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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
나는 신 형민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보이자,
시선이 책상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내 쪽으로 점점 다가오는 이 주희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이 뒤를 돌아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했다.
"아, 그냥 방이 예뻐서 구경하고 있었어.
이제 나갈 거야."
그 말과 동시에 마치 내가 내 집을 인도하는 것처럼,
가만히 서있는 이 주희를 억지로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이 주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다행이 내 말에 순순히 따라주는 이 주희.
나는 일단 안심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이 주희와 거실로 나왔다.
"주희야, 궁금한 게 있는데.........
저 방안에 사........"
이 주희를 겨우 방 밖으로 끌고 나왔는데,
그때 옆에서 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부터 위험한 말이
튀어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사진' 얘기가 나오기 바로 직전에
연지의 입을 내 손으로 틀어막았다.
"왜 그래!"
연지의 입을 내 손으로 막고 있는 순간에도,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는지 나를 보면서 큰 소리로
얘기하는 연지.
그래서 그런지 입을 막고 있는 데도
연지가 하는 말이 귀에 또박또박하게 들려왔다.
"왜, 방에 뭐?"
그런데 이 주희는 연지가 하는 말을 알고 싶었는지,
나를 보면서 물어본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방이 예뻐서 어떻게 꾸몄는지 물어보고 싶은 걸 거야.
그치?"
나는 마지막 말을 하면서 연지 쪽으로 고개를 돌려,
연지를 노려봤다.
그러자 연지도 사태파악을 한 건지,
이 주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건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 주희.
"아, 맞다!
오늘 일찍 들어가야 하는 걸 깜빡했다."
조용한 가운데 나는 큰 목소리로 시계를 보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이 주희.
"왜? 너희 엄마가 일찍 들어오라고 하셨어?"
"어? 어. 이만 가볼게."
나는 이 말과 동시에 연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연지에게 같이 나가자는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
옆에서 이 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도 마시고 가지........"
이 주희는 아쉬웠는지,
마지막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더니 배웅해주려는 건지,
우리 뒤를 따라 문 밖까지 나오는 이 주희.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춰,
이 주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 다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 주희에게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연지가 내 앞에 끼어들어서는,
자신이 먼저 이 주희에게 말을 꺼낸다.
"이제 우리 둘이서 갈게."
그때, 연지는 웬일인지
이 주희에게 그만 오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 주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 또한 이 주희에게 손을 흔들면서 뒤돌았다.
그리고 이 주희의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걸어오자,
바로 멈추는 연지의 발걸음.
갑자기 멈추는 연지의 발걸음에,
이상해서 연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연지는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아무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안심이 되었던 건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아리야.
근데 아까, 나한테 무슨 말 하고 싶었던 거 맞지?"
예리한 연지는 내 눈빛을 보고 단번에 알아차렸던 건지,
나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초조하고 불안했던 그때 생각이 다시 떠올라서,
목청 높여 얘기했다.
"우리가 이 주희 방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고,
그리고 그 사진 속의 내용은 사전에 이 주희가 우리한테
한번이라도 귀띔해주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당연히 감추려고 했던 내용이니까
혹시라도 뭘 볼지 몰라서 없어진 우리 계속 찾고,
그리고 우리가 방에 들어가 있을 때도
이 주희가 우리보고 다급하게 나오라고 한 거 아니겠어?"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빠르게 얘기했다.
그러자 연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했다.
"연호는 그렇다 쳐도, 신 형민은 거기에 왜 껴있지?"
"나도 그게 의문이야."
우리는 집으로 오는 내내 이 주희의 집에서 봤던
사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내 집에 도착했을 때,
연지와 헤어지려는데 집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서성거리고 있는 신 형민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기 신 형민 아니야?"
손을 흔들면서 가려던 연지는 그새 신 형민을 본 건지,
멈춰 서서는 신 형민이 서있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잘못 본 거라면서 억지로 가게끔 밀어내려고 했는데,
그때 눈치 없는 신 형민은 나를 본 건지
내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듯했다.
"신 형민 맞네."
신 형민이 점점 다가올수록 연지는 더 당당하게 말하면서,
신 형민에게 자신이 먼저 다가갔다.
그런데 신 형민은 연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 손에 종이쪽지 같은 걸 쥔 채로.
"그거 뭐야?"
나는 신 형민이 들고 있는 종이쪽지가 궁금했던 나머지,
방금 전 모른 척 하기만 했던 행동과는 다르게
신 형민이 내 앞으로 다가오자마자 바로 그것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내 앞에 멈춰 서서 그 종이쪽지를 나에게 건네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진지한 표정이
신 형민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쪽지의 내용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중대한 발표를 적어놓은 종이를 펼치듯이,
심호흡을 한 뒤 몇 초 있다가 종이를 펼쳤다.
신 형민은 이런 행동을 하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봤지만,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종이내용은 대충 봐서 알 수 없었지만,
신 형민이 나에게서 뺏어갔던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뭐? 나한테 다시 돌려준다고?"
"......."
신 형민은 내 말에도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적거린다.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계속해서 심각한 표정으로 있는 거야?"
신 형민의 심각한 표정을 처음보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이쪽으로 다가와서는 자신의 얼굴을 신 형민 쪽으로 들이미는 연지.
연지의 행동에 불쾌한 듯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리는 신 형민.
나는 연지의 행동이 혹시라도 방해가 돼,
신 형민이 보여주려던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봐
억지로 연지를 신 형민에게서 떼어냈다.
그러자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신 형민.
그러다가 이내 찾으려는 물건을 찾았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손을 멈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종이 하나를 꺼내서는,
나에게 그 종이를 건네는 신 형민.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신 형민이 건네려는 종이를 보고 있다가,
이내 그 종이를 받았는데........
분명 처음에 봤던 편지의 글씨체와 똑같았다.
"이 글씨체랑........."
나는 두 장의 종이를 비교하면서 얘기했다.
내 행동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신 형민.
나는 두 장의 편지를 비교하다가,
이내 두 번째로 준 편지의 내용을 자세히 확인하는데.........
그 편지 안의 내용은 누군가가 신 형민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단순히 안부의 내용을 묻는 편지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근데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그 맨 아래 봐."
신 형민의 말에 따라 편지의 끝 쪽을 읽으려는데.........
그 순간, 시선이 그곳에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편지 끝에는 이 주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그럼 이 편지도 그렇고 아까
그 글씨체 똑같았던 편지도........
이 주희가........?"
"응."
나는 신 형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상을 찌푸리면서,
위에서부터 자세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한테 보내는 형태의 편지인데........
나는 이상해서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내려 갔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편지지는 똑같은 내용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로봇이 된 것처럼 목을 조금씩 움직여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신 형민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근데 이 편지 내용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는데,
옆에 있던 연지도 자신의 눈이 이상하다고 믿고 싶은 건지,
눈을 비비면서 다시 편지지의 내용을 살펴보려 했다.
하지만 연지가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기도 전에
편지지를 가로채는 신 형민.
"본 사실 그대로야.
그리고 이 주희가 너희 가족한테
사진과 함께 편지를 보낼 줄은 몰랐거든.
근데 이런 상황에까지 오게 만드니까,
속고만 있는 네가 불쌍해서 말해주는 거야."
"........"
"지, 진짜 이 주희가 보낸 거야?"
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신 형민에게 묻는 연지.
그런데 신 형민은 연지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내 쪽만 보면서 얘기한다.
"예전에 나한테 보냈었던
편지 글씨체가 그렇다고 얘기해주잖아."
"그, 근데 우리 집으로 보낸 편지 말고,
너한테 이 주희가 보낸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한테 보내는 형식의 내용인데........
지, 진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내 말에 이어서 연지 또한 의심스러웠는지,
신 형민에게 물었다.
그러자 내가 예측하고 있는 생각들이 맞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신 형민.
그리고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번에 내가 너한테 얘기했었지?
중학교쯤에 나랑 사귀고 있던 여자가 헤어지자고 얘기했다고,
그 다음에 연호랑 같이 팔짱 끼고 걸어가는 모습 봤다고.
그게........
이 주희야."
#.092
'이 주희'라는 말에 잠시 동안 멈춰 있었다.
그때, 연지는 믿기지 않는 듯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신 형민 앞으로 다가가서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로 얘기했다.
"진짜야? 확실해?!"
"그렇게 내 말이 거짓 같으면 이 주희한테 직접 찾아가서 물어봐."
신 형민은 나에게 자신이 가로채 갔던 편지를 손에 쥐어준 채,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편지지만 손에 쥔 채,
멍하니 신 형민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옆에서 나를 툭툭 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연지가 잔뜩 흥분한 상태로 얘기하고 있었다.
"우리 얼른 주희 집에 가서 물어보자!
아니면 괜히 오해하는 게 되는 거니까........
확실히 확인해 봐야지."
연지는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건지,
나를 끌고 가면서도 이 주희를 감싸듯이 얘기했다.
