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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
빵 하나를 건네자 지금 이 상태가 어리둥절했는지,
빵 한번, 나 한번, 번갈아가면서 본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얘기한다.
“빵 잘 먹을게.........
아, 근데 나보다 한 살 위였지?
내가 너무 편해서 나도 모르게 계속
언니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네.
이제부터 언니라고 불러도 되지?”
“응, 당연하지.”
나는 이 주희에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이 주희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이내 내가 준 빵을 들고는,
손을 흔들면서 자신의 반으로 다시 들어간다.
나는 이 주희가 반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 또한 다시 반으로 걸어갔다.
반으로 들어가서 한 시간, 두 시간
수업을 받으면서 지루하게 있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을 찾아온 이 주희.
이 주희는 빵을 건넨 이후로 나에게 계속 찾아와,
옆에 있는 연지와도 덩달아 친해졌다.
그 후로, 이 주희는 점심시간에도 우리 반을 찾아와,
나와 연지와 같이 밥을 먹었다.
밥을 먹는 순간에 주위에서 이 주희를 보는
여러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면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 먹은 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먹은 도시락 통을 정리한 뒤, 매점으로 가기 위해 반을 나섰다.
웃고 떠들면서 걸어가다가, 슬쩍 앞을 봤을 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걸어가려다 말고, 멈춰 섰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연지와 이 주희 또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나를 툭툭 친다.
“뭐해, 가자.”
내가 멈춰 서자, 앞에 있던 사람 또한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본다.
그러더니 이내 모르는 사람처럼 다시 고개를 돌려,
내 옆을 지나쳐간다.
“어? 쟤 신 형민 아니야?”
그 때, 앞에 있던 사람의 얼굴을 봤는지,
내 앞으로 다가와 얘기하는 연지.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왜 더 쌀쌀맞게 대한다고 생각되는 걸까?
나는 신 형민이 사라진 쪽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이 주희의 손에 이끌려서 어쩔 수 없이 매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매점에 들어가서는 각자 먹을 빵과 과자를 골라,
의자에 앉았다.
“아리야, 시간 괜찮으면 오늘 나 너희 집 놀러가도 돼?”
“어? 집?”
“집은 좀 그렇겠지? 하하. 그냥 같이 앉아서 얘기하고, 구경도 하고 싶어서.”
“........그, 그래. 하하. 연지 너도 시간 되면 같이 가자.”
나는 연지를 쿡쿡 찔러 얘기했다.
그러자 연지는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얘기한다.
“난 사양할게. 따로........
아니다, 같이 가자.”
처음에는 난감한 표정으로 얘기하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얘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점에서 간단하게 먹으면서 얘기한 뒤,
반으로 올라갔다.
반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 주희와 웃고 떠들면서 걸어갔는데........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주위시선들.
나는 부담스러운 시선들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춰서 뒤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언제 보고 있었냐는 듯,
그대로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여학생들.
“왜 그래?”
“어, 어? 아무 것도 아니야.”
이 주희의 말에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면서 반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반에 들어가자마자 방금 전까지 몰려서 얘기하던 학생들은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더니 수업 시작하기 몇 분 전에 무서운 속도로
내 앞에 돌진하는 여학생들.
“전에는 같이 다니지도 않더니,
이제는 이 주희랑 점심도 같이 먹고,
매점도 같이 다니네?
둘이 어떻게 친해진 거야?”
“뭐, 뭐?
그걸 네들이 알아서 뭐하려고? 하하.”
이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우습게 느껴졌던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당황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그 때, 옆에 앉아서 학생들의 질문을 나와 같이 듣고 있던 연지가
이 주희에 대해 궁금했는지, 여학생들에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얘기했다.
“왜, 친해지면 안 되기라도 해?”
“뭐? 아, 그, 그건 아닌데........”
연지의 질문에 당황한 여학생들.
그러다가도 내가 대답을 안 하자,
꼭 듣고 싶다는 듯이 내 쪽으로 달려든다.
나는 여학생들이 점점 연지를 밀치고 내 앞으로 다가오자,
참다 참다가 결국은 벌떡 일어났다.
그제 서야 조용해진 여학생들.
나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주먹을 꽉 쥔 채로 얘기했다.
“내가 어떤 애를 만나서, 무슨 행동을 하던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야!”
“........”
내 우렁찬 목소리에,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입을 움직이는 학생도 보였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소리친 이후에 여학생들은 전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 또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대로 내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옆에서 연지가 흔들면서 지금 이 상황이 궁금했는지,
계속해서 물어봤지만 나는 연지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여학생들의 눈을 피해 누워있었는데.......
누군가가 내 몸에 손을 가져다대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옆을 보면서 소리쳤다.
“아악!!”
내 비명소리에 앞에 있던 사람은 놀라서 점점 뒤로 물러난다.
나는 내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
앞에 있는 사람을 자세히 바라봤다.
그 순간, 이 주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에 있던 여학생들은 내 비명소리에 놀란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하하, 내가 괜히 깨웠네.
나는 이미 끝났으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 하하. 응.”
이 주희의 말에 주위를 둘러본 다음,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 주변을 긁적거렸다.
그 때, 내 옆에 앉아있던 연지가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손거울을 내민다.
그러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지를 꺼낸 다음 나에게 건넨다.
나는 연지의 행동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손거울을 들어,
얼굴주변을 살펴봤다.
그와 동시에 선명하게 보이는 침.
나는 입 주변에 침 자국이 있자,
눈치를 보면서 얼른 휴지로 내 입 주변을 닦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데,
그때 다행이도 평소보다 빨리 들어온 선생님.
선생님은 일이 있다면서 평소보다 빠르게
종례를 해주신 뒤, 교실을 나가셨다.
나와 연지는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켜,
복도로 나갔는데........
복도에는 여전히 이 주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
춥겠다. 얼른 집에 가자.”
나는 이 주희 팔을 잡으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아니라면서 웃으며 얘기하는 이 주희.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 주희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주희와 나, 그리고 연지는 우리 집으로 가는 내내
추워서 입이 얼어붙은 듯,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 주변에 도착했을 쯤,
연지가 발걸음을 멈춰, 나를 툭툭 친다.
“아리야, 저 뒤에 있는 애들, 우리 학교 교복이지?
아까부터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아서.......
아닌가? 집 방향이 이쪽인가?”
연지의 말에 나와 이 주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연지가 가리킨 쪽을 봤다.
하지만 연지가 가리킨 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어? 이상하다. 내가 잘못 봤나?”
연지는 내 말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얘기했다.
나는 그 후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연지, 그리고 이 주희와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연호는 아직 안 온 건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가방을 내려놓으려는데........
그 때, 밖에서 들리는 열쇠소리.
나는 열쇠소리가 들리자,
경직된 사람처럼 가방을 내려놓으려는 자세
그대로 멈춰있었다.
그와 동시에 들리는 문소리.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문 쪽을 바라봤다.
문을 닫고 들어오는 사람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연호였다.
연호는 앞에 놓인 처음 보는 신발에,
신발을 벗으려다 말고 두 켤레의 신발을 뚫어지게 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조금씩 들어, 앞에 있는 연지와 이 주희를 바라본다.
“너, 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하하.
아, 물 마실래?”
당연히 연호가 늦게 올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당황한 나는 연호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놨다.
내 행동에 이상한 듯이 나를 한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더니 이 주희 앞에 멈춰 서서 얘기하는 연호.
“집에는 어쩐 일이야? 둘이 그새 친해진 거야?”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 말과 동시에 나를 보면서 미소 짓는 이 주희.
나 또한 이 주희를 보면서 미소를 지은 뒤,
주스라도 주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연지.
“둘이 되게 다정한데?”
거실을 가리키면서 얘기하는 연지.
나는 연지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연호와 이 주희가 소파에 앉아,
웃으면서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컵에 주스를 따라서 이 주희에게 가져다주려고 했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해, 내가 가져다줄까?”
내가 멍하니 서있자,
옆에 있던 연지는 내 손에 들려있던 주스를
자신이 들고 거실로 걸어간다.
나는 그 후에 거실로 나와
연지 옆에 앉아있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연지와 이 주희는 동시에 간다면서 인사를 했다.
그래도 나는 앞에까지라도 바래다주기 위해,
잠바를 입고, 슬리퍼를 구겨 신은 뒤 밖으로 나왔다.
“우리 둘이 같이 가면 되니까, 넌 얼른 들어가 봐. 추울 텐데.”
“어? 아, 알았어.......잘 가.”
연지의 말에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들어,
인상을 찌푸린 채 등을 돌렸다.
그리고서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떤 남자가 등을 돌린 채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얼굴도 보이지 않고,
내가 보고 있어도 아무 움직임이 없어서,
나는 그대로 그 남자를 지나쳐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남자의 옆을 지나쳐가려는 순간,
그 남자는 갑자기 등을 돌리더니 고개를 들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그 남자는 신 형민이었다.
“잠깐 할 얘기가 있어.”
내 팔을 잡더니,
집과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를 데리고 오는 신 형민.
그러더니 잡고 있던 내 손을 놓고,
점점씩 고개를 들어 나를 뚫어지게 본다.
“너와 만나기 전서부터,
나는 너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어.”
#.072
신 형민의 말에 번뜩 ‘스토커’라는 세 글자가 떠올랐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신 형민을 노려보면서,
점점씩 신 형민과 나의 거리를 넓혀갔다.
“너, 너 예전부터 내 스토커였어?”
“장난 아니니까 진지하게 들어!”
내 행동에 인상을 찌푸린 채, 소리치는 신 형민.
그러더니 뒤쪽에 있는 벽에 기댄다.
“처음에 우리가 여러 번 만났던 거 기억해?”
‘여러 번’이라는 말에 화장실에서 마주쳤던 장면들이나,
휴대폰을 통해 만났던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머릿속을 맴도는 여러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너라는 건 안중에도 없었어.
이런 일을 벌이게 되면 네가 상처 입는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오직 너와 관련된 누군가에게 너로 인해
쓴맛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 그게 다 무슨 말이야?
나와 관련된?
........여, 연호?”
“......그래, 연호랑 나랑은 중학교?
비록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로 배정됐었지만,
그 때도 연호와 나랑은 꽤 친했었어.
그리고 연호뿐만이 아니라,
우리 학교에 다니던 또 한 명의 여자와도 어쩌다보니
같이 어울리게 되면서 꽤 친했었고.
그러다보니 그 여자가 좋아져서 내가 먼저 사귀자고 얘기했어.
그랬더니 그 여자도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적으로 얘기했지.
그 여자랑 그렇게 몇 개월을 사귀고 있었을 때,
갑자기 그 여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나한테 헤어지자는 말을 했어.
나는 아무 이유도 모르고, 그 여자가 헤어지자고
몇 번이고 얘기하니까, 결국 헤어져줬어.
그런데 그 후로 며칠 뒤, 연호랑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그 여자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됐어.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 일이 있고 나니까, 그 여자는 물론이고,
그 녀석까지 꼴 보기 싫더라고?”
“........그, 그럼 연호와 관련된 사람이라는 건........
나?”
