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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의 세상과 초도로의 눈
샤르별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는 장치가 있다. 그 장치의 이름이 초도로였다. 초도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고 그 세상의 현상들을 영상에 담을 수도 있었다.
샤르별에는 4차원 문명세계라고 하는 초월적 우주문명이 발달한 세상이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믿는 세상이기도 했다. 지구에서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후세계라든가, 초월적인 현상이라든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식어가지만 샤르별은 반대의 현상이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란 차원이 다른 세상을 의미하기도 하고 영혼들이 살고 있는 사후세계라든가 신들이 사는 신명의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구의 현대인들이 들으면 정신병자 소리를 듣기에 적합한 비웃음거리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샤르별은 지구의 현대문명과 비교할 수 없는 무한이론의 우주첨단 문명을 누리는 주인공들과 어울리지 않게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뚜렷하고, 심지어 보이지 않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4차원 시스템이 계속 발달하고 있으니 그 의미를 설명하고 답하기가 곤란하다.
초도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관찰하고 영상으로 담을 수 있는 장치였다. 지구에도 영혼을 찍는 사진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초도로는 영혼의 움직임이나 신들의 활동을 생 영상으로 담을 수 있고 또 차원이 다른 세상을 관찰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이 갖추어져 있었다.
초도로 영상장치는 안경, 촬영기, 망원경 등의 다양한 용도와 형태로 개발되어 있었다.
초도로 안경을 쓰고 영혼의 움직임이나 이차원(元)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고 촬영기를 이용해서 영혼의 움직임과 이차원의 현상들을 생영상화면으로 담을 수 있었다. 일반 촬영기로 이미 찍어놓은 사진속에 보이지 않던 영혼이나 이차원 현상들이 초도로 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나타나기도 했다.
초도로 망원 장치를 이용하면 샤르별과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이차원 (異元) 세상의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고 그 세상의 존재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샤르비네가 다니는 전문학교에 초도로 영상공학부가 있었다. 초도로 영상 공학부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관찰하고 소통하는 학문을 연구하는 전공 분야였다.
지구에서나 샤르별에서나 보이지 않는 세상의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호기심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을 전문학교에서 탐구하고 그 세상과의 소통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샤르별 사람들의 노력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과의 벽은 해소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르비네의 전문학교에서 초도로 영상공학을 가르치는 책임교수는 쇼시우시란 이름을 가진 여성 러우였다. 우주시간의 나이는 370세에 이르러 샤르별의 표준 나이를 능가한 고령자였다. 샤르별의 표준나이는 350세였고 표준 나이는 샤르별에서 태어난 목숨이라면 누구나 향유하고 갈 수 있는 천수였다. 350세의 천수가 지나면 450세까지 연생(延生)이 가능하고 450세의 연생을 채우면 1,000세까지 불로장생이 가능하다고 했다.
1,000세 불로장생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그들이 빛의 화신이 되어 불로불사의 존재로 영생불멸하며 샤르별의 수호신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샤르별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다고 늙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천수를 누리건 연생을 누리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겉으로는 젊고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370세의 고령인 쇼시우시의 모습은 여전히 풋풋한 젊은이 모습이었다.
쇼시우시는 샤르비네를 지도하는 교수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애제자처럼 아끼는 사이였다. 쇼시우시가 주도하는 신선놀음에 샤르비네가 자주 참여하고 쇼시우시가 춤을 좋아했기 때문에 바기스 춤꾼으로 유명한 샤르비네를 가까이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래서 초도로의 초자연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은 나를 샤르비네가 쇼시우시에게 소개해 주었다.
쇼시우시는 나를 샤르비네와 다름없이 애제자처럼 아끼며 궁금한 내용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기도 했다.
샤르비네와 함께 쇼시우시를 방문하면 샤르비네와 나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내용이 춤이었다. 샤르비네와 나는 쇼시우시의 요구대로 가야금과 거문고 소리에 맞춰 신선춤을 추었다. 쇼시우시도 우리들과 함께 신선춤을 추면서 대만족한 표정을 짓곤 했다.
쇼시우시의 춤으로 다져진 몸매는 천상계의 선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야들야들하고 도화빛 살결을 갖춘 체형이었다.
함께 춤을 추고 나서 내가 쇼시우시에게 질문했다.
"쇼시우시 러우님은 유난히 춤을 즐기시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쇼시우시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신명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지."
이렇게 말을 꺼내면서 쇼시우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가곁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살피는 표정 같기도 했다.
“신명들은 춤을 좋아하고 춤이 무르익는 곳에 신명들이 다가와 함께 어우러지며 천상계의 기운으로 흥을 북돋아 준단다.”
쇼시우시의 입에서 이어지는 말이었다.
나의 질문도 이어졌다.
“춤을 추다보면 스스로 무아지경에 몰입하고 그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던 춤사위가 나오고 저절로 흥에 겨워 학처럼 춤을 이어가는데 그 현상이 신명의 기운이 응하기 때문인가요?"
"그렇단다. 춤출 때 신명의 기운이 응하면 저절로 몸 속에서 흥이 솟구치고 모르던 춤사위가 만들어지며 무아지경의 황홀한 기분이 생겨난단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어릴 적부터 춤을 좋아했고 그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와 천상계 선녀 못지않은 자태를 뽐내며 살아가고 있단다."
“맞아요. 쇼시우시 러우님은 누가 보더라도 천상계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가 돋보이십니다."
"고맙구나. 우리 샤르앙 신선께서 이 선녀를 칭찬해 주니 기분이 하늘에 닿을 듯 흐뭇하구나. 역시 칭찬이란 아무리 나이가 든 후에도 의욕을 북돋우는 활력소란 말야?"
"그렇지만 러우님께 궁금한 점이 많아요."
"우리 신선께서 이 선녀에게 무슨 궁금한 점이 많은가? 어서 질문 하렴 속 시원하게 대답을 들려 줄 테니....”
"러우님께서 춤을 좋아하는 이유와 초도로의 초자연적 현상을 연구하고 그러한 장치를 연구개발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신명들은 춤을 좋아한단다. 무아지경에서 춤을 추고 있노라면 어느새 신명과 영혼들이 다가와 행복한 모습으로 함께 어울리며 춤추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지. 나의 춤판에 신명과 영혼들이 끼어들면 한층 무아경지의 황홀경은 무르익고 그때마다 삶의 희열을 느끼곤 했단다. 그 신명의 기운이 내면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영성을 깨워 주고 참 자아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곤 했단다. 그래서 나는 평생 동안 춤을 놓지 않았고 신명들과 함께 신인조화의 힘으로 초자연세계의 현상들을 학문의 이론으로 정립하기에 이르렀단다."
"저도 신선놀음을 즐기면서 춤판이 어우러질 때 신명과 영혼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신명들의 흥이 고조되면 더욱 신선놀음의 춤판도 무아지경으로 무르익어 가는 현상을 체험하곤 했습니다. 신명과 영혼들이 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춤이란 몸을 움직이는 동작이 춤이 아니라 기운의 흐름을 타고 그 기운의 실체를 몸의 표현으로 형상화한 내용이 춤이란다. 곧 춤이란 기운의 형상이지. 신명과 영혼들은 물질의 힘으로 존재하지 않고 이미 초물질적 삶의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기운으로 호흡하고 기운으로 운행한단다. 춤판이 무르익으면 기운의 파장이 우주로 퍼져나가 저절로 신명과 영혼들을 불러 모은단다. 춤이야말로 신과 동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교류의 통로라고 설명할 수 있겠구나.”
“춤을 통해 신명을 만나고 영들과 어울릴 수 있다니 춤은 단순하게 아름다운 몸짓으로서의 의미보다 차원이 높은 신인교류(神人交流)의 수단이란 점에서 의미가 높군요?"
“그렇고말고. 그래서 하늘의 응답을 기다리는 중요한 천제에는 반드시 춤으로써 의식을 치루고 신명들의 화답을 구한단다.”
"저도 춤을 추고 있을 때 가장 성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행복한 기분에 젖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춤을 배운 적이 없어 선녀들과 어울려 춤을 출 때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춤을 잘 추는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춤이라면 바로 너의 일심동체 샤르비네가 있지 않느냐? 샤르비네는 우리 샤르별에서 신무(舞)라고 소문날 정도로 유명한 춤꾼이란다. 좋은 춤을 추고 싶거든 샤르비네에게 배워야지. 아무튼 춤을 잘 추고 싶으면 기교를 익히려 노력하지 말고 춤 속에 마음을 뿜어내려고 노력해라. 마음을 뿜어내는 춤이 진짜 춤이고 신명들이 응하는 춤이다. 신명들이 응하지 않는 춤이라면 춤이 아니지. 곧 신명들과 함께 신명나게 노는 춤이라야 진짜 춤이라는 뜻이다. 신명의 기운이 응하면 춤을 잘 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무아의 경지에서 신명의 기운으로 몸이 움직여지고 아름다운 춤 동작이 무르익기 마련이다.”
"러우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도 춤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샤르별의 신선들과 신선놀음에 어울리며 춤을 출 때 무언가의 기운이 응하여 저절로 춤사위가 만들어지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어설픈 기교로 춤을 추지 않고 무아의 경지에서 신명의 기운과 함께 신명나게 노는 춤이 진짜 춤이란 사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러우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제 진짜로 맛있고 멋있게 춤을 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나도 샤르앙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샤르비네와 한 쌍이 되어 춤추는 모습은 꽃과 나비가 어우러지는 광경처럼 좋아 보였단다. 기교는 서툴지만 신명의 기운과 조화를 이루며 구도의 의식을 표현하는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더구나.”
"쇼시우시 러우님께서 제 춤을 잘 평가해 주시니 너무 마음이 행복합니다."
“샤르비네와 샤르앙은 춤 출 때 참 잘 어울리는 원앙이요 우주의 꽃과 나비지."
이런 말끝에 샤르비네와 나는 쇼시우시의 권유로 거문고 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우주에 대한 경건함 샤르비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몸동작에 실어 춤사위를 벌이니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며 기운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춤을 잘 추려고 애쓰지 않는데도 기운의 흐름을 타고 춤은 저절로 춰지고 경건한 춤동작은 절정을 향해 갔다.
거문고 소리가 멎고 춤이 끝났을 때 쇼시우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춤이 끝나고 다시 내가 쇼시우시를 향해 질문을 이어갔다.
"쇼시우시 러우님께서는 신명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춤을 좋아하셨고 그러한 초자연현상을 시각적 영상으로 구현하는 초도로 학문을 펼치는 교수로 활약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계기라든가 동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본래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동경심이 유별났고 보이지 않는 세상에 심취해 있을 때 행복감의 절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은 현실세계와 파장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의 존재들은 그 세상을 쉽게 느끼거나 소통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세상과의 소통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 수단이 초도로의 초자연영상공학이었단다. 그래서 지금은 초자연영상공학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과의 소통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행복하단다."
“그냥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현상들이 초도로 영상장치를 이용하면 보이고 소통이 가능한 현상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러한 원리를 설명해 주십시오."
"샤르앙도 잘 알고 있는 사실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는 우주는 보이는 현상만이 전부가 아니란다. 보이지 않는 현상 속에 우주의 진리가 숨겨져 있지. 우주는 보이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고 오히려 숨겨진 세상이 더 아름답고 신묘한 이치 속에 머물고 있단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보이지 않는 세상과 현실의 세상은 빛의 파장과 소리의 파동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의 눈으로 그 세상을 바라볼 수 없고 현실의 귀로 그 세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단다. 물론 보이지 않는 세상의 구성에는 우리들 곁에서 머무는 신명과 영혼의 세계까지를 포함하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세상의 현상들과 소통을 이루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현실의 세계로 구현시키는 장치가 초도로 영상장치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 초도로 영상장치는 파장이 다르고 파동이 다른 현상들을 현실적인 파장과 파동으로 교체하는 기능을 발휘한단다. 그래서 초도로 영상장치를 통해 신명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신명들의 음성을 녹음으로 재현시킬 수 있단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준 후 쇼시우시는 자신이 직접 촬영한 초도로 영상화면들을 보여주었다.
신선과 선녀들이 신선놀음을 즐기면서 춤을 추고 있을 때 아름다운 의상을 걸친 신명들이 몰려와서 함께 어우러지며 춤을 추고 노는 장면이 담긴 초도로 영상사진이었다.
초도로 영상사진 속에 나타난 신명들은 모두 한결같이 해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천진무구하게 웃고 떠들며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신명들 속에는 영혼들도 섞여 있고 그 영혼들은 현실세계의 가족이나 친지도 섞여 있었다.
현실세계의 존재들은 그러한 신명이나 영혼들이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황홀경을 느낄 것이란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초도로 영상사진에 나타난 신명이나 영혼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춤을 출 때 나의 그리운 영혼들도 함께 다가와 어울리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내가 쇼시우시에게 질문을 했다.
“제가 춤을 출 때도 제가 그리워하는 영혼들이 샤르별의 영혼들처럼 함께 다가와 행복하게 어울리며 춤을 추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신명과 영혼의 세계에서는 멀고 가까움이 없고 지구와 샤르별이라고 하여 멀리 떨어진 세상도 아니다. 그러므로 샤르별의 영혼들이 다가올 수 있는 세상에는 지구의 영혼들이라고 하여 다가오지 못하라는 법이 없다. 아마도 틀림없이 샤르앙의 그리운 영혼들도 샤르앙이 춤출 때 다가 와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어우러지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샤르앙은 춤 출 때 그리운 영혼을 상상하고 그리운 영혼과 손을 잡는 기분으로 춤을 춰 보아라. 그러면 춤은 한층 신명나고 흥에 겨우며 무아경지의 황홀경에 도취되어 가리라."
이런 말을 마치고 쇼시우시는 지구의 영혼과 신명의 모습이 담긴 초도로 영상사진을 보여주었다. 지구의 영혼과 신명의 모습을 담기 위해 찍은 영상화면이 아니라, 지구를 왕래하는 우주인들이 수집해 온 지구의 사진 속에서 초도로 촬영기로 잡아낸 신명이나 영혼의 모습이었다.
지구의 영혼들은 샤르별의 영혼들과 비교하여 외형적인 모습부터 달랐다. 샤르별의 영혼들은 해맑은 표정과 아름다운 의상을 걸치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데, 지구의 영혼들은 우울하고 한이 서린 표정으로 남루한 의상을 걸치고 사람들의 주변에서 서성이거나 배회하고 있었다. 여인의 영혼들이 머리를 산발하고 한 맺힌 표정으로 배회하기도 하고, 화가 잔뜩 난 영혼들이 서로 다투기도 하고, 거지 차림의 영혼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샤르별의 영혼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어두운 모습들이 지구의 영혼들에게 나타나고 있어서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물론 지구의 영혼들 중에서도 아름다운 의상을 걸치고 행복한 표정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혼도 있지만, 우울하고 남루한 외모의 영혼들이 구름떼처럼 더 많아 보였다. 우울하고 남루한 외모의 영혼들이 구름떼처럼 살고 있는 지구의 분위기는 어둡고 삭막해 보이는데 행복하고 아름다운 외모의 영혼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샤르별의 분위기는 밝고 거룩한 공간으로 보였다.
현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세계마저 샤르별과 지구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 앞에 씁쓸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처럼 샤르별의 영혼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전혀 다른 어두운 표정으로 살아가는 지구의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쇼시우시에게 질문했다.
"러우님, 지구의 영혼과 샤르별의 영혼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다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쇼시우시의 대답은 간단했다.
“생전의 모습대로 영혼이 산다. 살아서 아름다운 삶은 죽어서도 아름다운 영혼으로 살고, 살아서 풍족한 삶은 죽어서도 풍족한 영혼으로 산다."
"살아서 거지라고 죽어서도 거지꼴로 살아야 하는 영혼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살아서 따돌림 당하고 살던 영혼들이 죽어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살아서 핍박받은 영혼들이 죽어서도 핍박을 받는다면 하늘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살아서 모습은 육신의 모습이 참 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모습이 참모습이다. 물질은 풍족해도 마음이 채워져 있지 않으면 영혼의 세계에서는 가난뱅이요, 물질은 부족해도 마음이 채워져 있으면 영혼의 세계에서는 부자이다. 생전에 다투기를 좋아하는 영혼은 죽어서도 다투고 생전에 자기밖에 모르면서 외톨이로 살던 영혼은 죽어서도 외톨이로 지내며 따돌림 당한다. 살아서 친절을 베푸는 영혼은 죽어서도 친절한 대접을 받고 살아서 남을 핍박하던 영혼은 죽어서 핍박을 당한다. 곧 죽어서는 마음이 생긴 대로 영혼이 사는 것이요 육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공평하며 영혼의 질서는 정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르별의 영혼들은 누구나 평온하고 밝은 모습이지만 지구의 영혼들은 우울하고 어두워 보입니다. 지구의 문명과 샤르별의 문명이 다른 만큼 영혼의 세계도 격차가 커 보입니다."
“지구의 영혼과 샤르별의 영혼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은 격차가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격차는 문명의 격차가 아니라 정신세계의 격차이다. 가령 지구에서 왕이나 부자가 살아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해서 죽어서도 호화로운 삶을 살지는 못한다. 마음이 거칠고 황폐한 왕이나 거지였다면 죽어서도 그러한 꼴로 살 것이요. 세상을 위해 베풀고 구제하며 살았다면 죽어서도 그러한 대접을 받고 살 것이다.”
"살아서 백성을 학대하던 폭군이 죽어서는 어떤 영혼으로 태어납니까?"
"살아서 폭군은 죽어서 학대받는 영혼으로 살아간다.”
"살아서 백성을 섬기던 거지가 죽어서 어떤 영혼으로 태어
납니까?"