나는 연지의 손에 이끌려 이 주희 집 쪽으로 가면서도
계속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이 주희의 집에 가기 위해서 버스를 기다렸다가 탔는데,
다행이 사람이 많이 없어서 자석에 앉을 수 있었다.
연지는 의외로 이 주희 집으로 향하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이 주희의 집 쪽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서 이 주희 집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이 주희의 집 밖에서 이 주희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 주희의 모습이 보이자,
나와 연지는 이 주희가 있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 순간, 이 주희는 뒤에서 우리의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본다.
그러더니 휴대폰을 끄고는, 우리에게 얘기한다.
"왜, 왜 다시 왔어? 뭐 놓고 간 거라도 있어?"
이 주희는 무언가가 불안했는지, 말을 더듬으면서 얘기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연지는 무슨 용기가 생겼던 건지,
내 손에 쥐어져 있던 편지를 자신이 낚아채서는
이 주희 앞으로 걸어간다.
"물어볼 게 있어."
연지는 이 주희에게 단단히 화가 난 건지,
딱딱하게 얘기하면서 편지를 이 주희 앞에 내민다.
"이, 이게 뭐야? 하하.
일단 집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
그 말과 동시에 이 주희는 연지의 팔을 붙잡고,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연지는 그런 이 주희의 손을 뿌리치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편지를 이 주희 앞에 던졌다.
"이 편지, 네가 보낸 거지?!"
"이, 이 편지? 무슨........."
"아리 집으로 보낸 편지, 다 알고 왔어! 왜 그런 거야!"
나는 연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심스럽게 이 주희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이 주희는 내 앞으로 재빠르게 달려오더니,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얘기했다.
"이거 내가 보낸 거 아니야,
아리야. 믿어 줘!"
이 주희는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친 상태로 얘기했다.
그때, 옆에 있던 연지가 또 끼어들어서 얘기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동안 너랑 친구였던 시간들이 크게 느껴져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하는 말 믿지 않으려고도 해봤어, 근데......."
연지는 단단히 화가 난 건지,
초반부터 이 주희에게 세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연지는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와서,
신 형민이 전해 준 편지 하나를 더 낚아채간다.
그리고는 그 편지를 이 주희에게 건넨다.
"이 편지, 이 편지랑 글씨체가 똑같아서 너인 거 알았어.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아리 부모님한테
그런 편지 보낸 거야?!"
"........"
편지 두 장을 번갈아보면서 갑자기 말이 없어진 이 주희.
이 주희는 편지 두 장을 번갈아보면서
불안한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나에게 얘기한다.
"이, 이거 어디서 찾아낸 거야?"
"그, 그렇게 얘기하는 거 보니까 너 맞구나........너 맞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이 주희 앞으로 걸어가는 연지.
나는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연지를 말리고 있었는데........
그때, 뒤에서 들리는 이 주희의 목소리.
"쳇. 신 형민이 방금 전까지도 계속 전화해서
예전 일들 다 얘기했다고 했었는데........
왜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나 했더니,
이런 정확한 증거가 있었네?"
나와 연지는 이 주희의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싸늘한 행동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래, 내가 이 편지 보낸 거야,
근데 이런 일, 처음부터 네가 자초한 거 아니야?!
설마 가족끼리 다른 감정 가지고 있을 줄이야........
처음에는 너랑 친해지면 연호랑 다시 관계 좋아질 줄 알았어.
그런데 갈수록 너희 둘 관계가 이상해지는 걸 느끼면서
가족 이외의 사이라는 걸 조금씩은 느꼈었지.
하지만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질 거라고 생각 안 하고,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어."
"......."
".......내 예상은 너희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갔을 때 빗나갔어.
너랑 연호랑 껴안고 있는 걸 보는데.......
가족 관계의 사랑은 어쨌든 비정상적인 거잖아?
그러니까 분명 다른 학생들도 나랑 마음이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도 그걸 보는 순간 믿음이 한순간에 깨져 버렸거든.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네 시꺼먼 속을
다 까발리고 싶어서 전교 학생들이 다 보게,
너희 둘이 껴안은 사진도 학교에 붙여놓은 거야."
그 말과 동시에 썩은 미소를 짓는 이 주희.
"시꺼먼 속?
그럼 처음부터 연호 때문에 친하게 지내려고 했던 너는!"
연지는 많은 배신감을 느끼는 듯,
이 주희에게 달려들 기세로 얘기했다.
그 순간, '쫙-'하는 마찰음과 함께,
이 주희의 손이 연지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빨갛게 달아오른 연지의 볼.
나는 연지의 볼과 이 주희의 손을 번갈아보면서
한동안 놀라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 주희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가만히 있었어야지. 너도 마찬가지야.
너랑 친해져서 이 아리한테서 점점 멀어지게 하려고 했더니."
"뭐?"
"눈치가 그렇게 없어?
내가 뭐 때문에 볼품없는 너랑 친해지려고 했겠어,
당연히 이 아리가 친구 하나 없이 혼자되면
더 위기감 느낄 거고,
그러다가 더 불안감 느껴서 결국 연호랑 헤어질 테고,
그래서 일부러 너한테 살갑게 대했던 건데........
이제 계획이 틀어져 버렸으니."
그 말과 동시에 미소를 지으면서 등을 돌리는 이 주희.
이 주희는 그렇게 몇 걸음 걸어가는 듯싶더니,
다시 멈춰 서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얘기한다.
"이제 어떡해? 너희 부모한테까지 알려졌으니?
........안 됐네. 쯧쯧. 알아서 잘 해결해 봐.
부모보다 사랑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말을 끝으로 이 주희는 이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나와 연지는 뭐에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서야 발걸음을 뗐는데,
집으로 가는 내내 연지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걸어갔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을 쯤,
우리는 간단한 인사만 한 채, 각자의 길로 갔다.
나는 연지와 헤어지고 나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 주희가 했던 행동들이 모두 연극인 것에서부터,
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이 주희의 말까지
전부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이제 어떡해? 너희 부모한테까지 알려졌으니?
........안 됐네. 쯧쯧. 알아서 잘 해결해 봐.
부모보다 사랑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한동안 그 생각에 땅만 내려다보면서 걸어갔다.
그때, 앞에 있는 장애물과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위를 올려봤다.
"네가 땅만 보면서 걸어놓고,
왜 괜한 사람한테 인상 쓰냐?"
신 형민이 눈에 들어왔다.
"힘이 없는 것 보니까,
이 주희가 다 말했나보네?"
신 형민의 말에 그전에 있었던 일들이 전부 떠올랐다.
신 형민이 알려줬던 비밀로 인해서,
이 주희가 나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왠지 친구 한 명을 잃은 것만 같은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와 동시에 신 형민의 멱살을 잡았다.
"너 그 사실, 왜 알려준 거야!
내가 더 고통 받고, 이제는 옆에 아무도 없게 하려고,
일부러 알려준 거 아니야?!"
그 말에 비웃듯이
한 쪽 입 꼬리를 위로 올리는 신 형민.
"........너, 이 주희한테는 당당하게 따지고 왔어?
나한테 지금 하는 행동처럼."
"........뭐?"
나는 신 형민의 말에 방금 전 이 주희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봤다.
하지만 이 주희에게 한 소리하기는커녕,
마지막까지도 충고만 듣다가 끝났으니.
나는 바보 같기만 한 내 행동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따지지도 못한 것 같네, 멍청이처럼. 한심하다."
"뭐?!"
"앞으로 갈 길은 멀어 보이는데,
네가 이렇게 맹추처럼 행동하니까 내가 더 답답하다고!"
신 형민은 얘기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화가 난 건지,
목청을 높여 얘기했다.
그러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
신 형민은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등을 돌려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신 형민의 말에 한동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그곳에 서 있다가 발걸음을 돌려, 집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집 쪽으로 걸어갔을 때,
집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게 보였다.
나는 혹시라도 집 문을 가족 중 누군가가 열고 나갔으면
도둑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 앞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렇게 집 문 앞에 도달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쉽사리 문고리로 손이 가질 않았다.
급기야는 도둑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몇 초 동안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살짝 열어보려는데.......
도둑이 들었으면 발소리라든지,
물건 소리가 조금은 들려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없이 너무 조용하자,
이상한 나머지 문고리를 살짝 잡아 당겼다.
그러자 집안에서 새 아빠와 연호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서 새 아빠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상황까지 왔으니, 이 애비도 어쩔 수 없구나.
연호, 너 이제 이 집에서 나가서 따로 사는 게 어떻겠니?"
#.093
나는 새 아빠의 말에,
넋 나간 표정으로 새 아빠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예상치 못한 소리에 놀란 나머지,
허둥지둥 벨소리가 들리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빼내어 휴대폰의
종료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액정화면에는 '연지'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연지는 왜 하필 이런 때 전화를 한 거야!'
나는 짜증 섞인 말을 조용하게 내뱉으면서,
휴대폰의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려는데........
앞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점점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봤다.
그와 동시에 연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새 아빠가 서있었다.
"하하하. 아빠, 연호야........오랜만이야?"