“그래, 그 날 이후로 그 녀석과 대판 싸우고,
그 녀석이 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서,
어떤 기분인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
너 말고도 한 번 정도 그런 적은 있었지만,
빼앗은 후로는 시시해서 그대로 끝내버렸어.
그러다가 어느 날, 네가 연호 집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어.
그래서 그냥 여자 친구랑 동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네가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이랑,
연호 아빠가 같이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더라.......
그 후로 계속 생각해봤는데,
연호가 예전에 재혼할지도 모른다는 소릴 했던 것 같더라고.”
“......그, 근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나 말고도 한 번 정도 그런 적이 있다니?”
물어보는 순간, 연호가 나에게 신 형민을 몇 번이고
만나지 말라고 경고했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나는 신 형민에게 물어봄과 동시에
그 때 연호의 행동들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여러 번 너한테 접근을 했었지만,
가까운 사이까지는 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었지.
그러다가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 방법밖에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
그 말과 동시에 미소를 짓는 신 형민.
“너한테는 잔인한 방법일 수도 있었겠지만........
방금 그랬지? 나랑 연호랑 싸웠다고.
하지만 그 후로 이상하게 학교 애들은
나를 달갑게 보지 않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바로 너한테 접근했지.
가까이 붙어있으면 다른 애들이 오해할 게 뻔하잖아?
........그리고 지난번에 옥상에서 내 이름이 새겨진 명찰,
나한테 건네주려던 거 기억해?
그러다가 옥상 아래로 떨어졌던 거.”
신 형민의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도, 그리고 옥상에서 명찰을 떨어뜨렸을 때도.......
일부러 떨어뜨렸던 거였어.
떨어진 내 명찰을 주우러 갔을 너를,
애들이 발견하고 나와 관련됐다고 생각해,
안 좋게 여길 수도 있잖아?
.......그 후에 내가 네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너를 구해주면 끝인 거잖아?”
나는 그제 서야 신 형민이 나에게 했던 행동들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역시. 이상하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신 형민과 많이 마주친다 했더니.......
그게 우연이 아니었네.
나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자,
신 형민을 노려보면서 딱딱한 어조로 얘기했다.
“........그럼 이렇게 다 말해버렸으니까,
이제 나한테 나타날 이유도 없겠네!”
나는 그 말과 동시에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 때, 내 팔을 세게 잡는 신 형민.
그러더니 그 자리에 서서 조용하게 얘기한다.
“처음에는 이 얘기를 꺼낼 생각도 못했어.......
그런데 네가 뒤 운동장 쪽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애들한테 해코지를 당하고 서럽게 우는 네 모습에.......
이상하게 나쁜 감정들이 사라졌어.
그때부터였을 거야. 너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된 게.......
그 후로 너한테 몇 번이고 진실을 얘기하려고 했어.”
‘진실’이라는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내 팔을 잡고 있는 신 형민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앞만 본 채, 걸어가려고 할 때.......
신 형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의외로 대답 못하네? 이 질문에 답변하면.......
내가 처음부터 너한테 접근했던 이유 얘기해줄게.’
“그, 그럼 그 때.......”
“그래.......그 후로 일부로 네 앞에 나타나지 않거나,
네가 나를 봐도 그냥 무시한 채, 지나치려고 노력 많이 했었는데.......
근데 이제는 그런 것도 힘들어서 못 해먹겠더라고.”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오기도 했지만,
우선은 신 형민이 나를 속여 왔다는 게
머릿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한 상태로 결국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도 한숨을 푹 쉰 채,
땅만 바라보면서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앞쪽에서 ‘빵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얀 불빛이 보였다.
나는 눈이 부셔서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날아가는 느낌이 들더니,
어딘가에 살짝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빵빵’ 들려오는 소리로 볼 때는, 차였는데.
살짝만 부딪힌 느낌이 들자,
이상했던 나는 눈만 살짝 떠서 주위를 둘러봤다.
“충격적이었어?
네 쪽으로 오는 차도 못 볼 정도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목소리에 소리치면서 신 형민을 힘차게 밀어냈다.
그리고서 땅을 짚고 일어나서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가려는데........
그 때, 뒤에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도와준 거야.”
신 형민의 말에 잠시 멈칫한 나는 뒤로 고개를 돌려봤다.
하지만 신 형민은 그새 다른 쪽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늘 들은 얘기만 해도 수만 가지가 넘는 것처럼 느껴져서,
머리가 복잡해왔다.
이마를 손으로 몇 번 두드리면서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갈 때,
내 머리 위로 물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새똥인가?
무언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찝찝한 느낌에,
고개를 위로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와 동시에 눈에 무언가가 들어간 느낌이 들었고,
이내 하늘에서는 많은 양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갑자기 온 비에 놀란 나는 집으로 뛰어가면서도
눈 안에 무언가가 들어간 듯해서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 때, 앞에 있는 장애물과 내 머리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비비다 말고 위를 올려다봤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맞아서 그런지 눈앞이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앞에 있는 장애물을 자세히 보려다말고,
다시 고개를 숙여 눈을 비볐다.
“이걸로 닦아. 누구한테 맞기라도 했어?
밖에서 질질 짜기나 하고.”
연호의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아래에 보이는 건, 손수건이었다.
그런데 누가 질질 짰다는 거지? 설마 내가?
나는 그 말에 부정하듯이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아, 아니! 갑자기 비가 오니까........”
“그나저나 네 친구랑 이 주희는 잘 갔어?”
“그래, 그새 둘이 친해졌는지 내 도움 없이도 잘만 가더라.”
나는 툴툴대듯이 얘기하면서 위쪽을 올려다봤다.
위쪽에는 연호가 들고 있는 우산이 보였다.
연호가 나까지 우산을 씌워준 모습이 보이자,
가까이 있다는 자체가 어색했던 나는
우산 밖으로 슬금슬금 걸어 나갔다.
“야, 그러다 대머리 된다, 얼른 우산 안으로 들어 와.”
“됐어. 어차피 비 맞았으니까 상관없어!.........근데 너.......”
말을 하던 도중 신 형민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 형민에 대해 연호한테 물어보려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아, 아니........”
막상 신 형민이 했던 말들에 대해 물어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였는데.......
그 순간, 연호가 매정하게 나에게 던졌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부터 너랑 나는 특별한 관계거나........
그리고 가족관계도 아니니까,
나 봐도 네가 먼저 무시하고 지나쳐.
나도 앞으로 너란 사람, 없었던 사람으로 기억할 테니까.’
생각해 보니 저번에 연호가 했던 말과,
현재 연호가 하는 행동이 너무 달랐기에,
고개를 들어 연호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비를 그대로 맞은 채,
집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려 걸어가는데.......
그 때, 뒤에서 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또 불만인데?”
뒤에서 들리는 연호의 목소리에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갑자기 뒤에서 내 팔을 세게 잡는다.
나는 문을 열려다 말고 놀라서 뒤를 돌아봤는데........
연호의 얼굴이 보였다.
“비 맞은 채로 계속 밖에 있기 싫으면,
무슨 이유에서 이러는 건지 빨리 말해.”
막상 연호 앞에서 신 형민이 했던 말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입만 꾹 다물고 있자,
보고 있는 연호가 내 행동이 답답해 보였는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을 내뱉으려는 게 보였다.
“도대체........”
“내가 신 형민 만나게 해달란 때 있었지?
근데 왜 만나지 못하게 했던 거야?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어.”
신 형민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연호에게 직접 듣고 싶었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진지한 표정으로 연호의 손을 잡았다.
그 때,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너희 둘,
비도 많이 오는데 집 앞에 나와서 뭐하는 거야?”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불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인상 찌푸린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073
엄마는 내 얼굴을 보고는, 조금씩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잡았던 연호의 손을 뿌리치듯이 세게 놔버렸다.
그리고는 엄마가 다가오기 전에 내가 먼저 엄마에게 다가가,
정확하게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
그 순간, 다리가 꼬이는 느낌이 들면서 몸이 앞으로 쏠렸다.
“엄마, 아악!”
엄마를 외치면서 넘어지려하자,
엄마는 놀랐는지 나한테 빠른 속도로 뛰어온다.
그 때, 내 몸을 누군가가 두 팔로 받쳐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비를 다 맞아서 온몸이 젖어있었지만,
흙탕물에 샤워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바로 위를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연호의 얼굴이 보였다.
연호는 우산을 어디로 날려 보냈는지,
비를 맞은 채로 내 몸을 받쳐주고 있었다.
“하하하.”
나는 연호의 얼굴에 어색하게 웃고 있다가,
옆에 엄마가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는 우산을 쓴 채 우리를 보고 있다가,
떨어진 우산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우산을 가지고 다시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나는 엄마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자,
내 몸에서 손을 치우라고 눈빛으로 얘기하면서 발버둥을 쳤다.
“진짜 손 치워?
그러면 바로 아래로 떨어질 텐데.
바로 아래는 또 흙탕물이고.”
흙탕물이라는 말에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려는데.......
엄마가 우리 앞에 멈춰 서더니
우산을 건네면서 나를 일으켜준다.
“얼른 들어가지, 계속 비 맞고 있을 거야?”
“어, 어. 들어갈 거야.”
엄마의 의외의 반응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까지 들어왔다.
그런데 엄마는 어떤 영문에서인지,
내 손을 잡고 빠른 속도로 걸어간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는 내가 비를 맞아
온몸이 다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방안까지 데리고 들어온다.
나는 엄마의 행동에 바닥을 가리키면서 얘기했다.
“잠깐만! 지금 바닥 다 젖었잖아! 나 몸부터 씻고 올게.”
“아, 아리야?”
엄마는 나를 불러놓고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행동에 불안하긴 했지만,
애써 그 모습을 감추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왜?”
“.......연호랑 친하게 지내는 모습, 보기 좋구나
........그런데 연호랑 너는 가족이니까.........
엄마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주위에서 보면 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지도 모르니까.......”
엄마는 이런 말하기가 껄끄러웠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몇 분 동안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했다.
나는 입술을 깨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하하.
엄마, 나 그럼 샤워하러 갈게.
먼저 부른 건 엄마니까, 엄마가 바닥에 떨어진 물,
다 닦아야 된다.”
나는 장난치듯이 얘기한 다음, 얼른 밖으로 나왔다.
그런 다음, 방문을 닫고 그 앞에 서있는데.......
마침 연호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연호의 얼굴이 보이자,
다시 신 형민이 연호에 대해 했던 얘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연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어보려는 순간,
뒤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엄마의 얼굴이 보이자,
나는 발걸음을 멈춰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신 형민과의 관계를 직접 연호 입으로 듣고 싶었지만,
엄마가 나한테 했던 말들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바로 연호한테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결국 한숨만 쉰 채 물어보기를 포기하고 물을 틀어,
몸을 씻어냈다.
그렇게 몇 십 분 동안 몸을 씻겨내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물을 끄고 수건으로 몸을 씻어낸 다음
문을 열려고 할 때, 밖에서 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아무리 급해도 옷은 가지고 들어갔어야지,
민망하게 내가 네 옷 직접 챙겨줘야겠냐?”
