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소요 시간 |
비 고 |
석골마을 |
|
04:24 |
|
|
깨진바위(억산) |
5.10 |
07:03 |
159 |
50분 알바 |
운 문 산 |
4.71 |
09:11 |
128 |
|
가 지 산 |
7.44 |
11:53 |
162 |
30분 휴식 |
능 동 산 |
6.00 |
14:21 |
148 |
|
천 황 산 |
5.92 |
16:50 |
149 |
30분 휴식 |
재 약 산 |
2.67 |
17:53 |
63 |
|
죽전마을 갈림 |
3.31 |
19:36 |
103 |
|
69번 도로 |
1.78 |
20:40 |
64 |
|
배내하우스 |
4.86 |
21:44 |
64 |
|
계 |
41.79 km |
17:20 |
15:30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해밀은 운문雲門이었습니다.
04:24
수지를 출발한 버스는 밤새 달려 경남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석골교 앞에 도착합니다.
다리 이름도 석골교이고 마을 이름도 석골마을이니,
사찰 이름도 석골사입니다.
이 고장은 사과가 아주 맛있습니다.
큰 산들이 자리하고 있는 관계로 일교차가 심해 맛이 달다나요?
충렬의 고장이기도 하고....
유적비를 지납니다.
04:45
이내 석골사입니다.
예전에 억산 이정표 혹은 들머리를 분명 본 거 같은데 눈에 띄질 않습니다.
석골사 위, 아래를 오르락 내리락 살펴보지만 보이질 않습니다.
석골사와 안내도 사이에 들머리가 하나 보이긴 하는군요.
"제기럴. 길이 없어졌나? 아니면 절에서 폐쇄시켜놨나? 고생 좀 하겠군"
구시렁거리며 희미한 흔적을 따라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르다 보니 길은 없어지고 잡목이 길을 가로 막습니다.
뚫고 가려해도 이 신새벽에 멧선생을 건드리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도 되어 회군回軍을 결정합니다.
참고도 #5
위 참고도의 노란선이 제가 헤매며 땀 흘린 흔적입니다.
"빨리 쫓아가면 가지산 정도에서 따라 잡지 않을까?"
05:36
다시 석골사 옆에 있는 안내도로 되돌아 옵니다.
50분 동안 체력만 소비하고는 제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후회막급.
그런데 안내도 바로 옆에 이정표가 있었군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이정표를 오늘은 자세히 뜯어봅니다.
제가 보고자 했던 것은 '깨진 바위"루트인데.....
"아차!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억산' 표기와 이곳에서 부르는 '억산'의 위치가 다르지!"
어제 예습을 하지 않아서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다리만 고생을 한다더니 꼭 내 짝이 그렇군!"
좌틀합니다.
가끔 이런 너덜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고속도로입니다.
역시 제도권 하에 있는 등로를 택해야 편합니다.
06:10
등로 사정과 상관 없이 등로는 된비알로 이어집니다.
06:16
그러고는 지도 #1 '가'에서 119 구조목을 만납니다.
좌측으로 방향이 바뀝니다.
06:29
잠깐 조망이 트이는 데서......
와!
지금 제가 있는 곳은 구름 한 점 없이 말짱한데 저 운문산 방향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저 산은 24번 도로 건너에 있는 천황산?
06:37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가 나오는군요.
그 바위 위로 올라가봅니다.
운문산 정상만 남겨놓고 모두 운무로 덮혔습니다.
운문산의 雲門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해밀은 운문이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13분 경과한 시간.
보통 석골교에서 운문산까지 약 5km 정도에 소요 시간은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로 잡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럴 경우 해밀 대원들은 지금 저 운문산에서 일출을 볼 수 있겠군요.
그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봅니다.
와!
천황산1189m입니다.
이따 오후 3시경에는 저곳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저 천황산을 '재약산 사자봉'으로 부른 적도 있었죠?
우측 앞쪽으로는 천황산에서 이어지는 천황단맥의 실혜산828.3m이고....
천황단맥은 저 천황산에서 이 앞까지 다가오다가 다시 뒤로 돌아 산내면과 단장면의 면계인 정각산860.1m ~ 승학산548.1m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고는 산외면과 단장면의 경계이자 단장천과 동천의 합수점이 있는 단장면 태룡리 부근에서 맥을 다하게 됩니다.
이따 자세하게 볼 겁니다.
우선 그림만 보면,
참고도 #6 천황단맥
이 참고도 #5의 천황단맥과 이따 볼 단장지맥과 낙동정맥을 몰아서 보기로 하죠.
이 참고도가 무척 중요한 지도입니다.
바로 앞이 조금 전 올라온 암봉 뒤의 수리봉이고.....
운문산 왼쪽으로 일출을 보게 되는군요.
구름 속으로 해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제 비가 온 뒤 맑게 개인 하늘.
해밀입니다.