나는 억지미소를 지으면서 씩씩하게 얘기했지만,
앞에 있는 연호와 새 아빠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나는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서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방금 전에 전화했던 연지를 원망하고 있었다.
"잠깐, 나 누나랑 얘기 좀 하고 올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연호의 목소리에 저절로 시선이 새 아빠 쪽으로 향했는데.......
그때 연호가 내 앞을 쓱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대로 나가버리는 연호의 모습에,
새 아빠를 보면서 어색하게 얘기했다.
"자, 잠깐 나갔다 올게요."
새 아빠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새 아빠에게 말한 뒤에 빠르게 연호 뒤를 따라 나갔다.
그런데 밖으로 나갔을 때,
비가 올 예정인지 하늘이 온통 캄캄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이내 시선을 아래로 내려 연호를 봤다.
연호는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간다.
나는 연호의 뒤를 따라가면서 긴장을 많이 한 것인지,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고 입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
연호는 인적이 드문 곳에 멈춰 서,
등을 보인 채로 얘기했다.
나는 긴장을 많이 한 탓에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동안 나는 멍한 상태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때 연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가 이상했는지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나는 연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 주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오늘 이 주희가 나에게 얘기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연호의 질문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지금 막 떠오른 이 주희의 말을 떠올리면서 연호에게 얘기했다.
"아, 맞아! 오늘 이 주희 집에 갔었는데........
신 형민이 보낸 편지가 집에 있더라고?
아, 알고 보니까 연호랑 너 사이에서........"
말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걸음소리가 들리더니
내 몸이 마치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서 위를 올려다보는데........
연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제 눈앞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나는 연호의 갑작스런 질문에 멍해 있었다.
그때, 연호는 나를 안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콜록콜록. 뭘 어떻게 생각해.........
그, 그냥 서운하겠지........"
사실 속마음은 방금 얘기한 것과는 달랐지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똑바른 답을 얘기할 수 없었다.
그러자 나를 안았던 팔을 서서히 풀어주는 연호.
그 순간, 갑자기 내리지 않던 비가 하늘에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집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연호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나머지, 뛰던 발걸음을 멈춰
뒤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연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지금 비 오는데, 빨리 와!"
나는 계속 떨어지는 비 때문에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면서
연호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빗소리가 강해서 연호에게는 들리지 않았는지,
연호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집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어 점점 내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연호.
"어디 가!"
나는 목청껏 소리치면서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연호는 그새 다른 곳으로 가버린 건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한숨만 깊게 내쉰 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 아빠가 우리를 걱정한 건지
바로 문 앞에 서있었다.
"비도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디 가서 뭐했어?
그리고 연호는 어디 갔니?"
"아, 연호는 약속이 있다고.......
갑자기 가버렸어요. 하하."
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새 아빠에게 둘러댄 뒤,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혼자 있는 공간에 오니,
이유 모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밖이 조용해질 때가 돼서야 살짝 고개를 내밀었는데,
거실은 온통 캄캄하고 조용했다.
나는 모두가 잠들었을 거라 예상하고,
방으로 얼른 들어갔는데........
내가 방으로 들어가서 잠이 들 때까지,
연호가 들어오는 문소리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하다가 문득 연호 생각이 났다.
그래서 연호 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호 어디 나갔는지, 방에 없던데?"
나는 엄마의 말에 걸음을 멈춰,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어딜 간 거지?
나는 학교 갈 준비를 다 끝마치고, 집 밖을 나서면서까지도
연호에 대한 걱정만 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걸어가려는데........
그때, 옆집에서 문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소리가 들리자마자 자연스럽게 옆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신 형민이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신 형민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는데.........
그때, 뒤에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해 할 필요 없어........근데 너 연지한테 그 얘긴 들었어?"
"무, 무슨 얘기?"
비장하게 얘기하는 신 형민의 행동에
덩달아 나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가족이니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 안 했나 보네?"
".......무, 무슨 얘긴데 그래! 뜸 들이지 말고 얼른 얘기해 봐!"
"........연호 전학가기로 했대."
"뭐......?"
"지금 그 얘기로 학교가 떠들썩하던데,
아예 눈치 못 챈 거 보면........
너도 네 나름대로 바빠서
아무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나 보네......."
나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서있었는데........
점점씩 신 형민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괜찮냐고!"
신 형민은 이미 몇 차례 더 나를 불렀는지,
짜증 섞인 말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정신을 차려 앞을 봤는데,
신 형민의 다섯 손가락이 보였다.
내가 넋 나간 듯이 서 있자, 증세가 이상해 보였는지,
계속해서 내 얼굴 앞에 자신의 손을 흔들면서
나에게 얘기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신 형민의 큰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서둘렀다.
"어디 가!"
"하, 학교에 가봐야겠어."
나는 급하게 얘기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하려할 때쯤,
뒤에서 부르릉 소리와 함께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옆으로 몸을 비켜서려는데,
그때 뒤에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한 거 같은데, 얼른 타."
나는 신 형민의 목소리에 약간은 망설였지만,
지금 놓쳐버리면 연호에게 한 마디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신 형민 오토바이에 내 몸을 실었다.
그러자 곧바로 오토바이를 출발시키는 신 형민.
나는 오토바이가 출발함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두 팔로 신 형민의 허리를 꽉 잡았다.
그리고는 안심이 되었던 건지,
아무 생각 없이 신 형민의 널찍한 등에 기댔다.
처음에 신 형민은 이런 내 행동이 이상했는지,
약간 뒤돌아서 나를 보는 듯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운전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나는 신 형민의 등에 기대어
바람을 맞으면서 편안히 갔는데........
생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았는지,
빠르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마워!"
나는 신 형민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든 뒤,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학교 안은 이미 떠들썩해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반으로 들어갔다.
반에서 또한 학생들은 여럿이 몰려서 소곤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등장에 내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전학이라니! 왜 연호가 전학을 가! 응?"
"맞아! 오히려 전학 가야하는 사람은 너 아니야?!"
"왜 연호가 피해를 봐야하는 건데?!"
여학생들은 점점 나를 몰아붙이면서 나에게 항의했고,
그때 반으로 들어오는 연지가 보였다.
연지는 반에 들어오자마자 내 앞으로 몰려 든 여학생들을 보면서,
여학생들을 나에게서 떼어내기에 바빴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복도창문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우리 반 옆을 지나는 연호의 모습이 보였다.
덩달아서 여학생들까지 연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간절하게 얘기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연호가 보이자마자, 여학생들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무작정 반을 나섰다.
그리고 연호보다 더 빠르게 뛰어서,
연호 앞을 가로막았다.
연호 뒤를 따르고 있던 학생들 또한 멈춰 서서는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시선 때문에 잠시 주춤거리면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이상하게 보면서 내 옆을 지나쳐 가려는 연호.
나는 연호가 지나치려고 하자,
급한 나머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얘기했다.
"그게.........
전학 간다는 게 사실이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연호.
나는 연호의 행동에 충격을 먹은 사람처럼
입을 벌린 채로 멈춰 있었는데.......
그때, 앞에서 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렇게 놀라? 너도 아빠랑 한 말 들었을 거 아니야?
........단지 서운하기만 할 뿐이라고 말하는 너한테,
전학가게 됐다고 얘기하면 나만 더 우스워지는 거잖아, 안 그래?"
#.094
나는 연호의 말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자 연호는 나를 한번 보더니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상황에서 주위에 있던 학생들 또한 연호의 입으로
직접 들어 충격이 더 큰 건지,
연호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묻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직접 연호의 입으로 들은 뒤,
힘없이 반으로 들어가서 계속 책상에만 누워있었다.
그때, 내 옆으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주위를 살피는데,
연지가 누군가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연지는 통화에 열중해 있는지,
자신이 들고 있는 가방을 책상 위에만 살짝 올려놓는다.
나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때 연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야."
앞의 내용은 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거라는 추측을 하면서
연지의 팔을 툭툭 쳤다.
"뭐, 뭐가? 너 무슨 일 있어?"
내가 연지를 툭툭 치자, 연지는 귀신을 본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나는 연지가 온몸으로 놀랐다는 사실을 표현하자,
나 또한 덩달아 놀라서 소리쳤다.
"왜, 왜 그렇게 놀라!"
"........너, 너 자는 거 아니었어?"
"아.......자려고 했는데, 네가 온 게 보여서........
근데 무슨 중요한 통화였어?"
"너, 너 들은 건 아니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연지.
나는 연지의 행동이 이상한 나머지, 처음에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하지만 절대 얘기해주지 않을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연지.
나는 아무 것도 얘기해주지 않는 연지가 야속해보여서,
말없이 연지를 등지고 책상에 누웠다.
잠시 후, 연지가 의자에서 일어나 내 얼굴을 살피는 듯싶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 상태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곤히 잠들고 있었는데,
그때 종이 울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종소리에 놀라서 눈을 번쩍 떴는데,
학생들이 전부 일어나서 짐을 챙기는 모습이 보였다.
나 또한 벌떡 일어나서 가방을 챙기는데.......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연지가 어디 간 거지?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이내 바쁜 일이 있었겠거니
생각하면서 반을 빠져나왔다.
