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묘아는 주칠칠의 완강한 고집에 타이르기 시작했다. "어떻든 그 사람은 우리에게 호의로 이러한 장난을 한 거요." 주칠칠이 발을 구르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나는 끝까지 조사해 봐야 되겠어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앞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웅묘아가 강호를 종횡하는 동안 그의 짓。은 장난과 재치에 누구든 골머리를 앓았으나, 지금 이순간 그는 주칠칠의 고집에 골머리를 앓지 않을 수 없었다. 주칠칠이 앞으로 달려가자 그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용기를 내어 한참을 더 앞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이때 갑자기 일진의 맑고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종소리는 비록 청아하게 울려퍼지고 있었으나 이처럼 죽음과 같은 적막이 감도는 어둠 속에서 울려퍼지자 그것을 듣는 두 사람의 가슴은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종소리에 이어서 두 사람의 전면에서 갑자기 불길이 확 하고 솟아올랐다. 주칠칠이 아무리 담력이 크다 해도 이 순간은 깜짝 놀라서 앞으로 나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감히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때 일진의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는 그쪽에서 들려왔다. "누구냐? 누구냐? 잡아라!" 웅묘아가 대경실색을 하면서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소! 빨리 물러섭시다!"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나의 인영이 그 불 속에서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인영은 유성처럼 빠르게 주칠칠과 웅묘아가 숨어있는 곳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 빠르기가 전광석화 같아서 주칠칠과 웅묘아는 그 인영의 모습을 흐릿하게 볼 수 있었을 뿐 그 인영의 몸이 어떻게 생겼으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자세히 볼 수도 없었다. 그 인영은 전광석화처럼 그들의 옆을 스쳐가면서 재빨리 외쳤다. "따라오시오!" 이 순간 불빛과 사람 그림자들과 발자국 소리들이 이미 주칠칠과 웅묘아가 숨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와 왁자지껄하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주칠칠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들이 되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도 그들을 가로막는 사람이 없었다. 순식간에 그들은 담장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담장 밖으로 뛰쳐나와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그 신비한 인영은 이미 종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칠칠이 발을 구르면서 말했다. "나쁜 녀석! 그 녀석이 바로 멍청이 왕이야. 자기 자신이 사람들한테 들켜가지고 도리어 우리까지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만들다니......." 웅묘아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사람은 고의로 그의 행적을 드러냈던 것 같소." "그 사람이 고의로 행적을 드러내다니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는 말인가요?" "그 사람은 우리한테 여러번 경고를 했지만, 우리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의로 자기 행적을 드러내어서 우리가 돌아가지 아니할 수 없도록 만든 것 같소." 주칠칠은 멍청하게 한동안 있더니 원망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제까짓 게 뭔데 우리 일에 간섭을 하는 거죠?" 두 사람은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기녀들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이때 주칠칠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웅묘아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다시 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저는 다시 돌아가서 살펴봐야 되겠어요." 웅묘아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미친 거요?" 주칠칠은 웅묘아의 차가운 소리에 냉소를 날리면서 말했다. "난 조금도 미치지 않았어요. 내 머리는 아주 맑아요. 그 사람들은 도둑을 잡지 못했으니 틀림없이 돌아가서 곤히 잠들어 있을 거예요. 그러니 내가 다시 돌아가서 살펴본다고 해도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거예요." 웅묘아는 너무나 기가 막힌 듯 탄식하면서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는 그 집 사람들이 한 번 놀란 후에 경계가 아까보다 훨씬 더 심해졌으리라는 점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는 거요? 아가씨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스스로 그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오."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당신 말이 맞긴 하지만 모든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저는 그곳이 틀림없이 악마의 소굴이라고 단정할 수 있어요.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살펴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가 있겠어요?" 웅묘아는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확실히 그곳이 악마의 소굴이라고 단정하는 거요?" "그렇지 않다면 보통의 기원에 왜 그렇게 많은 장한들이 보초를 서고 순라를 도는 거죠? 또, 그 사람이 여러번 우리에게 빨리 돌아가라고 경고를 했는데 그 사람은 틀림없이 그곳 사방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보통의 기원에 왜 그렇게 많은 함정을 설치해 놓은 거죠?" 