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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주포토피플 원문보기 글쓴이: 어디로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좋은 권력구조와 정부형태, 그것이 곧 민생이고 복지다박명림 교수
2023.03.23 23:14 입력 2023.03.23 23:19 수정
(3) 혁파돼야할 권력 독점
나라가 개인이고 제도가 민생이다. 어떤 나라를 갖느냐, 어떤 나라에서 사느냐가 곧 어떤 삶을 갖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시민이냐가 곧 어떤 개인이냐를 좌우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나라와 제도는 같은 말이다. 공적 존재가 끼치는 사적 삶에의 결정적 영향을 말한다. 인류가 그토록 오랫동안 막대한 유혈과 생명을 치르고라도 민주공화국을 갖길 원했던 것은, 그를 통해 비로소 모든 사적 개인들이 민주공화국의 공적 시민으로서 민주와 공화를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민주공화국은 곧 “나라는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라의 무엇이 국민 모두의 것이냐를 묻게 된다. 그것은 주권과 권력, 복리와 재화를 말한다. 인류의 현인들이 민주공화국을 처음에 ‘common wealth’로 번역하고 사유한 이유였다. 나라가 잘못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그 안의 국민들이다. 따라서 권력과 복리, 제도와 민생은 분리할 수 없다. 특별히 민주공화국에서의 모든 삶들은 곧 나라의 구체적인 제도와 직결된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살려내기 위해 우리가 어떤 제도를 선택할 것인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각 제도들이 갖는 실질적 삶에의 효과를 객관적인 통계와 자료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책임제 국가들의 일반 성적표다. 여기에는 우리와 미국·아르헨티나·브라질·필리핀·남아프리카공화국·튀르키예·멕시코·인도네시아·러시아·파키스탄과 같은 나라들이 포함된다. 이 나라들은 2021년 현재 평균 1만4509달러의 1인당 GDP를 보여주고 있다. 예외적으로 높은 두 나라, 미국(7만249달러)과 한국(3만4998달러)을 제외하고는 매우 낮은 성취를 보여준다. 이 중에는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처럼 세계와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부국으로 앞서서 달리던 나라들도 포함되어 있다.
즉 이 그룹에는 후퇴국가와 실패국가가 여럿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 권력의 1인 독점국가들이 드러내는 공통점으로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나라들이 경제적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매우 크고 공적 지출 및 형평성과 복지 지표는 매우 낮다는 것이다. 사회갈등 지표 역시 아주 높은 나라들이다. 일련의 공통점들을 보면 권력 독점과 양극화가 경제적 독점구조 및 빈부격차, 낮은 복지 수준 및 높은 사회갈등 수준과 함께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의회책임제 국가들의 경우를 보자. 여기에는 영국·독일·일본·네덜란드·노르웨이·뉴질랜드·호주·이탈리아·스웨덴·캐나다·덴마크·오스트리아 등이 포함된다. 이들 나라의 2021년 1인당 GDP는 평균 5만5165달러이다. 앞서 살펴본 주요 대통령제 국가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거의 네 배나 차이가 난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차이다. 1인당 GDP를 제외하더라도 중산층 규모와 양극화, 지니계수와 불평등, 빈곤, 공적 지출, 형평성, 남녀격차, 사회갈등 지표… 거의 모든 면에서 의회제 국가들이 훨씬 낫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시민 참여의 지표들도 그러하다. 어떤 부분은 비교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대통령제 국가 중 가장 높은 권력 분립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을 제외할 경우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위의 두 그룹 나라들에서 개인 삶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여가와 여유, 안온함과 정일(靜逸)함의 차이는 정말로 크다. 정치가 경제이고, 제도가 민생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세계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는 객관적 지표와 과학이 아닌 우리들 각자의 선호와 감정을 더 중요시한다. 두 제도를 채택한 국가들 중 위의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들로 비교의 범위를 더 넓히더라도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벌어진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그들은 처음부터 선진국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거나 역사적으로 경로 의존성에 의해 의회책임제가 가능하였다는 주장은 전연 들어맞지 않는 주장이다. 오늘의 의회책임제 국가들은 대부분이 과거에 절대왕정이나 전제국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의회제가 대통령제보다 긍정적
시대착오적 승자독식 헌정체제와 권력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헌정체제를 갖추지 못하였음을 증거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공화국에 맞게
민심에 비례하여 먼저 권력을 나누면 된다
위와 같은 잘못된 주장들에 대한 최근의 강력한 객관적 반박 증거는 똑같은 시점에 사회주의를 벗어난 나라들의 한 세대 후의 결과이다. 동구에서 탈사회주의 혁명으로 등장한 나라들의 오늘날 경제적 성취를 보면, 의회책임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전부 선두권인 반면 대통령책임제를 채택한 나라들은 뒤로 처져 있으며, 그들 사이의 1인당 GDP의 차이는 단 한 세대 만에 두 배를 넘는다. 더욱 놀라운 점은,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한 나라들 사이에도 제도의 상이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나라 경제와 국민 삶의 질의 격차가 더욱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놀라운 점이다.