"이 아리."
학교 밖으로 나갔을 때,
가까운 곳에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신 형민이 오토바이 위에 앉아있었다.
"너는 학교도 안 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나는 콧방귀를 끼면서 얘기한 뒤에
오토바이를 지나쳐가려고 했다.
그러자 뒤에서 부릉부릉 소리가 들리더니,
천천히 내 옆을 따라오기 시작하는 신 형민.
"데려다 줄게."
"뭐? 난 다리 없는 줄 알아?
나 혼자 알아서 갈 거니까, 너는 네 갈 길이나 가."
"내 갈 길? 내 갈 길이 네 갈 길이랑 똑같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집을 들려서 오는데 아주 재밌는 광경을 목격했거든."
도도하게 신 형민을 뿌리치며 걷고 있던 나는
'재밌는 광경'이라는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신 형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 형민은 미소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결국 알 수없는 신 형민의 미소에 빠져들어,
오토바이 위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출발하는 오토바이.
나는 오토바이를 탄 뒤로,
불과 몇 십 분 지나지 않아서 집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 앞에 막상 도착하니, 신 형민이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아주 재밌는 광경을 목격했거든.'
"자, 잠깐!"
나는 신 형민의 말에 왠지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신 형민의 행동을 가로막듯이 재빠르게 얘기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의아해하는 듯싶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한다.
"아, 혹시라도 내가 나설까 봐 불안해서?"
"뭐?........그, 그런 건 아니지만........"
신 형민과의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바로 앞에서 연호와 이 주희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두 얼굴이 앞에서 보이자마자,
혹시라도 들킬지 모른다는 생각에
신 형민을 데리고 주위에 있는 차 뒤로 숨었다.
"왜 내가 숨어야 돼!"
신 형민은 나에게 항의하듯이 얘기했지만,
나는 신 형민의 얘기 따위는 듣지도 않은 채,
숨죽인 채로 차 뒤에서 앉아있었다.
이 주희와 연호는 약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이 주희와 연호가 나누는 대화가 자세히 들리지 않아서,
조금 더 다가가서 들으려고 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하게 이 주희가
연호 앞에서 무릎을 꿇는 모습이 보였다.
"하........"
나는 놀라서 탄성소리를 내뱉었는데........
그때, 뒤에 있던 신 형민이 갑자기 내 입을 세게 틀어막았다.
그와 동시에 앞에 있는 이 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못했어.
사실.........이 아리가 조금은 샘도 나고,
너한테서 계속 달라 붙어있으니까,
떼어내려고 장난도 조금 쳐봤어.
근데 일이 그렇게 커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미안해."
간절한 눈빛으로 연호를 보는 이 주희.
나에게 했던 행동과는 다른 이 주희의 모습에
놀란 눈으로 이 주희를 바라봤다.
그때,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로 연호가 콧방귀를 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쳇, 갑자기 찾아와서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처음 듣는 얘긴데."
".......어, 어?
.........네, 네가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연지가 전화로........"
"뭐?"
"여, 연지한테 내 얘기 듣지 않았어?"
"네 얘기? 지금 이 얘기는 처음 듣는데, 너한테?
그리고 나는 걔랑 만나지도 않았고."
점점 굳어가는 연호의 표정.
연호의 말을 들은 이 주희는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네 친구, 머리 좋은데?"
그때, 옆에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연지가
학교에서 누군가와 통화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야.'
아, 자기 입으로 말하도록 유도한 거였구나.
나는 그제 서야 연지와 통화한 사람이
이 주희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연지가 휴대폰에 대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또한
알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때, 앞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봤는데.......
연호의 얼굴이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연호와 눈이 마주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당황해서 몸을 얼른 돌렸다.
그러면서 숨을 곳을 찾다가,
결국은 나도 모르게 신 형민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자 아무 말 없이 나를 두 팔로 감싸 안아주는 신 형민.
나는 예상치 못한 신 형민의 행동에 놀라서
신 형민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드는데.......
그때, 이 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 미안해........
그리고 너 전학 간다는 소리 들었어........"
나는 이 주희의 목소리에 모든 행동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때, 가까이에서 들리는 발소리.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발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 주희가 점점 연호 쪽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더니 이 주희는 연호 앞에 멈춰 서서는 연호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 악수라도 할까?
조금 촌스럽긴 하지만........
그, 그래도 여태까지 있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주희의 말에 연호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이 주희가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잡는다.
그 후로 둘은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은 뒤,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그 둘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전학 간다는 소리 들었어........'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 주희의 말을 들으니 새 아빠가
연호에게 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연호,
너 이제 이 집에서 나가서 따로 사는 게 어떻겠니?'
나는 연호에게 새 아빠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르자,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신 형민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이 느껴지자마자 얼른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신 형민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다시 내 팔을 잡더니
나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는 신 형민.
결국 나는 다시 신 형민의 품에 안기게 됐다.
".......내가 가지 않도록,
저 자식한테 무릎이라도 꿇으면서 붙잡아줘?"
나는 신 형민의 말에 놀라서 위를 올려다보려 했지만,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일부러 내 머리를 누르고 있는 신 형민.
나는 낑낑대면서 얼굴을 들려고 했지만,
결국 신 형민의 힘에 의해 계속해서 얼굴을 숙이고 있어야만 했다.
"........끝까지 아무 말도 못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데........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그러니까 얼른 가서 네가 하고 싶은 얘기들 연호한테 다 해."
"뭐?"
나는 고개를 들어 신 형민을 다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신 형민은 내 머리를 누른 채,
손의 힘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계속 고개만 숙인 채로 있다가,
신 형민이 먼저 등을 돌린 뒤에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는데.......
몇 시간 동안을 방 안에서 꼼짝 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밖이 조금씩 캄캄해질 때쯤에서야
방문을 슬며시 열었는데.......
연호가 신발을 신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연호가 나가는 모습에,
신 형민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
연호의 이름을 크게 부르려는데........
이미 연호는 문을 닫고 나가버린 뒤였다.
결국 다시 방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누우려는데........
창밖으로 연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신 형민이 연호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신 형민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놀란 나머지,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가 둘이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방을 나와 대충 신발을 구겨 신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둘 앞에 도달했을 쯤,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렇게 가버리면 이 아리는 혼자 남게 될 텐데.......
혼자서 외로워 할 이 아리는 생각 안 해봤어?"
#.095
예상치 못한 신 형민의 말에
나는 어떻게든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앞으로 달려 나가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가 두려웠기에,
무작정 신고 있던 신발 한 짝을 벗었다.
그런 다음에 망설임 없이
신 형민이 있는 쪽으로 신발을 던졌다.
"아!"
신발을 던지자마자 바로 오는 반응.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목표물과는 다른 듯,
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려는 순간,
신 형민과 연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연호와 안 좋게 얘기했던 장면이 떠올라서,
지금 들키게 되면 끝장일 거라는 생각에 최대한 몸을 숙였다.
그리고 신 형민과 연호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그때 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리, 아니. 누나가 어떻든,
나는 이미 가기로 결정했어."
그 말만 한 채, 발걸음을 떼려는 듯 보이는 연호.
나는 방금 전 그 말에 멍하니 땅만 바라본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런데 몇 초가 지나도 연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해서 고개를 들려는 찰나,
연호는 무언가를 이상한 듯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나 또한 연호의 행동에, 연호의 시선이 고정된 쪽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연호의 몸에 가려져 있어,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볼 수 없었다.
이내 연호는 아래에 있던 무언가를 주워,
신 형민 옆을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지?!"
연호는 신 형민의 말에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 형민이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예전'이라는 말에 이 주희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곳에서 한참 동안 연호가 들어간 곳만을 바라보고 있는
신 형민을 보고 있다가,
이내 신 형민이 그곳에서 발걸음을 떼자
나도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그 순간 발밑이 따끔거려왔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춰서 발을 내려다보는데.......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다.
아, 맞아! 내 신발.
나는 그제 서야 신발을 신 형민과 연호 쪽으로
던졌던 것이 생각났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아직 이 주위에 있을지 모를
신발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때, 뒤에서 들리는 연호의 목소리.
연호의 목소리에 나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멈춰있었다.
그러자 직접 내 얼굴 앞까지 신발을 가져와서 보여주는 연호.
"얘기하던 도중에 갑자기 신발이 떨어져서,
보니까 어디서 많이 본 신발이라 혹시나 해서 갖고 있었지."
"........그, 그거 찾는 거 아닌데. 하하."
"그래? 그럼 이 운동화 버려도 되겠네?"
직접 내 눈 앞에서 던져버리려는 듯,
신발을 최대한 높이 드는 연호.
나는 연호의 대담한 행동에 얼굴은 이미 새빨개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속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 던지려는 시늉까지 하는 연호.
나는 차마 두 눈으로 내 신발이 날아가는 장면을 볼 수 없었기에,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그 후로 몇 초가 지나도
멀리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나머지 조금씩 눈을 뜨는데........