"살아서 백성을 섬기던 거지는 죽어서 성자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살아서 의롭게 살아가던 불구자는 죽어서 어떤 영혼으로 태어납"니까?"
"살아서 의롭게 살던 불구자는 죽어서 천사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살아서 괴팍한 성격으로 살던 미인은 죽어서 어떤 영혼으로 태어나서 살아갑니까?"
"살아서 괴팍한 미인은 죽어서 추녀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살아서 선행을 베풀며 살던 추녀는 죽어서 어떤 영혼으로 태어나 살아갑니까?"
"살아서 선행을 베풀며 살던 추녀는 죽어서 미녀로 태어나 살아"간다."
"살아서 욕심이 많은 부자는 죽어서 어떤 영혼으로 태어나 살아갑니까?"
"살아서 욕심 많은 부자는 죽어서 거지로 태어나 구걸하며 살아간다."
"살아서 세상을 구제하고 베풀고 살던 부자는 죽어서 어떤 영혼으로 태어나 살아갑니까?"
"살아서 세상을 구제하고 베풀고 살던 부자는 죽어서는 더 큰 부자가 되어 살아간다."
“세상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 때 한을 품고 죽은 영혼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 살아갑니까?"
"한을 품고 죽은 영혼은 원혼이 되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며 살아간다.”
“세상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 때 편안하게 눈을 감고 죽은 영혼은 죽어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 살아갑니까?"
"마지막 눈을 감을 때 편안하게 죽은 영혼은 죽어서 안식을 누리며 태평성대를 누린다."
이런 대화를 마치고 쇼시우시는 나에게 영혼의 사진첩을 보여주었다. 영혼의 사진첩에는 지구의 영혼과 샤르별의 영혼과 다른 세상의 영혼들이 생영상 자료로 저장되어 있었다.
영혼의 사진첩에는 생전의 모습과 영혼의 모습이 비교되어 저장되어 있었다. 왕이 살았던 생전의 모습과 왕이 죽은 영혼의 모습, 부자가 살았던 생전의 모습과 부자가 죽은 영혼의 모습, 미인이 죽은 생전의 모습과 미인이 죽고 난 후 영혼의 모습, 성인이 살았던 생전의 모습과 성인이 죽고 난 후 영혼의 모습들이 사진첩에 잘 정리되어 담겨 있었다.
영혼의 사진첩에 저장된 생영상 자료는 4차원 가상공간에 불러내어 살아 있는 모습으로 대면할 수 있었다. 가상공간의 화면에 나타난 영혼과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손을 잡을 수도 있고 영혼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 영혼의 몸에서는 향기가 나고 흉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영혼의 몸에서는 악취가 났다. 아름다운 영혼의 몸에서는 빛이 나고 흉한 영혼의 몸에서는 어두운 그늘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영혼의 몸에는 아름다운 의상이 걸쳐 있고 흉한 영혼의 몸에는 남루한 의상이 걸쳐 있었다.
가상공간에 나타난 사진첩의 영혼을 향해 내가 질문했다. 생전에 세상에서 엄청난 재물을 모으고 살았던 부자의 영혼에게 질문했다.
“살아 있는 자를 위해 큰 재물을 모으고 부자로 살았던 영혼의 이름으로 권고해 주십시오. 무엇을 실천해야 죽은 후 영혼이 부자로 살 수 있습니까?"
부자의 영혼이 대답했다.
"마음을 풍족하게 사시오. 그러면 죽어서도 풍족한 영혼으로 살 것이오. 마음의 여유를 가지시오. 그러면 죽어서도 여유로운 영혼으로 살 것이오."
생전에 세상에서 팔다리 없이 평생 동안 불구자로 살았던 영혼에게 질문했다.
“살아 있는 자를 위해 불구자로 살았던 영혼의 이름으로 권고를 들려주십시오. 무엇을 실천해야 죽어서 건강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불구자의 영혼이 대답했다.
"살아서 마음의 불구자가 되지 말고 사시오. 마음이 불구자면 죽은 영혼도 불구자로 살고 마음이 온전하면 불구자의 영혼도 온전한 모습으로 살 수 있소. 영혼의 세계에서는 생전의 사지는 멀쩡한데 불구자 모습으로 지내기도 하고 생전의 불구자가 멀쩡하고 튼튼한 모습으로 지내기도 하오. 다만 몸도 온전하고 마음도 온전한 영혼이 진실로 건강한 영혼이라오."
생전에 세상에서 아름다운 용모로 남성들의 맘을 설레게 했던 천하절색 미인의 영혼에게 질문했다.
“살아 있는 자를 위해 천하절색 미인으로 살았던 영혼의 이름으로 권고를 들려주십시오. 무엇이 죽은 영혼을 자랑스럽게 하는 길입니까?"
천하절색 미인의 영혼이 대답했다.
“몸이 예쁘면 마음도 예쁘게 가꾸시오. 몸이 예쁘고 맘이 미우면 죽어서도 미운 모습으로 살아간다오. 몸이 예쁘고 맘도 예쁘면 죽어서도 예쁜 모습으로 살아간다오. 생전의 몸도 예쁘게 잘 가꾸고 맘도 잘 가꾼 영혼들이 죽어서도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간다오.”
생전에 세상에서 병든 몸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영혼에게 질문했다.
“살아 있는 자를 위해 병든 몸으로 살았던 영혼의 이름으로 권고를 들려주십시오. 무엇이 죽은 영혼을 행복하게 합니까?"
병든 몸으로 살던 영혼이 대답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죽은 영혼의 모습도 건강하다오. 살아서 건강한 몸을 잘 간수하고 건강한 맘을 잘 지키시오. 다만 몸이 성하더라도 마음이 병들면 죽어서도 병든 모습으로 살아가오."
생전에 세상에서 성직자를 지낸 영혼에게 질문했다.
“살아 있는 자를 위해 평생동안 성직자의 길을 걸어 왔던 영혼의 이름으로 권고를 들려주십시오. 무엇이 죽은 영혼의 이름을 보람되게 합니까?"
성직자를 지냈던 영혼이 대답했다.
"살아서 종교의 지위가 죽어서도 이어지지 못하오. 살아서 이름 없는 신앙인이라도 거룩한 삶을 살았다면 죽어서도 거룩한 지위를 누리고 살아가오. 살아서 높은 이름의 신앙인이라도 마음이 초라하면 죽어서도 초라한 모습의 영혼으로 살아가오. 그러므로 남에게 높게 보이는 자리가 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높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영혼이 죽은 후에 복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오."
생전에 세상에서 왕으로 살던 영혼에게 질문했다.
“살아 있는 자를 위해 왕으로 살던 영혼의 이름으로 권고해 주시오. 무엇이 죽은 영혼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합니까?"
왕으로 살던 영혼이 대답했다.
"세상의 권력이란 길어야 10년이오. 세상에서 얻은 권력이 죽은 후에 영광의 이름으로 다가오지 못하오. 권력을 얻기 위해 맺은 원한은 죽은 후 치욕의 이름이 되어 다가온다오. 다만 권력자의 이름으로 선정을 베풀다 영혼의 세계를 찾아온 이름은 죽어서도 영광을 누리고 권자의 이름을 지킬 수 있소."
이처럼 사진첩의 영혼들을 4차원 가상공간에 불러내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때 친절하고 진실한 대답이 들려왔다. 사진첩의 영혼들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권고하기를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갈망했다.
"죽고 나서 후회해도 삶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살아서 온전한 의를 이루고 온전한 뜻을 이룬 후 생을 마감한 영혼이 세세영영복된 이름을 얻을 것이다. 만약에 삶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부자가 되기 위해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애쓰지 않을 것이며,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를 힘쓸 것이다.”
죽은 영혼들이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해 절규하는 내용의 권고였다.
초자연현상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초로도 촬영기는 죽은 영혼의 모습만 사진에 담지 않고 육신으로 살아있는 영혼의 모습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초도로 촬영기는 사람이 생긴 대로 사진을 찍지 않고 영혼이 생긴 대로 사진을 찍었다.
팔다리가 성하지 못한 불구자의 사진을 찍었는데 멀쩡한 영혼의 모습이 사진에 담기고, 천하절색 미인의 사진을 찍었는데 추하게 생긴 영혼의 모습이 사진에 담기고,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의 사진을 찍었는데 성자의 영혼이 사진에 담기기도 했다.
그 사진들은 샤르별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지구에서 지구를 방문한 샤르별 사람들이 초도로 촬영기로 찍은 사진이었다.
샤르별 사람들은 육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좋아하지만 영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좋아했다. 샤르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영혼이 담긴 사진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영혼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면 더욱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생각보다 부족한 영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면 삶을 돌이켜보고 바른 길을 다시 선택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했다.
나도 샤르별에서 영혼의 사진을 찍어보았다.
샤르비네의 영혼과 비교하면 불만족스런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찍을 때마다 변화되는 스스로에 대한 영혼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바른 의식의 삶을 더욱 곤고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샤르비네도 내 영혼이 담긴 사진을 보고 그렇게 불만족스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샤르비네의 영혼이 담긴 초도로 사진을 바라보면 환상이었다. 눈부신 아우라 광채로 싸여 있는 샤르비네 영혼의 사진은 우주의 여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신비로운 기운이 발산하고 있었다.
저처의 영혼이 담긴 초도로 사진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고, 추시브 영혼이 담긴 사진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고, 오시됴 성녀의 영혼이 담긴 사진에서는 더욱 눈부신 아우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우라 기운이 영혼의 등급을 결정한다."
영혼사진을 설명하면서 쇼시우시가 들려준 말이었다.
또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다른 심판이 필요하지 않다. 아우라의 빛으로 모든 영혼들은 스스로 심판을 받는다. 아름다운 아우라의 소유자들은 스스로 밝은 빛의 세상을 찾아가고 아우라가 어두운 영혼들은 스스로 어둠의 세상을 향해 숨는다. 어두운 아우라의 영혼들은 억지로 밝은 세상에 데려와도 살지 못하고 도망간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영혼의 아름다운 아우라를 얻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쇼시우시가 소장하고 있는 지구의 초도로 사진은 많았다. 지구의 하늘과 땅에서 보이지 않는 현상과 영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사진첩에 잘 정리되어 빼곡한 자료로 남아 있었다.
그 중에서 특별한 사진 한 장을 추려서 보여주었다.
지구의 하늘을 새카만 구름처럼 덮고 있는 사진이었다. 마치 숫자도셀 수 없는 까마귀 떼가 지구상공의 높은 하늘까지 차지하고 음침한 기운을 발산하며 뒤덮고 있는 듯한 모습의 사진이었다.
검은 구름이 덮고 있는 지구는 온천지가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사진의 내용을 쇼시우시가 설명해 주었다.
“지구의 원혼들이 까마귀 떼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다. 지구의 온천지가 붉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화나고 혼란스러운 기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어서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지구에서는 끊임없는 재난과 혼란스러운 현상들이 나타나 하루라도 지구의 평화가 유지되는 날이 없다. 이쪽에서 터진 사고가 아물 만하면 저쪽에서 터지고, 이쪽에서 전쟁이 멈출 만하면 저쪽에서 다시 발생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끊임없는 분쟁이 발생하고 심지어는 친한 가족이나 친구나 형제 사이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분란들이 일어나 화목한 분위기를 망친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지구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원혼들의 반란 때문이다. 지구의 태평성대가 이어지고 재난을 멈추게 하려면 원혼들의 반란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초도로 사진은 가상공간에 불러내어 생영상 화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가상공간에 불러온 화면은 살아 있는 모습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손으로 만지거나 실제적인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초도로 가상공간에 들어가 까마귀 떼 같은 원흔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원혼들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무언가로 열심히 공격하고 있었다. 원혼들이 공격하는 무기를 보니 작고 날카롭게 생긴 보이지 않는 불화살이었다. 원혼이 공격한 불화살을 맞은 사람들은 무슨 힘의 작용인 줄도 모르고 성격이 난폭해지며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까닭모를 화풀이를 하고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해 했다.
원혼이 공격한 불화살을 맞은 사람의 넋들은 서로서로 불신을 하고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악한 감정에 휩싸이면서 어두운 기운이 전염병처럼 가정과 이웃과 사회로 번져 갔다. 까닭모를 원망과 화풀이는 모두 원혼들이 쏘아대는 불화살을 맞은 사람의 넋들이 일으키는 전염병이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고 부모가 자식을 구박하고 친구와 친구끼리 배신하거나 이유 없는 명분으로 이웃끼리 말다툼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들이 모두 원혼들이 퍼부어대는 한풀이의 불화살 작용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욱 가공할 일은 원혼들이 사용하는 한풀이 불화살은 멸주가 제공하는 무기였다. 멸주는 원혼들을 이용해서 공중권세를 장악하고 그 힘으로 살아 있는 영혼들의 화목을 방해하고 있었다.
멸주가 가장 싫어하는 현상이 영혼들의 화목이었다. 살아 있는 영혼들을 서로 갈라놓기 전에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달은 멸주들이 억울한 한으로 꽉 찬 원혼들을 선동시키고 있었다. 결국 원혼들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죽어서조차 멸주에게 이용당하는 가련한 처지일 수밖에 없었다.
불화살로 분풀이 하는 원혼들도 제 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원혼들에게 불화살을 맞아대는 사람의 넋들도 제 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도로 눈으로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일이지만 딱하고 가슴 아픈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멸주들이 원혼들을 선동하며 사람의 넋들을 향해 저지르는 악랄함의 실제의 장면이 확연하게 초도로 영상에 잡히기도 했다. 마치 괴물처럼 생긴 멸주의 실체들이 사람들의 넋으로 다가가 싸움을 부추기는 선명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도깨비 모습을 하고 새카만 깜둥이처럼 생겼는데 하얀 이를 드러내고 거들먹거리며 무엇이 그렇게 기분 좋은지 여기저기서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깜둥이들의 웃음소리는 음침하고 기분 나쁘게 들려왔다.
사람들의 싸움을 부추기는 깜둥이는 작고 날렵하게 생겼으나 재주는 많아 보였다. 눈은 여우처럼 길게 찢어졌고 원숭이 같은 꼬리가 달렸으며 말솜씨가 매우 유창했다.
"영혼의 세상을 진멸시키려는 멸주의 악행을 네 눈으로 직접 목격하며 살펴보아라."
쇼시우시가 초도로 영상의 깜둥이 멸주들을 가리키며 들려준 설명이었다.
이어서 이런 설명도 들려주었다.
“멸주의 괴수들이 원혼들의 공격으로 분란을 겪고 있는 사람의 넋들을 미혹하며 끝없이 그 싸움을 부추기는 모습이 가증스럽기만 하구나. 암흑의 세력이며 음부의 씨앗들다운 악행일 것이다. 사람의 넋들로 하여금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하고, 사람들 스스로 영혼을 파멸시켜 진멸지경에 처하도록 교언영색을 일삼고 있는 멸주들의 교활함을 우리는 지금 초도로 천리안으로 바라보고 있다. 원혼들이 인간세상을 향해 던지게 하는 불화살의 무기를 제공하며, 그러한 힘으로 멸주들은 우주의 공중권세를 장악하고 있으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한심스러운 장면이겠느냐.”
쇼시우시는 지구에서 찍은 또 다른 초도로 영상을 보여주었다.
원혼들의 어두운 먹구름이 지구를 덮고 있는 우주공간 저편으로 태양처럼 떠오르고 있는 밝은 빛이었다.
"장차 지구의 미래에 나타날 천지광명 큰 빛의 정체를 바라보라!"밝은 빛의 현상에 대해 쇼시우시가 감탄하며 들려주는 말이었다. 쇼시우스는 이런 설명도 덧붙여 들려주었다.
"지구에서는 장차 천지광명의 빛을 천주라 부를 것이며 천주의 이름으로 원혼들의 한을 달래고 멸주의 세력을 멀리 쫓을 것이다."
초도로 영상사진들을 구경시켜 주고 나서 쇼시우시는 나에게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이제부터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공간이동 여행을 떠나자!"
쇼시우시의 제안을 듣고 질문을 했다.
“공간이동 여행은 무슨 방법으로 떠날 수 있습니까?"
“초도로머신이 공간이동 여행을 떠나게 할 것이다. 초도로머신을 타면 아무리 차원이 다른 세상의 공간이라도 자유롭게 이동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공간이동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공간이동여행을 하려면 준비사항이 따로 있습니까?"
“공간이동 여행의 준비는 마음의 준비로 족하다. 초도로머신에 몸만 실으면 공간이동의 여행은 바로 시작된다."
"그럼 지금 바로 공간이동 여행을 떠나게 해주십시오."
쇼시우시는 나와 샤르비네를 작은 UFO와 비슷하게 생긴 초도로머신 캡슐에 승선시켰다. 크기는 하늘자동차 춘우셔시 정도의 규모인데 생긴 모습은 UFO와 흡사했다.
초도로머신의 캡슐에 오르고 쇼시우시가 무언가를 작동시키자 금세 주변의 현상들이 이상한 파장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보이던 세상의 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처음 보는 세상의 모습들이 눈앞에 나타나며 기분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럼, 이제 출발이다!"
쇼시우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초도로머신은 투명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어디론가 공간이동 여행을 시작했다.
초도로머신을 타고 새로운 공간을 향해 날아갔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들은 생소하기만 했다. 초도로머신을 타고 이동한 공간들은 현실의 세계와 파장이 다른 이차원(元)의 세상들이었다.
초도로머신을 타고 차원공간을 이동하면서 쇼시우시가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공간들은 현실의 공간과 파장이 다른 물질들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그래서 현실의 눈을 뜨고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우주는 이처럼 차원이 다른 세상들이 서로 겹쳐 있다. 겹쳐진 세상들은 서로 파장이 다른 물질의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간섭하고 방해하는 현상들이 사라진다. 초도로머신은 스스로 파장을 변화시키며 파장이 다른 세상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한다."