“뭐?
........아, 맞다. 내 옷.”
나는 깜짝 정신 놓고 속옷과 옷을
챙겨오지 않은 게 생각나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와 동시에 문만 살짝 열어 옷을 받아야 하나,
여러 대책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해내고 있었는데.......
그 때, 밖에서 연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다 옷 놓고 갈게.”
“어? 어, 어. 고마워.”
나는 뜻밖의 연호의 말에 얼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리고 연호가 화장실 앞에서 점점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문을 살짝 열어 속옷과 옷을 들고,
다시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화장실에서 옷을 다 갈아입고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을 때,
메시지가 온 건지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휴대폰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했는데,
그 사람은 연지였다.
연지라는 이름이 뜨자,
나는 폴더를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일 학교 같이 가자.
내가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연지의 문자메시지였다.
나는 알았다는 식의 답장을 보내고 잠에 들려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몇 십 분 동안 몸을 뒤척이다가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는데.......
거실에는 아무도 없이, 캄캄했다.
그 때, 연호의 방에서 불빛이 보였다.
아직 안 자고 있는 건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금슬금 연호 방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문을 살며시 열어 안을 살펴보는데,
연호는 어디를 간 건지 방에 없었다.
연호도 비 많이 맞았을 텐데.
나는 연호가 걱정스러운 나머지 밖으로 나가,
잠시 주위를 살펴보려고 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연호의 휴대폰.
연호는 휴대폰을 들고 나가지 않은 건지,
휴대폰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보면서 처음에는
안의 내용을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연호 방에서 나가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연호의 휴대폰이 눈에 밟혔다.
결국 나가려는 발길을 돌려,
연호의 휴대폰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버튼 여러 개를 누르다가,
통화목록을 보게 됐는데.......
이 주희와 통화한 기록이 최근에 몇 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통화목록에 있는
이 주희의 이름을 클릭했는데,
몇 분 전에 통화했던 기록이 있었다.
몇 분 전에 통화했던 기록이 보이자,
나는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연호의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멍 때리듯이 몇 분 동안을 앞만 바라봤다.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몇 십 분 동안을 앞만 바라보고 있을 때,
옆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스르르 눈이 감겨왔다.
그 후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연호 침대에서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게 잠들어 있었는데.......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깨서 눈을 비비고 있을 때,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리 친구니? 잠깐 기다려라.”
내 친구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제 연지가 보냈던 문자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메시지가 떠오르자, 늦잠을 잤다는 생각에
머리를 손으로 콩콩 때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 때, 내 옆에서 잠들어 있는 남자.
그것도 윗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나는 정체 모를 남자가 자고 있는 모습에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악! 다, 당신 누구야!”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옆에 있는 사람을 때리듯이 툭툭 쳤다.
그와 동시에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
나는 엄마가 들어오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봤는데.......
엄마가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엄마 옆에는 놀란 듯,
나를 보고 있는 연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연지 옆에는 이 주희가 서있었다.
어제 같이 온다는 말 없었는데, 같이 왔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 주희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남자를 확인하려는데.......
내가 그 남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경악하는 표정으로
내 옆에 있는 남자를 보고 있는 연지.
그리고 이 주희 또한 놀란 표정으로 내 옆에 있는
남자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내 쪽을 보고 있다가,
이내 내 팔을 꽉 잡으면서 얼른 일어나라는 듯이
내 등을 치면서 얘기한다.
엄마를 비롯해 연지와 이 주희가 놀란 듯이 내 옆을 보고 있자,
점점 불안해진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그와 동시에 인상을 찌푸린 채,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보고 있는 연호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무슨 볼 일이라도 있어?”
아무렇지 않은 듯이 태연하게 얘기하는 연호.
연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다가,
우리 모두가 얼어있자, 다시 자려는 듯 눕는다.
나는 누운 연호의 모습에
억지로 다시 몸을 일으켜 따지듯이 얘기했다.
“너, 너.......언제 내 방에 들어온 거야?”
“뭐? 네 방? 착각하나 본데, 여긴 내 방이야.”
“네, 네 방?”
나는 연호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는 내 방에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나는 그제 서야 머리를 두드리면서 어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한숨을 쉬었다.
“봐, 네가 먼저 들어온 거잖아.
그럼 내가 들어온 게 아니지, 피곤하니까 다 나가.”
그 말과 동시에 다시 자려는 듯, 침대에 눕는 연호.
나는 연호의 말에 멍하니 있다가,
내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연호의 머리를 끄잡아 당겼다.
그러자 앞에서 지켜보던 연지는 나를 말리기에 급급했고,
연호까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얘기했다.
“아! 이 손 안 놔?!”
“내가 여기서 자고 있었으면 깨워서라도 내 방에 가게 했어야지!”
내 말에 연호는 말없이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이내 베개를 든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미소 짓는 연호.
그것도 잠시, 내 앞으로 베개를 던지면서 나가라고 소리친다.
나는 결국 연호를 폭발 직전의 상황까지 오게 만들고,
어쩔 수 없이 방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방 밖으로 나온 나는 연지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이 주희와 눈이 마주쳤다.
“하하. 나 준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너희 먼저 갈래?”
“그래, 주희야. 우리 먼저 가자.”
“그, 그래.”
연지의 말에 이 주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했다.
나는 연지와 이 주희의 대답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뒤
다시 돌려보내려고 할 때, 이 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호가 어제 늦게 들어가서 많이 피곤한 것 같아.
그러니까 너무 심하게 깨우지는 마.”
#.074
“연호 학교가야 될 텐데........
그, 근데 느, 늦게 들어와?”
이 주희의 말에 연호의 휴대폰에 이 주희와 통화했던 기록이
남아있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때, 내 물음에 이 주희는 고개를 숙이더니
웃으면서 조용히 얘기한다.
“아, 지나가는 길에 봤어.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는 것 같더라고.”
이 주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간을 확인하면서
이 주희를 끌어당기는 연지.
“빨리 가자.
이렇게 여유 있게 가다간 지각하겠다.
아리야, 너도 빨리 와.”
“아, 알았어. 먼저 가.”
나는 이 주희와 연지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이 주희와 연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
손을 무겁게 내려놨다.
그리고 뒤로 몸을 돌리려는데........
연호가 번개머리를 한 상태로,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뒤에 있는 연호 때문에
놀란 나머지 크게 소리쳤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애인 뺏긴 사람처럼 바라보네? 너 혹시 여자 좋아해?”
“뭐?!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너 지금 머리상태도 그렇고, 제정신이 아니지?
나 얼른 씻어야 되니까, 저리 비켜.”
방금 전 연호와 한 방에 있던 장면들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머지,
연호한테 분풀이를 하듯이 얘기했다.
그리고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난 다음에
빠르게 교복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 때, 주방에서 나오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아침에 연호와 한 방에 같이 있다가 들킨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 나 늦어서 빨리 가봐야 되니까,
연호 좀 깨워줘.”
나와 연호가 한 방에 있었을 때,
엄마가 그 장면을 본 이후로는 눈을 마주치기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가방을 매고, 신발을 신었다.
엄마가 내 쪽으로 다가오면서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보였지만,
나는 엄마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
그대로 밖으로 나와 버렸다.
밖으로 나와서 시간을 확인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지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력을 다해 뛰었다.
그렇게 버스정류장 앞에 도달했을 쯤,
버스에 수많은 학생들이 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버스를 향해 손을 몇 번이고 흔들었지만........
나를 보지도 않은 채,
그 학생들만 태우고 그대로 가버리는 매정한 버스.
나는 할 수없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나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몸을 벌떡 일으켜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순간, 내 앞으로 오는 한 오토바이.
오토바이는 내 앞까지 오더니,
멈춰 선다.
“늦었지? 빨리 타.”
뒤를 가리키며 얘기하는 신 형민.
신 형민의 얼굴이 보이자,
또다시 신 형민이 어제 했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신 형민을 무시한 채, 다른 쪽을 보고 있는데.......
이내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신 형민.
나는 불안했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계속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몸이 위로 붕 뜨는 느낌이 들면서,
이내 푹신한 의자에 앉혀졌다.
나는 소리를 지르다가 푹신한 의자에 앉혀지자,
주위를 둘러봤다.
그와 동시에 내가 타고 있는 곳은
오토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앞좌석에는 이미 신 형민이 타고 있었다.
“일단 늦은 것만 생각해.”
그 말과 동시에 오토바이를 출발시키는 신 형민.
신 형민이 오토바이를 출발시키자,
나는 말없이 뒤쪽을 잡으면서 앉아있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바람을 맞으면서 달려온 끝에 도착한 학교.
나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내려서 신 형민의 얼굴을 살짝 봤다.
“고마워.”
신 형민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어색했던 나머지,
그 말만 한 채, 그대로 고개를 돌려 뛰어가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신 형민의 목소리.
“오늘 전학가기로 했어.”
‘전학’이라는 말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데, 나를 보면서 미소 짓고 있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과의 거리를 여전히 벌린 채로 얘기했다.
“저, 전학? 갑자기 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과거에 있었던 사실들을 모두 털어놔서 그런가?
나는 혹시 그거 때문인가 하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나를 보면서 먼저 말을 내뱉는 신 형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니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신 형민은 그 말과 동시에 내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앞에 손을 내민다.
나는 신 형민이 내민 손을 멀뚱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때, 웃으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그래도 몇 개월 동안 얼굴 보면서 얘기한 사인데,
악수 정도는 해야지 않나?”
“아, 악수........”
‘악수’라는 말에 ‘신 형민이 진짜로 가버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생각이 들면서 그래도 조금은 정이 들었는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괜히 코를 흥흥거리면서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는 신 형민에게 악수를 하면서,
신 형민을 노려봤다.
“그, 그래도 지금은 용서 다 했는데.......
그 다음에 간다니까 꼭 그거 때문인 것 같잖아!”
“아아!”
그 때, 갑자기 신 형민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소리친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신 형민과 악수하고 있는 내 손의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아파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제 서야 손의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걸 깨닫고,
신 형민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손을 얼른 뒤로 뺐다.
그러자 갑자기 내 다른 쪽 팔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당기는 신 형민.
그러더니 나를 자신의 품에 안는다.
나는 몇 초 동안 눈을 깜빡거린 채
이 상황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몸을 감싸고 있던 팔을 푸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면서
신 형민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저 미소만 지은 채 등을 돌려버린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신 형민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러다가 다시 시계를 확인하고는 반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반으로 들어가자마자 연지의 눈과 마주쳤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민망한 나머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연지와 얘기를 하려는데,
바로 종이 치면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한동안 그 장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했다.
한 선생님이 나가시면 또 바쁘게 들어오시는 선생님 때문에
말할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점심시간이 됐을 때,
이 주희가 우리 자리까지 찾아왔다.
이 주희가 나타나자 주위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이 주희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 주희를 부르면서 얘기를 하려 할 때,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입을 벌리려다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아까 우리 둘 다 넘어지는 바람에 스타킹도 다 나가고.”
이 주희는 연지를 보면서 얘기하더니,
말이 끝나자마자 나를 보면서 웃는다.
