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지나고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칠순의 나이, 오십견이 내게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몇 달 전부터 양쪽 팔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특히 왼쪽 팔이 더 아팠다. 주치의의 지시대로 두어 달 물리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어서 전문의를 찾아갔다.
전문의 권유대로 엠알아이를 찍었다.
결과는 어깨 속 조직이 찢어져서 수술해야 한단다.
알레르기(allergy) 주사를 삼 년 동안이나 왼쪽 팔에 맞아서 속살이 찢어진 것인지, 아니면 아픈 팔로 잠시나마 손녀를 봐주어서 그런 것인지, 혹시나 물었더니 파란 눈의 전문의는 고개를 저으며 잘 모르겠다고 한다.
칠순에 만난 오십견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수술은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찜찜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수술시간표를 짜는 사무원에게 전화했다. 그녀가 말하는 이 수술은 간단한 거라며 한 2.5센티미터 찢는다 했다. 수술은 삼 주 후로 정해졌다. 막상 수술을 받겠다고 생각하고 보니 삼 주가 너무 긴 것 같아 초조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수술 날이 다가왔다. 일전에 의사가 지시한 대로 밤 열두 시부터,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8월 21일 2009년 아침 여섯 시경, 수술장으로 가기 위해 사위 차에 올랐다. 차 안의 백미러에 매달린 십자가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수술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기도하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큰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아직 병원 문은 열리지를 않았지만 차 한 대가 주차장에 있는 게 보였다. 우리가 도착하자 사무직원인듯한 여인이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어주며 들어오라 하여 사위를 보내고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간단한 문답이 오가고 나서 그녀는 내 왼쪽 팔목에 이름을 쓴 하얀 밴드와 알레르기(allergy)를 쓴 빨간 손목 걸이를 쇠고랑처럼 채웠다.
수술할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간호사가 나를 데리고 수술대기실로 들어가서 침대에 눕히고 병력이며 수술 전 피 검사한 것들을 다 점검하고는 체온과 혈압을 쟀다. 잠시 있다 다른 간호사가 혈관주사를 줄 준비를 하고 와서는 오른손등에 있는 굵은 정맥을 골라 알코올과 베타다인(bethadine)으로 깨끗이 닦는다. 아마도 마취약과 항생제를 정맥을 통해 줄 준비를 하나보다.
원래 22년 전 오른쪽 유방암을 수술했기에 외과의사는 22년 후인 지금에도 알레르기(allergy) 주사를 오른쪽에 놓지를 못하게 했었다. 하지만, 왼쪽 어깨를 수술해야 하니 오른쪽 팔을 쓸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간호사는 오른쪽 손등에 있는 혈관에 바늘을 꽂더니 준비해온 링거를 주기 시작했다.
링거(ringer)가 차가워서 온몸이 추웠다. 간호사는 따끈한 담요를 두어 개 더 덮어 주었다. 하지만, 링거가 들어가고 있는 오른팔은 아직도 찼다.
드디어 마취의사가 오더니 이 어깨 수술은 굉장히 아프니 신경을 먼저 죽여야 한다고 한다. 수술 후 이틀은 몹시 아프기 때문이란다. 나를 재워놓고 신경을 죽이느냐고 물으니 잠들기 전에 먼저 신경을 마비시켜야 한단다. 그래야 신경이 완전히 마비상태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볼 수 있단다.
나는 신경마비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바늘을 무척 싫어하거니와, 피부에 몽혼주사를 놓을 때 심하게 아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시술할 파란 눈의 의사가 들어 왔다. 내가 의사한테, 왼쪽 팔의 신경을 꼭 마비시켜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신경 죽이는 것은 안 하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간호사가 항생제를 혈관을 통해 주고 간 십여 분 후 갑자기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항생제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나 보다. 몸이 가렵다니까 마취사가 가려운 데를 검사해보더니 베나드릴(benadryl)이란 약을 혈관으로 줘서 가려움은 차츰 없어지는데 졸리기 시작했다.