또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이차원의 세상들은 파장이 짧은 세상도 있고 파장이 긴 세상도 있다. 현실의 세상은 긴 파장과 짧은 파장의 중간쯤 되는 세상이다. 사람의 시력은 한계가 있어 현실의 파장보다 짧아지거나 길어지면 식별이 불가하다. 식별이 불가한 현상들은 손으로 만져도 감촉이 없고 소리를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차원의 세상들이 현실의 세상과 겹쳐 있지만 느끼지 못한다. 우주는 이처럼 다양한 차원의 세상들로 겹쳐 있다. 초도로머신을 타고 차원이 다른 세상의 공간으로 이동하면 새로운 모습의 현실들이 나타난다. 긴 파장의 공간에서는 생명의 변화가 다양하고 짧은 파장의 공간에서는 신비로운 빛의 현상들이 증폭된다. 이처럼 파장이 다른 초자연적인 세상을 사람들이 일괄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고 부른다. 우주는 보이는 세상의 힘으로 운행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상의 힘으로 운행한다. 그래서 사람의 눈으로는 우주의 숨겨진 영성을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샤르별에서 펼쳐지고 있는 무한이론의 4차원 문명세계는 이처럼 우주의 숨겨진 힘을 이용하여 초월적인 삶을 펼쳐가고 있다. 초자연세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사람의 영들이 도전할 가치가 있는 최고의 도전목표일 것이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듣고 내가 소감을 말했다.
"샤르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힘을 이용해서 무한이론의 초월적문명세계를 구현하고 있지만 지구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초자연세계의 현상들을 아예 무시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초자연세계의 현상들을 마치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어리석음이라고 냉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구의 현대문명을 선봉적으로 이끌어가는 식자층일수록 초자연현상에 대하여 배타적입니다. 엄연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지구의 식자들이 부정하는 배타적심리는 무엇일까요?"
쇼시우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구의 식자들은 유한이론의 노예들이다. 유한이론의 노예들은 현실의 눈으로 식별이 불가한 현상은 무엇이나 부정한다. 언제나 똑같은 현상으로 보이고 언제나 똑같은 현상으로 느껴지는 것들만 신뢰한다. 그래서 유한이론의 추종자들에겐 미래가 없다. 지구에서 유한이론의 가치는 이미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한이론의 한계에 부딪치면 다시 처음으로 회기하며, 그래서 지구 사람들은 역사를 되풀이하며 원시반본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현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시우시의 설명을 듣고 내가 반론했다.
"저는 러우님의 말씀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못합니다.”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해 보아라."
“지구 사람들이 모두 유한이론의 추종자들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사료됩니다. 지구 사람들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로 분류되어 살 듯, 보이는 현상만 전부라고 신뢰하는 부류도 존재하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신뢰하는 부류도 존재합니다. 물론 지구에서 샤르별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는 무한이론의 학문이 이론화된 세상은 아닐지라도, 지구 전체를 유한이론의 추종권이라고 판단하는 건 섣부른 결론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샤르앙의 말뜻을 충분히 이해한다. 물론 지구 사람들 전체가 유한 이론의 추종자는 아닐 것이다. 다만 지구는 샤르별과 달리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기득권 세력이 존재한다. 곧 지구는 대중의 의사로 사회구조를 만들지 않고 소수의 결정으로 사회구조의 골격을 구성한다. 특히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소수의 설계자들이 지구의 기득권자들로서 기득권을 손에 쥔 소수가 다수의 민초들을 유한이론의 함정 속에 가두고 이익을 챙긴다. 사실 다수의 민초들은 유한이론의 한계성에 강하게 부정하며 무언가의 돌파구를 향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열망한다. 다만 그러한 열망이 소수의 기득권을 능가할 수 없다는 점이 지구 사람들이 겪어야 할 불행인 것이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초도로머신은 생소한 풍경의 이차원 공간에 진입하여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보라! 차원이 다른 세상에 펼쳐진 저 아름다운 현상들을…. 차원이 다른 세상에도 또 다른 파장의 자연이 존재하고 문명이 존재하고 영혼을 담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느냐? 현실의 눈으로 보이지 않을 뿐 엄연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감상해 보아라."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후 그 세상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쇼시우시가 이렇게 감탄을 쏟았다.
쇼시우시의 감탄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차원이 다른 세상도 현실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과 산과 바다가 존재했다. 산과 들에는 식물들이 자라고 꽃과 열매도 열리며 이런저런 형태의 동물들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달랐다.
그 세상의 사람들은 맨몸으로 공중을 날아다니고 물 위를 걷기도 하며 구름을 타고 이동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공중으로 날아다니며 살고 있는 그 세상의 이름을 바차시낙원이라 불렀다. 바차시란 뜻의 어원은 무중력이었다. 이름 그대로 바차시낙원은 물질의 무게가 사라진 세상이었다.
무게가 없는 세상이지만 식물들은 안전하게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동물들은 지상이나 숲에서 잘 뛰어다니면서 활동하고 있었다. 바위나돌들도 무게는 없지만 안정된 모습으로 흙속에 박혀 있기도 하고 산 위에 솟아 있기도 하며 돌멩이들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바차시낙원을 살펴보려고 쇼시우시는 나와 샤르비네를 데리고 초도로머신에서 하선했다. 하선하기에 앞서 쇼시우시는 알약 하나씩을 먹게 했다. 몸 속에서 바차시낙원과 일치하는 파장을 만들어내는 성분의 알약이었다. 파장알약을 먹고 초도로머신에서 하선하자 우리들 몸은 구름이 된 것처럼 가벼웠다.
무중력의 세상이지만 공기는 맑고 상큼했다.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꽃향기도 날아와 코끝에서 기분을 좋게 만들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이 옷깃을 스칠 때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다.
맑고 깨끗한 공기가 가득 채워진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중력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중력이란 공기가 누른 힘과 땅이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바르지 않는 것인가?> 이런 생각도 가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나중에야 바차시낙원에서 중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구름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물 위를 걸어 다니기도 하고 높은 산을 오르기도 했다. 물 위를 걸을 때는 허공을 디디고 노는 기분과 다르지 않았고 산을 오를 때는 아무리 가파르고 높은 절벽이라도 힘이 들지 않았다. 쉽게 쉽게 가벼운 몸짓으로 높은 산을 향해 올라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구름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기분은 더욱 좋았다. 구름을 타면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구름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구름이 서쪽으로 이동했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구름을 타고 이동하면 단숨에 원하는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그 세상에는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어떤 교통수단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도 물 위를 떠가는 배도 땅에서 굴러다니는 차량도 그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세상의 사람들은 구름을 타고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바차시낙원에는 땅을 파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고,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은 샤르별과 비슷한 풍광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샤르별은 무한이론을 이용한 4차원 문명세계가 펼쳐진 세상이라면 바차시낙원은 그렇게 높은 문명세계와는 다른 현상이 작용하고 있었다.
바차시낙원의 사람들은 물질을 가지고 살지 않고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바차시낙원의 사람들은 물질의 재산으로 살지 않고 마음의 재산으로 살고 있었다.
마음에 있으면 다 있고 마음에 없으면 다 없는 세상이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리라!>의 구호가 그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의 진실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는 세상 바차시낙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세상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쇼시우시와 샤르비네와 나 셋은 구름을 타고 바차시낙원의 상공을 날아다니며 구경에 몰두하다가 지상에서 아름다운 성을 발견했다. 그림 같은 집들이 기화요초의 향기가 물씬한 녹음방초의 숲속에 몽환풍으로 지어져 있는 커다란 성이었다. 우리는 그 성의 이름을 몽환성이라 불렀다.
구름을 타고 몽환성에 도착하자 근심을 모르고 살아가는 성민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몽환성의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 셋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낯선 표정을 짓지 않았다.
마음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든지 대화가 가능하고 의사교류를 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성주를 뵙고 싶습니다."
지나가는 성민을 붙들고 물었더니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우리를 데리고 성주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성주는 우리를 좋은 집으로 데리고 가서 좋은 자리에 앉혔다. 겸손하
고 정중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성주의 표정이 매우 선량하게 다가왔다. “아무 기약도 없는 방문 때문에 성주께 폐가 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쇼시우시가 성주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조금도 폐 되는 바가 없으니 손님들은 안심하고 머물며 우리의 착한 대접을 받도록 하시오."
성주의 친절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속세의 공간에서 속세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속인들입니다. 속세의 의식들이 남루하나 좋은 의식으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쇼시우시가 간략하게 우리들의 처지를 설명했다.
"속인들이라 하나 아름다운 영혼의 빛은 찬란합니다. 바차시낙원에서는 아름다운 영혼을 꽃처럼 별처럼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영혼의 속인들을 귀빈으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들 세상에서는 손님맞이를 낙으로 생각합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불편함이 없도록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성주의 배려로 우리들은 몽환성의 귀빈이 되어 이런저런 좋은 볼거리를 많이 구경할 수 있었다.
몽환성의 집들은 땅바닥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으며 기둥이 없는 건물들이었다. 아무리 높거나 넓게 지어도 집이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바람이 불거나 다른 물체와 충돌해도 부서지는 일이 없었다.
자기부상 현상처럼 땅바닥에서 약간 떠 있는 집들은 마음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이동이 가능하고 내부나 외부의 구조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도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집안으로 우리들을 안내한 성주는 아름답고 멋진 물건들로 장식된 귀빈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귀빈실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테이블이 놓여 있고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남녀의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성주의 뒤를 따라 귀빈실로 들어가니 대기하고 있던 가족들이 정중하게 맞이하며 우리 셋에게 각각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귀빈실 내부에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하고 그 향기는 꽃다발의 향기인지 다른 향기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자 성주와 20여 명에 이르는 성주의 가족들이 모두 함께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의자들은 보석과 같은 물질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고 푹신하고 편안한 느낌이 매우 만족했다.
테이블 위에는 진귀한 음식들이 놓여 있는데 음식을 집어 떠먹을 수 있는 도구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음식들만 예쁘게 생긴 그릇에 장식물처럼 담겨 있고 수저나 나이프나 젓가락 같은 도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음식들을 손으로 집어먹어야 하나?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맛있는 음식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성주가 식사법을 말해 주었다.
"우리들 세상에서는 식사법이 속세와 다르오. 우리들 세상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지 않고 눈으로 집어먹소. 먹고 싶은 음식을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그 음식의 기운이 몸 속으로 들어와 몸과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이 된다오. 그러므로 눈을 통해 맛있는 음식들의 맛을 마음껏 즐기고 몸과 영혼을 살찌우는 기운을 증폭시키도록 하시오."
성주가 시키는 대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자 그 음식의 맛이 입 안에서 저절로 느껴지며 몸 속으로 음식의 기운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음식을 먹고 마시는 기분처럼 좋았다. 눈길을 이쪽 음식으로 돌리면 그 음식의 맛이 입 안에서 느껴지고 저쪽 음식으로 돌리면 그 음식의 맛이 입 안에서 느껴지곤 했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음식 맛은 맛을 느낀 만큼의 기운이 몸 속으로 퍼져서 증폭되어갔다.
지구의 속담에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한 현상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눈요기>란 말도 비슷한 뜻이라고 생각되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향해 눈길을 줄 때마다 그릇속의 음식도 저절로 줄어들었다.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음식은 눈길을 주어도 음식 맛이 느껴지지도 않고 그릇 속의 음식이 줄지도 않았다. 음식의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간 만큼만 그릇에 담긴 음식이 줄었다.
눈요기만으로 충분히 음식 맛도 즐기고 배도 불렀다.
눈요기로 그릇에 담긴 음식이 사라지면 다시 채워졌다. 음식을 새로 만드는 사람도 없고 날라다 주는 사람도 없는데 음식이 저절로 그릇에 채워지는 현상이 신기했다.
그 현상에 대해 성주가 설명해 주었다.
"우리들 세상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만들지 않고 마음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릇에 담겨 있는 음식들은 모두 정성으로 빚은 마음의 선물들입니다. 우리들 세상의 물질들은 무엇이나 손으로 들어서 나르지 않고 마음의 기운으로 움직여서 나릅니다. 그래서 심부름꾼이 없어도 마음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이 저절로 그릇에 채워집니다."
또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마음의 정성이 깊으면 음식 맛도 좋고 마음의 정성이 줄면 음식 맛도 줄어듭니다. 지금 이 자리의 음식들은 최고의 정성으로 빚은 마음의 선물이니 마음껏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편히 쉬어가도록 하시오.”
성주의 설명을 듣고 쇼시우시가 우리 셋을 대표하여 화답했다.
“예고도 없이 방문한 불청객들을 이렇게 따뜻한 맘으로 환대해 주시니 이 뜻깊은 마음의 선물을 어떤 감사한 맘으로 받아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속세로 돌아가면 여러분의 환대에 대해 널리 칭찬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주님과 성주님의 가족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쇼시우시의 화답이 끝나자 성주와 성주의 가족들은 다시 뜨거운 박수로 우리들의 방문을 환영해 주었다.
그때 샤르비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환영에 보답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 샤르비네가 춤을 추자 만찬상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악대들이 춤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신무라고 소문난 샤르비네가 악대의 연주에 맞춰 신들린 듯 춤을 추자 성주와 성주의 가족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춤 속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바람을 휘어 감듯 무아경지에서 고혹적인 모습으로 춤을 추는 샤르비네를 향해 성주와 성주의 가족들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몽환상태에 빠지는 것 같았다. 악대들의 악기소리도 점점 고조되어 갔다. 그때 샤르비네가 나에게 눈길을 보내왔고 내가 일어나 샤르비네가 내미는 손을 잡으며 합환무(合歡舞)를 함께 추기 시작했다.
합환무는 원래 샤르별에서 원앙춤으로도 알려져 있고 신선과 선녀가 신선놀음에서 빼놓지 않고 추는 춤이기도 했다. 합환무를 출 때는 적당한 취기와 함께 추는 것이 기분을 더 황홀하게 했다.
악대들은 합환무를 처음 대하면서도 율동에 맞춰 멋진 음률을 즉석에서 만들어 내며 즉석연주로 흥을 돋우었다.
나는 춤 솜씨는 없지만 샤르비네가 이끄는 대로 보조만 맞추었다. 그래도 성주와 성주의 기족들은 우리들의 춤이 끝났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 주었다.
이윽고 성주의 가족들도 차례로 일어나서 여러 가지 각자의 재주를 선보였다. 춤을 추는 가족도 있고, 노래를 부르는 가족도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가족도 있었다. 모두들 춤추는 솜씨, 노래하는 솜씨, 연주하는 솜씨들이 최고의 수준급에 달했다.
우리 셋과 성주의 가족들이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합창을 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깊어만 가고 만찬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만찬이 끝나고 성주와 작별을 고한 후 우리는 다시 바차시낙원의 이런저런 성들을 주유하며 낙원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폈다.
낙원의 백성들은 어디서도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물건 하나를 옮기더라도 마음의 에너지를 이용했다. 아무리 큰 물건이라도 마음의 에너지가 작용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큰 바위라 할지라도 마음의 에너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가볍게 이동하며 사람들의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바차시낙원의 물건들은 손으로 들어서 옮긴다 해도 무거운 것이 없었다. 집채만 한 물건이라도 들어보면 종이상자처럼 가벼웠다. 그 세상의 물건들은 질량은 있지만 무게는 없었다.
바차시낙원에도 낙원의 백성들이 생활하는 문화와 문명이 존재하고 다양한 문명의 이기들이 발달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손상시키는 도구나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낙원의 물건들은 날카로운 칼이라 해도 사람의 피부를 벨 수 없고, 몽둥이로 사람을 내리친다 해도 아프지 않았다. 낙원의 물건들은 중력의 힘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 해도 상할 염려가 없었다.
주먹으로 사람을 때린다 해도 아프지 않고 높은 곳에서 몸이 추락해도 상처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낙원의 백성들은 싸우고 싶어도 싸울 방법이 없고 남에게 해코지를 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낙원의 백성들은 몸을 상하는 것보다 맘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모든 일을 마음으로 해결하고 마음으로 풀어가기 때문에 맘이 상하면 아무 일도 처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낙원의 백성들은 몸을 간수하는 일보다 맘을 간수하는 일을 더 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었다. 낙원의 백성들이 손님 대접하는 일을 중하게 생각하는데 이유는 손님을 기쁘게 하면 그 기쁨의 보답을 맘으로 받기 때문이었다. 맘으로 기쁨의 보답을 받으면 그만큼 보람을 느끼고 맘이 건강해지는 선물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낙원의 백성들이 잘 깨닫고 있었다.
손님을 잘 대접하는 낙원의 관습으로 인하여 우리 셋은 낙원의 어떤 장소를 찾아가더라도 환대를 받고 귀빈대우를 받으면서 이차원 세상의 새로운 풍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바차시낙원에서 멀리 이동하는 수단으로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방법이 가장 신선다운 분위기를 누릴 수 있었다. 구름은 염력으로 이동했고 원하는 방향으로 염력을 조종하면 구름이 저절로 염력이 조종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마음이 급하면 구름도 급하게 이동하고 마음이 여유로우면 구름도 천천히 움직였다.
그 세상에서는 구름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도 있고 맨몸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구름을 타지 않아도 몸이 공중으로 부양하여 염력이 조종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바차시낙원에서는 구름뿐만 아니라 어떤 물체이든지 공중부양을 하고 염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맨몸으로 하늘을 날아가면서 새와 경쟁할 수도 있었다. 염력만 조종하면 아무리 빨리 날아가는 새라도 추월이 가능했다. 염속은 빛의 속도를 능가하기 때문에 맨몸으로 빛보다 빠르게 공간을 이동할 수도 있었다.