연호가 몸을 숙인 상태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내가 신고 있는 신발 옆에,
자신이 들고 있던 신발을 놓고 비교하듯이 보고 있었다.
"뭐, 뭐하는 거야!"
나는 연호의 행동에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으면서 발을 뒤로 뺐다.
그러자 바로 일어나는 연호.
"........누나도 지금 신발 한 짝 없는 것 같고.
그리고 내가 이 신발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혹시나 해서 가지고 있었거든. 근
데 지금 누나 신발 사이즈랑도 맞고,
모양도 똑같은 것 같아서.......
이 신발, 누나 거 맞지?
......그리고 신 형민이랑 얘기할 때
우리 얘기도 다 엿듣고 있었고."
"........뭐, 뭐? 그게........"
"내가 없어지면 제일 신나할 거면서,
이런 행동하니까 우스운데?.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엿듣고 있는 거 보니까..........
아까 신 형민이 가지 말라고 나한테 했던 얘기,
사실은 다 누나가 시켜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거고."
"뭐? 아, 아니야! 그런 건......."
"어쨌든 상관없어,
나는 이제 이 집에서 나가기로 결정했고,
그리고 이제 누나 얼굴.......
보지 않기로 했으니까."
연호는 그 말을 끝으로,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연호의 얼굴 쪽으로 있는 힘껏, 손을 날렸다.
"그, 그래!
나도 이제 너 같은 사람 떠난다고 해도
슬퍼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 말과 함께 등을 돌리는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걸어가면서 발에서 조금씩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쓰라려오는 가슴 때문에 발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연호를 뒤로한 채,
집으로 들어가서는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방문을 잠그고, 바로 침대로 걸어가서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으려는데 자꾸만 연호가
떠나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연상되어 나타났다.
나는 그럴 때마다 머리를 손으로 때리면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기를 몇 시간,
나는 침대에 누운 지 한참 지난 뒤에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쾅쾅-'
'드르륵-'
문소리에 이어서 진동소리까지 들려왔다.
나는 어제 늦게 잔 탓인지,
뒤척거리면서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때, 밖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야, 얼른 일어나 봐!
연호 짐 가지고 아빠랑 나갔어!"
'나갔어.'라는 말에 놀란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휴대폰에 문자가 온 것이 보였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폴더를 열었다.
그와 동시에 액정화면에 뜬 이름은 연지였다.
[아리야, 연호 지금 전학 간다고 얘기하고 갔는데.......
미리 작별인사 한 거지?
연호 전학 가는 날, 네가 보이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니까 걱정 된다.]
연지의 문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방문을 열고 방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바로 엄마가 보이면서
나에게 무언가를 빠르게 얘기하는 듯 보였지만,
나는 아무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 연호를 떠나보내면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금 입고 있는 옷 상태 그대로,
앞에 보이는 슬리퍼만 신은 채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런데 하늘에서는 야속하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면서 잠시 주춤하다가,
이내 사라져버리는 연호 모습이 떠올라,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학교까지 무작정 달려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온 끝에 학교에 도착한 나는,
비에 흠뻑 젖은 상태 그대로 학교 안으로 들어가
연호 반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연호는 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때 연지가 나를 발견하고는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에서 나를 불쾌한 눈빛으로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다가오는 연지의 팔을 붙잡았다.
"여, 연호는........연호는 어디 있어?"
"뭐? 작별인사 안 했어? 연호 학교에서 나간 지 오래됐는데........"
"뭐........?"
나는 연지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손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직 그렇게 멀리 가지는
못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지를 뒤로한 채, 학교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차도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새 아빠가 항상 타고 다니던 차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곳에서도 새 아빠의 차가 보이지 않자,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한참 동안을 차도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다시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때, 내 앞을 막고 있는 누군가.
나는 앞을 막고 있는 누군가가 보이자,
조금은 기대를 하면서 고개를 위로 들었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우산을 쓰고 있는 신 형민의 얼굴이 보였다.
".......어, 어떻게 여기 있어?"
신 형민은 내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 준채로,
나에게 편지 하나를 건넨다.
나는 말없이 신 형민이 건넨 편지를 펼쳐보는데.......
연호가 보낸 편지였다.
나는 연호가 나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이
가득 담긴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데.......
그때, 옆에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떠나기 전날 밤, 갑자기 나한테 찾아와서........
마지막으로 네 얼굴 못 보고 갈 거라고 얘기했어.
그러면서 아빠나 누구한테도 맡길 사람이 없다고,
나한테 이 편지 좀 너한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어."
연호의 편지 속에는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조금 더 다가가지 못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전학을 간다고 얘기한 뒤로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내 모습에,
자신 또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 차갑게 대했던 것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나는 연호의 편지를 조금씩 읽어 내려갈수록,
연호 혼자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호 생각에 눈앞이 흐려지려던 그때,
편지의 마지막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누나 의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편지에 많은 내용의 글을 담은 걸 보면,
속마음으로는 항상 누나, 아니.
너를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는 그 글을 읽는 순간,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리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빗물과 함께 흘려보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앞에 있던 신 형민이 나를 두 팔로 꽉 안아줬다.
"연호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항상 내가 옆에 있어줄게."
신 형민은 그 말과 함께 나를 위로하듯이
한참 동안 내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그 후로도 신 형민과는 자주 연락을 하며 지냈고,
나는 신 형민 덕분에 허전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연호가 떠난 지도 몇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연호는 집으로 잠깐 전화만 할 뿐,
무슨 일에선지 나에게 연락을 직접 취해오지는 않았다.
나는 연호의 그런 행동에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이 연호에게는
우리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연호의 행동에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연호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
연호와의 추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는 순간,
가족여행 갔었던 곳에서
연호가 나를 껴안아주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연호에 대한 것들을 정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 장소에 들르기 위해
엄마에게 그 장소에 대해 물었다.
다행이 엄마는 연호가 이곳을 떠난 지 오래돼서 인지,
별 의심 없이 나에게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나는 엄마가 알려준 위치를 토대로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맞게 역으로 가서,
내가 뽑은 기차표에 맞게 기차를 탔다.
그 후로 내가 뽑은 기차표에 맞게 좌석에 앉자,
얼마 안 있어 기차가 출발했다.
나는 기차가 도착지에 도착할 동안 바깥풍경을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인지 모를 정도로 잠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역에 도착했다는 신호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 나,
가방을 챙겨 기차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자,
혼자 와본 적은 처음이라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한참 동안을 혼자 서서 헤매고 있던 나는,
이내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을 붙잡고 물어봤다.
"저, 죄송한데요.
여기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나요?"
나는 엄마에게 받은, 숙소위치가 자세히 적혀 있는
쪽지를 그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쪽지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켜가며 정확하게 나에게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내가 찾아가려는 위치는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감사합니다!"
비록 나는 연호를 볼 수는 없지만,
연호와의 추억이 깃들어져 있는 숙소에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하자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위치를 알려준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빠른 속도로 숙소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에 가족과 함께 갔었던 숙소가 눈앞에 보였다.
예전 모습 그대로 숙소 앞에는 바다가 보였다.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친근한 느낌이 들어 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그때의 추억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런데 그때, 어떤 남자 한 명이 바닷가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그 남자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그 남자 앞으로 달려갔다.
"저기요! 괜찮아요?!"
나는 그 남자가 있는 앞까지 마구 달려와서는,
급한 나머지 먼저 그 남자의 가슴 쪽에 내 귀를 가져다댔다.
"........으음. 뭐야!"
잠시 후,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그 남자의 몸에서 내 얼굴을 떼어냈다.
"아, 아무 미동도 없는 것 같아서......."
나는 바로 앞에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내가 착각했다는 생각에 입을 벙긋거리면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로,
어딘지 모르게 들어본 목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데........
연호의 얼굴이 보였다.
연호 또한 내 얼굴이 보이자마자 놀란 건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네, 네가 어떻게 여기........"
앞에 있는 연호의 얼굴에 놀란 나는 말을 하려다가,
이내 환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닐 거야. 착각이겠지."
바로 앞에서 보이는 연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던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다른 사람의 체온이
내 몸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살포시 나를 감싸주고 있는 팔이 보였고,
이어서 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싶었어."
#.번외1
'보고 싶었어.'
오랜만에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호의 한 마디에,
나는 한참 동안 멍해져 있었다.
그때, 나를 안았던 팔의 힘을 서서히 푸는 연호.
나는 연호의 팔 힘이 서서히 풀려가자,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봤다.
그리고는 서서히 연호와 간격을 넓혀가면서
연호에게 얘기했다.
"연호야 잘 지냈지?"
연호는 내 말에 미소를 짓더니,
무거운 말투로 나에게 얘기했다.
"아니.
잘 지냈을 리가 없잖아."
이 말 한 마디에,
순식간에 나는 온 몸에 있던 긴장이 쫙 풀렸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는 눈물이 아래를 흘러내리자,
앞에서 보고 있는 연호가 생각나서 얼른 뒤로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 얼른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는데,
그때 내 등 뒤에 있던 연호가 내 어깨를 잡더니
내 등을 돌리게 한다.
