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술에게 대패한 당나라 장수 이근행(李근行)은 누구인가]
석 산 박 영 석
그의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냉정하고 사려 깊게 전장을 읽어내는 당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말갈족 출신의 상승장군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 무적의 돌궐(터키)군의 침공을 막아낸 뛰어난 장수로 알려졌지만, 장창과 쇠뇌로 무장한 신라 김원술의 삼만군대와 부딪치며,
7만명의 기병을 깡그리 희생당할 뻔한 실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던 끔찍한 전투를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안동도호부가 있는 북쪽으로 필사의 힘을 다하여 도망칠 수 있는 것이 그로서는 행운임을 알았으니, 가히 뛰어난 장수라할 만 하였다. 당군이 도망치지 않고 전투가 계속
되었다면 이근행과 당군은 전멸당했을 것이 너무도 분명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신라군이 노획한 적군의 군마가 3만 3백8십필, 기병 7만을 포함하여 20만 대군으로 신라를 공격한 당군의 병장기와 시체는 셀 수 없을 많큼 매소성과 들판을 가득 메웠으며, 이후, 설인귀를 포함하여
당군은 열여덟 차례 침략전투를 모두 대패했으니, 매소성 전투가 그토록 중요 하였던 것이다.
이근행은 만만한 장수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근행이 거느린 군사들은 대부분 말갈족이었고, 벌판 전투에 능한 군사들이었다. 당시 신라군은 삼만 명에 불과했다.
20만 명 대 3만 명의 대결은 불을 보듯 뻔했다. 더구나 당나라 군사는 기병이고 신라군은 보병이 아닌가.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김원술이다.김원술은 당나라와 끝까지 투쟁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김유신의 아들이었다. 그는 3년전 석문전투에서 패배해 가문으로부터 죄를 짓고
서라벌을 떠나야 했다. 그랬던 그를 문무왕은 복권을 시켜 매소성 전투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김원술은 신라군의 장점인 장창전술과 쇠로만든 활인 쇠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당나라 20만
명의 대군과 대결했다. 매소성 밖의 너른 벌판에서 벌어진 대결에서 장창과 쇠뇌는 엄청난 위
력을 발휘했다. 한때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했던 돝궐군도 물리친 역전의 노장 이근행도
신라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과는 전마 30,380필과 수많은 무기들을 버리고 당나라군대는 북쪽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이 매소성 전투의 위력은 매우 컸다. 이후 신라는 크고 작은 전투 18번을 모두 이겼다. 당나라 군대는 매소성 전투 이후 기세를 잃어버렸다. 당나라는 고구려
를 망하게 한 천하명장 설인귀를 보내 신라를 제압하고자 했지만 신라군의 강력한 투쟁으로
676년 금강 입구인 기벌포에서 4천명이 죽음으로서 끝내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매소성전투의 패배로 당나라는 그들의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성으로 옮겨야 했다.
북쪽으로 도망치며 패장 이근행은 크게 깨달았을 것이다. 전투에서 때로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도망을 쳐야만 사는 길이라는 창피하고 뼈저린 사실을!
또한 승패의 원인이 군사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는 것이며, 오로지 장수의 능력이라는 것을!
30대 문무대왕이 몸소 발탁하여 신라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한 김유신 장군의 둘째 아들 김원술,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도 패장으로 잘못 알려져 변명도 못하고 도성을 떠나 산에서 참고 살아야 했던 쾌남아. 당시에 원술은 장수도 아니었고 어느 부서의 심부름 꾼이 였을 뿐으로 전쟁의 승
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던 아들에 대하여 김유신이 왜 그토록 가혹한 처
벌을 내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자식에 대한 아비만의 무슨 깊은 뜻이 있어 엄한 벌을 내렸는지는 범상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식의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치가 있지는 않
았을까 하는 부모만의 생각이 있었을 것 같은 마음이 들 뿐입니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후에 김원술은 모든 영예를 버리고 서라벌을 떠나 산으로 들어갑니다. 남들이 알지 못할 돌아가신 아버지만의 가르침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입니다
대승을 거둔 매소성 전투가 벌어진 곳은 대전리 산성으로,신라가 엄청난 승리를 이룩한 역사가
담겨있는 한탄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주상절리가 어우러져 경기도 최고의 신라 대승의 역사문화가 통일신라의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어 졌혔습니다.
매소성 전투는 대전리 산성과 기병전투가 가능한 주상절리와 강변 벌판에서 먼저 벌어졌으니 신라군의 장창과 쇠뇌의 위력 앞에 당군 20만이 전멸로 가는 길목에서, 노장 이근행이 요행히 정신을 가다듬고, 죽음의 길에서 간신히 벗어났으니, 신라로서는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신라 3만 군사가 죽기를 각오하고 20만 당군과 대결하여 최선을 다한 신라의 빛나는 승리 앞에 는 신라장수 김원술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