맨몸이 공중에 부양할 때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뭔가 몸을 바치는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현상을 쇼시우시가 설명해 주었다.
"바차시낙원의 땅은 슈퍼자성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공간에서는 자기장이 작용한다. 공중에 부양하는 물체들은 사람의 몸을 비롯해서 무엇이나 자성을 띠고 있고 자기장에 반응하는 자성의 물체들이 공중부양을 일으킨다. 염력의 조종에 따라 사람의 몸은 자성체가 되기도 하고 비자성체가 되기도 한다. 사람의 몸이 자성체로 변하면 슈퍼자기장의 작용에 의해 공중부양을 일으키고 땅으로 내려앉지 않는 원리에 의해 우리가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중력의 공간인 바차시낙원에서 사람의 몸이 공중부양을 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원리는 타당한 근거와 이치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쇼시우시는 이차원 세상의 또 다른 현상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바차시낙원에서 존재하는 물체들은 식물이나 광물이나 무생물이나 막론하고 스스로 자력을 만들어내는 자성을 띠고 있다. 바차시낙원의 땅 자체가 슈퍼자성체이며 슈퍼자기장의 공간에서 그것들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바차시낙원에서 이뤄지는 생명의 현상은 생리자장작용의 현상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생리자장은 보이지 않는 빛의 현상이며 그래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차원이 다른 이차원적 세상을 구현하며 바차시낙원이 존재한다."
나는 역시 쇼시우시의 설명을 반은 이해하고 반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어떻든 바차시낙원의 이차원 현상은 현실세계의 물질적 구조와 다른 현상으로 우주 다차원의 현상 속에서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음에 있으면 다 있다. 마음에 없으면 다 없다.>
이 말은 바차시낙원에서 통용되는 말이었다.
낙원의 백성들은 몸을 움직여서 문명을 창조하지 않고 마음을 움직여서 염력의 힘으로 문명을 창조했다. 그래서 낙원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나 문명의 현상은 염력의 작용으로 활용이 가능한 형태로 이뤄져 있었다.
염력의 작용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물건이 없고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없는 세상이 낙원에서 살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음식이 만들어지고 집이 만들어지고 일용할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바차시낙원은 현실세계의 존재들이 꿈도 꿀 수 없는 선택받은 축복의 삶이라고 비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는 세상의 부러운 현상을 바라보며 현실세계의 아쉬움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 쇼시우시가 말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속세에서도 얼마든지 마음에 품은 꿈은 다 이뤄진다. 속세에서는 몸을 움직여서 힘을 써야 무엇이든 이루는 세상이고 바차시낙원에서는 몸 대신 맘을 움직이면 무엇이든 이루는 현상이 다를 뿐, 맘으로 꿈을 이루고 실패하기란 어느 세상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들 속세에서도 마음의 꿈이 간절하면 무엇이든 이루지 못할 꿈이 없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고 일심을 기르도록 노력하여라. 우리 샤르별도 열망적인 꿈을 일심으로 키워왔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선경세상을 펼치고 지구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지구에서도 모든 구성원들이 일심으로 꾸는 꿈이 있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지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준비를 하늘이 완료해 놓고 기다릴 것이다.”
바차시낙원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사람처럼 말을 했다. 바차시낙원에서는 입으로 말하지 않고 마음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식물과도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동물과도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식물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도 사람 못지않은 철학적인 생각과 도덕적 관념을 가지고 생육하고 있었다. 식물과 대화를 나누면서 식물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식물에게 물었다.
땅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넓게 벌리고 있는 나무였다. "나무야 답답하지 않니? 한 곳에만 뿌리를 박고 꼼짝도 못하면서 항상 그 자리에서만 살고 있는 모습이 매우 갑갑할 것 같구나."나무는 대답했다.
“사람의 생각은 틀렸어. 우리 나무들은 혼이 있어. 혼은 자유롭지. 우리 나무의 혼들은 마음껏 숲속을 활보하며 큰 나무와도 대화를 나누고 작은 나무와도 대화를 나누고 꽃이랑 열매랑 살아 있는 무엇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그래서 우리 나무들은 숲속에 살고 있는 모든 나무나 꽃이나 식물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어. 한 곳만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라고 답답한 눈으로 바라보지는 말아줘. 그건 사람의 착각이야.”
"나무들의 혼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랑도 하고 우정도 나눈다는 의미구나?"
"그럼, 우리 나무들의 혼은 어디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사랑도 하고 우정도 나누고 이런저런 이치들을 다 섭렵하면서 살고 있어. 사람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세상을 주유하듯 우리 나무의 혼들도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을 주유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의 이치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어."
“생각보다 나무나 풀들의 삶은 자유롭고 활기차구나. 그러면 나무들도 서로서로 질서라든가 도덕적 규범을 만들어 놓고 사는지 모르겠구나?"
“당연한 말을 왜 묻지? 사람들이 서로 도덕적인 관념을 잘 지키며 생활하듯 우리 나무나 풀들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야. 우리 나무들은 주변의 아무리 작은 화초나 나무들과도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공동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숲속에서 나무나 풀들이 아무렇게나 자라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 같지만 엄격한 질서와 규범 속에서 생육번식을 도모하고 있어. 앞으로는 우리 나무나 식물들에 대한 사람의 생각을 바꿔 줘."
"우린 이 세상의 사람들이 아니라 속세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이지. 그래서 속세에서 살고 있는 식물이나 나무들과는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해서 자연의 질서에 대해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단다. 과연 우리 속세에서 살고 있는 나무들도 낙원에서 살고 있는 나무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그런 말은 물어보지 마. 속세의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나무나 식물들이라고 해서 개념 없는 생육번식은 하지 않을거야. 사람이 좋은 뜻을 품으면 나무들도 품을 줄 알고 사람들이 사랑을 나눌 줄 알면 나무들도 사랑할 줄 알며 사람들의 이상이 높다고 하면 나무나 식물들도 똑같은 이상을 품고 있어. 그 이상이 뭔 줄 알아?"
"말해보렴."
"싱그러운 자연세계! 우주의 어떤 하늘과 땅에서 사람들의 높은 이상을 펼치는 그 어떤 아름다운 낙원이 존재한다고 해도 자연의 싱그러움이 빠지면 과연 그 세상을 낙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람은 그걸 생각해 봤어?"
"싱그러운 자연세계라...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고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듣고 보니 철학적으로 분석할 가치가 있는 말이구나.”
"싱그러운 자연이란 그 자체가 우주의 고고한 철학이야!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우리 식물과 나무들은 그러한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말없이 우주의 섭리와 이치대로 순응하며 생육번식을 도모하는지 몰라. 사람들이 우주만 바라보고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 말고 자연에 대한 존엄한 가치를 바르게 깨닫고 경건한 마음의 옷깃을 여미어야 할 거야. 지금 사람이 호흡하는 싱그러운 공기는 누구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우주의 축복이라고 생각해! 그야말로 말없이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다 하는 이름 없는 작은 풀씨 하나 야생초 한 포기의 노력들이 합해져서 일구어낸 숭고한 결실의 가치란 사실을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돼."
“나무 한 그루의 혼에게 이렇게 큰 철학적 가르침을 얻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구나. 나, 사람은 앞으로 속세로 돌아간 후에도 자연에 대한 숭고한 철학적 가치를 마음속에 깊게 새기고 살아갈게. 그러면 나무는 식물과 사람의 차이가 무어라고 생각해? 단순한 생태학적 차이나 생육번식의 차이를 빼고, 그 존재적 가치의 차이라든가 철학적 차이를 말해줘 봐.”
"너무 거창한 철학적 가치의 차이를 말하는 건 그렇고,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우리 나무나 풀들은 혼으로 살아. 하지만 사람들은 영혼으로 살아. 그 점이 다르겠지?"
“사람의 가장 대표적 가치가 영이라면 식물의 가장 대표적 가치는 혼이라는 뜻이구나?"
"우리 나무나 풀이나 어느 이름 없는 식물의 한 개체라도 흔이 없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아. 식물들이 그냥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제멋대로 자라거나 줄기를 뻗어나가거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속에 혼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야. 사람들은 식물의 가지나 잎이나 꽃이라 하여 그냥 아무 느낌을 모르고 저절로 생겨난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혼이 작용해서 일궈내는 자연의 현상이란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돼.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들이 서로 배려하며 도덕적 질서를 겸비하듯, 식물의 혼에 대한 예도 갖추는 미덕이 필요해. 그럴수록 사람의 가치가 낮아지지 않고 더욱 세련된 영성의 소유자로 탈바꿈할 것이란 사실을 믿어 줘. 우리 식물의 혼들은 순수하고 맑아서 사람의 영들을 순화하는 재주가 있어. 식물의 혼과 가까이하는 사람의 영들이 항상 순수한 가치를 빛내며 살기를 기대하고 싶어.”
"순수하고 맑은 식물의 혼이여! 지금 이 순간의 가르침을 영원히 기억 속에서 지우지 않을게. 그대 혼이 세상에 머물 때까지 속세의 영혼을 망각하지 말아 줘."
“좋은 사람의 영이여! 그대 영혼의 향기를 이 혼이 세상에 머물 때까지 잊지 않을게. 그럼 우리 다시 만날 기회가 없겠지만 좋은 사람의 영이여, 잘 가."
이렇게 나에게 자연의 가치를 훈계한 나무의 혼은 작고 예쁜 모습으로 눈빛이 살아 있는 요정신(妖精神)이었다. 요정신은 내 모습이 시야에서 살아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숲속에 살고 있는 식물이나 풀이나 나무의 요정신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이동하고 다른 숲속의 요정신들과 우정을 나누며 살고 있었다. 식물은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꼼짝 못한 채로 답답한 일생을 마감할 것이란 생각들이 일순간에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말 못하는 나무나 풀들이라 하여 아무 생각을 모르고 살지 않고 삶에 대한 개념과 우주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다는 사실도 묵과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내가 지구로 돌아가더라도 이제 말 없는 나무나 풀들이라 하여 함부로 대하는 생각을 바꾸고 들리지는 않더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의 혼과 대화를 마치고 이번에는 작은 나비벌레와 시선이 마주쳐 말을 걸었다. 나비벌레는 부드러운 풀잎에 붙어서 풀잎이 발산시켜주는 싱그러운 기운을 섭취하며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나비벌레, 안녕? 나비벌레는 우리 사람과 대화가 가능해?"나비벌레는 꼼지락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우리 벌레들과 대화가 안 되는 상대는 없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할 말이 있다면 어서 들려 줘. 우리 작은 벌레에도 넋이 있고 우리 벌레의 넋은 작은 요정으로 살고 있지. 우리 벌레의 요정들은 사람이나 우주나 자연계의 무엇과도 대화가 가능해."
"작은 벌레의 넋이라고 했니? 그 넋이 요정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했니?"
“살아 있는 자연은 무엇이나 넋과 혼이 있고 넋과 혼은 요정의 모습으로 살아. 그래서 우리 자연세계의 미물들은 자연세계의 무엇과도 대화가 가능하고 우정을 나눌 수도 있어."
"작은 벌레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고 신비한 체험일 것 같구나. 나는 사실 속세에서 찾아온 사람이야. 속세에서는 벌레는 단지 벌레일 뿐 그것들과 대화를 나눠보리란 상상은 꿈에도 가져본 적이 없어. 새삼스런 느낌이겠지만 과연 나비벌레처럼 작은 벌레들은 어떤 느낌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벌레의 넋이여, 지금 요정의 모습으로 나타나 속세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보지 않으련?"
그때 작고 깜찍하게 생긴 벌레의 요정이 나타나 풀잎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며 대화를 계속했다.
“사람은 우리 벌레들이 세상을 살고 있는 느낌을 알고 싶다고 했어?"“그래, 작은 벌레들이 세상을 사는 느낌을 알고 싶어."
"우리 작은 벌레들이 어떤 느낌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 묻기 전에 먼저 그 존재의 가치를 한 번 생각해 봐. 사람은 속세에서 그런 자연의 숨은 가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우리 작은 벌레들이나 눈에 띄지 않는 자연의 생명체들을 바라보면서 말이야."
"벌레들이 세상을 살고 있는 가치라니? 속세의 사람에겐 너무 생소한 질문이라고 생각해. 다만.... 이건 미안한 표현이지만……. 우리 속세의 사람들은 아주 가치 없는 대상을 비유할 때 〈벌레만도 못한 것〉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거든."
"저런! 저런! 아무리 속세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영을 품은 사람의 생각이 그 정도라니... 속세의 사람은 아직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원리를 망각하고 있나 보구나.”
"세상을 움직이는 힘과 벌레와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겉으로 드러난 큰 힘보다 드러나지 않는 작은 힘의 작용이 더 커. 녹음방초 우거진 자연계의 질서를 바라보면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기는 하겠지만, 그것들이 무사히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보이지 않는 작은 힘의 작용이 필요하단 사실을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다면 생명의 질서를 바라보는 제대로 된 눈이 아니지."
"눈에 띄지도 않은 나비벌레의 입에서 그렇게 거창한 표현의 말을 들어보리란 상상은 처음부터 못 가져 보았는데... 뜻밖이구나.”
"세상은 그렇게 드러난 진실보다 숨겨진 진실의 가치가 더 놀랍고 큰 법이야.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생명의 질서란 보이지 않는 작은 힘의 노력으로 빚어진 우주의 신비이지만, 그 중에서 우선 우리 나비벌레의 숨은 노력 한 가지를 설명해 줄까?"
"나비벌레야. 어서 궁금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렴."
"나무 가지에 아름답게 피어서 매달린 꽃과 열매가 아름답게 느껴지겠지?"
“그럼, 아무리 아름다운 녹음방초의 낙원이라 해도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지 않고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면 그 가치의 의미는 많이 상쇄되겠지.”
“사람은 꽃과 나비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어?"
“꽃이 없는 나비의 처지도 외로워 보이고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꽃의 신세도 처량해 보여. 우리 사람들은 그 정도 이치쯤은 이미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단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씨앗이 없는 꽃은 없고 아무리 탐스러운 열매라도 나비의 역할이 아니면 열리지 않아. 사람들은 저절로 나무의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열리는 줄 알고 있지. 하지만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뭉쳐 주고 그래서 씨앗이 맺고 열매가 달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이는 자연이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이지. 앞으로 우리 나비벌레들이 자라면 금세 번데기가 된 후 나비로 탈바꿈하여 꽃을 찾아가 그 위대한 자연의 질서를 펼치는 공사를 시작할 거야. 이처럼 우리 보이지 않는 미물들의 역할을 사람은 이제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어?"
"깨달을 것 같구나. 나비벌레 말고도 자연계의 작은 힘들이 우주에 펼쳐진 대자연의 숨결을 이어가는 생명의 마술사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구나."
“자연계에는 우리보다 더 작고 가치 없어 보이는 미물들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어. 그 보이지 않는 세상이 보이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하지. 곧 창조의 원동력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줘. 그리고 앞으로 사람이 속세에서 살더라도 아주 하찮아 보이는 미물을 귀하게 여기는 습관을 가져 봐. 그러면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거야. 그만큼 사람의 영이 성숙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야!"
"작은 나비벌레여! 그대는 세상의 위대한 철학자보다 위대한 가르침을 내게 전해 주고 있구나.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대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도록 할게.”
“겸손한 마음은 축복이야. 그대 사람의 겸손한 마음이 우리 미물의 마음을 열어 주었어. 그래서 우주의 소리를 미물의 입으로 사람의 영에게 들려주는 일이 가능해. 교만한 자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메시지를 들을 수 없어. 그래서 겸손한 자가 불쌍하지 않고 교만한 자의 얼굴이 너무 가엾게 느껴져. 사람은 앞으로 속세로 돌아가 보이지 않는 자연의 소리를 귀담아 듣도록 노력해 줘. 그러면 반드시 우주의 위대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을 거야."
"작은 스승이여! 지금 들려준 말들을 꼭 기억할게. 그리고 속세로 돌아가더라도 이제는 하찮은 미물을 바라보는 눈도 새롭게 가지도록 노력할게."
“미물의 가치를 아는 자가 우주의 대복을 받을 거야. 그럼 잘 가. 좋은 사람!"
나비벌레의 혼은 풀빛의 의상을 걸친 작은 요정신(妖精神)이었다. 또 록또록한 눈망울과 또렷또렷한 목소리의 요정신은 작지만 신비한 모습이었다. 나비벌레는 저절로 성장하고 번데기와 나비의 성충으로 자라서 자연계를 변화시키지 않고 요정의 넋으로 우주의 위대한 질서를 펼쳐나가고 있다는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벌레의 작은 요정신이라도 생긴 외모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작은 요정신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연계의 질서와 어우러지고 숨겨진 우주를 표현하며 보이지 않는 세상의 큰 힘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바차시낙원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누구도 무식한 사람이 없었다. 바차시낙원의 사람들은 누구도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없고 스승이란 직책도 없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누구도 하늘과 땅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섭리와 사람이 바르게 사는 순리에 대해서 깊게 각성하며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낙원의 백성들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이미 세상을 알고 있는 초인들은 아니었다. 낙원의 백성들은 살면서 스스로 깨닫고 각성하고 철학적 고찰을 이어가면서 우주의 지성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낙원의 백성들을 가르치는 스승은 다름 아닌 자연이었다. 백성들은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대한 어떤 궁금증이라도 해결하며 살고 있었다.
나무에게 물으면 나무가 사는 법을 알려주고, 새에게 물으면 새가 사는 법을 알려주고, 꽃에게 물으면 꽃이 피는 이치를 알려주고, 바람에게 물으면 바람이 부는 원리를 설명해 주기 때문에 바차시낙원의 백성들이 세상을 구성하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바가 없었다.