해밀 덕분에 구름의 바다.
운해雲海를 봅니다.
저 운문산은 조금 이따 만날 가지산에서 가지를 쳐서 오는 줄기입니다.
단장지맥이라 부르죠?
신산경표에서는 운문지맥으로 부르고 있고.....
지맥은 저 운문산을 지나 억산 방향으로 오겠죠.
운문산과 천황산.
바람이 왼쪽에서 즉 북쪽에서 남쪽으로 부는군요.
아마도 저 단장지맥으로 오르면 운무 속을 헤매게 되지나 않을까 불안감이 듭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군요.
................
천황단맥은 완전히 잠겨 버렸습니다.
가운데 수리봉.
이럴 수가!
운문산만 남기고 다 잠겼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억산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범봉이라 부르는 962봉은 완전히 잠겼습니다.
단장지맥이 사라졌습니다.
.....................
운문산만 남기고..........
멀리 있는 천황산과....
올라가야죠.
06:53
수리산 ~ 사자봉으로 진행하는 3거리입니다.
지도 #1의 '나'의 곳입니다.
119 구조목도 있고.....
드디어 운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안개비가 내리는군요.
헬기장을 지나면서 배낭 카바를 씌우고 진행합니다.
07:03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깨진 바위'로 표기되어 있는 953.6봉입니다.
이 봉에는,
이정표와,
억산 그리고 해발 944m라고 표기된 정상석이 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깨진 바위'를 현지에서는 억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지명의 혼용이 산꾼들로 하여금 혼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군요.
어쨌든 여기서 단장지맥에 접속합니다.
그리고 행정구역 상으로는 경상북도 청도군을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과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의 도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신발이 점점 젖어오고.....
바윗길을 지나,
953.6봉을 내려와 좌틀하여 반대 바위봉으로 올라갑니다.
바위 봉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래서 깨진 바위?
07:17
로프도 두어 번 잡아야 합니다.
바위가 맨질맨질하니 주의를 합니다.
07:20
나무 계단이 나오는군요.
그러니까 이 부근은 953.6봉을 내려와서 좌틀하여 다음 암봉으로 오를 게 아니라 그냥 리본을 따라 아래로 더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면 로프도 만질 필요없이 그냥 편안하게 이 나무 계단으로 진행을 할 수 있을 겁니다.
07:26
팔풍재를 지납니다.
이 팔풍재가 석골사 방향의 대비골과 청도의 대비사골을 이어주는고개입니다.
07:29
석골사 삼거리를 지나,
07:49
지도 #1의 '라'의 곳에 정상석 하나가 세워져 있군요.
삼지봉이라....
三支峰입니까?
여기서 운문면을 만나게 되니까 운문면, 금천면과 산내면 등 세 개의 면이 갈리는 곳이라는 의미겠죠.
그런데 아쉽게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봉우리 표시조차 되어 있지 않군요.
안개비가 조금 더 세어지는 느낌입니다.
08:02
그러고는 범봉입니다.
이곳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억산962m이라고 표기된 곳입니다.
다른 건 다 지리정보원 지도가 맞다하더라도 여기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따 아랫재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도 바로 석골사로 하산할 수 있는 곳입니다.
08:17
지도 #1의 '마'의 곳인 운문사 사거리를 지납니다.
이곳에서는 딱밭재라고 하는군요.
운문사는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이라고 하죠.
일종의 신병교육대 같은 곳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직진을 하고,
08:46
또 직진을 하고,
08:56
로프가 나오지만 안 잡고도 오를 수 있고.....
08:58
소머리 바위 입구를 지나면,
09:02
반가운 이정표를 만납니다.
상운암 삼거리입니다.
지도 #1의 '바'의 곳입니다.
그러고 헬기장을 지나면,
09:11
기억에도 너무 생생한 운문산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려 하지만 안개비만 멈췄지 운무 속에 갇혀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직진을 하면 얼음굴을 지나 다시 석골사로 내려가게 되겠죠.
한 번 가 본 루트입니다.
해밀은 곧 사람과 산이어라.
두 시간 정도 전에 이곳을 지나치며 일출을 감상하던 대원들을 그려봅니다.
배가 고프군요.
우선 아침에 나눠준 빵 하나를 털어넣고......
그런데 오른쪽에서 인기척이 납니다.
운문산에 오니 드디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군요.
흠.....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이 분은 상운암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범봉 방향까지 갔다가 오는 알바를 하셨군요.
오늘은 '산수산악회' 소속.
길동무를 만났으니 이 얘기 저 얘기해가며.....
지도 #2
옛 정상석을 지나,
나무 계단을 따라 지루한 내리막을 내려갑니다.
09:49
지도 #2의 '사'의 곳에 있는 아랫재입니다.
좌틀하면 심심이골을 따라 운문사로 내려갈 수 있고 우틀하면 남명초교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는 사거리입니다.
