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선사유적지. 몽촌토성을 다녀와서
최옥화님
평소 같으면 쉬는 날 엔 늦잠을 자고 있을 시간에 아이들이 깨워 준비물을 챙겨서 서둘러 약속장소로 갔다. 오늘의 기행지 암사동 선사유적지와 몽촌토성을 답사하기위해서이다. 역사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체험학습 겸 역사에 관해서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여행을 결심했다. 물론 겸사겸사 아이들만 보내는게 못내 아쉬워 동행길에 올랐다.
노원역에서 일행을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40분남짓 가다가 도착한 곳은 암사동 선사 유적지이다. 아이들은 인솔하시는 선생님들과 함께 입구에 들어서자 오늘의 안내자이자 역사가이드 선생님이신 오하라미 강사님을 소개해 주셨다. 이름이 참 특이했다. 강사님의 인도로 선사유적지 안내도를 살펴보고 일정을 이야기 해주셨다. 먼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구분은 문자로 기록 돼 있으냐 없느냐로 구분 됀다고 했다. 이 유적지가 발굴된 것은 1925년 홍수로 인해 한강 근처에 쌓여 있던 모래 언덕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토기들이 발견되었단다. 총 넓이가 78,793제곱미터인 땅에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집을 되살려 놓은 곳과 전시관을 통해서 생활모습을 살펴보기로 했다.
인간은 진화인가 창조인가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지만, 환경이 발달해 가는 과정에서 진화됐을 거라는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은 종족보존을 하는 것은 동물과 같지만, 사고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동물과 달리 만물의 영장류인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선사시대 생활상을 살펴보기 위해 전시관과 움집을 살펴보기로 했다. 신석기시대보다 더 오래전엔 사람들이 동굴에서 살다가 점자 움집을 지어 살면서 생활이 낳아진 것 같다. 동굴에서 살던 구석기 시대엔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었다 해서 뗀석기 라고 하고 ,신석기 시대엔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들었다 해서 간석기라고 한다. 신석기 시대엔 집도 짓고 ,불을 사용했고, 사냥을 하는 방법도 안ㄹ고, 물고기도 잡고, 옷감을 짜는 기술이 발달 한 거다. 그 시대에 사용했던 물건은 갈판과 갈돌(요즘믹서기), 뼈괭이, 그물추, 방추자, 낚시바늘, 조개가면, 조개팔질 등등이다. 그중 선사시대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는 만드는 방법이 정교했다. 테와 테를 단단하게 연결시키고 겉을 덫 붙이고 아래쪽은 뾰족하게 만들고 빗금 무늬를 넣었다. 빗금을 넣은 이유는 그릇을 잡을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 했던 거고, 밑이 뾰족한 이유는 강가나 모래에 파묻고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맑은 날씨에 약간 쌀쌀하긴 했지만 햇살은 너무도 좋았다.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움집들을 둘러보고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었다.
과연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을 행복한 사람들 같았다.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에 20분 정도 차를 타고 두 번째 찾아 간 곳은 백제 유적지인 몽촌토성이다. 백제의 문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라를 세운 사람은 주몽의 아들 온조 이다. 온조는 한강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워 부강해졌으며 나라 이름은 ‘십제’라 했고, 나중에 형인 비류의 백성들을 거두어 다스리면서 나라 이름을 ‘백제’라 했다. 그 이후 한강을 차지하려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을 떠나 금강 주변의 공주로 이주 했으며, 다시 한강을 되찾기 위해 신라와 손을 잡고 한강 유역을 되찾았으나 신라의 배신으로 공주에서 조차 배신당한 뒤 남쪽으로 내려와 마지막 수도인 부여로 정했답니다. 백제가 수도를 공주로 옮기기 전까지 백제가 수도를 공주로 옮기기 전까진 한강 유역에서 생활 하던 때를‘한성시대’라 부르고, ‘한성시대’에 궁궐이 있던 곳을 ‘위례성’이라고 부른다. ‘위례성’의 위치는 몽촌토성이냐 풍납토성이냐 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다른지만, 그중 하나인 몽촌토성을 살펴보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올림픽 공원을 지나 우리 일행은 몽촌토성을 향했다. 올림픽 공원에서 바라본 성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봄에 피는 철쭉과 따뜻한 날씨에 어울리는 분수 등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선생님께선 분수에서 쏟아지는 물이 단순하게 보기 좋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이 물은 ‘해자’라고 하는데, 적이 침입 했을 방어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해자를 건너 북쪽으로 가파른 토성을 올라갔다. 북쪽으로 가파르게 성이 쌓인 이유도 적의 침공을 방어하는 예라고 했다. 북쪽 토성에서 내려다 본 위례성의 경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입이 벌어졌다. 탁 트인 구릉지에 저 멀리 보이는 유채꽃과 보리밭은 봄이 절정에 달하는듯했다. 솔직히 나는 선생님의 역사 설명보다는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되어 더 기분이 좋았다.
소나무 그늘에서 백제시대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우리는 남쪽으로 내려가다 높이가 2미터쯤 돼는 방어용 목책도 둘러보고 유채꽃 향기도 맡으면서 움집터가 보존돼 있는 곳으로 계속 옮겨갔다. 그곳에는 움집터, 저장구덩이, 생활상이 엿보이는 미니어쳐 등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몽촌 역사관으로 자리를 옮겨 내부를 둘러보았다. 토성에서 발굴된 유물과 백제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거기엔 돌절구, 돌무덤, 사용했던 무기, 낚시 바늘, 칠지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무녕왕릉 출토석수, 몽촌토성 출토 말 재갈 등도 있었다.
우리는 역사관을 나와 선생님께서 들려주는 백제역사를 다시 한 번 새겨듣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모두 신이 났는데, 나는 서서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평소 운동을 안 해서 운동 부족인 것 같다. 그리고 다음에 역사 기행을 할 때는 미리 그 지역에 대해서 알아 보고 오는 것도 좋을 것 이라는 생각을 했고, 아이들에게 백 번들려주는 것보다 한번 찾아 가는 것이 더 중요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과 아웅다웅 살면서 서울 나들이 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이런 기회가 있어서 나름대로 좋았다. 이렇게 가까운 땅을 밟기가 어렵구나 하는 것이 새삼 느껴지기도 했던 참으로 유익한 시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