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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의 왕국
“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왕국과 영광의 왕국을 다 같이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은혜의 왕국은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자비하신 중보자 이심을 지적한 다음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 16)고 말하였다.
은혜의 보좌는 곧 은혜의 나라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보좌가 있다는 것은 나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1-2)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침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전파한 천국(하나님 나라)은 은혜의 왕국(나라)이다.
“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눅 17:20-22)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물었다. 갈릴리 사람들은 침례 요한의 전파한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는 기별을 전한 지도 벌써 삼년 이상이 지났고, 예수께서 전하는 똑 같은 기별을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바리새인들은 왕국이 설립되었다는 아무런 증거를 보지 못하였다. 요한을 거절하고 매 발걸음마다 예수를 반대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가 거짓 선지자라고 암시하는 질문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표로 세속적 권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 위해 이곳 저곳을 바라보지 말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가 도래한 것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하다.
바리세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눅17:22-24)
"때가 이르리니"의 때는 미래에 있을 영광의 나라가 세워지는 때이다.
예수는 은혜의 나라가 이미 제자들의 마음속에 세워져서 작용하고 있다고 확언하였다(눅17:21). 그러나 이제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그의 가르침의 주제라고 잘못 결론을 내린 영광의 나라는 아직 미래에 있다고 경고한다. 즉 "[지금] 너희 안에"와는 대조적으로 "때가 이르리니"라는 말을 쓰고 있다.
"보고자 하되"는 인자가 임할 때에 세워질 영광의 나라를 가리킨다(마 25:31).
"보지 못하리라"는 말은 예수께서 다시 올 때(재림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 나라(은혜의 왕국)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 3:20)
► 영광의 왕국은 언제 어디에 건설되는가?
“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시 11:4)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십사만 사천이 부르는 새 노래는 이들 외에는 아는 자가 없고 이들은 땅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땅에서”라는 말속에는 이들이 지금 땅이 아닌 하늘에 있다는 의미이다.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이 땅에서”가 아니라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 즉 “처소가 예비된 곳”이다.
► 구약의 선진들의 믿음과 소망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구약시대의 믿음의 선진들도 이 땅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 즉 하늘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다. 하나님께서 예비한 처소는 새 예루살렘 성이다.
◆ 그리스도가 언제 한이레의 언약을 굳게 맺은 적이 있는가?
[ 반증 ]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마 22:1-10)
첫 번째 초청 – 십자가 전의 유대인
잔치에 오라는 초청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해 주어졌다. 우리 주께서는 열 두 제자를 보내시고 그 후에 칠십인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하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요청을 하셨다. 그러나 그 초청에 유의하는 사람이 없었고 청함을 받은 자들은 오지 않았다.(마22:3)
“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마 10:5-7)
두 번째 초청 – 십자가 이후의 유대인
그리하여 다시 종을 보내어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마22:4) 하는 기별을 보냈다. 이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유대인들에게 보낸 기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나라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에게 보내 주신 복음을 거절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음을 몹시 멸시하는 태도로 거절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구원이 제공되었다는 것과 영광의 주를 거절한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에 격분하여 기별을 전하는 자들을 대적하였다. 그 때에 “큰 핍박”(행 8:1)이 있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옥에 갇히게 되었고 스데반과 야곱과 같은 주님의 사자들 중 몇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그리하여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자비를 완전히 거절해 버렸다. 그 결과가 비유 가운데 예언되어 있다.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마22:7)살랐다. 유대 민족에게 선고된 형벌이 AD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백성들이 열방에 흩어진 사실로써 성취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된 대로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단 9:24) 유대인을 위하여 2300주야에서 떼어낸(할당된) 70이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십자가 전(공생애 3년 반)과 십자가 후(3년 반)인 1이레의 기간의 약속을 굳게 지켰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2300주야에서 유대인을 위한 70이레가 끝이 나고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주워진 은혜의 기간도 할당된 시간이 지나면 심판이 진행될 것이다.
이 심판이 끝이 나면 각 사람이 자신이 행한 대로 상벌을 받을 것이다.
세 번째 초청 – 이방인
잔치에 오라는 세번째 초청은 복음을 이방 사람들에게 보낼 것을 표상한 것이다. 임금은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고 말하였다.
첫댓글 일부 개혁주의자들과 특히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내용인데 다니엘서의 적그리스도를 묘사한 내용을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점은 절대 인정할수가 없네요. 개혁주의의 중생의 교리와 성화의 교리는 너무도 귀한 영적유산이지만 개혁주의를 너무도 맹종하면 잘못된 부분들까지 진리로 단정하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