역에 있는 야산을 싼값에 사들인다.
그 다음에 지역개발계획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물론 신문에 발표된 관광단지추진계획기사를 곁들인다. 기획부동산회사에서는 아르바이트 홍보요원을 몇십명씩 고용하여 전화로 광고를 한다.
그러면 여유자금을 가지고 투자를 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이 미끼에 걸린다. 평당 30만원씩 100평을 구입하라고 한다. 그러면 나중에 경치 좋고 관광단지 주변에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중간에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주겠다고도 한다. 사람을 솔깃하게 만든다. 회사사무실에 가보면 인테리어를 아주 고급스럽게 해놓았다. 사무실이 으리으리하다. 전화를 걸었던 여자직원은 실제로는 부동산개발사업에 대해 잘 모르고 전화만 한 것이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나서 청산유수로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재테크방법을 설명한다. 그곳 부동산회사를 통해 돈을 번 성공사례를 말해주는데, 몇십억원 내지 몇백억원을 번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실명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어떤 국회의원 또는 장관, 법조인, 언론인 들을 암시해서 거론한다. 그 사람들은 이런 기획부동산을 통해서 서울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회사를 찾아간 사람은 몇 천만원의 돈밖에 여유자금이 없는 형편이니까, 그에 맞는 투자처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꼭 찝어서 말해 준다. 어리석고 투자경험이 없는 어리숙한 손님은 그 자리에서 가보지도 않고 관련 서류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땅을 공유지분 형태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3백만원을 계좌이체로 입금시킨다.
그리고 계약서 한 장 들고와서 곧 몇 배의 수익을 볼 것처럼 꿈에 부푼다. 하지만 그 땅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개발은 되지 않고 땅값은 오히려 떨어진다. 개발계획은 원래 수립했다고 해도 경제적 여건이 되어야 개발에 착수하는 것이고, 장기적인 국토이용계획은 꼭 실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우 장기적인 계획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투자자는 억울하다면서 찾아가서 싸우기도 하고, 사기죄로 고소도 하지만 법이란 무조건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완전한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은 등기부상 공유지분만 가지고 앞으로 10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기획부동산회사에서는 실제로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지하철역이 생기는 지역의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하여 상당한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것이다.
특히 공단이 들어서거나 대규모 택지개발이 되는 곳을 재빨리 정보를 입수해서 그 지역의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매입한다. 뿐만 아니라 유치권 등의 복잡한 경매물건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이 선뜻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동산을 권리분석하여 싼값에 낙찰을 받아 다시 매도처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