바차시낙원에서는 식물이나 동물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들과만 대화가 가능하지 않았다. 바람과 물과 산과 구름과 돌과 무엇이라도 대화가 불가능한 대상은 없었다. 바람은 바람의 요정이 있고, 물은 물의 요정이 있으며, 돌이라도 산이라도 요정이 없는 자연은 존재하지 않았다. 요정은 그 사물의 혼이었고 생명체가 없는 사물이라도 요정의 넋으로 활동하며 생성되고 있었다.
요정은 결국 혼의 기운으로 이뤄진 신의 형상이었고, 신의 기운으로 형성되지 않은 사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차시낙원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바차시낙원에서의 진리는 <돌멩이 하나라도 신의 기운이 빠져나가면 돌이 아니다!>라는 구호였다.
바차시낙원에서는 입으로 말하는 대화가 없고 파장과 파동으로 이뤄진 마음울림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꽃이든 자연이든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바차시낙원에 머물면서 식물과 동물과 미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의 몰랐던 이치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더구나 바람이나 돌이나 물 같은 자연의 현상과도 대화를 나누며 하늘과 땅이 생겨난 이치를 터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기도 했다.
그 중에서 물과 대화를 나눴던 순간에 몰랐던 상식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은 현실의 세계에서나 이차원의 세계에서나 생명의 이치를 풀어가는 중요한 단서이며 또한 가장 흔한 물질이기도 했다.
돌이라도 혼이 있고, 흙이라도 혼이 있고, 바람이라도 혼이 있듯이 물도 역시 물방울의 혼이 있었다. 물방울의 혼은 물방울의 요정신으로 활동하며 물의 신비한 기능을 하늘과 땅에서 발휘하면서 생명의 마술을 연출하고 있었다.
바차시낙원에서는 물방울 요정에게 <생명의 마술사>란 애칭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물방울 요정들은 하늘에서 수증기로 날아다니기도 하고 숲속의 풀잎에서 이슬의 앙증맞음으로 살기도 하고 식물의 혈관을 타고 타임머신의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물방울 요정들의 표정에는 항상 당당함이 빛나고 있었다. 물방울 요정의당당한 표정이 무슨 의미일까?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숲속의 풀잎에 이슬의 모습으로 앉아있는 물방울 요정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물방울의 변신은 끝이 없어 보이는구나. 풀잎에서는 이슬로 하늘에서는 구름이나 수증기로 산골짜기에서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로 바다나 호수에서는 거대한 자연의 풍모로, 그야말로 물의 변신이란 천태만상 그 자체로 보이는구나. 그래서 물방울의 요정들은 다른 요정들보다 더욱 당당함이 빛나는 표정으로 살고 있을까?"
물방울 요정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람이 알고 있는 물방울의 변신은 지금 말하는 내용이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아. 물방울의 역할이란 그야말로 자연계의 모든 생명을 연출하는 아주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말하자면 물방울의 역할이란 보이는 현상보다 보이지 않는 현상의 이치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 중에서 모든 자연계의 으뜸 생명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 하나를 살펴보더라도 그 시작은 아주 작은 물방울 하나에서 시작되었단 사실을 사람은 알고 있을까?"
“사람의 목숨이 작은 물방울로부터 시작되었다니? 무엇일까? 그 비밀이 궁금하구나.”
“사람의 목숨이란 말야...."
"응, 어서 뜸들이지 말고 궁금증을 풀어줘."
“처음에는 어미의 난자와 아비의 정자라고 하는 아주 작은 물방울의 결합체로 시작되었어. 그 작은 물방울 속에 생명의 프로그램이 작동되기 시작하고 우주의 진동이 가해지면서 생명의 기운을 발휘하기 시작한 거야. 세상의 어떤 영웅호걸이라도 그 목숨이 시작된 동기는 모두 똑같아. 그 한 방울의 작은 물방울에서 시작된 사람의 목숨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의 역사와 문명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해 봐. 사람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크고 작은 어떤 생명체라도 처음에는 작은 물방울로 시작된 이치는 똑같아. 다만 그 물방울 속에 작동하는 생명의 프로그램이 우주진동의 자극을 받으면서 각각 다른 형태의 생명체로 태어나 자연계를 수놓고 살아가지. 더욱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더 들려줄까?"
“물방울 요정아, 어서 그 사실을 나에게 밝혀 줘."
“그래, 사람.... 이 물방울의 말을 잘 듣고 기억해 둬. 보이지 않는 작은 물방울 속엔 말야.... 생명계의 이치를 풀어가는 창조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어. 그것은 마치 어떤 현상과 비교할 수 있느냐 하면 말야…. 사람들이 생각하며 살 수 있는 건 두뇌에 형성된 신경세포의 작용 때문이겠지. 신경세포에 저장된 기억과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 마찬가지로 물방울은 우주의 두뇌세포와 다르지 않아. 곧 우주를 거대한 슈퍼두뇌라고 표현하자면 그 슈퍼두뇌의 기능을 발휘하는 신경세포가 바로 물방울이란 뜻이지. 그래서 식물이나 동물이나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명체들은 한 방울의 물로 시작된 후부터 수분을 섭취하며 수분 속에 저장된 우주정보를 활용해서 무난하게 유전적 생명의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거야.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생명체의 몸 속에서 수분이 고갈됨과 동시에 그 생명체의 일대기는 종말을 고하게 되지. 어때, 사람! 물방울이 전해주는 유익한 정보였다고 생각해?"
“물방울의 설명은 놀랍기만 하구나. 마치 우주창조의 모든 비밀을 꿰뚫고 있는 듯이 물방울 속에 숨겨 둔 우주의 진실을 나에게 털어 놓는구나. 자연계의 생명을 연출하는 힘이 물방울 속에 숨겨져 있었다니 너무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단다. 더구나 물방울이 우주의 두뇌세포란 사실은 상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빅뉴스였어."
“사실 우주의 두뇌세포는 꼭 물방울 한가지로 국한되어 있지는 않아. 사람의 두뇌에도 다양한 형태의 신경세포가 형성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두뇌세포도 물방울이나 빛의 분자나 기의 형태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어. 그렇게 다양한 형태의 우주인자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계의 생명체들은 우주적 질서를 유지하며 우주의 이상을 잘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
“물방울 요정, 정말 고마워. 마치 나는 이 순간 우주의 큰 스승 한 분을 만나고 있는 기분이야. 물방울 요정이 말하는 그 높은 우주철학은 사람들도 쉽게 깨닫고 있는 상식이 아니야. 참으로 바차시낙원의 백성들은 우주에서 너무나 큰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훌륭한 자연계의 스승들이 주변에 쫙 깔려 있고, 궁금할 때마다 우주의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하고 든든할지 상상하고 남을 것 같아."
"사람, 말 잘했어. 사람에게 자연보다 뛰어난 스승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자연의 가르침은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들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이야. 교만한 자들에겐 어떤 자연의 가르침도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아. 그러므로 당신 사람은 앞으로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살도록 노력해봐. 그러면 멀리서 들려오는 우주의 큰 가르침까지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어. 우주는 파동의 세상이며 파동 속에 우주의 메시지가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단 사실을 명심해 줘. 우주의 메시지를 잘 전해 듣는 우주의 백성들은 누구도 망하지 않아."
“물방울의 말이 명답이야.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속세의 백성들 중에는 아직도 우주의 메시지와 교류를 중단하고 귀를 막은 채로 현실의 보이는 현상들만 전부라고 여기며 전력질주하고 있단다. 그래서 나는 우리 속세의 미래가 걱정될 때가 많아."
"저런, 저런! 우주의 메시지에 귀를 막고 어떻게 그 삶을 온전하게 지탱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길도 모르는 낯선 땅에서 빛도 없이 암흑세상을 걷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는 현상일 텐데….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속세의 사정이구나. 그래도 당신 사람은 우주를 향한 백성들의 어두운 귀를 열어주도록 노력을 중단하지 말아줘. 그 백성의 목숨들이 불쌍하잖아?"
“그래. 물방울의 요정이여, 고맙구나. 우리 속세의 불쌍한 백성들을 생각해 줘서…. 물방울의 권고를 잊지 않고 속세로 돌아가면 최선을 다하도록 할게."
"우주의 자상한 배려가 사람에게 임하기를 기도할게. 우주의 자상한 배려로 속세의 백성들에게 닫힌 귀가 열릴 수 있도록 기도를 중단하지 않을게. 사람이 속세로 돌아갈 때 우리 낙원의 물방울을 묻혀가렴. 낙원의 정보가 저장된 물방울이 속세의 물방울 속에 낙원의 정보를 복사하여 속세에 구석구석 전달해 줄 거야."
"순결한 물방울 요정이여, 좋은 답을 알려줘서 고맙구나. 물방울의 권고대로 실천해 볼게."
“그럼. 좋은 사람, 잘 가! 속세로 돌아가서 좋은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아 줘. 우주영성의 자상함이 사람의 영혼을 잘 지켜주고 도와줄테니까..."
물방울 요정과 대화를 마치고 우리 셋은 다시 바차시낙원의 각 성들을 주유했다. 낙원의 성들은 다양한 이름이 많았는데, 성마다 특색이 다른 삶들이 펼쳐지고 그 중에는 낯익은 이름의 성도 있었다.
낯익은 성의 이름들은 극락도원경, 용화연경, 백화요지경, 요운진경 등등이었다.
극락도원경에 이르니 천도화의 향기가 온천지에 진동하고 도화향에 취한 사람들은 너울거리는 선복을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들리는 건 웃음소리요, 노랫가락이요, 진귀한 악기들의 울려 퍼짐이었다.
극락도원경의 사람들은 하늘의 넓은 구름바다에 모여 군무로 춤을 추기도 하고 합창을 하기도 하고 꽃그늘의 풀밭에서 뒹굴며 이런저런 놀이에 취하며 세월을 잊고 있었다. 남는 것이 시간이요, 영원함이 삶이요, 넘치는 것이 풍요인 그 세상의 사람들은 멋과 풍류로써 생의 낙을 삼고 있었다.
멋과 풍류에 취해서 살고 있는 극락도원경의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의 타고난 재주들이 탁월했고, 그 재주를 바탕으로 서로를 즐겁게 하고 때로는 자아도취해서 덧없는 세월의 흐름 속을 여행하기도 했다.
어떤 선인은 춤으로, 어떤 선인은 악기연주로, 어떤 선인은 그림이나 노래나 마술로도 신통묘기를 뽐내면서 세상을 놀라게도 하고 기쁘게 고 했다. 그런 신통묘기의 재주꾼들이 없다면 극락이 아무리 극락이라고 해도 무료한 삶의 연속일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극락도원의 선인들은 각각 저마다의 신통묘기로 무극경지(無極境)에 도달한 후 무극의 신통묘기로써 극락의 삶을 즐기며 세월의 오고감을 잊고 살고 있었다.
신통묘기의 화선(仙)이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살아서 움직였다. 화선이 그린 꽃에서는 향기가 나고 그림속의 나비는 꽃을 찾아 춤을 추며 세상의 나비들이 찾아와서 살아 있는 꽃인양하여 꽃가루를 묻히려고도 했다. 화선이 그린 나무에는 새가 날아들기도 하고 화선이 그린 사람들은 혼이 살아 있어서 혼으로 말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화선이 그림을 그릴 때 단순하게 붓만 놀리지 않고 혼이 작용하여 붓과 물감으로 칠해놓은 그림 속에 혼이 들어가 무극의 기운으로 작용하니 그림이 또한 혼과 함께 살아서 움직였다.
초도로 기법으로 영혼의 세계나 초자연현상을 생영상으로 촬영하는 쇼시우시는 화선의 살아 있는 그림에 대해 이런 설명을 들려주었다.
"화선이 그림을 그릴 때는 단순하게 붓으로 물감을 찍어 모양과 색깔만 칠하지는 않는다. 화선의 내면 깊숙이 축적된 정신이 움직여서 그 정신에 혼을 담아 붓끝을 움직인다. 화선의 붓끝은 손으로 움직이지 않고 혼이 움직이며 그래서 그림 속에 혼이 녹아 스며든다. 그러므로 화선이 그린 그림은 한 장의 화폭 속에 정지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림 속에서 나오는 기운이 큰 파장의 물결을 지으며 우주로 퍼져간다. 곧 화선이 그린 그림은 우주를 움직이는 파장을 만들어내고 우주를 움직이는 파장이 발산하는 그림을 혼이 살아 있는 그림이라 한다. 화선들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혼을 화폭에 담아 그 파장으로 우주를 움직이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화선의 그림은 살아서 움직이고 살아 있는 양 살아 있는 것들과 호흡을 함께하는 것이란다."
화선이 화폭을 마주 대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은 특이했다. 붓끝은 화폭 위에서 움직이는데 곁에서 수다를 떠는 선녀들과는 잡담도 나누었다. 선녀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다른 선인이 농을 걸면 받아주기도 했다. 화선은 술이 취한 상태에서도 붓끝을 움직이고, 선녀들을 희롱하면서도 붓끝을 움직이고, 선인들과 농을 즐기면서도 붓끝을 움직였다.
손끝에서는 그림의 혼이 움직이고 생각으로는 극락시간을 즐기는 화선의 기이한 행동이었다.
그림을 한 번 시작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화선의 붓끝이 멈추지 않는 현상에 대해 쇼시우시가 다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화선이 그림을 그릴 때는 손끝의 기교로 붓을 움직이지 않고 기운의 흐름으로 붓을 움직인다. 기운은 흐르는 물과 같아 멈추면 정지되어 연동성이 끝난다. 그림의 생명이란 기운의 연동성이며 연동성이 정지된 그림은 살아 있는 그림이라고 평할 수 없다. 그래서 속인의 그림처럼 놀다 쉬다 멈추었다 그리는 그림은 기운의 흐름이 난조하여 살아있는 파장이 전달되지 않는다. 그림뿐만 아니라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기운의 흐름이 멈추고 시작되기를 반복하면 완성도를 이루기 어렵다.”
쇼시우시의 설명을 듣고 나서 암봉첨단에서 몸에 구름을 휘어감은채 그림에 열중하는 화선(仙)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높게 솟은 바위 절벽과 계곡이 멀리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암봉 바위는 마치 돌기둥을 조각해서 하늘 높이 탑처럼 세워 놓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아래로는 구름바다가 자욱하게 깔려서 낭하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 구름바다 위로 솟은 암봉의 첨단에서 화폭을 펼쳐놓고 물감 묻힌 붓끝 놀리기에 여념이 없는 신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저절로 경건한 기분이 맘속에서 우러났다.
화선이 화폭 위에서 붓끝을 움직일 때마다 나무가 살아나고, 꽃이 살아나고, 새들의 울음소리와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살아나는 모습이 신기했다. 화선은 그림에 열중하면서도 곁에 다가와 교태를 부리는 선녀들의 수다에 응수하기도 하고 동료 선인들의 농담에 말을 섞기도 하며 가끔씩 선녀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비우면서 취기에 젖기도 했다.
그렇게 기행적인 행동으로 화폭을 채우고 있는 화선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더니, 화선은 나의 신분도 확인하지 않고 순순히 대화에 응해주었다.
"이곳 극락도원의 선인백성들은 저마다 풍류가무를 즐기며 무아지경 자아도취에 취해서 세월을 잊고 사는데, 화선께서는 화폭에서 붓을 뗄 줄 모르고 따분한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르시니 그 의미를 속인이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특별한 이치나 숨겨진 뜻이 있다면 설명해 주십시오."
"속인이 정중동의 자유쾌락을 알겠느냐? 육은 머무르나 혼은 선유하니 우주천하 거칠 것 없는 혼의 자유쾌락을 속인이 알겠느냐?"
"선인께서는 화폭 앞에서 몸은 부동이나 혼은 자유로이 우주천하를 선유하며 무아지경의 쾌락을 향유하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속인이여! 육신은 자유롭지만 혼이 갇혀 있으면 부자유스런 정신의 억류요, 육신이 갇혀 머무나 혼이 자유스러우면 정신의 유유자적이니, 속인은 육신의 자유와 쾌락을 원하나 선인은 혼의 자유와 쾌락을 원한다. 속인의 눈으로는 나의 모습이 따분할 것이나 영안이 열린 눈은 천하선유하는 나의 혼을 볼 것이다."
화선은 나의 말에 응수하면서도 여전히 화폭에서 붓을 멈출 줄 몰랐다. 화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길게 연결되는 두루마리 그림인데, 자세히 보니 원근감과 입체감이 사실적이고 마치 그림 속의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효과들이 특별했다. 길게 연결된 두루마리 화폭에 입체적으로 그려가는 그림은 화선의 머릿속에 살아 있는 영감의 세상을 산책할 수 있는 선유의 장면이기도 했다.
“나는 붓끝을 도구 삼아 우주천하와 내 영감의 세상을 선유하며 숨겨진 세상들을 화폭에 초대하기도 하고 숨겨진 세상으로 향하는 출입로를 개방하기도 한다. 붓끝에서 내 영혼의 쾌락은 춤추고, 붓끝에서 내 정신세계의 파노라마는 환상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화폭은 작지만 그 유한한 공간에 무한한 내 혼의 우주를 채우니 앉아서 천하를 아우르는 쾌락을 다른 수단으로 채우기 불가하리라.”
화선은 이런 말을 하면서 수중에 간직하고 있던 작은 화폭의 그림 한장을 내게 내어주며 부탁했다.
“이 그림을 태워보아라."
작은 화폭 속에 꽃과 나비가 그려져 있고 천상의 여인들이 꽃향기에 도취되어 무아의 경지에서 춤을 추며 노는 장면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내가 화선의 부탁대로 그림을 태우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림이 타면서 그림 속의 미인들이 살아 나와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화선이 말했다.