시간을 한정하더라도, 대통령제와 의회제의 두 그룹을 찬찬히 비교하면 비록 발전도상 단계에서는 자원의 집중과 배치, 국민 동원과 선도를 위해 대통령제, 또는 대통령 1인의 통치가 들어맞는다고 하더라도, 선진국 진입 단계나 그 이후 이 제도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시에 선진국이기 때문에 의회제를 한 것이 아니라 의회제를 했기 때문에 선진국에 진입하였다는 점이다. 의회제가 권력의 분립과 견제, 갈등의 조정과 타협, 국정의 안정성과 연속성의 측면에서 대통령제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높고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저 차이들이 정부 형태라는 제도 하나만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제도를 통한 권력의 독식과 분할, 집중과 분산의 차이는 이토록 큰 경제·민생·인간권리·복지·자유·평등의 차이를 낳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즉 권력을 나누지 않는다면 다른 것들은 나눌 수 없다는, 정치 일반의 오랜 진리의 객관적 지표를 통한 확인인 것이다. 권력이야말로 곧 한 나라의 가치와 재화, 세금과 예산의 사용을 결정하는 요체이자 심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나누려 하지 않으면서 다른 부분의 독점과 과점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허구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자유와 평등, 민주와 공화를 위한 근대의 모든 혁명과 희생이 국가체제 자체를 바꾸려 한 투쟁이었음은 이를 확고히 증명한다.
민주공화국에 맞게, 민심에 비례하여 먼저 권력을 나누면 된다. 우리가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완전 승자독식의 헌정체제와 권력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은, 한국이 민주화의 큰 진전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국의 이름에 상부하는 헌정체제를 갖추지 못하였음을 방증한다. 특히 최고 권력자 1인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보수기득세력과 진보기득세력 사이의 권력독점의 교대, 즉 독식과 저항 위치의 단순한 변경일 뿐 민주공화국에 걸맞은 진정한 권력 분할과 견제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점은, 마치 과거에 군주 1인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진 강고한 귀족계층의 존재를 연상케 한다.
그들 귀족계층은 군주제와 군주권력에 달라붙어 오래도록 해체될 줄을 몰랐다. 그때 민주공화시민들이 간파한 것은 군주제 자체의 혁파와 해체 없이는 귀족계급과 이익독점구조의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내 진영이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대통령의 반복적인 교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갈등지표·민생지표·분배지표·빈곤지표·형평지표·복지지표·자살지표·출산지표·소멸지표들이 계속 악화되는 것은 바로 내가 뽑은, 또는 내가 반대한 그 대통령 1인과 한 진영이 특정 기간 동안 모든 권력과 기득이익을 독점·독식·독임하는 근본 구조 자체의 연장과 반복 때문인 것이다. 나중에 실제의 지표들을 하나하나 같이 확인하면 우리들 스스로가 모두 놀라고 말 것이다.