이 주희의 말에 연지와 이 주희의 스타킹을 보는데,
둘 다 스타킹의 올이 나가있었다.
이 주희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짜증난다는 듯이
한동안 연지와 얘기를 했다.
나는 그 둘의 얘기를 들으면서 말없이 밥알만 깨작거렸다.
그렇게 둘의 얘기를 한참 듣고 있다 보니,
어느 새 점심시간이 끝나버렸다.
나는 주변을 정리하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지금 매점 갈 건데 같이 갈래?”
연지의 말에 점심때부터 피곤했던 나머지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러자 바로 이 주희와 얘기를 하더니,
매점에 빨리 갔다 오겠다면서 그대로 뒤돌아버린다.
나는 피곤한 나머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기댔다.
수업시간이 되어서도 점심시간 때와 마찬가지로
잠의 삼매경에 빠져있었는데.......
그 때,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떴는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너 일어나라고 깨웠는데도 안 일어나서,
들어오는 선생님들한테 아프다고 핑계됐어.”
그 말과 동시에 웃는 연지.
나는 눈을 비비면서 다른 애들과 똑같이 가방을 맸다.
그리고는 연지와 반 밖으로 나왔는데,
예전과 다르게 이 주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희는?”
“아, 주희는 오늘 청소당번이라서 우리 먼저 가라고 했어.”
나는 연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어갔다.
그리고 학교 밖으로 나왔을 때,
밖에서 신 형민이 전학 간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떠오르자, 연지를 보면서 얘기했다.
“오늘 신 형민 전학 간다고 하더라.”
“진짜? 전학도 많이 가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얘기하는 연지.
그러더니 신경 쓰지 않는 듯 바로 다른 얘기로 넘겨버린다.
나는 연지와 얘기하면서도 왠지 모를 쓸쓸함에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집 앞에 도달했을 때,
문을 열려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옆쪽에서 어떤 사람이 내 눈과 입을 막더니
옆의 어느 캄캄한 공간으로 데려간다.
그 사람이 입을 막고 있는 상태에서도
살려달라는 요청을 하고 싶었던 나는,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다.
그 때, 어느 방으로 데려가더니 나를 놓아주는 사람.
그곳이 워낙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놓아주자마자 발에 잔뜩 힘을 준 상태로,
앞에 있는 사람의 다리를 힘껏 차버렸다.
그러자 아프다는 듯이 소리치면서 콩콩 뛰는 사람.
나는 그 상황에서 오직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그대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우리 집을 찾으려는데........
바로 옆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엄마가 보였다.
“어, 엄마. 옆에, 아, 아니.
옆집에서 벼, 변태 같은 사람을 만나서........”
“옆집?
아, 맞아. 옆집에 새로운 사람 인사 왔다더라........
근데 변태? 무슨 말이야?”
나는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 왔다는 소리가 들리자,
그 사람과 계속 마주친다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그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
엄마는 잠시 동안 인터폰으로 밖에 있는 사람과 얘기하더니,
나를 바라본다.
“이사 온 사람이래. 떡 주려고 왔나 봐.
요즘 세상에 이사 왔다고 떡 돌리는 사람도 있네.”
나는 엄마의 말에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그대로 문을 열어주는 엄마.
나는 엄마가 문을 열어주자,
그대로 엄마의 등 뒤에 숨었다.
“오늘 이사 와서 떡 드리러 왔어요.”
그 사람의 목소리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나는 그 생각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얼굴만 살짝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사람은, 신 형민이었다.
#.075
“어? 이 얼굴.......
.어디서 많이 봤는데?”
엄마는 신 형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면서 생각해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저번에 신 형민을 보고
남자친구로 착각했던 장면이 떠올라,
엄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다음, 까치발을 들고 신 형민의 얼굴을 내 두 손으로 가렸다.
“뭐하는 거야?”
엄마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해 못할 내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얘기했다.
나는 남자친구로 또한번 오해를 사,
골치 아픈 일이 반복될 것만 같은 생각에,
신 형민의 팔을 잡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바로 집 문을 닫아버리고,
문 앞을 막고 있기까지 했다.
문을 막고 있자, 엄마는 신 형민이 더 궁금해졌는지,
힘을 가해 문을 밀어내려고 했다.
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문이 열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 형민을 보면서 얘기했다.
“잠깐만 기다려!”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만 한 채, 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엄마는 열린 틈을 이용해서
밖에 있는 사람을 보고 싶었는지,
고개를 내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엄마! 잡상인이야, 내가 내쫓았으니까 신경 하나도 안 써도 돼!”
“잡상인?........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어디서 봐, 하하. 됐어, 저런 사람 신경 쓰지 마. 시간 아까워.”
나는 엄마를 억지로 등 떠밀어서 문과 멀어지게 한 다음에,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바로 집 옆에 귀신처럼 조용히 서있는 신 형민.
“잡상인?”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란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신 형민을 째려봤다.
그러자 신 형민은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옆집에 이사 왔다는 말까지 했는데,
갑자기 잡상인이라고 하면 너희 엄마가 잘도 믿겠다.”
“믿으니까 안 나오지,
떡이나 선물로 유혹하면서 뭐 팔려는 사람들 많을 걸? 하하.
그건 그렇고, 너 분명 전학 간다고 했었잖아!
근데 전학은 안 가고 지금 여기에서 뭐하는 거야?!”
“전학? 전학이라면 갔는데?”
“뭐?........그럼 이 집은?”
“지금 있었던 일들 때문에 그 학교에 계속 있기도 뭐하고........
그리고 네가 전학 가는지에 대해서만 물었지,
어디로 이사 갈 건지에 대해서 물어봤어?”
물어보지 않은 내가 잘못이라는 듯이 얘기하는 신 형민.
그 때, 우리 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황하면서 신 형민의 팔을 끄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우리 집과는 반대편 쪽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도 익숙한 남자 한 명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뛰려다 말고 멈춰 서서, 그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얼굴은 연호였다.
연호의 얼굴이 보이자, 당황한 나는
우왕좌왕하며 어디로 갈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는데.......
그 순간, 신 형민이 내 팔을 잡아당긴다.
나는 놀라서 신 형민 쪽을 바라보면서 소리치려는데........
내 입도 자신의 손으로 막아버린다.
“들키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신 형민은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점점 연호의 발걸음이 가까워져 올수록
더 잘 숨겨주려는 건지, 나를 숨 막히게 꽉 안는 신 형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위를 올려다봤지만........
캄캄해서 그런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일 분 정도가 흐르고
집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집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내 입을 막고 있는 신 형민의 손을 얼른 떼어냈다.
“네, 네가 어쩐 일이야? 나를 다 숨겨주고?”
“네가 너무 위태해보여서, 불쌍해서.”
“뭐?!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나 때문이라는 거야?
.......너 보아하니 내가 여기 산다는 거
연호한테 들키고 싶지 않는 모양인데.......
거기에 나도 협조해줄게.
고마운 줄 알아.”
당당한 신 형민의 말투에 기가 막힌 나는
따지려고 무슨 말이든 내뱉으려 했다.
그런데 신 형민은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문을 열고 억지로 나를 밖으로 밀어낸다.
“빨리 가봐. 벨 누르면서 이사 왔다고 했었는데.
이사 온 사람이랑 갑자기 사라진 걸 알면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어?”
그 말과 동시에 미소 짓는 신 형민.
그러더니 손을 흔들면서 문을 닫아버린다.
나는 한동안 신 형민의 집 앞에 서서
신 형민이 들어간 문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리야, 방금 그 사람.......”
그 때, 옆에서 또다시 엄마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신경 안 써도 된다면서
엄마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그렇게 엄마와 집으로 들어왔을 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연호와 눈이 마주쳤다.
“어?
연호 너 벌써 들어왔네? 하하.”
연호의 얼굴이 보이자,
신 형민과 대화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너 보아하니 내가 여기 산다는 거
연호한테 들키고 싶지 않는 모양인데.......
거기에 나도 협조해줄게.’
신 형민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어색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수상한 듯이 실눈을 뜨면서 나를 바라보는 연호.
“너 죄 지었어?”
“아, 아니! 나 하나도 두려운 거 없어!”
내 말에 더 이상한 듯 나를 바라보는 연호.
나는 연호가 이상하게 바라보자,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난 것처럼 씩씩거리면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이제부터 어떡하지?
나는 침대에서 뒹굴면서
계속해서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잠들었을 때,
휴대폰의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팔을 뻗어
이곳저곳을 더듬거렸다.
‘탁’
그 때, 둔탁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뒤척이다가 그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져서 배터리와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면서 휴대폰을 주워, 다시 배터리를 끼워 넣었다.
그런 다음 휴대폰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거실에는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너무 조용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조심스럽게 연호 방 앞으로 다가갔다.
연호 방 앞에 멈춰 서서는 귀를 방문 앞에 가져다댔다.
하지만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연호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
지금 시간을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연호 방문을 열었다.
연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로 잠들어 있었다.
‘똑똑’
나는 연호를 깨우기 위해,
문이 열린 상태에서도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연호에게 바로 다가가 흔들어 깨우고 싶었지만,
베개 하나라도 날아올 것만 같은 두려운 생각에
결국 소심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반응이 없는 연호.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조심스럽게 연호를 불렀다.
“연호야?”
‘연호야’를 몇 번이고 불러도 대답이 없자,
연호가 머리끝까지 덮고 있는 이불을 조금씩 아래로 내렸다.
연호는 어딘가가 불편한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
크게 호흡하고 있었다.
연호가 어딘가 불편한 것 같아 보이자,
흔들어서 깨우려다가 내 손을 연호의 이마에 가져다댔다.
그 순간, 연호의 이마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나는 깜짝 놀라 이마에서 손을 떼고,
약이라도 먹일 생각으로 연호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귀찮다면서 손짓으로 나가라는 연호.
연호의 행동에 한숨만 쉬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지각’이라는 두 글자가 나를 압박해왔다.
나는 일단 교복부터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빠르게 내 방으로 달려가 갈아입은 뒤,
대충 세수를 하고 가방을 들고 연호 방으로 들어왔다.
“됐어. 나보다 네가 더 위급한 거 같은데........
얼른 가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침을 하는 연호.
나는 연호가 기침을 하자 내가 말을 시켜서 그럴 거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이불만 다시 덮어준 채,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서 학교까지 느릿느릿 걸어왔는데.......
다행이 지각은 면할 수 있었다.
나는 학교에 와서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머리를 책상에 기대고 있었다.
그 때, 이 주희가 누군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이 주희에게 다가가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밖으로 나가는 이 주희.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 주희가 사라진 쪽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그대로 다시 책상에 누웠다.
그 순간, 아파서 힘들어하는 연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학교가 끝날 때까지
뭘 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 끝날 시간이 됐다.
“아리야, 오늘 같이.......”
“아, 나 오늘은 일이 있어서. 내일 같이 가자. 먼저 갈게.”
연지의 말에 손을 흔들면서 빠르게 학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근처 약국에 들려 감기약 몇 통을 산 뒤,
빠른 속도로 집까지 달려갔다.