아랫재가 해발 717m 정도가 되니 1240.9m의 가지산까지 약 500m를 올려야 합니다.
이제부턴 된비알을 치고 올라갈 각오를 좀 해야 합니다.
진행 방향으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는군요.
'온라인', '해올', '산수'가 주류를 이루고 있군요.
거의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 사람들일 것이니 이유야 어떻든 다 낙오병 혹은 알바꾼들입니다.
해밀에서는 뒤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은 저뿐이니 과연 해밀의 그 저력과 산행 능력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산과 사람을 아끼는 마음.
해밀의 정신입니다.
그렇게 몇 명을 추월하여 오르다 보니,
10:34
지도 #2의 '아'의 곳인 백운산 갈림길입니다.
여기서도 두 분이 간식을 들고 계시군요.
후배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한 분은 저를 보시더니 "해밀에서 오시지 않았습니까?"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하면서 어떻게 아셨냐고 되물으니 "그런 것 같았다."고 하시는군요.
저도 그분 호구조사를 해보니 해밀에도 몇 번 오신 '청계산주인'이라는 분이십니다.
이번 코스를 주시하고 있다가 해밀에 신청을 하였는데 조기 마감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온라인'派 소속으로 참가를 하셨다는군요.
준족이어서 저와 같은 코스를 저보다 앞서 진행하신 분입니다.
제가 초입에서 좀 헤매는 바람에 이분 뒤를 쫓아오게되었던 것이고....
저희 먼저 출발합니다.
11:17
반대 방향에서 오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지점부터군요.
아침 일찍 출발하여 가지산을 통과한 분들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산이 시끌벅쩍해집니다.
가을의 정취를 느낍니다.
실제 저는 녹색보다는 갈색이 더 좋더군요.
푸르름보다는 원숙미를 주는 갈색.
붉음으로 가는 과정의 색입니다.
11:21
헬기장을 지나면 고대하던 '가지산장'입니다.
3년 전에는 가지산장에서 한 시간을 버텼었는데....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진 촬영한 것 중 가지산 ~ 능동산까지의 사진들이 다 날아가 버렸군요.
이럴 수가.....
해밀은 좋은 인연과의 만남입니다.
하는 수없이 2014. 10. 4. 사진을 가져옵니다.
누렁이는 여전하군요.
저 녀석이 조금 달라진 것은 지금은 눈썹을 그렸다는 점이죠.
이젠 늙어서 그런지 애가 힘이 없어보이고....
일단 막걸리 한 통을 주문합니다.
12,000원.
두부김치 10,000원.
그런데 그 안에서 나오는 남녀 한 쌍.
후배 부부를 만나게 되는군요.
이 친구들도 알바꾼.
이어 봉수님도 만나고....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한 통 더 시키고......
시간이 늦었으니 30분만에 파하고 자리를 일어납니다.
11:53
그러고는 1등대삼각점(언양11,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 산1-4)과,
정상석이 있는 가지산에 오릅니다.
이 가지산이 우리에게 주는 역할이 몇 가지 있군요.
즉 여기 오름으로서 울산광역시를 만나게 되므로 이 가지산이 밀양시와 청도군 그리고 울산광역시의 삼시봉(三市峰) 역할을 함을 알게 되며, 이 봉우리에서 우리나라 13개 정맥 중 하나인 낙동정맥을 만나게 되고, 여기서부터 우리가 지금까지 진행해 온 운문산 방향으로 단장지맥이라는 산줄기 하나를 가지 치게된다는 것입니다.
가지산은 한자로는 迦智山이라 쓰는 게 맞을 겁니다.
불교신앙설 때문입니다.
석가모니의 지혜로 보는 게 맞지 '더할 加'를 쓰는 건 산 이름 작명법과는 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 신라 9산 선문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파는 호남정맥 상의 가지산에 있는 보림사에서 일어난 선문으로 이 가지산과는 관계없음
이제부터는 울산광역시와 밀양시의 시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운문지맥이라고 표기된 말뚝은 사진이 없군요.
잠깐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 봅니다.
이 줄기가 뻗어 내려온 낙동정맥입니다.
바로 앞에 바위가 불뚝 솟은 쌀바위 그리고 그 뒤로 상운산.....
참고도 #6 낙동정맥
아까 미뤄뒀던 산줄기 공부 시간입니다.
백두대간은 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줄기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와 물줄기는 다 이 백두대간에서 비롯됩니다.
곧 아버지 줄기라는 겁니다.
위 참고도 #6을 봅니다.
이 낙동정맥은 백두대간 상 매봉산에서 가지를 쳐 내려온 줄기입니다.
백두대간 매봉산에서 가지를 쳐 내려올 때 그 사이에서 물줄기가 하나 나오게 됩니다.
이 물줄기가 바로 남한에서 제일 긴 낙동강입니다.