웅묘아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탄식하면서 말했다. "본인의 말재주로는 당신을 당할 수가 없구려." "말재주로 저를 당할 수 없다면 저와 같이 다시 돌아가 보기로 해요!" "좋소! 당신과 함께 가보도록 하겠소." 주칠칠은 얼굴에 기쁜 기색을 나타내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당연히 정말이죠. 그렇지만 오늘 저녁이 아니오. 오늘 저녁은 우선 그냥 돌아갑시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다시 의논을 해보고 나서 좋든 싫든 다시 이곳에 와서 이 기원의 진상을 조사해 봅시다." 주칠칠은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했다. "당신이 한 말을 믿어도 되는 거죠?" "내가 한 말은 못을 벽에 박는 것처럼 조금도 거짓이 없소." "좋아요. 당신 말을 듣기로 하죠. 날이 밝은 다음에 다시 의논하기로 해요!" 두 사람이 다시 구양희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 사람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했다. 아무도 그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주칠칠이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이불을 걷어 젖히고 총총히 옷을 꿰어 입은 다음 심랑의 방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심랑의 방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방문을 두드리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창가로 가서 창에 귀를 대고 방 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심랑은 편안한 숨소리를 내며 깊이 잠들어 있는 듯했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등 뒤에서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주칠칠은 깜짝 놀라 재빨리 몸을 뒤로 돌렸다. 그녀의 뒤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백비비였다. 그녀는 남몰래 남자의 방의 창문에서 방 안 동정을 엿보았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곧 짜증과 함께 화가 났다. 그녀의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발작하려는 순간, 그녀는 재빨리 생각을 고쳐먹고 끓어 올라오는 분노를 누그러뜨린 다음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 어제 저녁 잘 잤니?"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그녀는 백비비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화를 냈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가 따뜻한 미소를 띤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백비비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는 듯한 기색이 스쳐갔다. 그녀는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관심을 가져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저는...... 저는 아주 잘 잤어요!" 주칠칠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볼 수 있도록 고개를 들어보렴!" 백비비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때 밝은 햇살이 백비비의 얼굴과 그녀의 귀 밑에 난 부드러운 솜털을 비추고 있었다. 주칠칠은 탄식을 발하며 말했다. "아! 과연 경국지색이군! 내가 보기에도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는데 남자들이 너를 봤을 때야 오죽 하겠니?" 그 말을 듣고 백비비는 다시 그녀가 발작하려는 것을 알고 황급하게 말했다. "제가, 제가...... 어떻게 아가씨랑 비교...... 비교......." 그러나 주칠칠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겸손하게 말할 것 없다. 그렇지만 너는 나를 속여서는 안 돼!" 백비비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아가씨를 속여요?" "정말 나를 속이지 않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잘 잤다는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빨갛게 핏발이 서 있는 거지?" 백비비의 창백한 얼굴이 갑자기 붉게 달아올라 우물쭈물 말했다. "저는...... 저는......." 그녀는 주칠칠이 그녀를 야단칠까 겁을 내어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러나 주칠칠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어젯저녁 잠을 한잠도 자지 않은 거지? 그렇지? 그렇다면 네 방이 바로 심 상공의 옆방이니까 어젯저녁 심 상공이 밖에 나갔는지, 안 나갔었는지 분명히 알고 있겠구나." 백비비는 그녀의 말을 듣고 비로소 마음을 놓은 듯 얼굴이 펴지며 말했다. "어젯저녁 심 상공이 돌아오셨을 때, 이미 크게 취한 것 같았어요. 침대에 오르자마자 그냥 잠이 드는 것 같았어요. 제 방에서도 그 분이 코고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어요." 주칠칠은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아닐텐데......." 이때 갑자기 그녀의 말을 받아서 하는 말이 들려왔다. "누가 아니라는 거요?" 언제부터인지 심랑이 이미 문을 연 채 웃음을 띠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주칠칠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져서 우물쭈물 하였다. "아......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녜요." 그녀가 심랑을 바라보는 표정은 백비비가 그녀를 바라보는 표정과 꼭 같았다.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군 채 우물쭈물 말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백비비는 고개를 숙인 채 슬며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심랑은 뚫어질 듯 주칠칠을 바라보았다. 