"무엇이 보이느냐?"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미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어디서 나타난 미인들이냐?"
"화폭 속에서 춤을 추고 노닐던 미녀들입니다.”
“그 미녀들이 누구이며 어느 곳을 향해 날아갔다고 생각하느냐?""화폭에 그려졌던 여인들의 모습으로 알고 있을 뿐 그 신분이 누구이며 날아간 세상이 어딘 줄은 제가 모릅니다.”
“화폭에는 나의 혼이 담기고 그래서 그 화폭에 그려졌던 미인들은 나의 혼이며 나의 혼이 날아간 곳은 우주 또 다른 세계에 머물고 있는 이상의 세계이다. 이렇듯 화폭 속에서 나의 혼은 자유스럽고 무한한 창조와 상상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화폭은 나의 혼이 살아가는 극락이요 낙원이요 쾌락의 동산이다. 이보다 좋은 극락정토를 어디서 더 찾으란 말이냐?"
화선의 말을 들으니 더 이상 묻고자 하는 내용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또 다른 기행선인은 베틀에 앉아 날마다 빛살을 실 재료 삼아 베를 짜는 직녀였다. 직녀의 자태는 곱고 아름다운데 그 눈빛의 요염함과 그 표정의 교태는 천심을 녹이는 기운이 넘쳐나고 옥으로 빚은 듯 고운 손을 움직여서 짜내는 옷감은 눈부신 광채로 빛나기만 했다.
천도가 향기롭게 익어가는 극락정원의 꽃그늘에 베틀을 차려놓고 날마다 "딸그락, 딸그락..."
베를 짜는 직녀의 몸에 오색채운이 둘러 있고 베틀 주변으로는 기화요초의 향기가 물씬했다.
직녀가 베를 짜는 정원에는 비도 눈도 피해가고 그 머리 위에는 구름이 지붕 삼아 덮여 있으며 베를 짜는 재료가 되는 빛살은 베틀과 우주까지 길게 이어져서 끝이 어딘 줄 알 수 없었다.
직녀가 빛살로 짠 베는 옷감으로 나눠주고 옷감을 얻으려는 선인들은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직녀가 빛살로 짜내는 옷감은 입어도 구름을 두른 듯 하고 세월이 흘러도 닳지 않으며 향기가 마르는 일이 없고 질감이 낡아지는 일이 없으니 천상계의 백성들조차도 일부러 찾아와서 얻어가는 극락도원의 명품이었다.
직녀가 베틀에서 옷감을 짜고 있을 때 옷감을 얻으려고 기다리는 선인들은 무료함을 잊은 채 각자의 재능대로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천상계 잔치를 벌여 주니, 직녀의 손끝은 저절로 신명에 겨워 세월을 잊으면서 베틀을 움직였다.
극락직녀가 베틀에 앉아 빛살 베를 짜고 있는 모습은 마치 무아지경에 도취되어 춤을 추는 선녀의 모습인데, 섬섬옥수로 움직이는 손놀림은 마술을 하는 듯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직녀가 짜내는 옷감이 실제로 베틀에서 나오는 옷감인지 직녀의 손끝에서 거미줄처럼 마술로 빚어내는 옷감인지는 두 눈을 뜨고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 셋도 극락직녀가 손수 짜서 만들어 준 옷 한 벌씩을 얻어 입었는데, 속세로 돌아온 후로는 벗은 몸처럼 입은 옷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동화 속 임금님의 투명한 옷처럼, 직녀가 짠 옷감의 옷이 속세에서 속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베틀을 밟느라 여념이 없는 극락직녀를 향해 내가 또 우문 대화를 걸었다.
"직녀께서는 날마다 쉴 틈도 없이 베틀에서 내려올 줄을 모르고 신들린 손놀림으로 옷감을 짜서 나눠 주니 끝없이 반복되는 일로 무료한 생각이 안 드는지 궁금합니다."
직녀는 싱거운 질문을 듣는다는 표정으로 피식 입가에 웃음을 나타냈다. 그리고 우리 셋의 표정을 하나하나 요염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속인들이 어찌 무아경지의 낙을 아느냐? 무아경지의 쾌락 속에 시간이 무엇이며 세월이 무엇이냐? 무궁한 세월이 흘러도 무아경지의 맘속에는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못하니, 무료함도 없고 따분함도 없다. 항상 즐겁고 그 즐거움은 영원하니 극락의 선시(時)에는 녹스는 일이 없다. 시간이 녹슬지 않으면 마음도 녹슬지 않으니, 녹스는 시간은 속세에나 머물리라.”
직녀는 베틀에서 일을 하다말고 내려와서 우리들과 한담(閑談)을 나누기도 했다. 속세의 일들도 물어보고 우리들의 궁금증도 털어 주었다. 그리고 선물로 그녀가 손수 짜고 만든 옷 한 벌씩을 선물로 입혀주었다.
직녀가 직접 길쌈한 그 옷의 이름을 극락선의(極樂仙衣)라 불렀다. 극락선의를 직접 입혀 주며 직녀가 말했다.
“이 옷은 육신이 입는 옷이 아니라 영혼이 입는 옷이니 속세에서는 보이지 않고 영안이 열린 눈으로만 보이리라. 극락선의에 세월의 때가 끼지 못하니 속세에서 삶이 머무는 동안 마음이 늙지 않고 만년청춘의 혼으로 살리라."
극락직녀의 베틀놀림을 구경하고 극락무희를 만났다. 오색채운을 휘어 감고 무아지경의 극락선무(極樂舞)에 빠져 있는 극락무희의 춤사위는 주변의 새소리와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모두 잠재우고 있었다.
극락무희가 춤을 추며 손끝 발끝을 움직이고 몸을 틀고 솟구칠 때마다 금가루 은가루가 흩날리며 뿌려지는 듯하고, 악대들의 음악소리는 고조와 자지러짐을 반복했다. 극락무희의 춤 구경에 빠진 선인들은 길을 가다 멈춘 채 몽환에 젖어 있고, 하늘에서 구름타고 놀던 선인들은 놀던 동작을 멈추고 극락선무의 황홀경에 도취한 상태로 혼이 빠져 있었다.
샤르별에서 춤꾼으로 소문난 샤르비네조차 극락무희의 춤에 매료되어 말문을 닫고 천지기운을 희롱하는 춤사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내가 샤르비네에게 질문했다.
"극락무희의 춤을 바라보며 샤르비네는 어떤 느낌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오."
샤르비네는 여전히 몽환적인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대답했다.
“춤의 진수를 느끼고 있어요."
“샤르비네의 춤과 무엇이 다르오?"
"극락무희는 춤을 추면서 천지기운을 희롱하고 있어요. 제 춤으로 극락무희의 기교를 따라갈 수는 있어도 그 기운은 따라잡지 못해요. 저도 앞으로 천지기운을 희롱하는 무희가 되고 싶어요."
“천지기운을 희롱하는 무희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오?"
"마음을 갈고 닦아 극락진경의 영성을 얻지 못하면 불가해요. 극락무희는 지금 무아지경에서 극락진경의 황홀감에 도취되어 있어요. 극락무희는 지금 몸으로 춤을 추지 않고 혼으로 춤을 추고 있어요. 혼이 움직여야 천지기운이 움직이지요. 혼으로 춤을 추는 극락무희는 춤꾼으로 말하면 최고의 수준에 이른 모습이지요."
“샤르비네가 춤을 출 때도 저런 몽환적인 표정이 나타날 때가 많소.
그리고 신명들이 응하고 영혼들이 함께 다가와 춤을 추는 모습도 발견하곤 했었소. 그 정도면 샤르비네도 속세에서 최고경지의 춤꾼이라고 칭찬을 들어야 마땅하지 않소?"
"샤르앙의 칭찬은 고맙지만 저는 아직 극락무희의 수준과 비교해서 걸음마 단계에도 미치지 못해요. 일부러 겸손을 떠느라고 제 춤 실력을 낮춰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극락무희에게 춤추는 요령을 한 수 배워 가고 싶어요."
샤르비네는 당돌하게도 몽환상태에서 극락선무 춤사위에 빠져 있는 극락무희에게 말을 걸었다. 뜻밖에도 극락무희는 샤르비네의 대화요청을 받아주었다.
"속인이여, 말하라. 무슨 청을 내가 들어줄까?"
극락무희의 호쾌한 반응을 보고 샤르비네가 좋아하며 애교 띤 음성으로 속내를 털어 놓았다.
"저도 속세에서 춤꾼으로 소문나 있지만, 심지어는 제 춤에 대해 신무라는 평판을 듣기도 하지만, 극락무희님의 춤 솜씨를 바라보니 가히제가 춤꾼이란 이름조차 쓰기가 부끄러운 것 같아요. 제게 춤 잘 추는 요령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극락무희는 샤르비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춤은 춤이 아니라 천지기운을 응집하고 발현하는 혼력(魂)이다. 혼으로 춤을 추어야 춤이 살고 몸으로 추는 춤은 춤이 죽는다. 살아 있는 춤이 천지기운을 움직이고 혼력이 없는 죽은 춤은 몸만 유령처럼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러므로 요령을 배운다고 춤을 잘 추지는 못한다. 몸 속에서 타고난 기운이 발동해야 제대로 된 춤사위가 무르녹으니 그 기운을 네 몸에 축적시켜 주리라."
이 말을 마치고 극락무희는 샤르비네에게 극락선약 한 알을 선물했다. 선약을 복용하고 샤르비네가 춤을 추자 처음 보는 춤사위가 나타나며 천지기운을 움직이는 극락선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선약성분이 샤르비네의 몸 속에서 작용하며 신비한 기운을 발현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이란 몸으로 추지 않고 기 흐름에 혼을 맡겨야 제대로 된 춤을 출수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셈이었다.
무아의 경지에서 배우지도 않은 극락선무를 추고 있는 샤르비네를 바라보고 극락무희가 극찬했다.
"타고난 춤꾼이로다. 천지기운을 희롱하는 무극(無極)의 춤사위라니과히 하늘과 땅이 감탄할 만하도다!"
샤르비네의 춤이 끝나고 극락무희는 그 자리서 샤르비네를 제자로 봉했다. 그리고 극락선약 한 알을 더 먹여 주면서 말했다.
"속세로 돌아가거든 극락선무로 몸을 잘 단련하여 춤 속에 무극혼력이 깃들게 하고, 무극(無極) 춤사위의 기운으로 속세의 어지러운 기운을 정화하여 온 세상이 극락의 물결로 출렁이게 하여라. 극락선무의 춤 기운이 천지기운을 응하게 하고 하늘과 땅의 소통을 도우리라.”
극락무희의 춤을 구경하고 극락고를 연주하는 악선(樂仙)을 만났다. 극락고는 스물네 줄의 현으로 이루어진 가야금처럼 생긴 악기였다. 극락고는 손가락으로만 현을 튕겨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인데, 높은 음률과 낮은 음률을 자유롭게 연주하며 천상의 신통묘음을 만들어냈다.
악선의 손가락이 극락고 위에서 현란하게 춤을 출 때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고아한 신통묘음의 음률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주변에 몰려 든 선인들은 무극 삼매경의 춤사위를 극락고 소리에 맞춰 추었다.
극락고 소리는 자지러진듯하다가 고조되고 고조되었다가 다시 자지러지기를 반복하며, 현란한 신통묘음의 무극진경을 넘나들었다.
악선이 극락고를 튕기는 장소는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였고, 정자의 주변으로는 온갖 녹음방초와 기화요초의 향기가 물씬했다. 깊은 계곡으로는 옥수처럼 맑은 물이 굽이치고 굽이치기를 반복하며 멀리까지 흘러가고 붉은 색 천도화의 꽃물결은 산 능선을 뒤덮고 구름바다처럼 이어지고 꽃불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정자아래 계곡으로 운무가 깔려 있으며 극락고 소리를 듣고 몰려 든 선인들이 너울거리는 의상을 펄럭이며 신통묘음에 맞춰 구름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구름 위에서 춤을 추는 선인들은 구름 속으로 몸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운상군무(雲上群舞에 열중했다. 아무리 많은 선인들이 모여서 구름 위에서 춤을 추어도 구름은 내려앉지 않았고, 선인들의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선지 땅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극락고를 연주하는 악선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 눈빛과 표정은 무극의 황홀경에 빠져 있으며 무아의 경지에서 손가락만 신들린 듯 극락고 현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극락고 소리가 자지러지면 악선의 표정은 혼절의 경지에 머문 듯하고 그때 거문고 현 위에서 춤을 추는 악선의 손가락만 보이고 악선의 모습은 구름 속에 숨은 듯 보이지 않기도 했다.
선인들이 극락고 소리에 맞춰 춤을 출 때 숲에서 살고 있는 새들도 날아와 공중에서 군무를 하고 꽃이나 열매의 요정들도 나비 떼처럼 날아와 선인들과 어울려 춤을 추었다.
악선의 극락고 연주가 멈추자 운상군무를 펼치던 선인들은 금세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나비 떼처럼 모여들던 요정들의 모습도 금세 어디론가 흩어지고 말았다.
극락고 연주를 멈춘 악선의 표정은 잠시 자아도취의 여운에 빠진듯했고, 곁에서 우리 셋이 기다리고 있다는 인기척을 눈치챈 듯 눈을 뜨고 바라봤다.
"저희는 속세에서 찾아온 속인들입니다. 극락고 신통묘음에 도취되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무극진경에 젖었습니다. 저희들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쇼시우시가 우리 셋을 대표하여 이렇게 말하고 예를 갖췄다.
악선은 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우리 셋을 유심히 살폈다. 입가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흘렀다. 미소를 홀리는 악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흰옷을 입은 악선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극락도원에서 살고 있는 선인들은 각자의 재능들이 탁월하고 어떤 재능이라도 무극진경의 혼력으로 하늘과 땅의 기운을 희롱하는 듯합니다. 그처럼 극락도원의 선인들이 각각의 재능으로 무극진력을 다 하는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쇼시우시가 다시 묵묵부답의 악선을 향해 무엇이라도 대답을 얻으려고 질문을 던졌다.
"무극진력이라야 무극진경에 이르고, 무극진경에 달해야 극락정토를 밟는다. 극락정토를 밟으려고 사람의 영들이 세상을 찾아오지 않았겠느냐?"
악선의 입에서 나온 의미심장한 대답이었다.
쇼시우시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극락정토를 밟으려고 사람의 영들이 세상을 찾아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모든 영혼의 본색은 태평극락에 안주하려 한다. 그리고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극락정토에는 번뇌의 그림자가 공존하지 못한다. 자아 됨의 무극에 이르면 비로소 영혼들은 자아성취의 황홀경을 얻고 극락정토에 머무르게 한다. 자아성취의 황홀경이 극락이다."
"악선께서 자아성취의 황홀경이라 말씀하시니 온몸에서 전율이 느껴집니다."
“네 영혼이 갈망하는 바라서 그렇지 않겠느냐? 속세로 돌아가서 매사에 무극진력하며 무극진경에 달하여 자아성취를 위해 혼을 다 쏟아보아라. 그러면 반드시 자아성취의 황홀경으로 극락정토를 밟으리라.”
"저희는 속세에서 무한이론의 학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주첨단문명을 일으켜 우주를 정복하며 초월적 삶을 자부했으나, 무극진력의 이치를 듣게 되니 속세의 스승이란 이름이 부끄러워집니다.”
“무극진력으로 혼을 다 쏟으면 네 영혼이 결코 부끄럽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끝내 자아성취의 황홀경으로 극락정토의 삶을 완성하리라.”
이후로도 악선과 쇼시우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악선과 쇼시우시의 대화를 들으면서 세상을 찾아온 영혼의 본질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악선이 말하는 무극진력이란 혼신을 다하는 경지를 일컬음이며 그때 비로소 더 이상 영적인 경지에 이를 수 없는 무극진경에 달하고 무극진경에 이르렀을 때 영혼은 비로소 자아성취감의 황홀경을 만끽할 수 있다는 대화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악선의 높은 철학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샤르별의 초월적 문명세계에서도 아직 다 못 벗겨진 영혼의 껍질이 한 겹 더 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이 외에도 극락도원에는 다양한 신통묘기로 무극의 경지에서 천지기운을 희롱하는 무극(無極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무극의 경지에서 극락도원의 신선들은 세월의 오고 감을 잊은 채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묻혀서 풍류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극락정토가 무엇이며 선경세상이 무엇이겠는가? 자아성취의 황홀경을 얻고 무아지경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이상 추구하고 바라는 이상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극락도원에서 살고 있는 신통묘기의 무극선들을 다양하게 만나 본 후 우리 셋은 극락도원의 성주를 찾았다. 극락도원은 온천지가 천도화의 붉은 물결로 덮여있고 녹음방초는 푸르러 상춘의 계절을 유시무종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극락도원 성주의 집은 운상누각이었고 구름 위로 뾰족뾰족 솟아난 누각의 지붕들이 보석으로 장식한 형상처럼 반짝거렸다.
성지기 백성들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성주의 누각을 지키거나 이런저런 시중을 들고 있었고, 불청객인 우리들을 성지기가 발견하고 성주 앞으로 안내했다.
"속세의 하늘에서 바차시낙원을 찾아 온 방문객들이며, 낙원의 성들을 방문하던 중 무극의 땅 극락도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쇼시우시는 극락도원 성주를 찾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속세에서 찾아 온 손님들이라면 아직도 벗기지 못한 영혼의 껍질을 두르고 있으리니 무극의 이치를 터득하면 영혼의 자유를 누리리라.” 극락도원 성주가 쇼시우시에게 답례로서 한 말이었다.