이 낙동강은 백두대간의 동쪽과 낙동정맥의 서쪽으로 흘러나오는 모든 물줄기를 다 받습니다.
이는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낙동강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은 낙동강 등 여타 물줄기를 만남이 없이 진행을 하여 대간의 경우는 천왕봉까지 정맥의 경우는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몰운대까지 간다는 얘기입니다.
산자분수령이라는 관용구가 그걸 말해 줍니다.
지도를 보면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러고는 이 낙동강의 끝 몰운대에서 낙동강이 남해 바다를 만날 때 그 만나는 합수점에서 낙동정맥은 그 맥을 다하게 됩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 Ridgeline is genuine in that it never crosses water
“그리고 ‘산줄기’와 ‘물줄기’를 보자. 아까 한 얘기 반복해서 얘기할 게. 가만히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봐. 하나의 산줄기(A)에서 다른 산줄기(a)가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는 분명 물줄기(b)가 나오고 그건 분명 계곡을 형성하게 돼. 크든지 작든지 말이야. 그렇지 않아? 산줄기가 분수령이 되는 건 확실하고 그 산줄기에서 내려 온 물들은 다 계곡으로 모이잖아? 그 개울이 모여서 천(川)이 되고 그 천(川)이 모여 조금 더 큰 천(川)이 되고 그러고는 그게 모여서 다시 강(江)이 되고, 그 강(江)들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고... 이게 자연의 이치 아니겠어?”
“그건 알지. 그런데 또 합수점이라는 건 또 뭐야? 산줄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고?”
“합수점(合水點). 말 그대로 물이 모이는 지점이지. 양수리에 가면 ‘두물머리’ 있지? 합수점의 우리말이 두물머리 아니겠어? 양수리의 양수(兩水)가 곧 두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한 개의 물줄기 가령 남한강과 다른 하나의 물줄기 가령 북한강이 만나는 곳. 그곳이 두물머리라는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두물머리가 무수히 많은 셈이지. 그 두물머리를 한자로 쓰면 합수점이고.”
자전거를 타는 장감독이니 두물머리 얘기를 꺼내니 귀가 번쩍 열리는 것 같다.
“양수리. 나도 잘 알지. 자전거 타고 가봤던 곳이니. 그런데 그 합수점이 산줄기와 무슨 상관이야?”
“그럴 줄 알았다.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야. 조금 전 얘기했어. 이 합수점은 산줄기를 얘기할 때 아주 중요한 개념이야. 나중에 자세히 보겠지만 산경표라는 책은 이 ‘합수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론이야. 그 핵심은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고.”
“정말 머리 아프게 만드네. 산자분수령은 또 뭐야!”
장감독이 짜증을 낼만도 하다. 사실 천왕봉에 아직 오르지도 못했다. 즉 대간길에 아직 한 발도 내딛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슨 복잡한 얘기를 많이 하는가 하는 불평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그래. 간단하게 산자분수령을 보자. 앞으로 계속 나올 얘기니까 미리 간 좀 보자는 거야. 지도 좌측을 보면 가장 굵은 선이 백두대간이야. 그리고 좌측 위로 남덕유산이 보이지? 남강기맥도 보이고. 이게 백두대간에서 남강기맥이 가지를 쳤다는 걸 보여주는 개념도야. 앞으로 자꾸 애기할 거지만 우리나라 산줄기에는 반드시 계급이 존재해. 위계질서가 명백하다는 것이지. 같은 급이라도 서열이 있게 마련이고. 즉 군대에서 병장이라고 다 같은 병장이 아니잖아? 이게 아주 재미있는 많은 것을 보여주게 돼. 그러니까 그 계급 개념들의 한 가지인 기맥(岐脈)이니 지맥(枝脈)이니 하는 것들은 나중에 보기로 하자. 우선 백두대간(A)에서 남강기맥(a)이 가지를 쳤다는 것만 생각하자고. 자, 봐. 대간에서 남강기맥이 갈리는 그 사이로 남강(b)이 흘러나오지? 아까 얘기했잖아. 한 가지에서 다른 한 가지를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는 물줄기가 하나 흐르게 된다는.... 바로 그 원리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이를 영어로 표현해보면 'Ridgeline is genuine in that it never crosses water,' 정도가 되겠지. 이따 자세히 볼 거니까 우선 개념만 알아둬.”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문법적인 해석은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산 곧 산줄기는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고 해석하자. 이를 ‘산자분수령의 제1법칙’이라고 한다. 여기서 ‘自’를 스스로란 ‘부사(副詞)’로 본 거다. 고로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못하니까 물을 만나면 그 산줄기는 맥을 다하게 된다. 그 물도 그냥 물이 아니라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합수점도 그냥 합수점이 아닌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 졸저 전게서 37쪽 이하
그렇죠?
