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금요일(마르4,26-34)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야 합니다
한 유치원 원장님이 아이들에게 꽃씨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예쁜 꽃을 피워온 아이에게는 멋진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내가 제일 예쁜 꽃을 피워야지!’ 하며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이들은 꽃이 활짝 핀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원장님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빈 화분을 들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저는 게을러서 꽃을 못 피웠어요!”원장님은 그제서 환하게 웃으시며 그 아이에게 멋진 선물을 주었습니다. 나누어준 씨앗은 싹이 나지 않는 가짜였던 것입니다.
정말 싹을 틔워야 할 것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입니다. 사실, 씨앗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싹은 트지 않습니다. 또한 씨앗 자체의 신비로운 힘을 믿지 않는다면 씨앗에서 싹이 트고 새싹이 돋아나도록 땅을 가꿀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면서도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씨앗이 땅에 묻혀 모든 것이 끝나고 정지된 것처럼 보일 때 땅속에 있는 씨앗은 은밀하게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지금 당장 밝히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싹을 틔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좋든 나쁘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가꾸어야 합니다. 나의 수고와 땀, 희생 봉헌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결코, 작지 않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겨자씨가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씨의 크기는 0.95-1.6밀리미터=보니까 아주 먼지 같아요!)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되듯이(마르 4,32) 우리의 정성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와‘겨자씨의 비유’는‘하느님 나라의 시작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끝은 성대하리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농부가 가을에 수확을 위해 봄에 씨를 뿌리고 잘 자라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 가꾸듯이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 뿌려진 말씀의 씨를 정성껏 가꿀 때 비로소 건설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무리는 작고 초라하게 시작되었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포함하는 교회공동체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선을 행하고 진리 안에 자유로워야 하겠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들어있듯이 우리의 사랑과 희생도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실“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요한3,27). 그리고 보상을 바랄 수 없습니다.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로마11,35-36). 우리의 모든 활동에 주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처럼 작은 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 위에 군림하지 않고 봉사합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의 질서이고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유광수). 우리도 가장 작은 이의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불신이 가득한 이 세상에 빈 화분을 들고 눈물을 지을 수 있는 진실함으로 하느님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진실함이 있으면, 바로 그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요, 불신과 거짓으로 서로를 경계하면 그곳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쑥쑥 자라길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예수님은 겨자씨처럼 작은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작은이의 이름으로 복음을 선포해야겠습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씨앗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싹은 트지 않습니다. 또한 씨앗 자체의 신비로운 힘을 믿지 않는다면 씨앗에서 싹이 트고 새싹이 돋아나도록 땅을 가꿀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면서도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회가 좋든 나쁘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가꾸어야 합니다. 나의 수고와 땀, 희생 봉헌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결코, 작지 않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선을 행하고 진리 안에 자유로워야 하겠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들어있듯이 우리의 사랑과 희생도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쑥쑥 자라길 기도합니다. 아멘.
<겨자씨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목판에 에그 템페라, 산타 마리아 수도원, 풀사노, 이탈리아.
가운데 겨자 나무가 묘사되어 있다. 바닥에 군데군데 보이는 작은 풀들은 겨자 나무 한 그루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씨앗 중에서 아주 작은 겨자씨가 땅에 뿌려져 껍질이 터지고 싹이 나와, 땅을 뚫고 저절로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마르 4,31) 그늘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무 위에는 공중의 새들이 와서 가지에 깃들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겨자씨에 비유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마르 4,33)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만 별도로 비유를 풀이해 주고 계신다. 이러한 특전을 받은 왼쪽의 제자들은 따로 풀이해 주었음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제자들은 앞에 겨자나무를 보고 있지만, 겨자씨 한 알이 이룩한 성과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멘~!
감사합니다.
정말 싹을 틔워야 할 것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입니다. 씨앗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싹은 트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