밝은 태양빛 아래서 주칠칠의 얼굴은 확실히 경국지색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심랑이 갑자기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정말로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처럼 아름답구만!" "당신...... 당신 누구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당연히 당신에 대해서 말하는 거요. 이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이 있소?" 주칠칠은 더욱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한 번도 심랑이 이렇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순간 그녀는 놀란 듯 더욱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당신......!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이에요?"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이오. 밖에는 바람이 차가우니 방 안에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주칠칠은 그보다 먼저 방 안에 들어와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심랑이 여전히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녀는 앉아도, 서도, 심지어 손을 어디에 놓아야 좋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매우 당황했다. 마침내 더이상 참지 못하고 가볍게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예요? 예전 그대로인데...... 당신은 이미 수백, 수천 번 저를 쳐다봤잖아요.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 다시 제 얼굴이나 머리에서 꽃이라도 피어날 것 같아요?" 심랑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당신과 같은 여자의 머리에 왕관이라도 하나 얹어 놓으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소. 그러면 진짜 황후와 똑 같게 보일 것이오." 주칠칠은 속으로 깜짝 놀라 얼른 되물었다. "무...... 무슨 황후 말이죠?" 심랑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아름다운 황후를 얘기하는 거요. 그러면 그와 다른 황후도 있다는 거요?" 주칠칠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번쩍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심랑은 얼굴에 미소를 띤채 표정의 변화도 없이 태연한 채로 있었다. 주칠칠은 놀랍고도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중얼거렸다. "지난 밤의 그 이상한 인영은 바로 이 사람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무슨 왕관 같은 그러한 얘기를 하는 거지?" 심랑이 말했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야밤중에 밖으로 돌아다니면 감기 들기 쉽상이오. 당신이 만약 오늘 저녁에도 밖으로 나가고 싶으면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신발도 따뜻한 걸로 신도록 하시오." 주칠칠은 앉았던 자리에서 펄쩍 뛰어 일어나며 말했다. "누가 오늘 저녁에 나간다고 했어요?" "나는 당신이 오늘 저녁에 반드시 나간다고는 얘기하지 않았소. 다만 나간다면 그렇게 하라고 얘기했을 뿐이오." 말을 마치고 그는 갑자기 머리를 돌려 창을 바라보면서 입가에 웃음을 띠고 가볍게 말했다. "웅 형, 왜 그렇게 창밖에 서 계시는 거요? 얼른 들어오시오." 웅묘아가 마른 기침을 하면서 멋적은 듯 들어왔다. "심 형, 안녕히 주무셨소?" "웅 형도 편히 주무셨소?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편히 자지는 못했죠? 밤중에 그렇게 여기저기를 싸돌아 다니다니 아무도 편히 잤다고는 할 수 없겠죠? 웅 형, 제 말이 맞습니까?" 웅묘아가 어색한 듯 마른 기침을 하고 나서 말했다. "그렇죠! 네. 맞고말고요!" "제가 방금 주 아가씨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 놓으면 황후의 모습과 같을 거라고 얘기 했는데, 지금 다시 웅 형의 모습을 보니 하하...... 웅 형의 그 우람한 신체와 기개에다 머리에 왕관 하나를 더 얻어놓는다면 틀림없이 황제의 모습이 될 것 같소이다!" 웅묘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당황한 듯 멍청히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랑이 갑자기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여기 그대로 앉아 계시죠. 제가 나가서 살펴보리다." 주칠칠이 말했다. "무엇을...... 무엇을 살펴본다는 거죠?" "밖에 나가서 어젯저녁, 좀도둑들이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가지나 않았는지 살펴보리다. 아마 물건은 훔쳐가지도 못하고 자기가 타고 왔던 마차를 남기고 황급히 도망갔을지도 모르지요!"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표연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주칠칠과 웅묘아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그 자리에 멍청히 앉아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 웅묘아가 말했다. "지난 밤의 그 인영은 바로 심 형이었군!" "맞아요. 틀림없이 저 사람이었을 거예요." 웅묘아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과연 대단한 경공술이군. 행적이 상당히 표연하고 신출귀몰하다니...... 우리의 일거일동이 모두 그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니...... 아, 대단한 무공이야! 대단해!" 주칠칠이 '픽' 하고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웅묘아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은 뭐가 고맙다는 거죠?" 주칠칠이 애교있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저를 칭찬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을 들으면 저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당신한테 고맙다고 인사했던 거예요. 당신이 만약 그를 욕했다면 저는 당장 이 자리에서 당신과 사생결단을 내려고 했을 거예요." 