나는 집 앞에 도착해선 너무 급하게 달려와 힘든 나머지,
옆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 때, 옆에서 들리는 신 형민의 목소리.
“추운 날 웬 땀을 그렇게 많이 흘려?
벌로 운동장 몇 바퀴 뛰다 왔어?”
“그런 거 아니거든!
넌 남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
지금 상황에서는 모든 행동들이 안 좋게 보였던 나는
짜증 섞인 어투로 얘기하면서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집안에는 못 보던 여자의 구두가 한 켤레 놓여 있었다.
나는 이상한 마음에 걸음을 멈춰 섰다.
“왜 그래, 도둑이라도 들었어?”
신 형민의 농담에도 반응조차 하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연호의 방문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여자 목소리까지 들렸다.
나는 일부러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연호 방 쪽으로 걸어가 안을 살펴봤다.
그 순간, 연호를 간호해주고 있는 이 주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주희도 밖에서 소리가 들려서 이상했는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 주희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약통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약을 주울 생각조차 못했던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자마자 보이는 신 형민.
신 형민의 얼굴이 보이자,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신 형민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지나가려는 내 팔을 잡는 신 형민.
그러더니 나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겨,
나를 살포시 감싸안아준다.
#.076
“다 울었어?”
나는 한참 동안 신 형민의 품에서 말없이 있었다.
그러다 신 형민의 말이 들려오자,
부정하듯이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어 얘기했다.
“나 절대 운 거 아니야!
너, 너는 내 집 앞에서 주구장창 뭐하는 거야,
네 할 일이나 하지.”
“그게 위로해 준 사람에 대한 예의냐?”
나는 그 말에 헛기침을 하면서 신 형민을 떼어냈다.
그리고 지금 상태에서는 신 형민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웠던 나머지, 등을 돌려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 가있지?
연호 옆에 이 주희가 있어서 부담되고,
그렇다고 해서 신 형민 집에 있을 수도 없고.
나는 추운 날씨에 갈 데가 마땅히 없자,
속도를 늦추면서 걸어갔다.
“추운데 차 한 잔 정도는 줄 수 있어.”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신 형민의 목소리.
신 형민의 목소리에 가던 길을 멈춰서 뒤를 돌아보니,
신 형민은 이미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 뒤였다.
나는 한참 동안을 그곳에서 망설이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려
신 형민의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 때, 우리 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신 형민의 집에 들어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우리 집 쪽을 살짝 봤다.
그와 동시에 이 주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절로 시선이 다른 쪽으로 갔다.
그리고 이 주희를 피하기라도 하듯,
발걸음은 저절로 신 형민의 집 쪽으로 옮겨졌다.
나는 신 형민의 집에 들어와서
무작정 문을 세게 닫고,
뛰어온 사람처럼 헉헉거리고 있었다.
“너 누구한테 쫓기다 왔어?
왜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 쉬어?”
“어?........나, 나 아무 것도 못 봤어! 왜 그래!”
“못 봐? 뭘? 밖에 누구 있어?”
“아, 아니!
그런 거 아니니까,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하하.”
“........티 다 난다.”
“뭐?”
“어쨌든 의자에 앉아 있어.
따뜻한 차라도 줄 테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신 형민이 말한 대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주위에는 식탁만 있을 뿐,
아무런 가구도 보이지 않았다.
집이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이사 올 때 아무 것도 안 가져왔나 보네?”
“응. 거추장스러워서.”
신 형민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신 형민이 집 앞에 나와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이 마음에 걸렸던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신 형민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 아까 왜 집 앞에 나와 있던 거였어?
더군다나 따뜻한 날씨도 아닌데.”
내 말에 나를 한번 보더니,
이내 컵을 들고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더니 김이 올라오는 컵을 내 앞에 놔주고,
자신 또한 내 앞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여자가 들어가는 것 같아 보여서.
분명 또 안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 생각했지.
그렇다고 너한테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너희 집인데 내 말은 당연히 안 들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숙인 채로,
차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그래도 나 생각해준다는 거에 있어서,
조금은 고마워.”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지,
조금이 뭐냐?”
나는 신 형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를 다 마시지도 않고 벌떡 일어났다.
“왜, 지금 들어가게?”
내가 벌떡 일어나자 위를 올려다보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앉아있는
신 형민에게 얘기했다.
“가자!”
“어딜. 그리고 갑자기 왜 그렇게 씩씩해졌냐?”
“가구 사러가야지.
가구 아니더라도 장식할 거라도.
예쁜 걸로 골라줄게.
방이 이게 뭐냐?”
“예쁜 거? 됐어.
남자가 사는 집인데 이러면 뭐 어때.”
“안 돼! 빨리 가자!”
나는 신 형민이 내 생각을 해준다는 점에서
고마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러 다니면
현재의 답답한 마음도 사라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법을 쓰면 우리 둘 다한테
좋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하고,
신 형민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신 형민이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는데도
극구사양하면서 먼 시내까지 걸어 나갔다.
그리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나를 툭툭 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잘못 쳤겠지,
싶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만히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는데.......
그 순간, 눈에 들어온 사람은, 연지였다.
“어?
네, 네가 여기 어쩐 일이야?”
“나 시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근데 전학 갔다더니, 뭐야.
너희 둘이 몰래 만나고 있었던 거야?
그 다음에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듯이
쓸쓸하게 얘기해놓고.”
“뭐?!그런 거 아니야!”
나는 연지의 거침없는 말에 연지 입을
내 손으로 막으면서 신 형민을 봤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는데,
신 형민은 야비하게 입 꼬리를 올리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때, 연지는 더 할 말이 남았는지,
자신의 입을 덮고 있는 내 손을
자신의 손으로 떼어내고 우리 둘을
번갈아보면서 얘기했다.
“근데 둘이 사귀는 거야?
왜 그렇게 다정하게 있는 거야?”
나는 그 말에 얼굴이 빨개져서 절대 아니라는 식으로
손을 크게 흔들었다.
그 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신 형민.
그러더니 신 형민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신 형민의 행동에 연지를 말리다가,
시선을 돌려 신 형민을 바라봤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같이
우리 집에 필요한 물건들 사러 나왔어.”
“........뭐? 너희 집에 필요한 물건?”
연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연지의 넋 나간 표정에 연지 얼굴 앞에 대고
내 손을 여러 번 흔들어 보기도 하고,
이름을 여러 번 불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넋 나간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연지.
한동안 연지는 그 상태로 서 있다가,
이내 나를 보면서 진지하게 얘기한다.
“너, 너희 둘이 그럼........
살림 차린 거야?”
‘살림’이라는 단어에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연지의 엉뚱한 말에 신 형민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돌려 연지를 보면서 소리쳤다.
“아니야! 그냥 옆........”
옆집에 산다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
입 사이를 풀로 붙여놓은 것처럼 입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
“뭐?”
“어쨌든 아니야!
.......그건 그렇고 오늘은 이거 고르느라 정신없어서,
나중에 다시 설명해줄게.”
내 말에 연지는 가기 싫은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표정과 달리 고개는 끄덕이고 있었다.
그 후로 연지가 다른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신 형민과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걸어 다녔다.
처음에는 신 형민이 ‘뭘 이렇게 많이 사냐’는 식의
핀잔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신 형민도 지쳐 갔는지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그저 따라오면서
내가 산 물건들을 받기만 할 뿐이었다.
“지치지도 않냐?”
열심히 물건들을 고르고 있을 때,
한숨 섞인 신 형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신 형민은 한 걸음도 못 움직이겠다는 듯이
그대로 맨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주위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신 형민을 바라봐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는 신 형민의 행동에 내 얼굴을 가리면서
신 형민을 일으키려고, 신 형민 앞에 다가갔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봉투 여러 개를 내려놓는 신 형민.
“이게 다 네가 고른 물건이야.”
나는 수많은 봉투를 보자,
그제야 이미 많은 물건들을 샀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힘들어하는 신 형민에게 가자는 말과 동시에
일어나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 무거운 짐들을 거뜬히 들면서 바로 일어나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행동이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쇼핑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아직도 다른 물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억지로 걸어갔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집에는 늦은 시간이 돼서야 도착했다.
나는 오늘 산 물건들을 정리해주기 위해
바로 신 형민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심상치 않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뒤쪽으로 조금씩 고개를 돌렸는데.......
엄마가 양손에 꽉 찬 비닐봉지를 든 채,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리야?
........어? 옆집 총각이네?
둘이 왜 그 집에 같이 들어가?”
엄마는 이상한 듯이 나에게 물으면서 점점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번에 신 형민과 내 사이를 엄마가 오해해서,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집에 같이 들어가는
나와 신 형민의 사이를 완전히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 형민을 억지로 뒤돌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신 형민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내 몸으로 막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가뿐하게 밀쳐내고,
뒤에 있는 신 형민에게 다가간다.
“총각, 떡 잘 먹었어요.”
떡 가져다 줄 때, 그렇게 잡상인이라고 얘기했는데........
통하지 않았구나.
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신 형민의 얼굴이
엄마에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한번 신 형민의 앞을 내 몸으로 막으려고 했다.
그 순간, 또다시 나를 밀치는 힘이 느껴지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내 옆을 누군가가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그 순간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엄마가 나를 밀치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신 형민이
엄마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신 형민은 엄마 앞으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한다.
그러자 엄마는 신 형민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연다.
“어? 이 학생........
아리 네 남자친구 맞지?”
#.077
나는 손과 얼굴 둘 다 사용하면서 강력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내 행동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엄마는 자신의 앞에 있는 신 형민을 데리고
무작정 우리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나는 혹시라도 연호가 방에서 나와,
신 형민을 보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빠른 속도로 신 형민의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곳저곳을 아무리 둘러봐도 연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아프다던 애가.
그래도 현재로서는 연호가 없다는 게
이내 안심이 돼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요.”
엄마는 들뜬 듯이 신나게 얘기하면서
주방으로 걸어간다.
내가 남자친구 생겼다는게
왜 엄마가 기뻐해야할 일이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신 형민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신 형민은 갑자기 의자에 앉으려는 듯 보이더니
다시 일어나서 엄마에게 얘기한다.
“방 구경해도 될까요?”
“그래요. 방 구경해요.”
엄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걸음을 내 방 쪽으로 돌리는 신 형민.
신 형민이 점점 내 방 쪽으로 걸어가자,
나는 빠른 속도로 달려가서 문 앞을 가로막았다.
“그냥 얌전히 있는 게 좋을 텐데?”
내가 이를 악물면서 얘기하자,
신 형민은 정색하면서 싫다는 듯이 고개를 양옆으로 흔든다.
그러더니 그대로 문을 열고 내 방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신 형민을 향해 소리치면서
나 또한 신 형민의 뒤를 따라서 내 방으로 들어갔는데........
내 방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너 여자애가 네 방 정리도 안 하고 살아?”
“여자마다 다른 거지, 다 깨끗하게 해놓고 살지는 않아!”
나는 신 형민의 말에 당당하게 따졌다.
