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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水湖誌)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0편 경양강의 호랑이 20-2🎈
"에라, 모르겠다.
내친 김에 빨리 고개를 넘자."
그는 발길을 빨리 했다.
때는 10월이어서 해는 짧고 밤은 길었다.
무송이 고개 위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이미 산 너머로 떨어진 뒤였다.
'빌어먹을 호랑이는 무슨 호랑이야?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못 올라오는 게지 '
그는 취기가 심해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전립을 벗어서 등에 걸고 옷고름은 풀어 헤쳐 가슴을 드러낸 다음 잡목이 우거진 숲속의 큰 바위로 갔다.
"에라, 아무 데서나 한잠 자고 가자."
무송이 막 잠 들려는 찰라 난데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원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쫓는 법,
바람이 지나가자 숲속에서 눈이 세로 붙고 이마에 흰 점이 박힌 한 마리 큰 호랑이가 뛰쳐나왔다.
무송은 깜짝 놀라 바위 아래로 몸을 굴려 뛰어내리며 몽둥이를 잡았다.
호랑이는 앞발을 꿇고 넙죽 엎드리는 듯 싶더니 앞발을 번쩍 들며 몸을 날려 그대로 무송에게로 달려들었다.
위기의 순간 무송은 엉겁결에 몸을 돌려 피했으나 아까 마신 술이 모조리 식은 땀이 되어 온몸에 흘렀다.
앞발로 허공을 치고 땅에 떨어진 호랑이는 무송이 피한 것을 알자 이번에는 앞발로 땅을 버티고 뒷발을 번쩍 들어 그를 치려고 했다.
무송은 또 몸을 홱 돌려 피하였다.
호랑이는 주홍 같은 입을 벌리고 한소리 크게 어흥 하고 울더니 흡사 쇠몽둥이 같은 꼬리를 번쩍 세워서 무송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무송은 몸을 돌려 피했다.
본래 호랑이가 사람을 잡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앞바로 치고, 뒷발로차고, 꼬리로 때리는 것이다.
호랑이는 세 가지 방법이 안 통하자 주홍 같은 입을 벌리고 울더니 다시 한 번 대들었다.
무송은 곧 두 손으로 몽둥이를 번쩍 치켜 들고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
그러나 잘못 쳐서 옆에 있는 나뭇가지가 뚝 부러지면서 손에 든 몽둥이도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 틈에 호랑이는 몸을 날려 앞발로 공격해 왔다.
무송은 몸을 날려 피하고 재빨리 손에 잡았던 반 토막의 몽둥이를 내던지고 땅에 떨어진 호랑이에게 와락 달려들어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그대로 숨통을 눌렀다.
호랑이는 몸을 바둥거리며 머리를 치켜들고 계속 힘을 쓴다.
그때 무송은 더욱 힘을 다해 호랑이 머리를 억누르며 발로 그 얼굴을 수없이 걷어찼다.
호랑이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으르렁 대며 앞발로 땅을 허우적거려 순식간에 작은 구덩이 하나를 파 놓았다.
무송은 즉시 그 속에 호랑이 입을 쳐박고 왼손으로는 그 머리를 억누르고 오른손으로는 철퇴 같은 주먹을 쥐어 호랑이 머리를 어지럽게 난타했다.
60대쯤 후려 갈겼을 때 그처럼 사납던 호랑이도 눈으로, 입으로, 코로, 귀로, 선지피를 내쏟으며 축 늘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날도 저물었는데 만약에 호랑이가 또 한 마리 나오면 무슨 수로 그놈을 당해내랴.
한시 바삐 내려가야 겠다."
무송은 걸음을 재촉하여 산에서 내려갔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숲속에서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무송은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호랑이 두 마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머리를 치켜들고 벌떡 일어선다.
무송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호피로 옷을 지어 입은 사냥꾼들이었다.
그들은 호랑이가 너무 사나워 잡지 못하고 호랑이 가죽을 쓰고 위장한 채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송은 그들에게 호랑이를 때려잡았다고 말하자 믿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믿으면 올라가 보슈."
사냥꾼들은 믿지 못하고 매복하고 있던 장정들을 불러 횃불을 밝히고 올라가 보니 과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놀라고 기뻐하였다.
그들은 사람을 급히 관가에 내려보내 그 일을 알리고 죽은 호랑이를 묶어서 장대에 꿰어 산에서 내려갔다.
그들이 고개 아래 도착하자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무송을 맞았다.
현감이 그에게 술을 내리고 상금 1천 관을 주었다.
그러나 무송은 받지 않고 말했다.
"소인이 범을 잡은 것은 요행이었지 힘과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었소.
듣기로는 저 사냥꾼들이 호랑이 때문에 현감의 벌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상금 1천 관은 그들에게 내려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현감은 그 말을 듣고 곧 압사를 불러서 그날로 무송을 보병 장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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