웅묘아는 깜짝 놀란 듯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 형이 어젯저녁 그렇게 당신을 희롱했는데도 당신은 화가 나지 않는다는 거요?" 주칠칠이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그 사람이 나를 희롱했다고 말했나요? 그 사람은 호의로 그랬을 뿐이에요. 그 사람이 호의로 그랬다는 건 당신이 직접 하신 얘기가 아닌가요? 우리는 그 사람한테 고마움을 느껴야 당연한 게 아닐까요? 왜 화를 내야 돼죠?" 웅묘아는 너무나 기가 막혀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화가 나오!" "뭣 때문에 화가 나는 거죠?" 웅묘아는 대답대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주칠칠은 그의 뒤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화를 낸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당신이 그렇게 화가 난다면 오늘 저녁, 그 사람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따돌려 보세요. 그러면 제가 당신도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죠. 여자들은 그처럼 능력있는 남자들을 좋아하니까!" 웅묘아는 큰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큰걸음으로 걸어 돌아와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진짜 심 형을 따돌리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시오?" 주칠칠은 웃음을 띤채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을까요?" "좋소. 두고 보시오." 그는 다시 큰 걸음걸이로 몸을 돌려서 나가버렸다. 주칠칠은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득의에 찬 웃음을 날리면서 말했다. "당신은 한 번도 남의 충돌질하는 계책에 넘어간 적이 없다고 말했죠? 그렇지만 지금 내 충동질에 그렇게 화가 났다니 어떻게 된 일이죠? 이 세상 남자들은 모두 똑 같은 것 같아. 어떤 남자도 여자의 충동질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지...... 다만...... 다만 심랑을 제외하고. 이 원수...... 이 원수를 제외하고......." 그녀는 심랑이 부드러운 방법도 강한 방법도 먹혀들지 않고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벙어리인 척하는 성격에 생각이 미치자 한입 깨물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양희가 떠나려는 그들을 만류하자 그들은 다시 구양희의 집에 눌러앉았다. 저녁이 되자 또다시 풍성한 주안상이 마련되었다. 술잔이 세 번을 돌았을 때 웅묘아가 갑자기 말했다. "제가 방금 아주 흥미있는 놀이를 생각해냈습니다." 구양희가 그 말을 받아서 물었다. "무슨 놀이오?" "우리 네 사람이 술시합을 한 번 하기로 합시다. 우리 네 사람 중에 누가 제일 먼저 쓰러지는지 보기로 합시다." 구양희가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말을 마치지도 않고 눈을 돌려 심랑과 왕련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심랑과 왕련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의 주량이 약하다고 혹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취한다고 인정하려들지 않는 법이다. 구양희가 대소하며 말했다. "그 놀이는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소.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승부가 판가름날 것 같지는 않구려!" 웅묘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도 않을 거요. 구양 형께서 술을 아끼지만 않으신다면 오늘 우리 중 누가 술이 가장 약하고 가장 센지 알 수 있을 거요." 구양희는 그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미 손벽을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요! 술 네 통을 제가 가져오죠!" 순식간에 술 네 통이 날라져 왔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방법은 어떤 것 같소? 한 사람이 한 통씩 마시기로 하면 아무도 더 마시고 덜 마시는 사람이 없지 않겠소?"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한 통으로 취하지 않는다면 그땐 또 어떻게 하죠?" 왕련화가 말했다. "이 네 통으로 취하지 않는다면 다시 여덟 통을 가져오도록 하죠." 심랑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취하지 않는다면요?" "그래도 취해서 먼저 쓰러지는 사람이 없다면 며칠을 두고 계속 마신들 어떻겠습니까?" 웅묘아가 박수를 치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주 좋소! 아주 좋은 방법이오! 그렇지만 아직......." 구양희가 말했다. "아직 뭐요?" 웅묘아가 이 말을 받았다. "술을 빨리 마실 건지 천천히 마실 건지도 결정해야 될 것 같소." 구양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고양이가 빨리 마시는 만큼 우리도 꼭 같이 따라 가겠소." 웅묘아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 그는 술통을 집어들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술통 속에 들어있는 술을 자기 입 속으로 부어넣기 시작했다. 그는 단숨에 반 통 이상의 술을 삼켰다. 주칠칠은 웅묘아가 술시합을 하자고 제안한 것을 들었을 때, 곧 다른 사람을 술에 취해서 떨어뜨리려는 계책임을 알았다. 심랑이 만약 술에 취한다면 당연히 그들을 뒤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빙긋이 웃으며 냉정한 눈으로 그들이 술시합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 네 사람은 과연 대단한 주량을 갖고 있었다. 순식간에 네 통의 술을 모두 비워버리고 구양희가 다시 박수를 쳐서 새로 네 통을 더 가져오도록 했다. 새로 가져온 네 통을 다 마셔버리고 또 네 통을 더 가져왔을 때 이 네 사람의 표정은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도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갑자기 그들의 술시합이 상당히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이 네 사람 중에 과연 누가 가장 먼저 술에 취해 쓰러질 것인지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곧 걱정이 앞섰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네 사람의 주량은 비슷한 것 같은데, 웅묘아가 만약 심랑을 먼저 취하게 만들기 전에 자기가 먼저 취해서 쓰러진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녀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심랑이 갑자기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크게 외쳤다. "웅 형, 웅 형! 