그 순간, 뒤에서 빠르게 걸어와, 내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
그러더니 엄마는 내 방에 널려있는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리 방에 잠시 물건 갖다놓는다는 게
깜빡 정신 놨네.”
마치 자신의 물건들을 내 방에 놓아뒀던 것처럼 얘기하는 엄마.
나는 이해 못할 엄마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없이 바라봤다.
그 때, 신 형민은 방향을 틀어,
내 방에서 나가더니 이번에는
연호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자, 잠깐 거기는.......”
나는 연호 방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연호 방 문 앞으로 달려가, 그 앞을 막아섰다.
“여기는 절대 안 돼!”
연호 방 앞을 막아서면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순간.......
밖에서 문을 열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가 들려오자, 순간 멈칫했다.
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제 서야 사태파악을 한 나는
무작정 연호 방 안으로 신 형민을 밀고 들어갔다.
“여기는 안 된다면서.”
“그냥 조용히 들어가 있어!”
나는 협박하듯이 신 형민에게 얘기한 뒤,
방 주위를 둘러봤다.
그 때, 눈에 들어온 장롱.
나는 장롱이 보이자마자 그쪽으로 신 형민을 끌고 가,
억지로 장롱 안에 들어가게 했다.
“진짜 조용히 하고 있어!”
신 형민의 입모양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신 형민의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장롱 문을 닫아버렸다.
그와 동시에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연호.
“네가 내 방에 왜 있어?”
“나, 난 네 방 들어오면 안 돼?!”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연호가 보이자,
놀란 나머지 크게 소리쳤다.
내 행동에 이상한 듯이 바라보는 연호.
“내 방에 뭐 감춰놓기라도 했어?
왜 그렇게 놀라?”
연호의 말에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자리에서 장롱을 바라보면서 몇 초간을 움직이지 못하다가,
이대로 가다가는 신 형민이 장롱에 있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실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망치듯이 연호 방을 나오려고 했다.
“잠깐만!”
뒤에서 들리는 연호의 목소리.
나는 연호의 목소리에 갑자기 온몸이 뻣뻣해진 것처럼,
한 발을 앞으로 내딛은 채로 멈춰있었다.
그 때, 연호가 뒤에서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나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나는 고개를 숙여, 연호가 건넨 물건을 확인하는데.......
내가 연호 문 앞에 떨어뜨렸던 약통이었다.
“이거 네가 떨어뜨린 거야?”
“아, 아니! 내가 떨어뜨린 거 아니야, 하하. 누가 그랬지?”
그 말과 동시에 연호가 들고 있던 약통을 빼앗았다.
그러자 약통을 보면서 얘기하는 연호.
“난 또. 네가 사온 줄 알았지.”
연호의 말에 몸이 움찔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아리야, 네 남자친구 어디 갔니?”
“남자친구?”
‘남자친구’라는 말에 이상한 듯이 나를 보는 연호.
엄마의 갑작스런 말에 당황한 나는 연호보다 더 뒤로 물러나,
연호 뒤에서 신 형민 얘기 하지 말라는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내 행동의 의미를 모르는 엄마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찾고 있었다.
“다시 옆집으로 갔나?”
“옆집?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엄마 무슨 옆집이야?”
나는 엄마가 잘못 말하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했다.
그리고 장롱을 바라보면서,
이대로 있다가는 신 형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로 연호를 연호 방 밖으로 등 떠밀었다.
“연호야, 배고프지 않아? 내가 뭐 만들어줄까? 하하.”
“뭐? 갑자기 웬 자상한 척이야.”
연호는 이런 내가 이상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얘기했다.
연호의 거부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신 형민이 문을 열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호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여러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려고 하는데,
옆에서 엄마는 아직도 인상을 찌푸리면서 생각 중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 입에서 신 형민 얘기가 나와서는 안 되는데.......
바로 엄마의 입에서 신 형민의 얘기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돌려보냈다는 식으로 얘기하려는 순간,
연호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잠바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밖으로 뛰쳐나가는 남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야, 거기 안 서?!”
그 때, 도망치는 사람을 보면서
큰 소리와 함께 달려 나가려는 연호.
나는 연호가 달려 나가려고 하자,
그 남자의 정체가 신 형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못 나가게 막으려고 하다가,
급한 마음에 연호를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됐어!
분명 네, 네 방에서 훔쳐간 물건 하나도 없을 거야.”
내 말에 아무 반응 없이 멈춰 있는 연호.
그리고 조용해진 주위 분위기.
나는 갑자기 조용해진 주위분위기에 앞을 봤다.
그 순간, 연호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내 팔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놀라서 연호의 허리에서 내 팔을 떼어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팔을 꽉 잡는 연호.
연호의 행동에 불안한 눈빛으로
내 팔과 엄마를 번갈아보고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내 팔을 놔준다.
“계속 내 팔 잡고 있고. 하하.
혹시 배 아파서 그래? 아니면 허리?”
나는 엄마가 앞에서 보고 있어 당황스러운 나머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하지만 내 말에는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연호.
그 순간, 나에게 얘기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옆집 총각도 괜찮으면
같이 밥 한번 먹자고 그래라.”
나는 그 말에 순간 멈칫하다가, 연호를 보는데.......
연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방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아무 의심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옆집에 신 형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완전히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엄마를 째려봤다.
“엄마, 연호 앞에서 옆집 얘기는 하지 마!”
“왜, 우리 집에 인사까지 하러 왔으니까,
연호까지 알고 지내면 좋잖아.”
나는 엄마의 말에도 긍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끝까지 연호한테는 비밀로 하라는
경고 비슷한 말들을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갔다.
설마 연호가 옆집에 누가 사는지에 대해서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머릿속에 무언가가 꽉 들어차 있는 느낌이 들어서,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한참 동안을 그것에 대한 걱정만 한 채,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그 후로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누군가가 나를 거칠게 깨우기 시작했다.
나는 잠결에 아무 말이나 내뱉다가,
그때 들리는 엄마의 한 마디에 눈이 번쩍 떠졌다.
“8시다.”
나는 눈을 뜨면서,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는 소리치면서 옆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는데.......
아직 7시였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밖에 친구 와있어.”
‘친구’라는 말에 눈을 비비면서 밖으로 나가자,
연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닦고 나와.”
부지런도 하네.
나는 눈을 비비면서 화장실로 걸어가려는데,
그때 연호 또한 일어났는지 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맞아. 아리야.”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할 말이 있는지 나를 부르는 연지.
나는 연지의 목소리에 가려던 발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어제 신 형민이랑 산 물건들은 잘 나뒀어?”
신 형민이란 소리가 들리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희 둘이 살림이라도 차릴 것처럼
집에 필요한 용품들 다 사갔잖아.”
나는 저절로 연호의 눈치를 보게 됐는데.......
연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078
연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던 나는,
연지를 밖으로 밀어내듯이 행동하면서 얘기했다.
“너 먼저 학교 가.
나 다 준비하려면 시간 한참 걸리니까.”
내가 이렇게 얘기하자,
연지는 무슨 할 말이 더 남은 건지,
입을 벙긋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연지를 보면서 이를 악 문 채로,
눈빛으로 경고를 보냈다.
그러자 알아서 밖으로 나가는 연지.
나는 연지가 나가자마자 손을 흔들면서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연호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새 다른 쪽으로 걸어갔는지,
연호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면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학교에 가야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학교’라는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시간을 확인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교복을 입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이곳저곳을 닦은 후에 밖으로 나왔다.
“다녀올게요.
엄마, 근데 연호는?”
마침 엄마가 주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이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엄마에게 얘기했다.
“방금 나간 것 같은데.”
“진짜? 알았어. 나 갔다 올게.”
내가 닦고 있는 사이의 시간이 그렇게 길었나?
먼저 갔다는 배신감에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학교가 있는 쪽으로 돌진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와서 그런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몇 분도 안 돼서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꾸깃꾸깃한 휴지를 꺼내서
옆으로 흐르는 땀을 닦은 뒤,
교실이 있는 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교실 앞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주위 학생들이 복도 맨 끝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속닥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주위 학생들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복도 맨 끝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복도 맨 끝에 서있는
연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연호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마지막에 나를 바라본 연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서,
다시한번 얘기해보기 위해 연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연호 앞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연호에게 가려져있던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자는 이 주희였다.
나는 이 주희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등을 돌려
다시 반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 때, 내 얼굴을 본 건지 이 주희와 얘기하다 말고
내 쪽으로 걸어오는 연호.
나는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놀라면서 얼굴을 가린 채,
반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연호의 발이 더 빨랐던 건지,
반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연호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잠깐 얘기 좀 해.”
“무슨 얘기? 여기서 하지. 하하.”
주위의 학생들이 다 보고 있는 복도에서
연호가 내 팔을 붙잡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손을 놔주면서 미소 짓는 연호.
“그래?
네가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다 하니까 할 수 없지.........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수, 숨기는 거?”
‘숨기는’이라는 단어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내가 잘못이라도 한 것만 같은 생각에
말을 더듬으면서 얘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니라고 부정하듯이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러자 미소를 지으면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연호.
연호의 미소가 왜 이렇게 불안하게 느껴지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없이 연호를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려 반으로 들어가려는데........
들어가기 직전에 이 주희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전 상황들 때문에 이 주희를 보는 것이 어색했지만,
어쨌든 이 주희를 보면서 미소 지은 채,
손을 흔들려고 했는데........
이 주희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 주희가 나를 보고 있지 않자,
민망한 나머지 조금씩 손을 내렸다.
그런 다음, 몸을 돌려 반으로 들어갔다.
반으로 들어가자마자 내 앞으로 몰려드는 여학생들.
“요새 연호랑 이 주희 같이 다니는 모습 많이 보이던데,
현재 둘이 사귀고 있어?”
“너는 누나니까 알 거 아니야!”
나에게 협박하듯이
강하게 몰아붙이면서 얘기하는 여학생들.
“나, 나는 연호랑 그렇게 안 친해서 잘 몰라. 하하.”
“잘 몰라? 아까 연호가 네 팔 잡고 가는 것만 봐도 친한 것 같던데.”
“나는 진짜 몰라!”
여학생들이 내 뒤를 쫓아오듯이 행동하면서
끊임없이 연호에 대한 질문들을 하자,
악착같이 버티던 나는 반 밖으로 도망치듯이 나왔다.
그런 다음, 교무실에 들려서 아프다는 핑계를 댄 뒤,
학교가 끝날 때까지 여학생들의 눈을 피해 다녀야 했다.
다행이 처음에만 나에게 질문을 했을 뿐,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반에 들어왔을 때는
이 주희와 연호 사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지 않는 여학생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가방을 챙겨
반을 나가려고 했다.
그 때, 화장실이 급하다는 신호가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나는 집으로 가기 전에 화장실부터 먼저 들려야겠다는 생각에,
방향을 틀어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화장실 앞에 도착했을 때,
화장실 문이 잠긴 채 청소 중이라는 표지판이
화장실 문 가운데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서 있다가
안에서 청소하고 있는 학생에게 부탁하면,
그래도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그 순간, 두드리려는 내 손을 멈추게 하는 목소리.
“연호 옆에 계속 붙어있는 이유가 뭔데?”