나는 연호의 손길에 뒤로 돌았는데,
연호는 다시한번 내 어깨를 감싸 안아줬다.
"그만 좀 울어라.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 어떡할래?
이제 우리가 오늘 보는 게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너를 지금 이렇게 부르는 것도 마지막일지 몰라."
나는 연호의 말에 뿌리쳐서 당당하게 얘기할 수도 없었다.
연호도 현재 억지로 자신을 억누르면서 얘기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나 또한 연호의 행동에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서 나는 연호를 계속 붙잡고 싶었지만,
행동으로는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나를 안았던 손의 힘을 스르르 풀더니,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내미는 연호.
나는 연호가 손을 내밀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내 연호는 머뭇거리는 내 손을 꽉 잡더니 얘기한다.
"오늘 하루, 시간 괜찮아?"
연호는 슬프면서도 기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 또한 애써 태연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연호는 내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들도 구경할 수 있어 좋았지만,
그 간 하지 못했던 많은 얘기들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연호와 걸어 다니면서 수많은 곳을 보고 얘기했지만,
아직도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곧 있으면 헤어질 시간인데,
하는 마음에 아쉬움만 앞서갔다.
하지만 속마음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 채,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오, 오늘 고마웠어."
기차역에 도달하려고 하자,
나는 먼저 연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만약 연호가 기차역 바로 앞까지 배웅해 준다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나 그럼 진짜 갈게!
나중에 또 연락해서 보자........"
나는 끝말을 흐리면서 얘기한 뒤, 등을 돌렸다.
그런 다음,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인 채,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팔이 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내 몸을 끌어안자,
처음에는 화들짝 놀랐었다.
하지만 이내 그 사람이 연호임을 알고,
몸에 주고 있던 힘을 조금씩 풀어갔다.
그 순간,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연호의 목소리.
"보고 싶을 거야."
연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이더니,
이내 나를 안았던 팔을 서서히 풀어준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나와 거리를 넓혀간다.
나는 연호의 모습에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면서 뒤를 돌았다.
그리고 앞만 보고 가려는데, 뒤에서 연호의 발소리가 들려
조금씩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연호는 등을 보인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등을 보인 채로 걸어가는 연호의 모습에
약간은 쓸쓸함을 느끼면서, 한참 동안 사라지는
연호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기차역으로 돌아와야 했다.
기차를 타면서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왠지 모를 허전함에 비어있는
옆 좌석을 보면서 가야 했다.
그 뒤로 기차가 도착지에 도달했을 때,
힘겨운 발걸음으로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한참 동안을 연호에 대한 생각만 한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다니면서 지루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가 학교가 끝날 시간 쯤 되었을 때,
나는 가방을 매고 집으로 가려는데,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를 부르는 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호한테서 전화 왔어?"
연지는 나와 항상 같이 다니면서 연호에 대한
안부를 가끔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휴대폰을 꺼내본다.
여전히 부재중전화나,
메시지가 온 흔적 없이 깨끗한 휴대폰.
"휴."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어?"
나는 휴대폰만 뚫어지게 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뒤를 돌아봤다.
"아아악~!!"
뒤를 돌아보자마자,
보이는 사람은 귀를 막고 있는 신 형민이었다.
"무슨 귀신 봤어?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인상을 찌푸리면서 귀를 막고 있던 신 형민은
이내 조금씩 자신의 귀에서 손을 떼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 쪽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한숨과 함께 얘기한다.
"아직도 인가 보네?"
"........됐으니까, 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갈 길이나 가!"
"뭐? 왜 그렇게 화를 내?"
신 형민은 태연하게 얘기했지만,
듣는 나에게는 기분 나쁘게 들렸기에,
나는 한껏 목청을 높이면서 억지로 신 형민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신 형민이 먼저 가버리고,
나는 한숨을 쉬면서 연지에게로 다시 돌아왔을 때,
연지는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직도 연락하고 지냈네?"
"뭐, 뭐가?"
"신 형민이랑."
"........뭐, 뭐 별 사이도 아닌데 뭐 어때........"
연지의 말과 함께
신 형민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호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항상 내가 옆에 있어줄게.'
나는 그 말과 함께 신 형민의 행동들이 떠오르자,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연지는 그런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보더니,
이내 나를 툭툭 친다.
"아, 맞아! 나 살 거 있었는데.......같이 가자!"
"그, 그래."
나는 집에 들어가면 마땅히 할 것도 없고,
계속 연호에 대한 생각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일까 봐,
흔쾌히 연지의 제안을 승낙했다.
나는 그렇게 연지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많은 얘기들을 하고,
또 연지가 필요한 여러 가지 재료들을 샀다.
그리고 연지의 짐을 같이 나눠 들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연지가 내 팔을 툭툭 친다.
"아리야, 내 짐 좀 가지고 있어 봐, 내가 아이스크림 사올게."
"아이스크림? 알았어."
나는 연지의 말에 흔쾌히 연지의 짐을,
짐을 들지 않은 다른 한 손에 들었다.
그리고 연지가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세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자, 여기."
그때, 연지는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와,
나에게 하나를 건네준다.
"고, 고마워."
나는 여전히 멀리 있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얘기했다.
"뭐해? 그러다 아이스크림 다 녹겠다."
한동안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멀리 있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연지가 내 손에 들려있는 아이스크림콘을
가리키면서 얘기했다.
나는 그제 서야 점점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보여서,
얼른 한 입 베어 물면서 앞으로 걸어갔는데........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는 남자의 얼굴.
그 남자의 얼굴은 연호의 얼굴과 아주 흡사해보였다.
나는 연호와 비슷해 보이는 남자가 눈앞에 있자,
손에 점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콘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 저 남자......."
연지도 나와 걸어가는 도중에 그 사람의 얼굴을 발견했는지,
놀란 얼굴로 그 남자가 걸어가는 쪽을 가리킨다.
그 남자는 이내 우리 쪽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자, 잠깐만! 연호야!"
나는 무심히 지나치는 남자의 모습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 한 복판에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남자는 놀라서 움찔거리지도 않고,
멈추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멀어져 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는데,
그때 내 손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연지가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연호일 수도 있잖아. 우리 한번 맞는지 확인해보자."
"자, 잠깐만."
나는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운 생각에 머뭇거렸다.
혹시 연호가 아니게 되면 또 며칠 동안을
슬퍼하면서 지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꾸만 멀어져 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이대로 놓치면
더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남자를 따라가려는데,
옆에서 내 손을 잡고 있는 연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연지는 연호가 없어진 뒤로 나를 많이 걱정해줬는데,
만약 그 사람이 연호가 아니게 되면
더 큰 걱정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다른 핑계거리를 생각하면서
연지의 손을 뿌리쳤다.
"여, 연지야. 미안해. 나 갑자기 들려야 할 곳이 생각났어."
"뭐? 갑자기 어디!"
나는 연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재빠르게 그 남자의 뒤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 남자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번외2
나는 그 후로 일주일동안 평상시와 똑같이
학교와 집을 번갈아가면서 생활했지만,
머릿속은 이상하게 뒤엉켜가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연호와 비슷한 사람의 뒷모습만 떠올랐다.
결국 나는 연호에 대한 생각 때문에,
평범한 생활에서 나와 연호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엄마나 주위 학생들에게
연호가 전학 간 학교 위치를 자세히 물었다.
연호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찾아가려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다행이 버스 한번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연호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장소를 알게 되자,
하루 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고 곧장 연호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다.
굳은 다짐을 하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그때 옆집에서 신 형민도 나오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신 형민의 모습에 귀신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얘기했다.
"뭐, 뭐야! 네, 네가 왜 지금 나와?"
"왜, 나는 지금 나오면 안 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마치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사람처럼 말을 더듬고 있었다.
내 행동에 유심히 살펴보던 신 형민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뭐 잘못했어? 아니면, 오늘 또 무슨 일 꾸미러 가는 거야?"
"꾸, 꾸미러 가다니! 그런 거 아니니까, 넌 네 볼일이나 보러 가!"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신 형민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그리고 연호가 있는 학교로 바로 갈 수 있는 버스를 기다리러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버스 특유의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곧바로 내 옆을 스치고 가버리는 버스 한 대.
나는 버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바로 내가 타야하는 번호판이 붙어있었다.
나는 오로지 저 버스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전력질주하며 달렸다.
"잠깐만요!"
나는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크게 소리쳤다.
내 우렁찬 목소리를 들은 건지,
기사아저씨도 움직이지 않고 정류장 앞에 멈춰 있었다.
나는 자상한 버스기사아저씨 덕분에,
다행히 버스 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에 타자마자 전부 나를 향한 이상한 시선들.
나는 방금 전에 크게 소리친 것 때문인지,
민망함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로 얼른 빈자리에 가서 앉아야 했다.
내가 앉자마자 출발하는 버스.
나는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부터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눈이 스르르 감겨왔다.
'따르릉-'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게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내 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휴대폰 액정을 확인하는데 '신 형민'이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액정에 뜬 이름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전화를 받으려고 폴더를 열었다.