주량이 과연 곰처럼 대단하구려. 그렇지만...... 그렇지만 다시 더 마시게 된다면 개가 될지도 모르지요." 그는 말을 마치고 '하하' 하고 웃더니 몸이 갑자기 흐늘흐늘하며 그 자리에 푹 쓰러져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웅묘아가 통쾌하다는 듯이 대소하며 말했다. "한 사람이 쓰러졌소!" 왕련화는 심랑의 모습을 뚫어질 듯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리더니 말했다. "아마 거짓으로 술취한 척 하는지도 모르지요!" 주칠칠은 비록 심랑을 취하게 만들고 싶었으나 심랑이 진짜 취한 모습을 보이자 조급한 마음을 금치 못하여 얼른 그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하고 한편으로는 왕련화의 말에 대꾸했다. "이 사람은 거짓으로 취한 척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로 취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거친 말을 내뱉을 수 있었겠어요? 이 사람은 당신과 달라요. 당신처럼 그렇게 거친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취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군요. 잘됐소! 잘됐소! 내가 자축하는 의미에서 몇 잔을 더 마셔야 될 것 같소!" 말을 마친 그는 머리를 쳐들고 세 잔을 더 마셨다. 세 잔을 더 마신 후 그의 모습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는 이미 탁자 밑으로 골아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웅묘아가 '하하' 대소하면서 술잔을 들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웃음소리가 그치기도 전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구양희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 좋소...... 우리 네 사람이 무공엔 비록 각자 높고 낮음이 있지만 그러나 술 방면에 있어서는 본인이 가장......." 말을 하면서 그는 술잔을 들고 문 밖으로 비틀비틀 걸어나갔다. 그러나 곧이어서 문 밖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나면서 더이상 구양희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웅묘아는 그들이 모두 취해서 골아떨어진 것을 보고 한참이 지난 후에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칠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보시오! 내가 심 형을 떨쳐버리지 않았소?" "그래요. 당신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칩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 사람을 이렇게 취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잖아요?" 그녀는 비록 말로는 심랑을 떨쳐버린다고 했으나, 여전히 심랑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웅묘아는 멍청한 듯 한참 있다가 중얼중얼 말했다. "여인이란......! 여인이란......!" 주칠칠은 골아떨어진 심랑을 침상에 똑바로 편안하게 눕힌 후에 비로소 웅묘아를 따라서 그 집을 벗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양희의 집에서 멀찍이 빠져나온 후 주칠칠이 비로소 고개를 돌려 웅묘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늘 밤은 심랑이 우리를 돌봐주지 않을 테니 어제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할 거예요!" 웅묘아가 말했다. "흥! 알긴 아시는군요!" 주칠칠이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술을 마셔서는 취하지 않더니만, 질투로 취하는 것 같군요." 두 사람은 지난 밤에 넘어 들어갔던 그 높은 담장을 다시 넘어 들어갔다. 그 담장 안은 여전히 적막만이 감돌고 있을 뿐 경계가 삼엄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보초나 순라를 도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달려간 후 사방을 둘러보니 그들은 이미 후원에 도착해 있었다. 주위의 광경은 주칠칠이 그날 보았던 마굴과 상당히 흡사한 듯했다. 소나무숲, 대나무숲, 정자, 누각 등등....... 눈에 쌓인 석판을 깔아놓은 길은 마치 얼어붙은 연못과 같았다. 주칠칠은 주위의 광경을 보면 볼수록 그날 자신이 보았던 광경과 흡사함을 깨닫고 더욱 긴장했다. 날씨는 매우 추웠으나 그녀의 손바닥과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웅묘아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술이오, 좋은 술! 다시 한 통 더......." 주칠칠은 깜짝 놀라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얼른 몸을 돌려 웅묘아를 그녀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웅묘아가 바닥에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두 사람은 쓰러진 채로 소나무숲속의 그늘진 곳으로 데굴데굴 몇 바퀴 굴러갔다. 한참이 지났으나 바람이 스산하게 소나무숲을 스쳐가는 소리가 들릴 뿐, 사방은 여전히 적막에 쌓인 채였다. 웅묘아의 웃음소리와 말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주칠칠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웅묘아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원망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미쳤어요?" 그러나 웅묘아는 여전히 헤헤거리며 말했다. "미쳤지요! 내가 미쳤소! 술 마시는 게 이 세상에서 제일......! 주칠칠은 웅묘아의 태도에 대경실색을 하고 말했다. "당신...... 당신 정말로 취했어요?" 웅묘아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누가 취했다는 거요? 