“혹시 아직도 감정이 남아서 그래?”
여러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계속 붙어있어?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 말뜻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 순간, 연호와 이 주희가 같이 얘기를 하고 있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후에 학생들이 나에게 몰려들어 연호와
이 주희에 대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늘어놨던 장면들도 떠올랐다.
그 전에 있던 일들이 떠오르자,
안에서 여학생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사람은
이 주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생각이 들자,
바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는데,
그 때 나를 밀치고 순식간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
나는 놀라서 밀친 상태 그대로 벽에 기대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 안쪽을 들여다보는데........
이 주희의 팔을 잡고 있는 연호가 눈에 들어왔다.
“한심하게 단체로 몰려와서,
한 학생한테 해코지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줄 알아?”
".........."
이 주희를 둘러싸고 있던 여학생들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때, 연호의 옆에 서있던 이 주희가 괜찮다면서
나가자는 듯이 연호의 팔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연호는 그 자리에 서서 인상을 찌푸린 채
더 할 말이 남은 건지, 입을 벙긋거리려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 주희가 연호 팔을 잡아당기자
그 여자들을 한참 동안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나는 이 주희가 밖으로 나오려는 모습이 보이자,
어떻게든 얼굴을 숨기기 위해, 등을 돌린 채로 서있었다.
“뭐해?”
그 때, 옆에서 들리는 이 주희의 목소리.
이 주희는 이미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는 걸 알았는지, 얼굴을 들이밀면서 얘기했다.
나는 이 주희가 나라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얘기하자,
그제 서야 어색하게 웃으면서 뒤돌았다.
“하하. 화장실에 있었던 사람이
주희 너였어?”
내 말에 한심하게 나를 바라보는 연호.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연호의 시선을 피했는데.......
그 때, 이 주희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팔짱을 낀다.
“집에 같이 가자. 연호도 그렇고 아리 너한테도 고마워서, 내가.......”
“됐어, 그냥 각자 집에 가면 되지.”
의외로 무뚝뚝하게 반응하는 연호.
연호는 그 말과 동시에 내 쪽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나는 그 순간, 이 주희의 얼굴을 살폈는데,
얼굴이 시무룩해져 있었다.
이 주희의 표정에 고개를 돌려 연호에게 얘기했다.
“그럼 너 혼자 가. 나는 주희랑 얘기하다 들어갈 테니까.”
“뭐?”
내 말에 무언가를 한참 동안 생각하는 연호.
그러더니 마지막에 일찍 오라는 경고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져버린다.
일찍 오라니? 도대체 왜 그러지?
같이 가자면서 안 하던 행동을 하지 않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연호가 사라진 쪽을 바라봤다.
그 때, 옆에서 들려오는 이 주희의 나지막한 목소리.
“형제끼리 많이 다투기도 할 텐데.”
“응?”
“아, 그냥. 친해 보여서 좋다고.”
그 말과 동시에
미소 짓는 이 주희.
나는 그 후로 이 주희의 집과
내 집의 방향이 같은 쪽까지 걸어간 뒤 헤어졌다.
그리고 집이 있는 쪽으로 향하려는데.......
다시 뒤에서 이 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야!”
이 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이 주희는 할 말이 남은 듯이 급하게 나에게 달려와,
바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 사실은.......도와줄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얘기하는 건데.......”
“뭔데?”
“지금 연호 많이 좋아하고 있거든........
그래서 네가 연호 누나니까,
연호랑 나랑 더 친해질 수 있게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나는 이 주희의 말이 들리자마자,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이 주희만 바라봤다.
이 주희는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주희의 눈빛을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리고야 말았다.
그러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를 꽉 껴안는 이 주희.
이 주희의 품에 안기는 순간,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그 후로 이 주희와 헤어지고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데.......
연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호는 내가 오자마자 어딘가로 걸어간다.
연호가 걸어간 곳에는 오토바이 한 대가 놓여있었다.
연호는 오토바이를 보라는 듯이, 오토바이를 툭툭 친다.
그러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오토바이를 가리키면서 얘기한다.
“저 오토바이, 신 형민 오토바이 맞지?
........그리고 오토바이 주인인
신 형민도 이 근처에 살고 있고.”
#.079
연호의 말에 오토바이를 이곳에 놔둔
신 형민이 원망스러워졌다.
나는 오토바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아무 말 못하는 내 행동에, 즐기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얘기를 꺼내는 연호.
“네가 산 용품들 다 어디 있어?”
정곡을 찌르는 연호의 말.
연호의 말과 함께, 연지가 눈치 없이
연호 앞에서 얘기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너희 둘이 살림이라도 차릴 것처럼
집에 필요한 용품들 다 사갔잖아.’
연지가 얘기했을 때부터 눈치 챈 건가.
나는 처음에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아무 말이나 연호에게 툭 내뱉었다.
“아, 맞아! 나 궁금했었는데.......
지, 지금 이 주희랑 같이 다니는 모습 많이 보이던데.
잘 돼가고 있나 하고. 하하.”
하필 내가 왜 그 얘길 꺼냈지.
나는 그 말을 한 다음에 바로 후회했다.
고개를 푹 숙이면서 눈을 질끈 감았는데........
그때, 내 코앞까지 다가온 연호.
“그게 궁금해?”
“어, 어?........응.”
의도하지 않았던 내용이었지만 막상 이 얘기로 넘어오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그리고 연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때,
연호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연다.
“실망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단계 아니야.
만약 네가 그런 단계이길 원하면
네 뜻대로 그렇게 되게 해줄게.”
한 쪽 입 꼬리를 올린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연호.
나는 내 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연호의 눈빛을 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옆쪽에서 조금씩 강한 바람이 내 몸을 덮쳐왔다.
가만히 서있던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이 상황에서 먼저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이 자리에 계속 떨고 있어야 하는 건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내 앞에 와있는 연호의 팔이 보였다.
그리고 내 몸에 걸쳐진 연호의 코트가 보였다.
“아, 아니, 코트 괜찮은데........
너도 춥잖아. 그리고 집도 코앞에 있으니까.”
나는 그 말과 동시에 연호의 코트가 마음에 걸렸던 나머지,
다시 연호에게 코트를 벗어 건네주려고 했다.
그러자 코트를 받지는 않고, 코트를 내려다보는 연호.
그러면서 연호는 나에게 무슨 말을 내뱉으려고 했다.
나 또한 진지한 표정으로 연호를 바라봤는데.......
그 때, 또한번 강풍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풍이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또다시 온몸이 떨려왔다.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연호는 내 몸에 다시 코트를 걸쳐줬다.
그 순간, 옆쪽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나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옆집을 바라봤다.
제발 아니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내 기도는 통하지 않았는지,
이내 옆집에서 나오는 신 형민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온몸이 뻣뻣해진 상태로 옆집에서 나오는
신 형민을 보고 있다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연호 손에 잡혀버렸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미소 지으면서 강력하게 얘기하는 연호.
무표정보다 미소 짓는 가식적인 연호의 모습이 더 두려웠다.
나는 연호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짝 시선을 돌려 신 형민을 노려봤다.
신 형민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숨을 쉬더니,
이내 연호 쪽을 바라본다.
“나 며칠 전부터 이 집에서 살기로 했어.
근데, 그것까지 네 허락 맡아야 되냐?”
“그럴 필요는 없는데,
뒤에 꿍꿍이가 있을까 봐 그렇지.
그게 네 주특기잖아. 안 그래?”
그 말과 동시에 미소 짓는 연호.
연호와 신 형민의 눈빛에서 레이저가 뿜어 나올 정도로,
둘은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야, 추운데 왜 밖에 나와 있어?
어? 연호도 있었네?”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정지 된 것처럼,
동작을 모두 멈추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내 앞으로 걸어오는 엄마.
그러더니 나를 스쳐지나가,
신 형민에게로 걸어간다.
“옆집 총각도 있었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엄마는 우리를 두리번거리면서 얘기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아래로 숙였는데.......
그 때, 엄마가 무언가를 봉지에 잔뜩 사들고 온 게 보였다.
“일단 추우니까, 우리 집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요.
그리고 저녁에 고기 먹으려고 많이 사왔으니까,
같이 먹어요.”
하필 이럴 때 엄마가 올 게 뭐람.
나는 한숨을 푹 내쉰 채, 신 형민을 바라봤다.
신 형민은 의외로 엄마의 말에 따라 반응하지 않았다.
단지 엄마가 문을 열어, 신 형민을 데리고 들어갈 뿐이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신 형민을 친 아들처럼 대해주는
엄마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연호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다행이도 몇 분이 지나고서야
집 안으로 들어온 연호.
집에 들어온 연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들어간 연호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이내 뒤 따라서 연호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주방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야, 고기 좀 굽고 있어.”
엄마의 목소리에 연호 방으로 가려다 말고,
방향을 틀어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엄마를 대신해서 고기를 굽고 있을 때,
엄마는 주방 밖을 나간다.
그 때, 조용히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던
신 형민이 몸을 일으켜 내 옆으로 걸어온다.
“너희 어머니 행동을 보니 금방 눈치 챌 수 있겠는데?”
“뭐?”
“너랑 연호, 다른 사람한테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행동한 적 있어?”
“.......”
“네 어머니 행동 보니까 딱 답이 나오는데.......
네 어머니 뜻대로 한번 해볼까?”
그 말과 동시에 미소를 짓는 신 형민.
신 형민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신 형민의 미소에서부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애써 그 말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시선을 외면한 채, 고기만 열심히 굽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봉지에 들어있던 고기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때쯤 엄마와, 귀찮은 표정으로
억지로 끌려오는 연호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앉아.”
연호는 엄마의 말에 따라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옆에는 연호가,
그리고 내 옆에는 신 형민이 앉았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이쪽저쪽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 접시 쪽으로 누군가의
젓가락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내 앞에 있는 접시 위에 고기 몇 점을 놓아준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데........
내 접시에 고기를 올려놔 준 사람은 신 형민이었다.
나는 어색한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신 형민을 말없이 째려봤다.
하지만 내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 신 형민.
그 때, 연호는 전화가 온 건지
휴대폰 액정화면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 나 다른 쪽으로 걸어가서
전화를 받는다.
“무슨 중요한 전화라고 온 건가?”
“아, 연호. 현재 같이 다니는 여자가 있는데,
아마 그 여자랑 통화하는 걸 거예요.”
그 말과 동시에 미소 짓는 신 형민.
‘같이 다니는 여자’라는 말에 엄마는 놀란 듯이,
나를 보면서 얘기했다.
“여, 여자?
여자 친구랑 같이 다니는 건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전혀 여자 친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는데.......
여자 친구 있는 게 확실해요?”
신 형민을 보면서 자세히 물어보는 엄마.
나는 갑작스런 신 형민의 말에 놀라서
신 형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때, 전화통화를 마친 건지,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연호.
연호는 주방에 들어오자마자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우리를 두리번거리면서 얘기했다.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얘기 했어?”
“어, 어? 아니!”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양옆으로
격렬하게 흔들면서 얘기했다.
