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을 넘긴 마음공부
유월에 드니 하루가 다르게 무더워지는 날씨를 실감한다. 이번 주 한낮 최고 기온은 연일 30도를 넘긴다는 예보를 접했다. 엊그제 비가 와 목말라 가던 초목을 적셔주긴 해도 강수량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오키나와 부근에 머문다는 장마전선이 북상하려면 아직 열흘은 더 걸려야지 싶다. 태양 복사열에 달구진 대지가 제대로 식혀지려면 장맛비라도 후줄근히 내려야 할 듯하다.
유월이 중순에 접어든 화요일은 주남저수지를 비켜 본포로 가는 30번 버스를 타려고 원이대로로 향했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은 한 노인이 가꾼 수국이 만개해 꽃 대궐을 이루어 장관이다. 노인은 이른 시각 뜰로 내려와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쓰러질 듯한 꽃송이를 일으켜 지주를 세워 묶었다. 한 사람의 정성으로 가꾼 수국으로 아파트단지 전체가 환해져 노인에 경의를 표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걸으니 보도와 나란한 반송 소하천에는 새로운 생명체가 꼼지락거려 눈길을 끌었다. 냇바닥에는 둥지에서 갓 깨어나 아직 눈도 채 뜨지 못하는 흰뺨검둥오리 새끼가 한 무더기 보였다. 가까운 풀숲 둥지에서 알을 깐 어미 오리가 새끼들을 웅덩이 가까운 곳으로 주둥이로 물어다 놓고 정신을 차리면 얕은 물로 기어가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일전에 봤던 새끼 오리들은 중병아리보다 커서 자립이 가능해 어디론가 사려졌다. 껍질을 깨고 나온 오리 무더기 곁 물웅덩이는 어미와 함께 먹이 활동을 나선 또 다른 오리 가족이 보였다. 그러니까 반송 소하천 좁은 구역에 흰뺨검둥오리는 올여름 며칠 시차를 두고 세 쌍이나 새끼를 쳐 나왔다. 저출산율로 고심인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이 오리들에게 한 수 배웠으면 싶었다.
오리들이 무사히 커 주길 바라면서 원이대로에서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충혼탑을 두른 버스는 명곡교차로로 되돌아 와 도계동에서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났다. 화목과 동전을 지나면서 노인요양원과 김치공장으로 출근하는 이들이 내리고 주남저수지를 비켜 간 용산마을에서 내렸다. 전번과 같이 두 차자도 나와 함께 내려 궁금했다.
지난번 앳된 처자 둘을 학생으로 오인하고 여기는 학교도 없는데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학생이 아닌 회사원이라 해 물었던 내가 머쓱해졌다. 나는 더 이상 얘기를 나누지 않고 폐교된 초등학교가 생태학교로 바뀌어 거기로 출근하는 직원으로 짐작했다. 이번엔 두 처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봤더니, 그곳과 무관한 작은 회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일을 한다고 했다.
용산마을에 이르러 두 처자와 방향이 다른 산남저수지 둑길을 걸어 합산마을 앞으로 갔다. 마을 뒤 야트막한 산이 조개가 엎드린 모습이라 대합조개 ‘합(蛤)’을 쓰는 지명이다. 합삽마을에서 모내기가 끝난 들녘을 걸어 가촌마을로 향했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농로 끝은 소실점이 나타나고 진영 신도시 아파트단지가 아스라했다. 아침이라 해가 중천에 솟지 않아 더위를 잊을 만했다.
합산마을 앞 넓은 들판을 산책으로 걸어 지나는 이는 좀체 보기 어려운 곳이다. 1번 마을버스를 타면 곧장 가술에 닿을 수 있지만 일부러 무한 들녘을 에둘러 가촌에서 가술로 향했다. 아까 용산마을에 내려 1시간 반이 걸려 가술에 닿으니 아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조끼 등짝도 살짝 젖어오는 기분이었다. 가술의 작은 마을도서관으로 드니 업무가 시작된 사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가에서 지난번 읽으려다 미뤄둔 김종원의 ‘오십에 시작하는 마음공부’를 뽑아 열람석에 앉았다. 인문학에 해박한 저자가 조선시대 문장가 박지원이 남긴 글을 해석한 책으로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하나의 기록으로 그 사람의 인생보다 긴 생명력을 지녔다. 오십은 진작 지났고 일흔을 앞두어도 책장을 넘기면 가슴 설레는 시간이다. 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