방금 나는 이곳에 사람이 있나 없나를 알아보기 위해서 웃었던 거요." "당신의 그러한 방법은 목숨을 재촉하는 방법일 뿐이에요." 웅묘아가 갑자기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좋소! 당신이 내가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하지 않으리다." 주칠칠은 또 깜짝 놀라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식지로 웅묘아의 입술을 틀어 막으면서 말했다. "쉬! 말하지 마세요. 제발 조용히 하세요." 웅묘아도 식지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쉬! 말하지 마세요. 조용히 하세요." 주칠칠은 놀람과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웅묘아를 막았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녀는 아까 구양희의 집에서 그가 비록 거짓으로 취한 척 했으나 이 순간 그가 진짜로 취기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구양희의 집에 있을 때 취했으면 별 탈이 없었겠지만 지금 진짜로 취했다면 큰일인 것이다. 이때 웅묘아가 벌떡 일어서더니 손발을 휘두르며 수풀 속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그의 신법은 여전히 민첩하고 빨라서 주칠칠이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잡을 수도 없었다. 주칠칠은 어쩔 수 없이 바짝 그의 뒤에 붙어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웅묘아의 신법은 민첩하고 경쾌하기가 비할 데 없어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은채 미끄러지듯 달려가고 있었다. 주칠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제발 저 사람이 진짜로 취한 것이 아니었으면.......) 그러나 그녀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웅묘아는 갑자기 그들 앞에 서 있던 소나무쪽으로 달려가더니 '펑펑' 하고 소나무를 쥐어 박으며 크게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좋소! 당신이 내가 취했다고 말하다니...... 당신을 죽여버리겠소! 당신을 때려 죽이겠소!" 주칠칠은 놀랍기도 하고 분통이 터져서 한달음에 웅묘아에게 달려가서 따귀를 '철썩철썩' 하고 세 차례나 후려갈겼다. 웅묘아는 주칠칠의 손을 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반항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히히 하고 웃음을 날릴 뿐이었다. 주칠칠은 원망스러운 음성으로 욕설을 퍼부어댔다. "이 멍청이! 바보! 내가 당신을 진짜 때려 죽여버릴 거예요!" "아가씨, 제발 때려 죽이지는 마세요. 제발 반쯤만 죽게 때려주세요." 주칠칠은 비록 분통이 터졌으나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사방에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고 그녀 옆에 있는 것은 취해서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인데 그녀가 어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눈을 들어 사방을 돌아보자 그 정원은 여전히 쥐죽은 듯 고요했으며 아무런 사람의 기척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칠칠은 목소리를 낮춰 표독스럽게 말했다. "멍청이! 똑바로 들으세요. 다시 또 시끄럽게 한다면 당신의 혈도를 짚어버릴 거예요. 그리고 당신을 여기에 둔 채 나 혼자 가버릴 거예요. 당신이 얼어죽든 잡혀가든 저는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알아들었어요?" 웅묘아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알아들었소! 알아들었소!" "그래도 더 소란을 피울 거예요?" "아뇨, 아뇨! 소란 안 피우죠!" 주칠칠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좋아요! 조용히 나를 따라 오세요. 조금이라도 소리를 낸다면 당신을 죽여버릴 거예요." "좋아요. 조용히, 천천히 조심스럽게 당신을 따라가죠. 조금이라도 소리를 낸다면 당신이 내 목숨을 앗아갈 테니까요!" 그의 말은 아주 또렷 했으며 조금도 취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주칠칠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비록 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신은 아직 멀쩡한 것 같군. 그래도 내 재수가 괜찮은 것 같아. 그렇게 소란스럽게 떠들었는데도 한 사람도 놀라게 한 것 같지 않으니 말야.)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미 취해서 정신이 없었으며 또 한 사람은 젊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가씨라서 웅묘아가 방금 그렇게 크게 떠든 이상, 죽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경각심을 갖게 했으리라는 점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들이 그렇게 소란스럽게 했는데도 여전히 정원은 죽은 듯 적막에 휩싸여 있는 것에는 틀림없이 무슨 까닭이 있으리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도리어 주칠칠은 속으로 자신이 재수가 좋다고 좋아하고 있었으니....... 과연 주칠칠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이 기원은 바로 그날 그녀가 왔었던 그 마굴이었다. 다시 몇 걸음을 더 걸어 들어가자 그녀는 하나의 누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사방이 어둠에 싸여 있었으나 이 순간 그녀는 장미처럼 요염하고 사갈처럼 독한 그 중년미부가 누각의 난간에 기대어 선채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하였다.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찬 기운이 지나감을 느꼈다. 그녀는 재빨리 웅묘아의 소매를 잡아당겨 한 그루의 큰 나무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웅묘아가 말했다. "왜......?" 그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주칠칠이 손을 들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한 손의 손가락으로 그 누각을 지적하면서 말했다. "바로 저곳이에요!" 