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틸리케 목사의
신과 악마사이
는 예수님의 광야의 시험을 통해
우리의 가장 취약한 점이 무엇인지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1. 첫번째 시험: 굶주림의 현실
악마는 처음부터 우리 마음 속에 있고 하나님이라는 사실의 토대 즉 여기서는 하나님의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이라는 토대 위에서 접근한다.
악마의 목표는 예수가 기적을 일으키도록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악마의 최종목표는 하나님의 기적이 자기의 지시에 의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악마의 지시에 의해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다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일까?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배후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행하셨다고 박수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악마는 하나님 아래 또는 하나님 안에 있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 위에 서려고 한다. 그곳은 하나님의 바깥 즉 지옥이다.
악마는 우리가 자기에게 항상 옳은 결론을 논증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은 여기에 있었어'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면 이렇게 해주셔야 한다'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규정하게 한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규정지워버리면 하나님의 아들과 교회가 악마의 꼭두각시가 되게 된다.
하나님은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즉 말씀으로 싸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할 때 악마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상대하게 된다.
예수님이 악마의 지시로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심을 분명히 보여주신다.
2. 두번째 시험: 자기과시의 부추김
악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토대 위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단의 유혹처럼 시편 말씀을 믿고 뛰어내리셨다면 아버지의 의지가 아닌 악마의 의지를 따른 것이 된다.
예수님은 그 시험의 마지막 순간 이러한 유혹이 아담과 하와의 사과임을 알아채고 돌이키신다.
말씀이나 예배와 같이 경건한 종교적 체계를 통해 적그리스도가 주님의 표를 판다.
악마는 정작 언약과 말씀에 따라 살기보다는 율법주의자나 방관자 중 하나가 될 것을 강요한다.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려 있을 때만 하나님 말씀이다. 그런 사람은 행한다.
싸움은 우리의 영혼을 얻기 위한 하나님과 사악한 원수와의 싸움이고 최후의 승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3. 세번째 시험: 예수의 이 세상 나라
악마가 예수님에게 보여주신 세상은 지구본 즉 아담과 하와의 사과였다. 예수님은 그 유혹을 거부하고 돌이키신다.
악마는 종들인 교회와 성도들을 유혹하여 참된 고백이 요구되는 상태를 방해한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면에 내세울 때 사단은 하나님을 맞닥드리고 그 정체가 드러나다.
예수님의 무방비 상태인 인간으로 오셔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우리의 상태를 폭로하고 문이 열렸다는 복음을 알게하셨고 그분의 통치를 알리셨다.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은 이 책의 핵심을 이야기 하기에 발췌해 보았습니다.
에필로그
우리의 출발 지점을 생각해 보자. 예수께서는 시험을 받으시기 위해 광야로, 고독 속으로 들어가셔야 했다. 그분은 우리를 유혹하고 죄짓게 하는 것으로 넘쳐 나는 세상 속으로(우리 생각에는 그 편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들어가지 않으셨다. 여기서 우리는 시험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게 해주는 하나의 힌트를 발견했다. 요컨대 시험의 비밀은 인간이 늘 시험에 드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비밀은 인간 바깥에, 그러니까 죄를 지을 만한 외부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다. 그 안에 낭떠러지가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천 번 만 번 뛰어넘었는데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인간이 실제로 남의 물건을 훔치지는 않았더라도 (시험에 들어) 훔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원래 그가 도둑이라서 그렇다. 인간이 실제로 살인하지는 않았더라도 (시험에 들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원래 그가 살인자라서 그렇다.
예수의 평화는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평화다. 이 평화는 두 가지 확신에 기초한 평화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의 주님이시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악마 사이의 줄다리기, 곧 시험으로 마주하는 모든 인간적인 사건들 속에 나타난 깊은 고통까지 다스리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확신은 그리스도께서 그런 사건, 그런 깊은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그 두 가지 확신 속에서 우리의 평화가 되신다.
첫댓글 사탄의 만든 기독교는
악마의 유혹을 전하고 있죠
@섬소년님은휴식중 개분아 떵개분아 떵먹고 싶어서 왔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