하지만 열자마자 끊겨버린 휴대폰.
무슨 일 있나?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잠시 옆으로 돌리려는 순간,
내가 가고자 했던 학교 이름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학교 이름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놓칠세라 아저씨에게 큰 소리로 얘기했다.
"아저씨! 잠깐만요!
차 세워 주세요!"
'끼익-'
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버스를 멈춰 세우는 기사아저씨.
나는 덕분에 연호가 다닌다는 학교 앞에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일단 오기는 왔는데, 연호를 어떻게 만나야 되지?"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봤다.
휴대폰을 보면서도 방금 전에 누가 전화 왔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연호에게 먼저 전화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었다.
"일찍 나오니까 기분 좋다,
우리 이제 어디 갈까?"
그때, 어떤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여학생의 목소리에 분명 가까운 학교인
이곳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
그 여학생 쪽을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인
여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옆에 남자가 서 있는 듯 보였지만,
여자에 가려져 있어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는 저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들리는 남학생의 목소리.
"피곤하다.
그냥 아무 데나 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남학생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여학생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저 지나치는 사람이라
신경 쓰지 않고 있던 학생이,
연호와 닮은 얼굴 형태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연호와 닮은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서 보이자,
놀란 나머지 그 남학생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 남학생의 팔을 꽉 붙잡았다.
"아! 뭐야!"
그러자 짜증 섞인 말과 함께 나를 밀쳐버리는 남학생.
나는 남학생의 손힘에 의해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은 약간의 소리와 함께
맨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는데........
그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던
남학생 또한 놀란 건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본다.
"어?"
넘어지자마자 바로 밀려오는 통증에
나는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때, 위에서 들려오는 남학생의 목소리.
나는 놀란 듯 얘기하는 남학생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누나?"
"누, 누나?"
"누나 맞지?"
'누나'라는 말에 놀란 듯 재차 물어보는 여학생.
그리고 연호를 닮은 남학생 또한 누나가 맞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나에게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나는 연호와 비슷한 얼굴과, 연호와 비슷한 말투,
그리고 똑같은 학교에서 나오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 둘이
누나와 동생의 관계라는 사실까지도 알고서
'누나'라는 호칭을 쓰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연호임을 알 수 있었다.
'누나'라는 호칭에 가슴이 따끔거려오기는 했지만,
이어서 보여주는 연호의 행동에
그런 사소한 것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누나,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아, 그냥.........네 소식도 궁금하고......."
"연호야, 너 누나도 있었어?"
나와 연호 둘이 얘기하고 있을 때,
중간에 우리 둘 사이가 궁금한지 계속해서 물어보는 여학생.
그때, 갑자기 연호의 손이 꼼지락거리는 게 보이더니,
슬며시 연호가 여학생의 손을 잡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놀라서 바로 연호를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연호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얘기했다.
"누나, 내 여자 친구야."
'여자 친구'라는 말에 옆에 있는 여학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연호를 바라봤다.
나 또한 뜻밖의 연호의 말에
무거운 물체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는데........
그때, 내 어깨 쪽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바로 앞에는 무표정으로 서있는 연호와,
놀란 표정으로 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나는 그 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조금은 불안해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난 건지,
바로 옆에서 신 형민의 얼굴이 보였다.
".......뭐, 뭐야? 네가 어떻게 여기........."
"야, 오랜만이다?"
조금은 험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연호에게 얘기하는 신 형민.
하지만 신 형민의 말에 연호는 반응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 근데 네가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신 형민은 또 할 말이 있는 듯 얘기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나는 현재 신 형민이 여기에 왜 있는지부터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신 형민이
고개를 들어 딱딱한 말투로 연호에게 얘기했다.
"그동안 연락 한번 없더니,
여자 친구까지 생기고........
그새 마음 정리한 거야?"
신 형민은 무거운 목소리로 얘기하면서,
내 어깨 위에 얹었던 팔을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놓는다.
"......."
그런데 신 형민의 질문에도 아무 대답이 없는 연호.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연호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순간 연호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쳐버렸다.
연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조금은 망설이는 듯 보였지만,
이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연호의 표현에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겠네."
그 말과 동시에 내 손을 잡는 신 형민.
그러더니 연호가 있는 쪽과는
반대방향으로 나를 데려간다.
나는 신 형민의 손에 의해 끌려가면서도,
방금 전 연호가 했던 행동 때문에
고개가 저절로 연호 쪽으로 향해갔다.
마지막에는 연호가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얘기하면서
뛰어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연호가 달려오려고 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나에게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나는 연호가 정말로 나를 잊어버린 것만 같은 생각에,
조금씩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순간, 갑자기 연호가 잡고 있던
여학생의 손을 놓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연호는 아무 말 없이 그 여자를 지나쳐 갔다.
지금 행동 보면 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왜 내 앞에서는 다정하게 행동한 거지?
나는 그 둘의 지금 행동과 처음에 나에게 보였던 행동이
이상하리만큼 맞지 않는 느낌이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야?"
그때,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신 형민의 목소리.
나는 신 형민의 목소리에 연호가 떠난 쪽을 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려 신 형민을 바라봤다.
하필 그때 또 눈이 조금은 빨개져 있어서 그런지,
신 형민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신 형민은,
갑자기 나지막한 말과 함께 나를 두 팔로 꽉 끌어안아줬다.
"힘들어 하지 마. 내가 연호 없는 빈자리.......
채워줄게."
#.번외3
연호가 떠난 뒤로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서,
한동안 누군가의 품에 안긴 상태로 가만히 있어야 했다.
"아기 같이 굴지 말고, 얼른 와.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나에게 손을 내미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이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자,
그 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연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
내가 연호 생각 때문에 잠시 멍해져서 가만히 있을 때,
갑자기 내 손을 잡는 신 형민.
"생각하지 마.
일단 눈앞에 보이는 사람한테 한 발짝 다가가는 거야."
그 말과 동시에 뒤를 돌아 걸어가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말에 조금씩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는데,
신 형민은 그걸 느끼지 못한 건지 뒤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신 형민이 내 얼굴을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 열을 식히기 위해,
다른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가 신 형민에게 했던 질문이 갑자기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 근데 네가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그러고 보니 언제인지 모르게 툭 튀어나와 버린
신 형민의 존재가 참으로도 궁금했다.
나는 미스터리한 신 형민의 등장을 걸어가면서 생각하다가,
결국은 나보다 앞서 가고 있는 신 형민의 등을 툭툭 쳤다.
그러자 가던 발걸음을 멈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신 형민.
"왜, 힘들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해 봤는데.......
네가 여기까지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아, 그거?
.........실은 아침에 마주쳤을 때부터 네 행동이 이상했거든.
무슨 찔리는 행동이라도 했나?
그런 생각 때문에 무슨 일 꾸미러 가는지 미행했지."
"꾸, 꾸미러?!"
"찔리지 않는 사람이면,
옆집 사는 사람 한두 번 마주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놀라진 않았을 거 아니야?"
신 형민의 말을 듣는 순간,
아침에 신 형민이 그저 옆집에서 나온 것뿐인데,
내가 놀라면서 과민반응을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그와 동시에 큰 실수였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바로 앞에서 들리는 신 형민의 목소리.
"그렇게 좌절할 거 없어,
그래도 내 덕분에 종착지에서 제대로 내릴 수 있었잖아?"
"네 덕이라니? 네가 뭘 했다고......."
나는 신 형민의 말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 주장을 이어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한 장면.
그것은 내가 버스에서 졸고 있을 때였다.
그때, 졸고 있다가 연호의 학교를 지나칠 뻔 했는데,
신 형민이 전화한 덕분에 잠에서 깨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던 장면이 생각났다.
"생각났어?"
신 형민의 말에 전화로 나를 깨웠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연호, 그리고 그 여자와 얘기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장해서 나를 구원하다시피 해준
신 형민의 행동이 떠올랐다.
신 형민이 했던 행동이 떠오르면서
한 편으로는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신 형민이 나타난 뒤부터
제대로 된 얘기 한 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연호와 헤어져버린 것이 계속해서 아쉬웠다.
나는 이제 다시는 연호를 보지 못할 것만 같은 생각에
슬픔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내용을
무작정 입 밖으로 꺼내어, 신 형민에게 따지듯이 얘기했다.
"너 저번처럼 나한테 접근하려고 한 거 아니야?
.......나, 나 여기에 오는 것 같아 보이니까
연호한테 미리 연락했다거나 해서
연호랑 저 여자랑 어떻게 부딪힐 상황 만들어 놓고,
일부러 내가 목격하게 만든 거 아니야?"
"뭐?"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옳은 말인지,
아니면 틀린 말인지에 대한 구분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뱉고 있었다.
내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신 형민.
신 형민의 황당해하는 표정에도 그치지 않고 얘기하던 나는,
갑자기 울분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하려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 순간, 신 형민이 나를 살포시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신 형민의 행동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까?"
그때,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얘기하는 신 형민.
나는 신 형민의 따스함에 나도 모르게 손을 잡고야 말았다.