웅묘아가 입 속으로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주칠칠이 웅묘아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당신은 제발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하세요. 숨소리도 내면 안 돼요. 저 누각 안에 사는 그 여인은 악마보다도 더 무서워요. 당신이 조금만 소리를 내게 된다면 그녀는 즉각 그 소리를 알아들을 거예요. 그때는 당신이나 나나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을 버려야 될 거예요. 아셨어요?" 웅묘아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숨소리마저도 작게 내려는 듯 애를 쓰는 기색을 보였다. 주칠칠이 비로소 그의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치우고 가볍게 말했다. "우리가 비록 이미 이곳에 찾아 들어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군요. 먼저 들어가서 저 누각 안을 살펴볼까요? 아니면 돌아가서 심랑을 깨워가지고 다시 올까요?" 웅묘아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먼저 들어가서 살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먼저 들어가서 살펴보는 것도 나쁘진 않죠. 그러나 당신은 저 누각 안에 사는 그 중년미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하물며 당신은 이렇게 취했는데......." "괜찮소!"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누각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칠칠이 재빨리 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멀찍이 달려가고 있었다. 주칠칠은 소리를 내어 그를 부를 수도 잡을 수도 없어서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여갔다. 그를 쫓아서 같이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다리에 맥이 빠져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웅묘아는 곧장 그 누각으로 달려가더니 발을 들어 '펑' 하고 누각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당당하게 누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이 발길질은 마치 주칠칠의 가슴을 차는 것 같았다. 주칠칠은 다만 귓가에 '웅' 하는 소리가 들린 듯한 기분을 느꼈으며 머리가 어지러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도 더이상 뛰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흐물흐물 쓰러져버렸다. 그녀의 손발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으며 눈에서는 놀라움의 눈물이 솟구쳐 나왔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끝났어......! 끝났어......!" 주칠칠은 웅묘아가 그 누각 속으로 들어간 이상 결코 살아서 다시 나오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그녀는 웅묘아를 따라 들어가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려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퍼질러 앉은 채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누가 당신한테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라고 했어요 ? 누가 당신한테 술에 취하라고 했어요? 당신! 당신......! 죽어도 싸요. 죽어도 아무도 당신을 동정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의 맑은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으며, 볼을 타고 한 방울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웅묘아는 그 누각 안에서 큰소리로 부르짖고 있었다. "미친년! 마귀 할망구! 나와라! 나와라! 용기가 있다면 나와서 본 대협과 죽든 살든 한 번 결판을 내자. 나 웅묘아를 보고 겁이 나서 숨어버린 거냐?" 그의 말은 횡설수설했으며 심지어 혀꼬부라진 소리여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이어서 그 누각 속에서는 일진의 '우당탕', '쿵', '펑' 하는 소리와 웅묘아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누각 속에서는 이미 생사를 건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웅묘아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고 재치가 있다고 해도 결코 그 누각 속에 있는 절세미부의 상대가 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물며 지금 웅묘아는 술에 취해 이성을 찾지 못하는 상태임에랴. 주칠칠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편으로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취했든, 취하지 않았든,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내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취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여기에 오지도 않았겠죠? 모두 내가 당신을 해치는 거예요. 내가 해치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여기 가만히 앉아서 당신을 돕지도 못하고 있으니 내가 죽어야 돼요! 내가 죽어야 돼요! 내가...... 내가......!" 말을 하면서 그녀는 팔을 들어올려 그 부드러운 팔을 억세게 깨물었다. 팔에서는 선혈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누각 속에서 들려오던 우당탕거리는 소리는 뚝 그쳐버렸다. 누각에서는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죽음과 같은 적막만이 흐를 뿐이었다. 이러한 적막은 차라리 우당탕거리는 소리보다 더욱 주칠칠을 두렵게 했다. 그녀는 고개를 번쩍 쳐들어 뚫어질 듯 누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죽음 같은 적막과 어두컴컴한 누각은 어둠 속에서 우뚝 서 있을 뿐, 아무런 소리도 한 줄기 불빛도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두렵고 놀랍기도 했지만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이미 죽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가 이미 죽었다고 그래도 무슨 기척이라도 있어야 될 텐데.......) 