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길과 들녘을 걸어
하지를 열흘 앞둔 유월 중순 수요일이다. 해가 길어져 날이 일찍 새고 있다. 여전히 남들보다 먼저 새벽잠에서 깨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던 무렵 아침밥 이전 커피를 한 잔 마시려고 빈속을 채워두고자 삶아둔 감자를 하나 집었다. 그때 창밖 먼 산에선 뻐꾸기 울음소리가 한 차례 들려왔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4시 10분이었는데 새벽닭이 홰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침밥을 해결한 후 이른 시각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서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도계동을 지난 소답동에서 창원역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로 바꾸어 탔다. 근교 회사나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 이들이 다수 타기에 빈자리는 없었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몇이 내리고 더 태워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으로 나아갔다.
판신마을에서 내려 인적이 없는 마을 안길을 지나 동판저수지 둑으로 향했다. 갯버들은 저수지 수면에 둥치를 담근 채 녹음이 무성하고 연은 넓은 잎을 세력 좋게 펼쳐 자랐다. 포장된 둑길 길섶은 제초제를 뿌려 잡초를 말려두었는데 코스모스 씨앗이나 모종을 심을 자리를 확보해 놓은 듯했다. 무점마을까지 길게 이어지는 동판저수지 둑은 가을이면 코스모스 꽃길로 알려진 데다.
동판지에 가두어진 물이 배수문을 빠져 주천강으로 흘러드는 곳에서 예각을 틀어 진영 방향으로 걸었다. 무점마을 앞 들녘은 모내기를 끝냈고 들판을 지난 산기슭으로 아파트단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도청과 창원대학 뒤를 병풍처럼 둘러 에워싼 정병산 꼭뒤는 시내에서 바라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산세로 우뚝이 솟았다. 산등선은 길게 이어져 대암산을 거쳐 용제봉으로 나아갔다.
주남저수지 배수문에서 시작된 주천강은 동판저수지 물길을 보태서 진영읍 앞으로 흘렀다. 들녘을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행정구역이 북쪽은 창원 대산면이고 남쪽은 김해 진영이 경계를 이루었다. 그간 주천강 북쪽 둑길은 산책로가 개설되어 자전거도 다녔으나 남쪽은 검불에 가려 덮인 채였으나 지난봄부터 산책로 공사를 시작했다. 진영읍에서부터 시작해 아주 길게 이어진 구간이다.
농기계나 사람의 통행이 없던 묵혀둔 주천강 남쪽 둑을 돋우어 보강하고 어디선가 자연석을 실어와 축대를 쌓은 언덕은 잔디를 심어 입혔다. 길바닥 진흙 구덩이는 시멘트로 포장해 비 온 뒤 산책을 나서도 물이 고이지 않도록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인부들은 자재를 나르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둑길이 워낙 길어 규모가 제법 되는 토목공사는 시공을 마치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포장 공사가 진행 중인 남쪽 둑에서 외나무다리처럼 좁다란 교량을 건너 북쪽으로 갔다. 다리에서 내려다본 냇바닥에는 작은 잎을 동동 띄운 어리연이 엉켜 자라 샛노란 꽃을 피웠다. 어리연은 진흙탕에서도 잘 자라 오염수를 정화하는 기능을 하는 습지 식물이다. 강 언저리에는 밤을 바깥에서 보낸 듯한 한 태공은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세월을 잊은 듯 돌부처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주천강 북쪽은 강둑 따라 인가들이 이어지는데 대산면 남포리였다. 들판으로 내려가 농로를 따라 모내기를 끝낸 들녘을 걸었다. 들녘 한복판을 지나니 주남저수지 둑과 진영과 대산의 아파트단지가 아스라이 보였다. 거주지와 상당한 거리를 둔 들녘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 부설 화훼연구소가 나왔다. 울타리 너머 유리 온실 안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가득 키웠다.
아까 7시 마을버스에서 내린 판신마을에서 둑길과 들녘을 걸어 가술에 닿으니 9시였다. 행정복지센터로 화장실로 들어 이마에 맺힌 땀을 씻은 뒤 이웃한 마을도서관으로 갔다. 어제 서가에서 뽑아두고 시간이 모자라 읽지 못한 이오덕의 ‘문학의 길 교육의 길’을 펼쳤다. 평생을 어린이 문학과 글쓰기 교육에 온 몸을 던져 맑은 영혼으로 살다 간 한 교육자를 대면한 반나절이었다. 24.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