쇼시우스와 극락도원 성주는 다시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극락도원의 선인들이 무극진력하며 자아성취의 황홀경에 젖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무극의 이치 속에 영혼의 본색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극은 영혼의 뿌리가 내려진 땅이요 영혼의 씨앗이 영그는 바탕이니 무극의 이치 속에서 영혼들이 자유롭고 무위극락을 누리는 바이다."“영혼의 무위극락이라 말씀하셨습니까?"
"그렇다. 무위극락은 모든 영혼들이 본래 취할 바다. 극락은 모든 영혼들이 취할 바 본색이나 번뇌와 고통의 침착으로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한다. 무위극락은 더함도 덜함도 없는 본질의 형상으로 그것을 가장 그것다움의 정토에 머무르게 하는 최상조건이다."
“속세에서는 죽은 영혼들을 위해 신선봉안과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미덕이 있으나 무위극락의 깊은 뜻을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혼들이 누릴 바의 본질을 찾으려면 극락도원의 선인들이 무극무위에 이르러 자아성취의 황홀경에 젖어 살아가는 모습으로 가름할 수 있으리라. 자아성취의 황홀경에 이른 영혼들이라야 고통과 번뇌에서 자유로운 신선의 길을 걸으리라.”
"속세에서는 신선놀음을 즐기며 영혼의 자유를 추구합니다. 무극무위의 자아성취와 어떤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까?"
"신선놀음은 풍류의 수단으로서 영혼의 해탈과 자유를 추구함에 나무랄 바 없으나 그러한 수단으로 자아성취의 황홀경에 이르지는 못하리라. 다만 번뇌와 고통의 그림자가 침습해오는 속세의 공간에서 신선놀음이란 영성을 바로 세우는 지혜로운 삶이라고 칭찬해 줄만 하구나.”
"저희 속세에서도 더러는 무극진경의 자아성취에 도달한 빛의 화신들이 태어나 수호신으로서의 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줍니다."
"속세에서나 어디서나 무극진력을 다하면 무극진경에 다다르고 그리하여 끝내 자아성취의 관문을 통과하리라.”
"속세의 불청객들에게 깊은 깨우침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 속인의 길을 다시 걷도록 하겠습니다.”
“속세로 돌아가기 전 너희 셋을 무극진력의 제자로 봉하기를 희망하노라."
"그렇다면 저희에게 큰 영광입니다. 저희 셋의 속명은 쇼시우스, 샤르비네, 샤르앙입니다."
"나의 이름은 무극이라 기억하라. 이제부터 쇼시우스 샤르비네 샤르앙을 무극의 제자로 봉한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나 속세로 돌아가서 무극의 제자로 무극진력을 실천하겠습니다."
"나도 항상 제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우리 셋은 무극과의 작별을 고하고 현실의 공간에서 타고 왔던 초도로머신으로 돌아왔다. 초도로 머신으로 돌아와서 파장의 주파수를 현실의 공간과 일치하도록 변경시켰다. 그러자 이제까지 눈에 보이던 바차시낙원의 이차원공간(異次元空間)은 사라지고 현실 세계의 공간이 나타났다. 초도로 머신이 이동하고 있는 공간은 현실의 공간과 바차시 낙원이 펼쳐져 있는 이차원의 공간이 겹쳐있는 세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결국 이차원 공간에서 바라볼 때 현실 공간은 또 다른 이차원공간이었을 것이다.
서로 겹쳐있는 이차원 공간과 이차원 공간들은 각각 그 공간에서 살고 있는 파장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공간은 간섭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 느끼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샤르별의 4차원 문명세계에서는 우주를 이차원공간들이 양파껍질처럼 겹쳐있는 다차원의 세상이라고 정의하고 있었고, 다차원의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초도로 머신이 필요했다. 꼭 초도로 머신이 아니라도 초도로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장치만 있으면 이차원(異元) 현상을 체험하는 일도 가능했다.
그래서 우주를 여행하는 UFO에도 초도로 주파수가 설치되어 있고, 우주를 여행하면서 이차원 공간을 찾아가 새로운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곧 초도로 주파수는 현실의 공간과 이차원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장치였다. 초도로주파수로 다른 차원의 세상을 구경하고 체험하는 현상을 초도로 현상이라고 불렀다.
초도로현상으로 생각할 때 영혼의 세계도 또 다른 하나의 이차원공간일 뿐이었다. 영혼과 육신은 서로 주파수가 다른 형태로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 느끼지 못하고 서로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초도로머신을 타고 이차원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초도로포털을 찾는 일이 중요했다. 초도로포털은 이차원공간이 열리는 우주관문의 이름이었다.
우주공간은 그냥 맨눈으로 바라보면 텅 빈 공간에 불과하지만, 공간에서 역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은 대단했다. 이런 공간에너지의 역동성으로 우주에는 다차원의 현상들이 존재하고, 공간에너지의 산과 계곡과 강과 바다와 같은 현상 속에 우주관문의 초도로포털이 숨어 있었다.
초도로머신에는 초도로포털을 찾는 기능이 설계되어 있었고, 그러한 기능으로 현실공간에서 숨겨져 있는 이차원공간으로의 이동이 가능했다.
초도로머신과 UFO는 기능상 우주공간을 이동하는 이치는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이동하는 방법이 달랐다. UFO는 초디느라고 하는 가공에너지를 활용하고 초도로머신은 바니니라고 하는 무극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이 달랐다. 무극에너지와 대칭되는 현상으로 태극에너지가 존재하고, 초디느와 같이 음양의 이치로 가공된 에너지의 총칭이 태극에너지였다.
무극에너지를 다른 말로 초자연에너지라고 표현할 수 있고 우주채널링이나 파뵤시현상을 일으키는 에너지의 총칭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무극에너지로 우주를 이동하는 초도로머신은 속도의 한계가 없었다. 무극에너지의 속도는 염속과 같은 의미이고 생각과 동시에 아무리 먼 공간이라도 이동이 가능했다. 곧 초도로머신은 염속으로 우주공간과 이차원공간을 이동하는 장치였다.
이처럼 무극에너지로 움직이는 초도로머신을 타고 우주공간에서 초도로포털을 찾아내면 어떤 이차원공간으로의 이동도 가능했다.
초도로머신을 타고 방문한 이차원공간은 다양했다. 이차원공간에 펼쳐진 삶들은 현실공간에 펼쳐진 자연현상과 비슷한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었다.
이차원공간에서도 가장 호감이 가는 세상은 바차시낙원처럼 무중력이 작용하는 세상이었다. 중력 때문에 무거운 몸으로 세상을 살지 않고 무중력 상태에서 가벼운 몸으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살고 있는 세상이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무중력세상 못지않게 부러운 세상은 새나 말이나 용 같은 동물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세상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차원공간이라고 하여 모두 지구의 환경보다 나은 세상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지구의 삶은 복잡하고 혼돈하며 온갖 번뇌와 고통이 따르는 세상이라서 불편한 점도 많지만, 이치와 지혜를 이용해서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행운일 것이다.
그러나 이차원공간에는 사람의 힘으로 변화가 불가한 세상도 존재했다. 한 번 정해진 운명은 사람의 힘으로 변경이 불가하고, 한 번 정해진 자연의 이치는 아무리 불편해도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현상의 세상도 존재했다.
불가항력의 공간을 체험할 때는 그나마 지구라고 하는 환경이 행운이고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샤르별처럼 4차원 문명세계의 초월적인 삶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노력해서 절망과 불운을 씻어내고 스스로 노력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여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세상이란 점에서, 지구에 태어난 운명을 너무 자조적으로 비관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차원공간에서 엄청난 중력이 작용하는 고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무엇도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할 방법이 없는 불가항력의 운명으로 살고 있는 현상들이 그 자체가 형벌이요 고통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불가항력의 고통스런 삶이 펼쳐진 세상에서도 역시 행복과 불행의 현상은 갈라져 있었으니 이 또한 우주의 아이러니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초도로머신을 타고 이차원공간을 방문할 때는 많은 시간이나 세월이 흘러간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실제로 현실의 공간으로 돌아오면 아주 짧은 시간이 소요됐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차원공간을 찾아가 몇 개월이나 몇 년을 지내고 돌아온 느낌인데, 현실의 공간에서 실제로 흘러간 시간은 단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순간일 때가 많았다.
초도로머신으로 바차시낙원을 구경하고 돌아와서 다음에 찾아간 이차원공간은 봉황의 나라였다. 지구의 과거에 공룡시대가 있었다면 봉황의 나라에는 봉황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지구의 공룡시대에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봉황의 나라에는 사람과 봉황이 함께 살면서 이차원공간의 신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봉황의 나라에 도착했을 때 아름답고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봉황의 등에는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봉황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환했으며 무한한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봉황대신 날개 달린 말이나 사슴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외에도 날개 달린 짐승들의 숫자는 더 많았다.
봉황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바쁘게 움직이면서 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땅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도 하늘에서 봉황을 타고 날아다니는 사람도 서두르는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봉황의 나라가 펼쳐져 있는 이차원공간을 쇼샤낙원이라고 불렀다. 쇼샤낙원이란 여유의 공간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세상의 이름이었다. 쇼샤낙원에서 성장하는 식물이나 동물들은 성장속도가 매우 느리고 쇼샤낙원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느리다 못해 답답했다.
쇼샤낙원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지구의 나무늘보가 사는 모습과 흡사한 것 같았다.
쇼샤낙원의 백성들은 느린 행동과는 다르게 저마다 예쁘게 꾸민 집을 소유하고 살았다. 쇼샤낙원의 집들은 크지 않았고 집 안에는 복잡한 살림살이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살림살이는 없지만 아름다
운 의상은 여러 벌씩 갖추어져 있고 풍류를 즐기는 악기나 도구들도 눈에 띄었다.
쇼샤낙원의 백성들이 먹고 사는 식량은 개금이라고 하는 작고 단단한 열매였다. 완두콩 크기의 개금열매는 단단한 껍질로 쌓여 있고 껍질을 벗기면 속에 검은 색의 속살이 들어 있었다. 개금 속살을 입에 넣으면 천천히 녹기 시작하고 박하 같은 화한 맛이 났다.
쇼샤낙원의 백성들은 개금을 주식량으로 해서 살고 있었고 한꺼번에 먹는 양은 많지 않았으며 몇 알 정도에 불과했다. 그 외 다른 음식을 조리해 먹는 풍습은 없었고 개금열매는 지천에 널려 있어서 따로 모아서 저장하거나 창고에 모아 둘 필요가 없었다.
개금 외에 먹는 음식으로 술이 있었는데 손으로 담궈 먹는 술이 아니라 나무에서 열리는 나무술이었다. 술나무에 열린 열매를 쪼개면 속에서 술맛이 나는 물이 나오고 그 물을 마시면 술처럼 취했다.
쇼샤낙원의 백성들은 봉황나라의 이름에 걸맞게 집집마다 봉황을 기르고 있었고, 날개 달린 말이나 사슴을 키우기도 했다. 이러한 짐승들은 사람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먹이는 짐승들 스스로 해결했다. 집주변의 숲속에 들어가면 짐승들의 먹이가 풍부했고, 때가 되면 짐승들 스스로 숲으로 들어가 먹이를 구해서 배를 채운 후 돌아왔다.
사람들도 역시 때가 되면 숲속의 개금열매를 찾아가 깨트려서 입안에 넣고 옴질거리며 끼니를 해결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하고 있었다.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술나무를 찾아가 술열매를 깨뜨려서 받은 나무술을 마시고 흥겹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쇼샤낙원의 백성들이나 짐승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단조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느릿느릿 움직이며 만사태평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느림보 사람들이었지만 멋진 의상을 걸치고 풍류를 즐기는 삶은 부러운 바가 많았다.
봉황이나 날개달린 짐승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여유를 만끽하는 삶이란 급한 세상에서 급하게 움직이며 살았던 속세의 삶과 비교하여 닮고 싶은 점이 아닐 수 없었다.
초도로머신을 타고 쇼샤낙원을 주유하면서 느림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구경하다가 깊은 산속에 큰 규모로 잘 지어진 집 하나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쇼시우시가 초도로 영상장치로 그 집을 멀리서 관찰해보니 유난히 밝은 영성의 기운이 발산하고 있었다. 그만큼 큰 영혼의 존재가 머물고 있다는 증거였다.
큰 영성이 머물고 있는 집을 방문했더니 안팎으로 이름 모를 화초들이 잘 가꾸어져 자라고 있었고 시중을 드는 느림보사람들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각자의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큰 영성의 집에서도 역시 좋은 빛깔의 봉황을 기르고 있었고, 좋은 빛깔의 봉황들은 지붕 위에도 앉아 있고 뜰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려서 놀고 있었다.
어떤 봉황은 심부름을 맡은 사람을 태우고 멀리까지 떠났다가 돌아오는 중이기도 했다.
우리들이 초도로머신을 타고 큰 영성의 집까지 도착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우리가 주파수약을 먹고 초도로머신에서 내린 후에야 사람들이 알아보고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도로머신을 집 앞 입구에 세워두고 큰 영성의 집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들어가 큰 영성이 머물고 있는 장소까지 다가가서 뵙기를 청했다. 큰 영성은 밝은 빛에 가려 있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이 큰 영성의 빛 앞에 도착했지만 끝가지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빛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오라! 속세의 불청객들이여...."
"허락도 없이 큰 영성을 뵙게 되어 결례가 큽니다."
쇼시우시가 대답한 말이었다.
빛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호탕한 말이 들려왔다.
"우리들 세상은 여유만만 기질로 살아가니 결례와 용서의 의미가 필요 없는 세상이다. 속세의 급한 기질을 다 끄고 우리들 여유만만 세상을 바라보기 전엔 보아도 보이지 않는 현상들이 많을 것이다."
큰 영성의 존재는 쇼샤낙원을 스스로 여유만만 세상이라고 칭했다. 느림보 사람들이 봉황을 타고 하늘을 다니며 살아가는 세상에 무슨 감춰진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었을까?
쇼시우시는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듯 큰 영성의 존재를 향해 질문했다.
"쇼샤낙원의 느림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바라보는 마음이 답답해질 만큼 낙천적이고 무사안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느림보 사람들은 천재지변으로 난리가 나고 급박한 일들이 벌어져도 늘어터지게 행동할지도 궁금합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서두를 일과 여유를 가질 일이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느림보 사람들은 그러한 구분이 없이 여유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속인의 생각이 잘못 판단한 것인지 큰 영성께서 한 말씀 지적해 주십시오.”
큰 영성은 한 마디로 쇼시우시의 생각을 정리해 주었다.
"세상이란 급하게 많이 움직인다고 안 될 일이 잘 풀리고 느리게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될 일이 안 되는 법도 없다."
“느림보 사람들은 느릿느릿 살지만 할 일은 다 하고 산다는 의미의 말씀입니까?"
"속인은 급하게 살아야 많은 일을 하고 세상의 좋은 변화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는가?"
"부지런히 행동하면 느린 행동보다 좋은 일을 많이 이루지 않을까요? 그리고 세상의 좋은 변화도 많이 이루지 않을까요?"
"어리석은 속인의 생각이로다. 부지런히 많이 움직이고 많이 힘써야 좋은 일만 일어난다는 보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급하게 많이 움직이면 그만큼 낭패하고 실패하는 일도 많아진다. 행동은 느려도 생각이 바르면 실패하고 낭패하는 일도 줄어든다."
“느림보 사람들은 실패와 낭패를 모르고 사는 백성들입니까?"
"우리들 여유만만 세상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은 행동은 굼뜨지만 생각은 많이 한다. 그래서 느리게 행동하면서 정곡을 찔러 실천한다. 정곡을 찌르는 실천이야말로 낭패 없는 삶을 보장할 것이다. 여유만만 세상의 백성들은 행동이 느리지만 낭패 없는 삶을 산다. 여유만만의 세상은 낭패 없는 세상이다. 사람이 태어나 한 평생 낭패를 겪지 않고 사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행동은 적게 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정곡을 찌르는 일을 할 수 있고 그만큼 실패와 낭패의 불행도 겪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은 급하게 살 일이 아니다. 매사에 조바심을 가지고 긴장을 풀지 못하는 삶이나 항상 낙천적으로 여유 넘치는 생각으로 사는 삶이나 세월의 흐름은 일치한다. 많이 이룬다고 많이 가져가는 사람의 운명도 아니요 적게 이룬다고 적게 가져가는 사람의 운명도 아니다. 결국은 마치는 과정이 동일하다."
“이곳 여유만만 세상에서는 사람의 행동만 느리지 않고 식물이나 동물의 성장 속도도 사람의 행동을 닮아 더디고 느립니다. 화초나무에서 한 송이의 꽃을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고 나무에서 열매가 열리는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할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더디게 성장하는 자연세계와 느림보 사람들의 행동과는 어떤 상관관계의 인자가 작용하고 있습니까?"
"그 자연의 이치가 그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의 속성을 만든다. 자연세계의 변화가 급하면 급한 속성의 생명세계를 연출할 것이요, 자연세계의 변화가 여유로우면 여유로운 속성의 생명세계를 연출할 것이다. 사람의 생명도 자연의 한 구성이다. 곧 사람의 속성은 자연의 이치를 닮는다. 속인의 세상에서도 그러한 이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속성과 자연의 속성은 일치한다는 말씀이군요?”
“그 자연세계의 이치가 그 자연세계에 속한 사람을 만든다."
"우리들 자연세계의 사계는 빠릅니다. 여유만만 세상의 사계는 정지된 듯 느립니다. 그래서 여유만만 세상에서는 세월의 흐름도 더딜 것만 같습니다. 이처럼 빠른 사계와 더딘 사계에서 살아가는 삶의 이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속인의 세상에서는 세월의 흐름이 덧없다고 자조하겠지만 우리들여유만만 세상에서는 남는 것이 시간이라고 여유를 부린다. 그래서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는 삶이 우리들 세상의 백성들이 지니고 있는 습성이다.”