그러니 낙동정맥의 경우는 낙동강 자체가 10대강에 속하는 물줄기이므로 자기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는 존재하지 않고 물줄기라는 개념은 바로 바다가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낙동정맥은 낙동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인 몰운대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맥에서 가지를 치는 줄기는 30km이상의 산줄기를 지맥枝脈으로 부릅니다.
이는 나라에서 공인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도권에 있는 학자들이 펼친 학설學說도 아닙니다.
다만 산을 좋아하던 사람들 즉 학계에서 두 손을 놓고 있고 나라에서도 무관심한 것에 비분강개한 분들이 만들어 낸 개념입니다.
저는 이분들을 재야 인문지리학자라 부릅니다.
감히 이우형, 김용수, 조석필, 박성태, 신경수, 장성규, 현진상(님)들을 이런 반열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새롭게 확실한 이론으로 무장한 박흥섭과 배병만 등도 같은 급으로 봅니다.
아니 오히려 신이론으로 무장을 했기 때문에 그분들보다 진일보 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 두 분은 물줄기를 중시하느냐 유역 개념까지 동원하느냐에 미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저는 박흥섭의 이론에 동의합니다.
물론 모두 그의 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빨리 통일된 이론으로 나라의 산줄기를 확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많은 것을 양보하였습니다.
어쨌든 지맥 개념은 우선은 산악인을 위주로 통용되는 그것이므로 하루 빨리 세력을 형성하여 제도권 안으로 불러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조상들이 암시해 준 산경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확장하여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어쨌든 저나 박흥섭의 이론은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와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기회가 될 때 또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진행하는 산줄기와 물줄기를 봅니다.
참고도 #7
'산자분수령'이란 관용구로 해석을 할 때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줄기는 산을 건너지 못한다.'라고 이해했죠?
산줄기는 물줄기의 울타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위 개념도를 보면 산줄기와 물줄기가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물줄기를 보면,
낙동강 〉밀양강 〉단장천 = 양산천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가지산과 능동산 사이에서는 가지산천이 나와 단장천에 흡수됨도 지도상 명백합니다.
강의 크기는 산줄기의 크기와 일치합니다.
우선 밀양지맥은 밀양강이 그보다 상위 등급의 강인 낙동강에 흡수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합니다.
그리고 다음 산줄기를 봅니다.
가지산에서 가지를 치는 줄기는 밀양강과 다른 하천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야겠죠?
지도를 보니 밀양강보다 하위 등급인 단장천이 밀양강과 만나는군요.
그러면 산줄기를 따라 그 합수점까지 선을 그어 봅니다(이 선線 혹은 금을 마루금이라고 함).
가지산 ~ 운문산 ~ 억산 ~ 중봉 ~ 비학산 ~ 합수점으로 이어지는군요.
그 다음 거리를 측정합니다.
도상거리 34.7km가 됩니다.
30km이상은 지맥으로 부르자고 약속하였으니 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름은?
단장천과 관련한 줄기이니 단장이라는 이름을 따서 단장지맥이라 부르면 되겠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물줄기는 동천이군요.
동천을 따라 가다보니 그보다 큰 물줄기인 단장천을 만납니다.
그 합수점부터 선을 그어봅니다.
능동산 ~ 천황산 ~ 실혜산 ~ 정각산 ~ 승학산 ~ 합수점.
거리를 측정하니 24.3km.
지맥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없군요.
그래서 단맥으로 넣고 그 줄기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래서 천황단맥.
다음 물줄기는 양산천이군요.
이 양산천과 그보다 상위등급인 낙동강과의 합수점으로 갑니다.
이 줄기는 30km가 넘으니 강이름인 양산천의 이름을 따 양산지맥.
이런 식으로 산줄기를 따지게 됩니다.
만어지맥은 좀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다.
일단 오늘은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줄기만 봤습니다.
진행방향으로는 바로 앞이 1167.4봉, 그 너머로 간월산, 신불산 등이 검은 구름을 이고 서 있군요.
그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능동산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 보이고 우측의 천황봉과 가운데 뾰족하게 튀어나온 재약산도 보입니다.
왼쪽 으로는 멀리 신불산에서 진행한 줄기가 시살등, 염수봉을 지나는 양산지맥이 세를 과시하고 있고......
우측 아래는 운문산에서 가지산으로 오다 갈라진 백운산885.1m이 고개를 내밀고 있군요.
이하 사진들은 제대로 저장된 것들입니다.
다시 본편으로 돌아옵니다.
가지산에서 석남터널 갈림길로 내려오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젊은총 대장님과 쿨 총무님 그리고 나뭇꾼 님 등....
와락 안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이분들은 내일 재약산을 찍기 위하여 오늘은 배내고개로 하산하신다고요?
다른 분들 때문에 제가 먼저 출발하기는 했지만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도 #3
814.1봉에서 4등급삼각점(언양450)을 확인하고.....
갈색 길로 가을을 느낍니다.
