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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에 기록될 삶 (계2-66)
2024년 4월20일(토요일)
찬양 : 거룩하신 성령이여
본문 : 계20장11-15절
☞ https://youtu.be/M0MDPRiHJrs?si=ZoCVVKttvtOqvGWN
작년 연말 웨이브리즈 플랫폼의 앞길이 보이지 않아 넘 힘들었을 때 뜬금없이 하나님은 내게 작은교회 70개 교회를 심방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주님의 마음에 순종해야 하지만 당시 상황적으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예>라고 순종하지 못했다. 웨이브리즈 플랫폼 위급한 상황인데 70개 교회를 심방하라니 ~ 이해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52주 가운데 금식하는 1월을 빼고 더운 여름 한 달을 빼면 70개 교회를 심방하려면 한 주에 2개 교회씩은 해야 가능한데 일정상 불가능하기에 <예>라고 답을 못했다.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도저히 어떻게 라는 것에 확신할 수 없어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고 금식하며 내 심정에서는 아마 웨이브리즈 플랫폼을 포기하라는 싸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금식의 시간 주님은 나 혼자의 시간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금식 마지막 날 아침 기도실에서 기도하는데 네온싸인처럼 <포기하는 것은 마귀에게 지는 것이다>라는 환한 빛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나는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야 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힘들게 하실까? 체력적으로 피곤과 싸워야 하는 전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프신 분>들이 많아져 4월 한 달 작정기도를 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몰아가심 ~ 순종하기엔 힘겨운 자리지만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음을 알기에 작정하여 시작했다. 한분 한분 소중한 이들을 품고 성 무너진 곳을 막아서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분들의 아픔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어제 작은교회 심방이 있었다. 피곤함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몸을 일으켜 심방했다. 심방의 시간 왜 하나님께서 나로 이 일을 하게 하셨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셨다. 중보기도를 작정하게 하시고, 심방하게 하시면서 정작 하나님은 나를 살리고 계신다. 라마나욧선교회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하시는 시간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저 감사를 올려드린다.
주일을 준비하는 날, 피곤이란 녀석이 나를 붙들고 늘어진다.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
이날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실까?
오늘도 내 삶의 기준을 말씀에 두고자 말씀 앞에 선다. 일명 백보좌 심판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11절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어제 천년왕국이 끝난 후 사탄이 잠시 풀려나 다시 만국을 미혹하며 무력한 인간이 사탄의 미혹에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 순식간에 심판하시고, 사탄을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시는 장면을 묵상했다. 오늘은 이어서 우주적이고, 최종적인 심판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 요한이 보니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았다고 한다. 바로 왕이신 예수님의 보좌와 예수님을 본 것이다. 앞에서 성도들이 왕노릇 할 때 앉은 보좌를 말했는데 그 보좌와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흰 보좌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메가 커피>에 나오는 <메가> 즉 <메간>이란 헬라어에서 나온 크고 방대하다는 뜻이다. 그 크고 영광스러운 보좌와 그곳에 앉으신 예수님을 요한은 보았다.
그리고는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고 한다. 그 보좌의 위엄앞에 세상적인 것이 설 수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기 전 이전의 세계가 사라지는 장면이다. 죄로 오염된 하늘과 땅이 서서히 사라지고, 새 하늘과 땅이 서서히 등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장면이 아닌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시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고 또 다시 요한은 보게 된다. 12-13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이 부분을 신학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렵다. 나는 묵상을 통해 성경이 말하려는 바, 나의 제한적 시각안에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 말씀의 진정한 모습은 마지막 때에 이르러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누구든지 보좌앞에 서 있는 것을 요한이 보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불공평하고, 불의한 사건과 재판이 벌어지는 세상과 다른 공평하고 공의로운 재판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이다. 요한 자체도 불의한 재판으로 지금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기에 이 광경은 그야말로 환호가 나오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앞에 생명책이 펴 있어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이렇게 공개적인 최후의 심판을 하는 이유이다.
성도가 죽으면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는 영혼이 죽으면 지옥으로 가도록 하면 되는데 왜 이런 최후의 심판을 하실까?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유일한 심판자라는 사실을 전 우주적으로, 또 공식적으로 선포함으로 주님의 왕되심과 심판자이심을 드러내며 온 인류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 심판은 이 땅의 심판과 완전히 다른 공의롭고 공평하며 완전한 심판이라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성도는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우리가 살아온 삶의 행적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 시간은 위로와 격려와 축복이 넘치는 시간일 것이다.
물론 성도의 삶에는 행위가 드러나고 거기에 주님의 용서가 선포되며 행위를 넘는 은혜의 덮어주심이 있을 것이며, 우리의 수고와 헌신에 대한 공정한 포상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피곤이란 단어와 감동이란 단어가 겹쳐진 오늘 주님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에게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포상을 보게 하시며 이 하루를 살라고 하신다. 아멘. 아멘.
땅을 밟고 살기에 저 하늘보다 땅에서 결과를 보려는 마음이 많다. 하나님의 인정보다 세상의 인정에 더 갈급하고, 하늘의 포상보다 이 땅의 포상이 더 그리운 것이 땅을 밟고 사는 육신에 속한 우리의 모습이다.
사도 요한도 얼마나 이 땅에서의 결과를 갈구하며 살았을까? 그런 요한을 하늘로 초청해서 하나님의 공의롭고 공평한 심판을 통해 그를 위로하며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이 아침 감동이다.
중보기도 세미나를 준비하고, 주일 사역을 준비해야 하는 오늘, 이 감동을 가지고 땅이 아닌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될 그것도 아주 찐하게 기록될 날로 이 날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주님, 받으소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날로 주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이 날이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플랫폼에 적합한 사람을 보내주사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2. 목회사관학교 11기생 모집에 주님이 보내신 사람이 모이게 하소서
3.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4.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이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6. 땡스기브의 아름다운 공간이 다음세대를 세우는 공간이 되게 하소서.
7.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8. 라마나욧선교회 충주지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순적하게 세워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