"우리들 세상에서는 시간이 아깝다고 서두를 때가 많은데 여유만만 세상에서는 시간이 넘친다고 여유를 부리는군요?"
"삶이 급하면 세월도 급하다. 삶이 여유로우면 세월도 여유를 부린다. 맘먹기에 따라서 세월은 빠르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백 년을 십 년처럼 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십 년을 백 년처럼 살기도 할 것이다. 같은 세월을 살더라도 여유로운 생이 있고 덧없는 생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속인은 똑같은 하루의 삶으로 넉넉한 순간을 즐기고 싶은가? 빠듯한 시간을 즐기고 싶은가?"
"넉넉한 순간들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유로운 맘으로 여유로운 행동을 즐기며 살아라. 하루의 순간들을 넉넉하게 즐길 것이다."
“큰 영성을 뵙고 여유만만 세상의 숨겨진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되어 여행한 보람이 큽니다."
“급하지 않는 눈으로 여유만만 세상을 바라보면 더욱 값지게 즐길일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말을 마치고 큰 영성은 시종을 시켜 우리들에게 봉황을 선물하고 여유만만 쇼샤 낙원을 여행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빛 속에 숨어 있는 큰 영성의 모습은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각각 봉황의 등에 탄 우리 셋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쇼샤 낙원의 드넓은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쇼샤 낙원은 봉황을 타고 날아가도 날아가도 끝이 없이 넓은 세상이었다. 쇼샤 낙원은 마치 둥근 천체로 이루어진 별이 아니라 평평한 땅으로만 이뤄진 세상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끝없는 초원과 평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초원과 대평원 위로 솟아 있는 산맥의 물결들은 위세 좋게 꿈틀거리며 사방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을 등에 태우고 하늘을 날아가는 봉황은 사람의 생각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 했다. 봉황은 높은 산도 훌훌 날아서 넘고 넓은 바다나 호수도 날개를 쭉 펴고 활강을 하는 모습으로 유유히 날며 건넜다. 봉황의 등에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은 상쾌하고 평온했다.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뿐만 아니었다. 쇼샤 낙원의 하늘은 마치 느림보 사람들의 놀이터나 되는 것처럼 봉황을 타고 노는 모습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누구도 서두르거나 재촉하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고, 한가롭게 봉황을 타고 하늘을 떠다니며 유유자적하는 느림보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어릴 때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가을하늘에 떠 있는 솔개를 자주 발견한 기억이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은 기류에 편승해서 힘도 들이지 않고 천천히 비상하며 맴돌고 있는 소리개를 바라보면 맘속으로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소리개의 등을 빌려 타고 높은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놀면서 한가로움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한 꿈을 늦게 쇼샤 낙원의 하늘에서 이루고 있었다. 소리개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지는 않지만, 소리개보다 더 크고 멋진 봉황을 타고 하늘을 비상하며 유유자적하는 기분은 세상의 근심 걱정을 모두 씻어버린 듯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봉황의 등을 타고 하늘에 떠서 맴돌며 놀고 있을 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몸은 한가롭지만 생각은 이곳저곳으로 질주하며 하늘과 땅과 우주의 이치를 분석하고 궁리하느라 바빴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니 느림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지만 아름다운 문명이 숨 쉬고 있었다. 행동은 느리고 낙천적이지만, 항상 일을 하는 모습보다는 놀고 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는 느림보 사람들이지만, 땅 위에 이뤄 놓고 사는 문명의 모습은 소박하고 품위가 있었다.
땅을 일궈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고, 복잡한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고, 높은 건물이 하늘로 솟아 있거나 건설하고 산업을 일으키는 장면들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작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집들은 낙원의 정취를 물씬 풍기며 녹음방초의 자연속에서 수줍은 듯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느림보 사람들이 언제 놀고 언제 저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이뤄놓고 사는지 수수께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큰 영성의 존재가 해 주던 말이 떠올랐다.
<급하고 빨리 움직이며 산다고 많은 것을 이루지는 않는다. 느리고 여유롭게 산다고 이룰 일을 이루지 못하지도 않는다. 삶의 여유로움속에서 정곡을 찌르는 생각을 하면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마침내 큰일을 이룬다.>
결국 봉황을 타고 하늘에서 떠돌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유만만 세상의 느림보 사람들은 그냥 할 일 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온갖 궁리를 다 짜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궁리와 생각들이 지상에서 낙원을 건설하고, 느리지만 완벽하고 흐트러짐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느림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느림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뉘우치고 반성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그렇게 바쁘게만 서두르고 급하게만 앞을 향해 달려가고만 있었는지, 그렇다고 엄청난 삶의 업적을 쌓은 것도 아니고, 이뤄 놓은 일이라고 해야 결국은 의미도 값어치도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들 때, 차라리 여유만만을 즐기며 살고 있는 느림보 사람들의 삶이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만만의 삶을 즐기지만 이룰 것은 다 이루고 즐길 것은 다 즐기는 느림보 사람들은 남는 것이 시간이요 삶의 여유라면, 평생을 살아도후회와 아쉬움이 없는 삶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몸은 여유를 누리지만 생각은 정곡을 찌르는 지혜를 짜내는 느림보 사람들, 그들의 삶을 스승으로 삼아 속세로 돌아갔을 때 의미있는 인생을 설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에서 봉황의 등을 타고 유유자적하는 쇼시우시와 샤르비네와 나는 속세로 빨리 돌아갈 생각조차 지운 채 여유만만의 하늘을 날며 지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낙원의 모습들을 살폈다.
아름다운 산야와 녹음방초의 물결은 끝이 없고 이름 모를 꽃과 열매는 지천에 널려 있으며, 숲에서 열리는 풍성한 열매들은 사람과 짐승들이 사이좋게 나눠 먹으면서 평화로운 낙원의 질서를 지켜가는 모습들이 정겹게만 느껴졌다. 호화롭거나 복잡하거나 거창한 문명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물결 짓고 있는 낙원의 문명은 호화로움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박하고 아름다운 문명의 물결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숲과 꽃물결 속에 지어져 있는 작은 집들은 별장 같은 느낌이 들도록 멋진 경치가 어우러진 장소에 지어져 있고, 별장 같은 작은 집들은 어느 것도 똑같은 모습이거나 비슷한 구조가 아니었다. 각각 주인의 취향에 맞도록 개성이 차이가 나는 작은 집들은 마을이나 군락을 형성하지 않은 채 대자연의 아름다운 물결 속에서 띄엄띄엄 숨 쉬고 있었다.
한마디로 쇼샤 낙원의 지상에는 많은 숫자의 느림보 사람들이 신선놀음을 즐기며 살고 있지만, 어디에도 마을이나 집단이 형성된 현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느림보 사람들은 개인적인 취향대로 살고 있으며, 고유의 생존권을 보장받으며 살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느림보 사람들이 사회성이 없거나 화합과 조화가 결핍된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았고, 아무리 처음 본 사이끼리도 오랜 지기처럼 친분을 과시하고 화기애애한 세상의 질서를 잘 지켜나가고 있었다.
비록 쇼샤 낙원이 현실의 공간과 파장이 다른 이차원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알 수 없는 정감이 들고 또 한편으론 아주 특별한 느낌이 들게 하는 별천지이기도 했다. 샤르별의 4차원문명세계는 초월적이고 거창한 우주문명의 진수를 느끼는 세상이라면, 이차원세상의 쇼샤 낙원은 소박하고 아름다우면서 삶의 참 모습을 그려보는 순간들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쇼시우시와 샤르비네와 나는 쇼샤 낙원의 하늘을 날다가도 땅으로 내려가 느림보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모습들을 직접 살펴보기도 하고, 구경을 마치면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바다를 건너고 높은 산을 넘어서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들을 구경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널 때마다 쇼샤 낙원의 새로운 세상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느림보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모두 다르고 살고 있는 풍습도 모두 달랐다. 골골마다 느림보 사람들이 살고 있고, 사는 풍습과 모습들은 다 달랐다. 그야말로 쇼샤 낙원은 천태만상의 조화가 다 펼쳐지는 세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그 천태만상의 조화 속에서 느림보 사람들은 모든 차별적 개성을 인정받고 발휘되는 세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느림보 사람들의 화기애애함과 조화로움은 어디서도 변하지 않는 사회질서의 기본이었다. 천태만상의 변화 속에서 지켜지는 이질적 조화의 질서가 이차원세상 쇼샤 낙원의 흉내낼 수 없는 매력이었다.
봉황의 등을 타고 쇼샤 낙원의 이질적 조화로움을 구경하면서 우리셋도 다른 느림보 사람들의 행동에 익숙해져 서두르거나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빠른 시간 내에 좀 더 많은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고, 온 세상의 변화를 다 구경하려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여유만만의 한가함을 즐기며 이차원세상 쇼샤 낙원의 하늘과 땅을 주유하고 있을 때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느낌이 없었다. 해가 뜨는지 달이 지는지 관심이 없었고 몇 날 며칠의 여행을 끝내고 현실의 공간으로 복귀할지 계획조차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구름에 달 가듯, 물에 뜬 가랑잎이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듯, 바람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마음의 여유는 태평이기만 했다.
그렇게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느림보 사람들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을 구경할 수 없었다. 젊은이인지 늙은이인지 구분이 안 되고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머리모양이든 옷차림이든 각각의 취향과 취미를 살려 몸을 가꾸고 치장을 하기 때문에 누구나 평온하고 고상한 아우라만 느림보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혀질 뿐이었다. 그러한 느림보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의 세월과 일대기를 끝내고 생을 마감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쇼샤 낙원을 주유하다가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삼아 작은 집을 짓고 있는 느림보 사람들을 발견했다. 작은 집을 짓는 자재들은 대부분 목재라든가 흙이라든가 천연소재의 천이나 장식품들이었다.
지구 사람들이 그렇게 작은 집들을 지으려면 아마도 서두르면 사흘이요 늦어야 열흘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느림보 사람들이 작은 집을 한 채 짓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길었다.
느림보 사람이 새로 지으려는 집은 정자처럼 생긴 아름답고 작은 집이었다. 집을 짓기 전에 이미 조감도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지붕이 아름답고 기둥에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새겨지고 처마 끝에는 아름다운 장식이 매달리며 바닥은 천연보석이 깔리도록 설계된 집이었다.
이 외에도 기둥이나 서까래로 사용하는 목재는 모두 향기가 나는 향목으로 사용하며 벽이나 천정에 칠하는 물감들은 귀한 꽃과 열매와 나뭇잎에서 얻은 재료를 사용하며 벽을 쌓는 흙이나 돌 같은 소재들은 모두 보석의 알맹이나 가루를 사용하도록 설계의 재료 구성이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설계도에 의해서 느림보 사람이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보니 느림보 사람 몇몇이서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은 노는 것인지 일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답답했다.
새로 짓는 작은 집은 이제 겨우 주춧돌 위에 기둥이 세워져 있고, 지붕의 틀만 겨우 갖추어져 서까래를 까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집을 짓는 한 인부는 기둥에 조각을 새기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고 정교한 조각을 새기고 있었는데 행동은 느리지만 이미 새겨진 조각의 섬세함은 극찬할 만했다.
조각을 새기고 있는 인부에게 내가 질문했다.
“기둥 하나를 조각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소요됩니까?"
조각하는 인부는 내 얼굴은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일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건성으로 대답했다.
“10년이면 족하지..."
나는 다시 지붕에 서까래 까는 작업을 하는 인부에게 질문했다.
"지붕을 완성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립니까?"
서까래 까는 인부는 일에 몰두하면서 똑같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30년이면 족하지...."
나는 다시 바닥 재료로 사용할 보석돌을 다듬고 있는 인부에게 질문했다.
"보석을 갈아서 바닥을 모두 완성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립니까?"바닥 작업을 하는 인부도 똑같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50년이면 족하지...."
이 외에 다른 작업을 하는 인부에게 물어도 역시 비슷비슷한 대답들이 들려왔다. 결국 작은 집 한 채를 완성하는 시간이 100년은 족히 걸린다는 인부들의 대답이었다.
답답하리만치 느리고 굼뜬 행동으로 일을 하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은 조금도 일에 쫓기거나 서두르는 표정들이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인부들끼리 잡담을 나누다 장난을 치기도 하고 일하기 지루해지면 일손을 놓은 채 봉황을 타고 하늘로 훌쩍 날아올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놀면서 여행하면서 만들어지는 작은 집이지만 그 견고함과 아름다움은 놀랄 만 했다.
다른 장소에서도 역시 새집을 짓고 있는 장면들을 더 목격했지만 어떤 집짓는 현장에서나 벌어지는 인부들의 일하는 태도는 비슷했다. 그렇지만 100년이 넘게 걸려 완성한 작은 집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느림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을 방문할 때 어느 집에서는 딸그락 딸그락’베틀소리가 들려왔다. 그 집에서는 아름다운 직녀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었다. 아주 가는 실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베를 짜느라 직녀가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틀은 계속 움직이지 않았고 멈추었다 움직이고 멈추었다움직이기를 반복했다. 베틀이 움직이는 시간보다 멈추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직녀는 베를 짜면서 놀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이 찾아오면 잡담을 나누면서 일삼아 베를 짜지 않고 놀기 삼아 베를 짜고 있었다.
"베 한 필을 짜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샤르비네가 그 직녀에게 물었다.
“3년이면 족하답니다."
직녀는 수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옷 한 벌을 만드는데 몇 필의 베가 필요하나요?"
샤르비네가 묻자 직녀는 다시 수줍게 대답했다.
"옷 한 벌을 지으려면 세 필의 베가 필요하답니다."
샤르비네가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옷 한 벌을 만드는데 10년의 시간이 필요하군요?"
직녀는 다시 수줍게 대답했다.
“10년 동안 베를 짜서 옷 한 벌을 완성하려면 다시 3년은 걸린답니다."
결국 베를 짜서 옷 한 벌을 지어 입는 시간이 13년은 걸린다는 직녀의 대답이었다.
직녀의 대답을 다 듣고 나서 샤르비네가 다시 물었다.
“13년이 걸려서 지은 옷으로 몇 년을 입을 수 있습니까?"
“100년을 입어도 닳지 않고 1,000년을 입어도 줄지 않는답니다."이 말을 마치고 직녀는 친구가 찾아오자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날아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 직녀와 그녀 친구가 봉황을 타고가면서 떠드는 웃음소리가 '까르르...' 하고 멀리까지 들려왔다.
다시 어느 집 앞을 지나려는데 마당에서 화단을 가꾸는 느림보 사람이 있었다. 화단의 부드러운 흙을 잘 손질한 후 꽃씨를 뿌리고 있는 중이었다.
꽃씨를 뿌리는 느림보 사람에게 내가 물었다.
“꽃씨를 뿌려서 꽃을 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립니까?"
느림보 사람은 손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대답했다.
"싹이 트는 시간이 3년이요, 싹이 튼 화초가 자라는 시간이 3년이요, 다 자란 화초에서 꽃이 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3년이요, 꽃이 만개하는 시간이 1년입니다."
나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꽃이 만개하여 꽃가지에 매달려 있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만개한 꽃이 꽃가지에 매달려 있는 시간은 3년이요."
“꽃나무가 자라서 꽃을 피웠다 지면 그 꽃나무는 바로 시들게 됩니까?"
“꽃나무의 일생은 100년이요. 100년 동안 꽃을 피우고 지기를 반복하다가 그 꽃나무의 일생은 끝나는 것이오.”
느림보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작은 집의 주변을 살펴보니 이름 모를 화초들이 만개하여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고, 숲처럼 우거진 울타리에는 온갖 종류의 나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단 채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느림보 사람들의 식량이 되는 열매도 섞여 있었다. 느림보 사람은 그 중의 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오더니 단단한 껍질을 벗긴 후 우리들에게 열매의 속살을 먹으라고 권했다.
단단한 껍질 속의 열매 속살을 입에 넣자 고소한 향기가 몸 속으로 퍼지며 많은 기운이 솟구치는 느낌이 들고 기분도 좋아졌다. 느림보 사람은 다시 술나무에서 딴 열매에서 술을 짜내더니 우리에게 마시라고 권했다.
술나무 열매의 술을 마시니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며 기분은 더욱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느림보 사람이 대접해주는 특별한 식사를 대접받고 나서 내가 다시 질문했다.
"열매가 달린 나무들은 그 수명이 얼마나 됩니까?"
느림보 사람은 깊은 생각도 없이 대답했다.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들은 그 수명이 3천 년이오.”
"3천 년 동안 열리는 나무 열매를 사람의 식량으로도 사용하고 짐승의 먹이로도 사용한다는 뜻이군요?”
“우리들 세상의 사람과 짐승들은 3천 년 동안 열리는 나무 열매를 함께 식량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식량 때문에 서로 싸우거나 다투는 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느림보 사람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느림보 사람의 친구들은 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었다. 모두 아름다운 의상을 차려 입은 미남과 미녀들이었다.
느림보 사람은 친구들에게 열매술을 대접했고 그들은 곧 술기운에 취해갔다. 열매술에 취한 그들은 즉석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신선놀음에 빠져갔다. 느림보 사람들은 우리들 셋이 곁에 있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는 표정들이었다. 우리들 셋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서 다시 다른 장소를 찾아 봉황을 타고 이동했다.
참으로 낙천적이고 근심걱정이라고는 모르고 사는 여유만만의 이차원세상 쇼샤 낙원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었다.
4차원 문명세계의 메시지12 – 인류, 그 다음세계에 펼쳐지는 일들
첫댓글 선경세상은 예술인들의 세상
감사합니다
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