그 때, 엄마가 연호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면서 얘기했다.
“연호야, 너 여자 친구 생겼니?”
‘여자 친구’라는 말에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를 노려보는 연호.
아마도 내가 말했겠거니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연호의 시선을 피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내가 물어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인
연호의 태도에 놀란 나는, 잠시 멈칫해있었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신 형민.
신 형민 또한 연호의 대답에 놀랐다는 듯이
연호를 한번 보더니,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본다.
“그래?
안 그래도 요번에 여행 가려고 했었는데,
다 같이 가면 좋겠구나.”
‘여행’이라는 말에 나는 멍하니 엄마를 바라봤다.
하지만 엄마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신 형민과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따져보려고도 했으나,
엄마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신 형민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신 형민에 대한 관심 때문에,
내가 방에 들어가도 신경 쓰지 않는 엄마.
결국 나는 신 형민이 언제 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됐을 때,
나는 일어나자마자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앉아서 신발을 신으려 할 때,
연호는 이미 나간 건지 연호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연호가 먼저 갔다는 생각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면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내가 버스정류장 코앞에 도달했을 때,
매정하게 출발하는 버스.
나는 버스가 떠난 자리를 보면서 방방 뛰다가,
결국은 학교까지 뛰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몇 십 분 동안을 뛰다보니,
저절로 땀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힘들게 학교 앞까지 도착한 나는
교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밖에서 옆모습을 보인 채 서있는
이 주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어제 일 때문인지 지금은
이 주희와 직접 대면하기 싫었기에,
얼굴을 책가방으로 가린 채 조심스럽게
교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순간, 이 주희의 몸이 살짝 옆으로 비껴가면서
이 주희의 몸에 가려져 안 보이던 연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연호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마음은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발걸음은 저절로 연호와 이 주희가 서있는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해 멈춰 섰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그 둘이 하는 행동을 몰래 숨어서 지켜봤다.
그와 동시에 들리는 연호의 목소리.
“이 주희, 다시 사귀자.”
#.080
'이 주희, 다시 사귀자.'
아직도 연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연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등을 돌려 교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연호는 남들 눈은 신경 쓰이지 않는지,
이 주희와 같이 다녔다.
학교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저런 행동을 하니,
말 못하고 속 터지는 여자들은 나에게 전부 와서 항의를 했다.
"아, 아리야? 하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요새 이 주희랑 연호랑........"
"설마 사귀는 거야?!엄청 다정해 보이던데!"
나는 나에게만 찾아와 몇 번이고 항의하는
여자들 때문에 골치를 섞어야 했다.
나는 여자애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싫었던 나머지,
귀를 틀어막았다.
그 때, 연지 자리까지 밀치면서 나에게 파고드는 여자들.
"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듯이 크게 소리쳤다.
주위에 몰려있던 애들은 순간 놀랐는지,
나에게서 멀어진다.
"걔가 누구랑 사귀든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야!
안 그래도 머리 터져 죽겠는데!
그렇게 다가가고 싶으면 네들이 먼저 말 걸면 되지!
나도 걔 누나라고 해도 그런 부탁은 못 들어주고,
내 쪽에서도 사절이야!"
나는 속 시원하게 속에 있는 내 생각들을 모조리 꺼내,
앞에 있는 여자들에게 날려주었다.
여자들은 내 행동에 당황했는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처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도 조용해진 상황.
그 때, 왠지 모르는 서러움에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여자애들은 내 이런 행동이 당황스러웠는지
조금씩 뒤로 물러나, 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미, 미안.
앞으로는 연호에 대해 이런 부탁 하지 않을게......."
여자들은 한 층 기가 꺾인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는 여자들의 말에 눈물을 훔치면서
그대로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똑똑'
그 때, 들리는 노크소리.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쪽을
노려보듯이 봤다.
그와 동시에 문 옆에 기댄 채로 서있는 사람이 보였다.
신 형민이었다.
그것도 다른 교복을 입은 채로.
신 형민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흰 봉투를 흔들면서 미소 지었다.
신 형민이 보이자마자 여기저기에서는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전학 갔다 하지 않았어?"
나는 또 시작되는 여자애들의 쓸데없는 관심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나머지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문 앞에 서있는 신 형민을 끌고,
인적이 드문 뒤 운동장까지 걸어갔다.
신 형민은 뒤 운동장 쪽에 있는
벤치의자에 여유 있게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뭐야,
전학 갔다더니 교복 보니까,
이 근처 학교인가 보네."
나는 투덜대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러자 나를 보더니 몸을 일으키는 신 형민.
"단지 이 학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학 간 거야."
그 말과 동시에 벤치 의자 옆에 있는
자판기 쪽으로 걸음을 돌린다.
그러더니 신 형민은 자판기에 동전 몇 개를 넣더니,
커피 두 잔을 뽑아 나에게도 건넨다.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앉아.
보는 내가 더 불안하다."
나는 신 형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벤치의자에 앉아,
신 형민에게 물었다.
"그, 근데 너도 학교 가야 할 텐데,
왜 왔어?"
"너희 어머니께서 네가 칠칠맞게 준비물 빠뜨리고 갔다 길래.
불쌍해서 갖다 주려고 왔지........
근데 학생들 말 들어보니 이 주희랑 연호,
사이가 발전했나 보지?"
"뭐?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 아리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요새 이 주희랑 연호랑.
이 소리가 들렸거든."
표정 연기까지 실감나게 하면서
나에게 얘기하는 신 형민.
나는 무표정으로 얘기했다.
"뭐, 뭐야.
그, 그럼 처음부터 다 보고 있던 거야?"
"그래, 들어가려고 해도 네 주위에 애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서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그 말과 동시에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까지 들이밀면서
나를 살펴보는 신 형민.
"그나저나 아직도 눈이 빨간데,
보나마나 그 이유는 연호 때문?"
"아니! 그럴 리가 있어! 걔가 무슨.........
그냥 애들이 너무 강하게 나오니까
좀 겁도 나고 짜증났을 뿐이야."
나는 그 말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앞에 있는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순간, 나를 보며 놀라는 신 형민.
"야, 야. 너, 너 사이코 아니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후에야
목이 타들어가는 걸 느꼈다.
나는 목이 타들어가는 걸 느끼자,
펄쩍펄쩍 뛰면서 괴로워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멀리 떨어진 수돗가까지
단숨에 달려가서 물을 들이마셨다.
물을 마시다 말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수돗가에서 세수를 했다.
"야, 목이 뜨거운데, 세수는 왜 해."
"됐어, 너는 전달해줬으면, 네 학교나 가."
"너무 매정하게 대하는 거 아니야?
일부러 네 준비물 가져다주려고
여기까지 온 사람한테?"
"누가 준비물 같은 거 가져다달랬어?!"
나는 씩씩거리면서 신 형민에게 더 화내려고 했지만,
그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면서 조금씩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나도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눈물을 왜 흘리는지 몰랐다.
여자애들이 나를 압박해서일까,
아니면 연호가 이 주희에게 직접 고백하는 장면을 봐서일까.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등을 돌리려고 했다.
그 순간, 뒤에서 내 손을 꽉 잡는 신 형민.
그러더니 나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겨,
나를 꽉 안아준다.
잠시 동안의 정적.
나는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곳에서 한참 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를 놔주면서 자신의 옷을 바라보는 신 형민.
"야, 뭘 그렇게 서러웠으면
내 옷을 다 적시냐?"
나는 신 형민의 말에 헛기침을 하면서,
'잘 가'라는 인사 정도는 해줄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이 어색했던 나머지
그대로 다른 쪽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뒤에서는 짜증 섞인 목소리나,
나를 쫓아오는 발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한 시간, 한 시간을 수업만 듣고
계속 반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니
점점 기운이 빠지고 눈이 풀려왔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로 책상에 기대어 있었는데.......
어느 새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에 빠져 있다가, 벌떡 일어났는데........
모든 학생들은 그새 책가방을 챙기고 다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옆에는 연지가
가방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깨우려고 했는데.
학교 끝났어. 가자."
나를 일으키며 말하는 연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일어났다.
"학교 끝나면 거의 같이 가자고 주희가 찾아왔었는데.
이제 남자친구 생겼다고 그러지도 않네?"
연지는 복도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얘기했다.
나 또한 연지의 말에 복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복도는 텅 비어있고, 가끔씩 우리 반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복도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연지가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방을 챙겼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쉬는 날이 되었다.
엄마는 여행갈 준비에 분주해있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면서 김밥이나
먹을거리를 챙기고 있었다.
새 아빠는 옆에서 챙겨갈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연호가 방에서 나왔다. 오랜만이었다.
최근 들어 연호는 밖에 나가 있거나
방에만 박혀 있어서 그런지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하긴. 내가 연호의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호가 나오자, 엄마는 짐들을 챙기라고 얘기했다.
엄마의 말에 연호는 자신의 짐들을 챙기면서,
나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엄마와 새 아빠 또한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나가기 전에, 나에게 말했다.
"옆집 총각한테도 미리 준비하라는 말 했었는데.
지금 나오라고 전해라."
".......네."
나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새 아빠, 그리고 연호는 밖으로 발걸음을 향했지만,
나는 옆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옆집 벨을 몇 번이고 눌렀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이 상황이 짜증나는데 대답까지 없자,
화가 났던 나는 그대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문이 열렸다.
나는 약간은 당황해하면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는데........
그와 동시에 신 형민이 윗옷은 입지 않은 채로,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야, 야! 얼른 옷 입어!
지금 떠난다는데! 말 못 들었어?!"
나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얘기했다.
그러자 내가 돌린 쪽으로 다가와서
옷을 보여주는 신 형민.
"이 옷이랑 이 옷,
뭐가 더 어울리냐?"
나에게 두 옷을 내밀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됐어!
아무 거나 입어!"
나는 신 형민의 행동이 당황스럽고도
화가 났던 나머지,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아무 옷이나,
까치발을 들어 신 형민의 목에 끼어줬다.
나는 신 형민의 엄마가 된 것처럼
신 형민의 옷도 입혀주고, 가져갈 물건들도 일일이 챙겨줬다.
다 준비가 끝나고, 나는 신 형민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 때, 앞에 대기해있던 차에 타려는 연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 멈칫했는데........
옆쪽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미, 미안. 늦었지?"
헉헉거리면서 연호 앞에 도착해,
연호 팔을 잡은 채로 얘기하는 이 주희.
"뭐해, 얼른 타."
그 때, 자신의 차인 마냥 먼저 타고 있는 신 형민의 모습이 보였다.
신 형민은 이쪽으로 오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차에 오르려는데,
그 때 이 주희와 눈이 마주쳤다.
이 주희와 눈이 마주치자
이 주희는 손을 흔들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요새 못 본 것 같아, 그치?"
이 주희는 반갑다는 듯이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놨다.
나는 억지미소를 지으면서 이 주희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을 때,
갑자기 뒤쪽에서 내 팔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좀 있음 떠난다니까,
일단 지금 자리에 앉아있어야 될 것 같은데?"
신 형민이었다.
신 형민은 이 주희와의 말을 끊은 채,
나를 차 안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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