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도 아닌것이, 더더욱 도깨비불도 아니것이 파르스름한 보름달빛을 가르며 빙빙돌고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저녁이면 가끔 만날수있는 이 정체모를 불빛은 다름 아닌 쥐불놀이(망월돌리기)를 하는 광경이다.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아닌밤중에 개꼬리만한 불꼬리를 달고 불춤을 추듯 동심원을 그려내는 쥐불놀이.
이런 풍경은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땅 어디를 가든 흔하게 만날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옛날 아이들은 정월 대보름이 되면 못쓰게된 깡통(망우리)을 주워다 양쪽 귀끝에 철사를 꿰어 손잡이를 만들고, 곰보처럼 숭숭 깡통에 불구멍을 내어 쥐불놀이 준비를 했다.
더불어 깡통에 불쏘시개로 관솔이며 솔방울, 짚북세기도 한아름 챙겨두었다.
"불장난 많이 하면 오줌싸, 이놈아!" 어른들의 말씀에도 아랑곳없이 저녁이되면 아이들은 저마다 깡통을들고 집을 나선다.
드디어 보름달이 떠오르고, 휑뎅그렁했던 논배미나 개울가에서는 아닌밤중에 요란한 불잔치가 펼쳐진다.
"망월이야! 망월이야!" 아이들 틈에는 어느덧 까끌까끌 수염이 나기 시작한 늙은 아이도 끼어들고, 불장난하기에는 아직 어린 계집아이도 끼어든다.
쥐불놀이에 이력이 난 아이들은 누가멀리가나 쥐불을 던지기도 하고, 누구불이 큰가 불솜씨를 겨루기도 한다.
그러다 간혹 깡통에서 떨어진 불씨에 머리카락을 태우고, 심지어 논배미 짚가리도 태울지언정 한번시작한 쥐불놀이는 쉬 끝날줄 모른다.
형들이 능숙한 불솜씨를 뽐내는동안 쥐불놀이가 서툰 꼬마들은 언제나 깡통을 돌리는 일보다 눈물 찔끔거리며 후후 불씨 살리는 일이 더많다.
사실 형들처럼 불꼬리를 길게 하는것도 다 경험이 필요한법.
어쨌든 밤이 이슥할 때까지 달빛마당에는 깡통만한 아이들의 작은 보름달이 여기저기 솟아올라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니다.
정월 대보름, 아이들에게 쥐불놀이가 있다면 어른들에게는 쥐불놓기와 달집태우기가 있었다.
본래 쥐불놓기는 대보름 전날인 쥐날에 논밭의 쥐와 해충을 태워버리기 위해 짚풀을 널어서 불을 놓는 풍습인데, 지역에 따라 들불놓기, 논두렁태우기로도 불렸다.
이는 단순히 풍년을 바라는 의식이기도 하지만,이를통해 잡귀와 액을 쫓아낸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쥐불이 어느정도 타는지를 보며 한해농사의 길흉을 범쳤고, 마을과 마을이 서로의 길흉을놓고 쥐불싸움을 벌이기도했다.
달집태우기도 가장 큰 대보름 마을축제였다.
마을마다 달집태우기를 하던 시절에는 대보름날이 되면 마을 장정들이 대나무와 솔가지를 한짐씩 잘라다가 달이 잘 보이는 언덕이나 마을 공터에 달집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달집은 대나무나 소나무등으로 속기둥을 세운뒤, 기둥을 빙둘러 장작과 짚, 생솔가지 등을 쌓아올리고, 맨위에 다락방처럼 달방(달이 보이는 쪽으로 창문도 낸다)을 만든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달방안에 짚이나 새끼줄로 달을 만들어 매달기도 했다.
이 달집은 보름달이 막 떠오를때 불을 붙이게 되는데, 금방 타버리는 것을 막기위해 달집안에는 생나무를 가득 채웠다.
달집을 태울때는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소원을 적은 쪽지를 매달아 함께 태웠으며, 소원대신 이름을 써넣기도했다.
이름을 태우면 액막이가 되고, 소원을 태우며 달님에게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렇듯 옛날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이 '불의 날'이나 다름없었다.
이날의 불은 엄동설한을 녹이고 환하게 봄을 맞이하자는 불이요, 모든 악귀와 병마를 몰아내자는 불이요,
그동안의 불온과 부정을 태워버리자는 불이요, 집안과 자손이 저 불길처럼 일어나라고 기원하는 소망의 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