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불행한 추억은 감미롭다. 과연 그럴까?
나는 두 갈래 길을 마주칠 때마다 과연 어느 길로 가야 맞는 것인가. 이 길이 과연 나의 길인가 하고 수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내가 의심하면서 걸었고 고통 속에 걸었던 그 길이 어떤 길이었든지 간에 모두 나의 길이었음을 깨달았다.
1950년대 중반, 진안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60년대의 궁핍하고 외로운 생활을 살다가 70년대에는 오로지 책과 군대와 건설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독재와 민주주의가 충돌하던 1980년대 초에는 영광스럽게도 ‘간첩용의자’ 로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뒤 풀려났고,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1992년까지 ‘요시찰 인물’로 감시의 대상으로 살았다.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일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나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날의 그 상처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분명한 것은 시고니 위버의 <진실, 원래 제목은 죽음과 소녀>은 허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내가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7일은 ‘진실眞實’이었다.
그 고난의 숲을 헤치고 나온 뒤에 나는 문화운동을 시작했고, 틈이 날 때마다 이 나라 산천을 걷고 또 걸었다.
수많은 길을 걸으면서 내가 나를 만나게 되고 진정한 나를 조금씩,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작가가 되는 길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요원한 일이었다.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이 아니라 수백 번씩 글을 쓰고자 했지만, 아무리 발광을 해도 써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 무렵 민주화의 길목에 처한 나라의 상황이 한 인간의 삶과도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민주화의 길 속에서 문화 운동의 길을 새롭게 발견했고 문화 운동에 온 몸을 던졌다. 길은 험난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나는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하나의 변치 않는 역사의 길이 되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운명적으로 걷기 시작하며 내가 택한 그 문화 운동이 나의 내면에서 체화되어 길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운명처럼 길에서 길을 찾다가 역사와 문화를 찾았고, 그 길에서 문화운동가를 거쳐 작가의 길로 전이해갔다.
조선 시대 9대로인 역사의 길을 국가 명승으로 만든 것이나, 해파랑 길, 소백산 자락길, 변산 마실길 등 이 나라의 아름다운 길을 만들게 한 원동력, 그리고 <한국의 5대강>의 발원지를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도 길에서 체득한 숙명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아픔이 역사를 공부하게 하였고, 역사 속에 불운했지만 시대를 변혁했던 사람들의 생애와 불행했던 인물들의 삶에 천착하게 만들었다. 동학농민혁명을 공부하면서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을 알게 되었고, 허균, 조광조, 정도전,등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공부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중환의 <택리지>를 11권으로 다시 쓰게 되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 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쓰며 어떤 땐 가엾기도 했고, 어떤 땐 혼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누군가가 말했지, “야만野蠻의 기록이 없는 문명이란 있을 수 없다.” 그 때 한 시절, 내가 겪었던 사건은 어쩌면 상상도 하지 못한 야만, 그 야만의 시절이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던 내가 그 혹독한 시절을 겪고 나서야 참다운 나, 나다운 나를 발견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날의 불행한 추억은 감미롭다.”고 말한 키케로의 말과 같이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은 서럽도록 아름다웠다.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이 저마다 살아내어 마음 속 깊이 각인된 삶이리라. 그 삶의 역정을 털어내는 마음이 그저 슬프기만 것은 그 무슨 연유일까?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열매 맺는 것이 무화과 아닌가?“ 라고 노래한 김지하 시인의 <무화과> 라는 시 한 구절을 떠올리다가 보면 그 청춘의 시절, 꽃 시절을 보내지 못한 것 같아 괜히 허전할 때가 있다. 그 때 떠오르는 로베르 강조의 시 구절이 있다. “만들어 내라, 내 기억 밑바닥엔 잃어버린 축제가 없으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이 바로 꽃 시절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 하늘거리는 망초 꽃이나 코스모스, 그리고 그 누구도 꽃이라 여기지 않는 호박꽃이나 이름도 모르는 들꽃 같은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만 하다.’ 는 생각과 함께, ‘세상은 걸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오래 살면서 터득한 것들이 더러 있다.
삶이 예측 가능한 사람이 있고, 삶이 불확실성 그 자체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후자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 밖에 못 사는 것이 삶이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아니,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지에 매달린 오이나 박처럼 한 군데 꼼짝도 않고 서서 불어오는 바람이나 흘러가는 구름, 날아가는 새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살다가 사라진다면 넓고도 광활한 천지天地의 광대무변한 온갖 사물들이 얼마나 서운해 할까?
그 마음이 이 세상을 지치지도 않고 떠돌면서 이런 저린 일들을 벌리면서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시리고 시린 날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나를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나는 이것저것들을 체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맞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두려움, 망설임, 슬픔과 고독, 그것들이 나의 친구였고, 그 속에서 내가 나,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길 위에 삶이 있다. 그 삶의 길로 머뭇거리지 말고 나서라.
그리고 받아들여라.’ 나의 운명‘ 나의 지론이다. 그곳이 천국이건, 지옥이건, 그 길을 따라 떠돌다가 어느 날 문득 지상에서의 삶을 ‘객사客死’로서 마감할 것을 소원한다.
책 본문 중에서
2022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