조는 나를 그들은 수술실로 밀고 가서는 수술대로 옮겨 누우라는데 반쯤 자던 나는 무슨 소리인지를 잠시 깨닫지를 못했다. 그들이 다시 일깨워 주니 그때야 수술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수술대로 옮겨 눕자마자 곧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간호사가 와서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깨울 때까지 잤나 보다. 전신마취 덕으로 목구멍이 아프고 아직도 가눌 수 없이 졸렸다. 간호사가 주는 사과 주스를 마시는데 언제 연락을 했는지 미리 부탁했던 선교사님과 친구가 데리러 왔다.
아직 반도 안 깬 상태에서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몇 시간을 잤는지 깼다가는 또 잠이 들었다. 그게 수술 첫날의 반복이었다.
왼쪽 어깨와 팔은 두껍게 테이핑 되어 야무지게도 고정이 잘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통증이 하나도 없다. 두껍게 고정해놓은 어깨와 팔을 봐서는 틀림없이 수술하긴 했는데 통증이 없다. 시술한 의사님은 진통제 처방을 줬지만 가서 사오지도 않았다.
하루 지나니 수술부위가 부기가 좀 빠졌는지 어깨와 팔을 빡빡하게 고정한 게 느슨해졌다.
통증은 아직도 없다. 희한하다. 의사가 내 어깨를 간질이고 말았나? 둘째 날 오후 늦게 수술실 간호사한테서 안부 전화가 왔다. 내가 간호사에게 통증이 하나도 없다고 하니까 그녀는 '그럴 수가 있느냐'라며 다음 말을 잇지 못한다. 아마 매우 놀란 모양이다.
의사의 지시대로 나흘째 되는 날, 의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얼마나 아프냐고 묻는 의사에게 통증이 하나도 없었다니까 의사 또한 놀란다. 의사는 두껍게 쌌던 가제와 테이프를 떼어버리고 가벼운 드레싱(dressing)을 했다. 그러면서 슬링(sling)은 한 이주일 더 하라 한다. 샤워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집에 오자마자 수술한 부위를 플라스틱으로 가리고 한 손으로 샤워를 했다. 두 손으로 한 것보다야 못하지만, 살 것 같았다.
보통 일주일이면 염증이 생기지 않는 한 조직은 붙기 마련이다. 꿰맨 실을 뽑는데 주일이 끼어 있다 보니 11일 만에 실밥을 뽑았다. 그중에 긴 실밥을 뽑을 땐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팠다. 2.5센티미터 찢는다던 수술자국은 6센티미터나 됐다. 그리고 두세 군데 구멍을 뚫은 자국이 있었다.
사무원의 말은 맞지 않았다. 실밥을 뽑았지만, 왼쪽 팔은 움직이질 않는다. 하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날, 손목을 움직일 수 있으면, 다음 날은 손이 조금 올라가는 등 매일 눈에 보일 정도로 회복이 빠른 것 같았다. 게다가 수술한 지 한 달이 되자 물리 치료도 시작했으니 회복은 더욱 빨랐다.
물리치료를 받는데 통증이 있어 수술 후 처음으로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하지만, 수술 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술 전에는 타이레놀을 네 시간마다 먹었어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서 아예 먹는 것을 중단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통증이 없는 게 참 신기하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수가 없다. 칼로 찢고 구멍을 몇 개나 내서 작은 어깨 속으로 들어가 찢어진 조직을 부쳤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다니.
나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떠올랐다. 작자 미상이라 했던, 내가 좋아하는 '발자국'이란 시도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나의 아픔을 주님이 대신 아파 주셨구나!' 감사의 기도가 절로 흘러나왔다. 나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내 인생의 폭풍 가운데서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셨던 하나님. 나의 생명이신 하나님. 그분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나는 찬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수술한 지 삼 주. 왼쪽 팔이 이젠 머리까지 올릴 수 있어 한쪽 팔로만 감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을 수 있으니 다음 주에는 머리도 예전같이 만질 수 있을 테고 오십견 아니 칠십 견에게 'good bye' 할 날도 멀지 않았다.
첫댓글 다행입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어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요.
의술도 좋고 믿음도 좋고 세상 한 번 살아보느데 이런 덕도 있으니 좋지요. 잘 관리 하시고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방법은요, 아픈 쪽 손을 (방벽을 이용해서 아래 쪽에서 위로) 손가락으로 거미걸음 해보세요. 오십견에 좋다네요.
감사합니다. 이제는 다 나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