14:13
석남 터널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 지도 #3의 계단을 올라,
지도 #4
14:21
지도 #4의 '자'의 곳에서 배내고개 갈림길을 만납니다.
여기서 정맥길과는 아쉬운 안녕을 고합니다.
마찬가지로 벎은총 대장님 일행과도 작별!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합니다.
숙소에 들 때까지는....
지금부터는 천황단맥이라는 이름의 단맥을 걷게 됩니다.
정맥은 내일 다시 만날 겁니다.
그 갈림길의 시작인 능동산입니다.
3등급삼각점(언양 312)과,
정상석이 있습니다.
실제 천황단맥의 시작은 여기라고 봐야죠?
봉우리에서 갈라지는 것이지 사람이 걷는 갈림길에서 맥이 갈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능동산이 더 중요한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여 사시사철 풍부한 수량의 물을 받고 편안한 임도로 가느냐 아니면 능선을 중요시하여 직진을 할 것이냐 입니다.
모두들 충분한 물이 있고 샘물산장에서 물 보충도 가능하므로 그냥 능선을 고집하기로 합니다.
14:38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으로 .....
14:40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고속도로를 만납니다.
임도라는 얘기죠.
룰루랄라 걷습니다.
14:52
지도 #4의 '차'의 곳인 금덕암 갈림김에서도 우측.
15:02
아!
운문산........
그리고 그 앞이 백운산891.3m.
지도 #5
15:27
지도 #5의 '카'의 곳에서 평원 같은 곳으로 나옵니다.
조망이 뒷받침은 안 되지만 그래도 어딥니까?
절로 노래 가사가 흥얼거려 집니다.
최근 부쩍 자주 듣는 조덕배의 '꿈에'가 나오는군요.
쌍팔년도 노래인데......
그냥 큰 임도로 룰루랄라 진행합니다.
가끔 우측으로 올라 삼각점도 살펴보고 24번 도로 건너편의 운문산이니 가지산도 봐야하겠지만 오늘은 조망이 안 되니.....
샘물산장으로 들어가 라면에 막걸리 한 잔 하고 가기로 합니다.
30여 분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섭니다.
샘물산장에서 좌틀하면 목장을 지나 천황재로 진행을 할 수 있습니다.
간월산이나 신불산에서 볼 때 빨간지붕의 건물이 바로 그 우사牛舍인 축사죠.
그 우측에 허연 게 바로 이 샘물산장.
16:06
직진을 합니다.
16:11
부드러운 능선길은 계속되고,
화살표를 따르고,
16:35
드디어 천황봉이 보입니다.
단맥길은 우측으로 직진을 하여야 하고.....
1082.5봉을 지나 천황산으로 가는 도중 우측으로 가지산 줄기를 봅니다.
16:50
사실 천황산은 천황단맥에서 슬쩍 바켜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 천황산이므로 달리 볼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밀양시 산내면을 버리고 밀양시 단장면을 만나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과의 시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저 케른은 여전하고....
해밀은 배려고 사랑이야!
후배 부인.
정상석 옆에서 비켜주질 않는군요.
천왕봉인가? 천황봉인가?
“형. 근데 천왕봉이야? 천황봉이야? 예전에 신문에 떠들썩했던 한 기사가 생각이 나네.”
벌써 10년이 됐나? 한때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일제 잔재 청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증폭시켰던 일이었다. 바로 천황봉(天皇峰)이냐 아니면 천왕봉(天王峰)이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논쟁의 불씨는 녹색연합이 던졌다. 1991년 환경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배달환경연구소가 있었다. 이 연구소가 확대 · 개편되면서 출범한 게 녹색연합인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백두대간, 연안해양, 탈핵운동(脫核運動) 등을 이끌면서 SOFA 협정에 환경조항이 들어가게끔 하였으며 왕피천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케 하였고, 4대강 문제, 백두대간 보호법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화 등 많은 가시적인
문제의 핵심은 천황(天皇)이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는 일제가 천왕(天王)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꾼 것이므로 일종의 창지개명(創地改名)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은군도 힘을 보탰다.
반면 이 개명작업에 시종일관하여 반대를 한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이었다. 선생의 지론은 간단했다.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한 기록을 통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통성 회복과 정체성 확립, 민족정기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황(天皇)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련의 산 이름 변경고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자.
천왕봉으로의 개명을 찬성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녹색연합과 보은군의 연합군이다. 우선 녹색연합은 2005년 2월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이름 보고서’에서 ‘천왕봉’이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어 산림청도 2007년 8월20일 충청북도에 ‘지명정비’ 협조 공문을 보냈다.