신 형민의 따뜻한 손 때문인지, 나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신 형민이 인도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렇게 신 형민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집.
신 형민은 마지막에 잘 자라는 말을 조용하게 한 뒤,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런 신 형민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서 먼저 옷을 갈아입기 전 목욕을 하고,
그 다음에 잠옷으로 갈아입으려는데.......
그 순간, 신 형민이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
지금 신 형민의 행동도 떠올랐지만,
연호의 얼굴이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을 괴로워하다가,
다른 일을 하면 조금은 연호가 내 머릿속에서
지워져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으로 들어가,
무작정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잠시 후, 컴퓨터가 켜지고 나는 인터넷을 켜,
사이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에 정신이
집중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는 순간, 갑자기 내 이목을 끈 사이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학생들 일자리를 구해주는 사이트였다.
나는 그 사이트로 들어가, 일자리를 구하는
몇 곳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때 식당에서 일거리를 구하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곳에 머물면서 그 식당의 조건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이내 위쪽에 써져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 식당에서는 다행이도 나에게 한번 와보라고 얘기해주었다.
차라리 바쁘게 생활하면, 연호는 조금씩 잊혀가겠지?
나는 그 생각에 일단 안도하듯이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쓰라려왔다.
그 뒤로 다음 날이 되고,
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끝마친 뒤,
연지와 얘기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너 학교 갔다가 바로 그 식당에 일 하러 가는 거야?
그럼 피곤하지 않겠어?"
연지에게 오늘부터 식당에서 일한다는 말을 꺼내자,
바로 연지는 걱정스러운 듯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나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면서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 있으면 머리만 더 복잡해지는 것 같고......."
"연호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내가 말을 이어나가려던 순간, 옆에서 무거운 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연지의 목소리에 놀라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 동안 멍하니 연지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연지에게 얘기했다.
"나 이러다 시간 늦겠다.
나 먼저 갈게!"
나는 연지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한 뒤,
빠르게 식당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식당 안에는 인자하게 생기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나는 먼저 아주머니에게 인사한 뒤,
조금은 떨리는 기분으로 얘기를 이어나갔다.
다행이 아주머니는 나를 좋게 봐주시는 듯했고,
그와 동시에 아주머니 입에서는 긍정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학생, 오늘부터 일할 수 있어?"
"네? 정말요? 당연하죠!"
나는 기쁜 마음에 크게 소리쳤고,
그 뒤에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 주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는 벽에 걸려있는 앞치마를 입었다.
그런 다음, 손님들이 찾아오면 바로바로 물을 갖다 주고,
또, 손님들이 시키는 음식들을 받아 적었다.
그 뒤에 음식이 나오면 손님들의 식탁에
바로바로 음식을 가져다주기에 바빴다.
연호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바쁘게 일하다 보니,
어느 새 시간을 훌쩍 지나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학생, 수고했어."
몇 시간 만에 겨우 끝난 일.
나는 아주머니에게 인사한 뒤,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바깥쪽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오는 듯, 쏴
아-쏴아-하는 빗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혹시나 빗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많은 비가 내릴 모양인지,
굵은 빗줄기가 하늘에서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우산이 없던 나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치지 않을 비처럼 보여서,
머리만 손으로 대충 가린 뒤 앞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아가씨."
그때,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하필 비가 오고 있고, 더군다나 주위는 캄캄하고
사람까지 없어서 불안한 마음에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오늘부터 이곳에서 일 시작했다면서?"
내가 일 시작한 건 어떻게 알고 있지?
서, 설마 날 따라다니는 스토커 아니겠지?!
나는 여러 상상들을 하면서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려고 했다.
그 순간, 내 손을 잡는 옆에 있는 정체 모를 남자.
"소, 소리 지를 거예요! 어, 얼른 이 손 놔요!"
나는 항의하듯이 얘기했지만,
정작 무서운 나머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들리지 않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그 남자의 손에 잡혀 있는 채로
앞만 보고 달려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반대편에서
내 손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에 동그랗고 기다란 물체를
쥐어주는 느낌은 들었다.
어? 이상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남자가 내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나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타인이 내 손을 잡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자,
고개를 아래로 숙여 손 쪽을 봤다.
타인의 손은 보이지 않았지만, 우산 하나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무서워 할 거 없어, 우산 전해주러 온 거니까."
손에 들려있는 우산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들려는 순간,
신 형민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아까보다는 굵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는 신 형민의 목소리에 무서움을 떨쳐버리고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러자 자신이 쓰고 있는 우산을 내 머리 위에 받쳐주고 있는
신 형민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여기 온 거 당연히 모를 테니까,
음성변조해서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었는데.
역시, 넌 날 실망시키지 않을 줄 알았어."
"뭐, 뭐?!
.......진짜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나는 처음에는 놀라서 화도 났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까지 와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커져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여기까지 와?
여기까지는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나는 이상해서 신 형민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내 뜨거운 시선을 신 형민도 느낀 건지,
화들짝 놀라면서 나에게 얘기한다.
"또 무슨 상상을 하는데,
그런 음침한 눈빛으로 보고 있어?"
"으, 음침한?!
........흐, 흠. 어쨌든 너 여기까지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난 너한테 한번도 알려준 적 없는 것 같은데."
"아, 가는 길에 네 친구를 만났거든.
매일 둘이 같이 다니는 모습만 보이다가
혼자 가는 모습이 이상해서 물어봤더니
네가 오늘부터 일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 장소 물었더니, 자세히 알려줬어.
나중에 시간 되면 한번 찾아갈 기회였는데,
하필 오늘 비가 오네?
네 집에서는 아직 안 들어왔다고 하고........
결국 비까지 오니까 비 맞고 있을 네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이제부터 일 하던 도중이나, 끝나고 나서,
필요한 일 있거나 외로우면 항상 나한테 연락해."
이런 말을 연호가 나한테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신 형민의 따뜻한 말에 한참 동안
아무런 말과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석고상이 된 것처럼 신 형민을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그때, 앞에서 신 형민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이렇게 있다가는 내일 아침까지도 집에 못 가겠다."
신 형민의 말에 발을 떼려는 순간,
갑자기 힘이 풀렸던 건지,
나도 모르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쓰러지듯이 신 형민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갑자기 왜 그래?"
나는 신 형민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도 대답하지 않고,
몇 분 동안을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 형민의 따뜻한 말투에
내 차가운 마음도 서서히 녹아내렸던 건지,
눈에서는 저절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우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신 형민의 품에 더욱더 파고들었다.
신 형민은 내 행동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있던 자세 그대로 몇 분 동안을 가만히 있었다.
나는 심적으로 힘들고 지쳐 있어서 그런지,
신 형민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 포근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러면 나쁜 사람 된다는 건 아는데........
나 너한테 기대도 돼?"
"........"
나는 신 형민의 품이 너무 따뜻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신 형민에게 얘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신 형민은 내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신 형민이 아무 대답이 없자,
얼른 이 말을 취소하려고 신 형민의 몸에서
내 몸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 순간, 자신의 팔로 내 몸을 꽉 끌어안아주는 신 형민.
신 형민이 아무 말 없이 갑자기 나를 끌어 안아주자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신 형민이 한 행동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래서 나 또한 말없이 신 형민의 몸을 감싸 안아줬다.
신 형민은 그 후로부터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건지,
항상 내 옆에 있어줬다.
그렇게 신 형민과 함께한지도 며칠이 지나갔다.
나는 평상시와 똑같이 신 형민과 얘기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잠시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둘러보려는 찰나,
왠지 익숙한 남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익숙한 남성의 얼굴에,
발은 움직이면서도 시선은 계속
그 남성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뭐해?"
"어? 아, 아니."
신 형민의 말에 고개를 다시 돌리려는 찰나,
그 남성의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나는 그 순간, 얼어붙은 듯이 움직일 수 없었다.
단순히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닌, 그동안 많이 그리워했던 연호였다.
"어? 연......."
나는 나도 모르게 연호가 있는 쪽을 향해 외치려고 했다.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연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면서 나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연호는 혼자가 아니었다.
연호 옆에는 어떤 여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 여자와는 꽤 다정해 보이는 듯했다.
연호 옆에 있는 여자는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때, 신 형민도 연호를 부르려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더니 이내 연호가 있는 쪽을 봤는지,
연호와 옆에 있는 여자를 보면서 얘기한다.
"어딘지 모르게 너랑 좀 닮았다?"
신 형민의 말에 나는 그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은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연호가 내 앞까지 다가오더니
웃는 얼굴로 나에게 얘기한다.
"오랜만이야."
연호가 편안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어오자,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연호를 바라보고 있을 때,
연호는 나에게 인사만 한 뒤, 나를 닮은 여자와 함께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연호가 등을 보인 채로 사라지려하자,
붙잡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연호.
그러더니 연호는 내게 짧은 인사를 남긴 뒤 스쳐지나갔다.
'이제 우리 여기서 그만하자' 라고 선언하는 듯한
연호의 짧은 인사에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누나, 안녕."
이게 우리의 끝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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