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강둑을 걸어
현충일이 지난 유월 초순 금요일이다. 아침 식후 산책 동선 기점을 본포로 삼아 길을 나섰다. 현관 나선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 한 노인이 가꾸는 수국은 꽃이 피기 시작해 한동안 꽃 대궐을 이뤄줄 듯하다. 일흔 살은 넘어 보일 노인은 우리 집보다 늦게 이사 왔었다. 나와는 통성명한 사이는 아니라도 인사를 나누고 지낸다. 체력이 좋은 노인은 수년 전부터 수국꽃을 심어 가꿨다.
노인은 무슨 직종으로 생업에 종사하다 언제 은퇴했는지 몰라도 아직 정정한 기력으로 힘이 넘쳤다. 아파트 외벽과 이어진 허물어진 비탈에 돌멩이를 주워 와 축대를 쌓아 수국 묘목을 심었다. 새벽부터 거름을 주고 북돋우며 가지를 쳐주고 잡초를 제거했다. 열흘께 전부터 색상이 화려한 꽃이 피는데, 가뭄으로 시들려고 하자 물을 뿌려주느라 땀을 흘려 보살피는 정성이 대단하다.
입주민들의 움직임이 적은 이른 시각에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원이대로로 나갔다.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를 둘러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30번을 탔다.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났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봉강을 지날 즈음 승객은 거의 내리고 본포에서 내가 마지막 남은 손님이었다.
마을회관 앞 연 경작지는 연녹색 연잎을 둥글게 펼쳐 자랐다. 외딴집으로 떨어진 민물횟집을 지나 강둑으로 올라 본포 수변공원으로 내려서니 둔치에는 자동차를 몰아와 텐트를 쳐 밤을 보낸 야영객이 몇몇 보였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물길은 임해진 벼랑에서 방향을 틀어 명촌과 신천을 거쳐 학포에 이르렀다. 본포에서 학포로는 강심으로 본포교가 걸쳐 창녕 부곡으로 건넜다.
본포 수변공원 둔치의 자전거 길을 따라 걸으니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물억새 군락지와 수양버들이 가지를 드리웠다. 노란 금계국이 피었다가 저무는 강변 식생에는 이즈음에 개망초가 흔하게 피어났다. 꽃송이 한복판에 노란 꽃술이 모여 하얀 꽃잎을 펼친 개망초는 금계국과 마찬가지로 북미 원산 귀화식물인데, 우리 땅에 들어온 지 100여 년 만에 온 산천을 점령한 우점종이 되었다.
김해 한림으로 뚫은 국가 지원 60번 지방도 옥정교차로에서 마을 앞 들길을 걸었다. 옥정(玉井)은 강변 마을에 구슬처럼 맑은 샘물이 솟는 우물이 있어 붙여진 지명인데, 연전 폐가 담장과 경계를 이룬 공동 우물터를 확인한 바가 있다. 감자를 캐고 모내기를 마친 들녘에서 강둑으로 올라 다시 자전거 길 따라 수산 방향으로 걸었다. 둑길 언덕에는 삘기가 쇠어 허옇게 꽃이 피었다.
수산교 근처 정자에 올라 가져간 술빵과 커피를 간식으로 삼아 쉬었다. 가까이서 무슨 악기 소리가 들려와 둑길로 가니 팽나무 그늘에서 한 사내가 가요 ‘홀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3절까지 긴 가요 연주를 마친 사내에게 음악에 문외한 무식을 드러내면서도 무슨 악기인지 여쭈니 태평소라 했다. 어디서 국악을 연수받는데 잠시 틈을 내서 강변으로 나와 연습으로 불어본다고 했다.
제1 수산교에서 자전거 길을 따라 수산대교를 거쳐 대산 플라워랜드에 이르니 인부들이 땀 흘려 가꾼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한낮 볕살이 퍼져 다소 더운 감이 느껴져도 보모와 동행한 유아를 비롯해 탐방객이 더러 보였다. 파크골프장에는 동호인들이 운집해 여가를 즐겼다. 모산마을을 지나다 감자를 캔 빈 이랑에 뒹구는 못난이 감자를 주워 나와 추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국도변에서 아동안전지킴이 봉사활동 중 후투티 한 마리를 봤다. 조선 중기 가사 ‘누항사’에서는 ‘오디새’로 나왔다. “위도를 오르내려 찾아온 여름 철새 / 금실이 좋아 뵈던 후투티 암수 한 쌍 / 고목이 삭은 둥치에 알을 놓아 모았다 // 암컷이 둥지 지켜 포란에 집중할 때 / 수컷은 호위무사 주변을 맴돌면서 / 서로가 즐겨서 먹는 땅강아지 찾았다” ‘수컷 후투티’ 전문이다. 2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