녹색연합은 이 보고서에서 “일제 때 땅 이름을 바꾼 ‘창지개명’ 작업의 하나로, 속리산 천왕봉을 일본 왕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 증빙자료로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 법주사 소장 고지도뿐만 아니라 1911년 5월 일본육군참모본부가 만든 ‘한국지형도’ 등을 제출하면서 이들 지도에는 천왕봉으로 돼 있지만,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은군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위원장 이향래 군수)를 열고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일제 잔재로 지적한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개명 근거로 대동여지도, 팔도군현도 등 고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스님이 그린 법주사도(法住寺圖) 등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개명작업을 반대하는 이는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한다.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첫째, 일제가 만든 1 : 50,000 지형도에는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봉이나 산이 9개나 있다. 속리산 같은 유명산에도 있지만 사천시와 통영시의 작은 섬에도 있다. 속리산 같은 큰 산이면 모를까 어디 있는 지도 모를 봉이나 산까지 찾아 일일이 천황이란 이름으로 바꿨을까?
둘째, 일제는 같은 한자어인 천황(天皇)이라도 일본 것과 우리나라 것을 구분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만든 지형도를 보면 우리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산이나 봉 이름은 그대로 天皇山 또는 天皇峰으로 기재하고, 자기네 문자로는 그들이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 않고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또는 チョンフヮン으로 써서 천황에 가까운 음으로 기재했다. 그래서 속리산 천왕봉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심지어는 조그만 섬에도 천황산이나 천왕봉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은 우리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황봉(天皇峰)이나 천황산(天皇山)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쓴 이름이지 일제가 만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고전의 예로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 기(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라 하여 속리산의 문장대와 천황봉이 나옴을 든다. 그리고 계속하여, 조선 후기 실학파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天地篇) 지리류(地理類) 동부(洞府) 세전우복동도기변증설(世傳牛腹洞圖記辨證說)을 거론하여 ‘…一去槐山 一去尙州 俗離山天皇峯南幹也…俗離山天皇峯 在洞北爲祖 洞右白虎外 天皇峯兩間少下…’.라 하여 속리산 천황봉이 나옴 등을 거론한다.
그리고 고지도의 예로는, ⓵1872년 전라도 영암군 지방지도에 월출산 천황봉이 있고, ⓶전라도 장수현 지도에 장수읍 동북쪽 지금의 노곡리 뒷산에 천황봉이 있으며, ⓷전라도 용담현 지도에 지금의 천황사가 있는 곳에 천황산이 있다. ⓸그리고 광여도의 전라도 구례현 지도에는 지금의 천황봉이 천황산으로 기재되어 있음 등을 든다.
어쨌든 한 민간지리학자의 노력도 헛되이 속리산 천왕봉은 2007년 12월26일 천왕봉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뻔히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 장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굳히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박성태 선생이 내 사부 같은 존재라서 장감독이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천왕이라 하면 나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떠올리게 돼. 그의 불함문화론을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백두산근참기’를 읽던 생각이 난다 그거지. 즉 1927년 그가 백두산을 오르던 중 허항령 부근에서 만난 사당을 보면서 감격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이 사당에서 목주(木主)에 ‘천왕지위(天王之位)’라고 쓰인 글을 발견하게 되지. 거기서 그는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돼. 그러면서 환웅이 천왕인데 그 용례(用例)가 산으로 와서는 지리산의 천왕봉, 속리산의 천왕봉이 되고 민간으로 가서는 태백산의 천왕사(天王祠), 대구 달성의 천왕당(天王堂) 등이 된다고 했어. 그러니 천왕은 곧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것이지. 육당의 글을 어찌 보면 일제와 상관없이 속리산은 천왕봉으로 불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런데 천황의 사전적 의미로는 ⓵ 옥황상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⓶ 일본의 임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 즉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앙과 관련하여 옥황상제를, 일본에서는 현실적인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박성태 선생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도 이미 천황산 혹은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옥황상제와 관련한 민간신앙과 함께 일제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 이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각 산 이름을 고시할 때 천황봉으로 불렀던 것은 그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형은 ‘천황봉파’라는 것이네. 좋아. 그렇다 치고 계룡산도 명산 아니야? 민간신앙에서는 속리산보다 더 신령스러운 곳이라고도 보는데 거기도 천황봉이 있잖아?”
좋은 지적이다. 천황봉이 천왕봉이어야 한다면 속리산보다는 오히려 계룡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형. 그런데 예전부터 이 봉을 천왕봉이라고 불렀으니까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건 천황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지. 조금 이따 이정목을 볼 거야. 지금도 천왕봉 아래 대목리에 가면 천황사라는 절이 있어. 물론 창건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가자.”
졸저 전게서 218쪽 이하
대신 진행 방향을 봅니다.
바로 아래 천황재.
야영을 하고 있는 텐트들이 눈에 띕니다.
해밀의 노고단님은 영축산 어디선가 자리를 펴고 계실거 같은데......
여유로운 모습으로 오늘 별자리를 감상하실려나?
건너편 재약산이 보이고...
구름이 슬슬 걷히는 분위기입니다.
좌측으로 낙동정맥의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이 한 줄로 이어졌고.....
