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일상성(banality of evil, 무사유 no thinking)에서 거룩의 일상성(banality of holy)으로 깨어나야 >>>
* 현 난국의 이해와 돌파구는 낡은 사고(思考), 무사유(no thinking), 낡은 전체주의(totalitarianism, 총체적 지배) 시스템 교체이다!!!
*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전체주의의 시스템에 매몰된 대중(mass)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identity)과 인간성 본질(humanity)을 깨닫고 주장하고 책임지는 자유 시민(demos) 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작금의 한국 사회는 나치주의와 같은 전체주의의 정치체제와 사유(thinking)를 포기한 대중으로 어우러져 악의 일상성(banality of evil)에 빠져있음을 한탄한다.
* 더욱 심각한 것은 “악의 일상성”에서 구원해야할 종교(특히, 기독교)가 낡은 전체주의와 교리주의에 빠져 교인들의 생각(인간다운 사고)을 앗아가고 ‘닫히고 굳은 교조주의’를 주입하며 경건(종교)의 모양(껍질)으로 씌우고(위장) 억압하는(얽매는) ‘악의 일상성’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에 소스라친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생각(인간다움, humanity)을 되찾고 낡은 전체주의 제도를 깨부수고 대중에서 시민으로 자각하여서 ‘악의 일상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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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연하면, 전체주의의 나치즘에 빠져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송출한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년 3월 19일 ~ 1962년 6월 1일)은 “악의 일상성(banality of evil)" 의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자신이 악을 행하면서도 악을 자각하지 못하고 행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자각하고 “거룩의 일상성(banality of holy)”을 행하셨다.
* 이와 같이 우리가 깨어 자각하고 사유(thinking)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이히만과 같이 악의 일상성에 빠지게 된다.
반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일의 동역자로 깨어나면(거듭나면) 거룩의 일상성을 회복할 수 있다.
* 고로, 교회는 ‘악의 일상성’에서 ‘거룩의 일상성’으로 교인들이 변화하도록 깨우고 가르치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 속의 교회는 오히려 악의 일상성에 빠져 있음을 실감하게 되니 어찌 한탄하지 아니하라!!!
오호통재라 嗚 呼 痛 哉!
2000년전에 유대 사회와 종교(성전)의 ‘악의 일상성’ 에 대해 비판하고 부패의 온상(강도의 소굴)인 성전 뜰의 온갖 비리(이권, 진리 왜곡, 억압)를 뒤엎고 채찍으로 내쫓으시고 정화(purification)하시며 ‘기도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성전)’으로 선포하신 예수님이 무척 그립다.
마란 아타! Maran ata! Our Lord come!
주여, 악의 일상성에 빠진 우리(세상)에게,
강도의 소굴로 퇴락한 종교집단(교회)에 어서 오소서!!!
p.s. “악이 일상성(banality of evil)” 출처 및 개념 이해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저자
https://youtu.be/k7GUB_df6l8
: 링크 주소를 클릭하시면, "한나 아렌트" 영화의 핵심 장면인 한나 아렌트가 학생들에게 강의한 "악의 일상성" 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꼭 보세요!!!
전체 영화를 보면 더욱 좋고요.
Rejoice in the Lord always.
성경이 해답이요, 예수님이 구원주이십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첫댓글 주님 어서 오시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