그러나 적막에 둘러싸인 그 누각은 그녀의 눈에는 아주 간악하고 교활한 유령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 누각의 눈 덮인 처마는 마치 간악, 교활한 유령의 허연 백발과 같았으며, 꼭 닫힌 창문은 아무런 비밀도 털어놓지 않으려는 듯한 유령의 꼭 감은 눈과 같았다. 어떠한 사람도 그 영원히 꼭 감은 눈 속에서 숨기고 있는 비밀을 알아낼 수는 없는 듯했다. 또한 그 누각의 웅묘아가 발로 열어젖힌 문은 마치 유령의 입과 같았다. 그 문은 마치 주칠칠을 유혹하고 조롱하는 듯 바람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문은 주칠칠에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 속으로 들어올 용기가 있느냐? 평시에는 그렇게 담력이 큰 듯 으시대더니만, 지금 네가 감히 이 속으로 한 발이라도 들어올 수 있단 말이냐?" 주칠칠은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몸은 눈에 이미 흠뻑 젖어 있었으며, 바지는 진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자기의 모습에는 조금도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뚫어질 듯 그 누각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문! 누각의 그 문은 여전히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비단 주칠칠을 조롱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한 도전을 나타내는 듯했다.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서며 속으로 자신을 저주했다. (내가 왜 이렇게 겁을 내는 거지? 죽음도 두렵지 않다던 내가, 내가 왜 이모양이지?) 그러나 그녀는 공포감이라는 것은 바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약점이며 죽지 않는 한 영원히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바로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공포심이었던 것이다. 이 공포심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창피한 것도 아니다. 옛날부터 그 많은 영웅호걸들이 목숨을 버리고 정의를 선택했지만, 죽음에 직면해서는 그들 마음 속에는 다소간의 공포감을 느꼈던 것이다. 다만 그들이 호연지기에 의지해서 그러한 공포감을 떨쳐버렸을 뿐인 것이다. 주칠칠은 이러한 공포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으나 끝내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에게는 옛날의 영웅호걸들과 같은 호연지기는 없었으나 그녀의 강한 호승심과 선량한 마음은 끝내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이 무림계를 위해 이곳의 비밀을, 그 가공스러운 비밀을 파헤치겠다고 맹세한 바 있었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누각을 향해 걸어갔다. 누각의 문은 여전히 열린 채였다. 주칠칠이 그 문 앞에서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문 안의 상황은 조금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심장은 곧 뛰쳐나올 듯 했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그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공포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이를 악물고 뒤 한 번 돌아봄 없이 발 한 번 멈춤 없이 계속 앞으로 다가갈 뿐이었다. 그녀가 주저앉았던 곳에서 그 누각의 문까지는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짧은 거리가 그녀에게는 끝없이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는 문 바로 앞에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그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모든 힘을 다 쓴 듯 전신에 힘이 하나도 없음을 느꼈다. 이 순간, 문 속에서 어떤 사람이 뛰쳐나온다면 가볍게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며 문이 닫혀버렸다. 그에 따라 주칠칠의 심장이 떨어져나가는 듯 덜컹 내려앉았다. 하마터면 그녀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러나 문을 닫은 것은 바람이었을 뿐이다. 주칠칠은 입술을 깨물며 왼손으로는 가슴을 막고, 오른 손으로 가볍게 그 문을 열어 젖혔다. 그 문 속은 깊은 동굴 속처럼 어두컴컴했으며 사람이 없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그 문 안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여전히 두려움에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나 온 몸에 공력을 집중시키며 경계상태를 갖추었다. 그녀는 수시로 어둠 속에서 나타날 갑작스런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몇 발자국을 걸어 들어갔어도 그 안에서는 어떤 일도, 어떠한 위험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누각 안은 팔을 벌려도 다섯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으며 그녀는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다만 자기의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아주 예상밖의 상황은 도리어 그녀로 하여금 더욱 경계를 소홀히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상하리만큼 지나친 적막은 도리어 그녀를 더욱 두렵게 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누각 안에는 도대체 어떤 함정이 있단 말인가? 어떠한 위험이 진행되고 있단 말인가? 웅묘아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죽은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살아있는 것인가?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겁게 보았습니다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