간월재의 케른도 보며 주위 산군을 설명해 줍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갑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두 분은 먼저 내려가고 후배부부는 쳐집니다.
무릎과 발가락 물집이라.....
능선이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줄기는 이따 단장천으로 들어갈 것이고....
양산지맥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오고....
천황재.
고도를 낮춰서 재약산 우측을 봅니다.
....................
..............................
17:19
천황재에 도착합니다.
....................
야영객들..............
...............
17:20
샘물산장 이정표.
우사와 샘물산장 그리고 케이블카 승강장을 봅니다.
뒤따라 오는 부부 한 팀을 기다리다 보니 시간만 남는군요.
속도가 느려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어쩔 수 없군요.
놔두고 혼자 내려가면 그 다음 상황은 뻔하니....
믿음을 배신할 수는 없죠.
재촉하지 않고 사진 촬영이나 하면서 기다립니다.
재약산을 오릅니다.
숲으로 들어,
우측으로 표충사도 내려다 봅니다.
재약산 정상 아래의 조망대 데크에서 야영을 즐기고 있군요.
17:53
정상석 인증을 합니다.
가지산 방향을 보고.....
천황산.
바로 앞 961.7봉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69번 도로 건너편의 간월재의 야영객 모습들도 희미하게 보이고.....
사자평을 보고 자리를 뜹니다.
앞 줄 중앙의 봉우리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또 다른 재약산953.5m으로 영진지도에는 코끼리봉953.8m으로 표기하여 놓았군요.
뒷 줄은 양산지맥.
조금 더 우측으로....
우측 봉우리가 향로산979.1m.
조망이 발목을 붙드는군요.
천황산을 한 번 더 보고....
사실 예전 기억을 되살려 고사리분교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사자평을 지나 죽전마을로 내려오는 게 시간상으로 조금은 절약이 됐을 텐데 아래 갈림길에 가방을 놓고 오는 바람에 그냥 돌아갑니다.
18:17
계단을 따라 내려가,
18:19
이상한 이정표를 지나,
18:35
우틀하고,
공사 중...
18:37
지도 #5의 '하'의 곳에서는 우측으로 듭니다.
18:48
지도 #5의 '거'에서 옛날이정표를 만납니다.
아까 잠깐 얘기했었죠?
사자봉은 재약산 사장봉이라는 말로 지금의 천황산을 얘기하고 수미봉은 지금의 재약산입니다.
야자매트를 깔아놓고 땅을 고르고 있는 작태를 보니 이곳도 유원지화 할 생각인 거 같습니다.
억새 숲을 헤치고 진행을 하여,
지도 #6
19:36
지도 #6의 '너'의 곳입니다.
잠시 간식을 먹고 ...
이때 전화기가 울립니다.
"어디세요?"
백총무님 목소리군요.
"이제 죽전 삼거리에서 내리막으로 떨어지려고 합니다."
"시장하시죠?"
"가서 밥 한 그릇 먹으면 되죠."
"집에서 가져온 시레기로 된장 찌개 끓여놓을 테니 조심해 내려오세요."
음... 독상을 받게 생겼습니다.
"형님. 거기는 그 정도예요? 전화까지 하시고?"
"여기 해밀은 그래. 만약에 내가 아니고 자네 같았으면 1개 분대는 출동했을 거네. 아니 그 전에 이미 후미에서 다 막지."
"배려심이 상당들 하시네요."
"그래 해밀은 배려고 사랑이야. 전임 회장님과 현회장님께서 한 잔 하시면서 기다리니 천천히 오라고 하시는구만"
해밀은 가오(?)를 잡게 만들어주는 곳이기도 하군요.
랜턴이 방전이 되어 이것도 골치 아프군요.
눈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내려옵니다.
후배 부인이 아까 시원찮다던 무릎과 발가락 통증을 호소하며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급경사이니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잡으며 내려옵니다.
20:40
너무 많이 시간이 소요됐군요.
우리 뒤를 이어 한 사람 더 내려오고....
이 팀들은 파래소 민박집으로 보내고 저는 하염없이 69번 도로를따라 걸어내려옵니다.
저의 임무는 여기서 끝.
무사히 숙소로 보냈으니 저도 안도합니다.
21:44
한 30분 걸으면 된다고 하더니 꼬박 시간을 걸어야 되는 거리군요.
마일리지만 많아졌습니다.소
숙소인 배내하우스에서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주신 인회장님과 봉회장님 그리고 젊은총 대장님과 백총무님 내외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된장찌개 맛도 일품이었지만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소주 몇 잔은 감동과 배려 그리고 정을 마시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늘 비도 맞았으니 내일은?
예. 그렇죠.
이름 그대로 해밀을 볼 것입니다.
해밀은 기다림이고 좋은 인연과의 만남이고 배려였으며 사랑이었습니다.
- 내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