근대 이후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복리에 서로 다른 정치제도가 끼친 서로 다른 효과들의 결정적 차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책임제와 의회책임제에 대한 위의 비교지표들을 보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과 번영, 민생과 복지를 위해서는 이제는 후자로의 전환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국민과 대표들의 수용과 지지 없이는 도입이 불가능하다. 또 보편적으로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특정 나라에서 특정 시점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가 보편적 지향으로서 의회책임제를 지지하면서도 국민 의견과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요컨대 현재 시점에 한국에서 국민들의 의견과 상황을 고려할 때 현행 대통령책임제를 의회책임제로 전환하는 혁명적 변화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길을 제외하고 어떻게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맞게 오늘의 말도 안 되는 승자독식 권력구조와 정부 형태를 바꿀 것인가? 현재의 완전 불비례적 승자독식 구조, 그리고 대통령 1인과 대통령실(구 청와대)의 독주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 세 가지가 필수적이다. 이들은 현재의 독식·독임·독점적 국정운영을 방지하고 협치와 연합, 합의와 통합을 통한 국정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들이다.
국무총리 복수추천제도 고려할 만
민주국가를 정상 작동하기 위해선 대통령 결선투표제,
국무회의의 의결 기구화, 장관임명동의제를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해
승자독식과 대통령 1인 권력독점을 방지할 수 있다
먼저, 선출과정에서는 투표자의 과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의 선출이 꼭 필요하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조건이다. 따라서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 후보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승자독식이 아닌, 연립과 연합 정부의 구성도 가능해진다. 투표자의 절반 지지를 확보하는 대통령을 선출하여, 민의의 대거 증발을 의미하는 사표도 크게 줄이고, 나아가 출발부터 유권자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불행한 상황은 방지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 구성과 운영 차원의 문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사권을 포함한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수다. 첫째로는 총리에 대한 국회의 복수(複數) 추천이다. ‘의회의 추천’과 ‘대통령의 임명’을 결합하여 대통령제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의회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여 대통령과 의회, 여당과 야당의 타협과 협치, 견제와 균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한 총리는 서로를 고리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대화와 타협, 협력과 협치에도 당연히 크게 기여할 것이다.
둘째는 국무회의의 의결기구화이다. 헌법상 국정의 주요 사안들을 다루게 되어 있는 국무회의를 현재처럼 심의기구로 두어서는 대통령·대통령실의 독주와 상명하복의 국정운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무회의의 심의기구 전락은 5·16 군사쿠데타의 산물이다. 권위주의 시대에 대통령의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지시를 받들기 위해 국무회의를 격하시킨 것이기 때문에 이토록 발전된 민주국가의 운영 방식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다. 국무회의를 의결기구로 복원하여 명실상부한 국정의 실질적 중심의 하나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더욱이 대통령의 비서들로 이루어진 대통령실과는 달리, 국무회의는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 헌법기관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는 장관 임명에 대한 의회의 동의이다. 이것은 미국을 포함하여 대통령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 요소의 하나다. 현재 한국은 국회에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임명되는 장관들이 진보-보수 정부를 불문하고 한둘이 아닐 정도로 대통령 인사권의 남용이 심각하다. 따라서 의회의 장관 임명동의제를 통해 장관과 내각에 대한 권한과 견제를 동시에 부여할 필요가 있다.
민주국가를 정상적으로 구성하고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로서 이상의 대통령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복수추천제, 국무회의의 의결기구화, 장관임명동의제를 실시할 경우, 국민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우리는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의 원리에 입각해 승자독식과 대통령 1인 및 대통령실의 권력독점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는 필요조건, 사람은 충분조건
좋은 제도 없이 좋은 사람 기다리는 건 어리석다
좋은 사람 기다리는 것보다 제도 마련이 언제나 우선인 이유다
제도냐 사람이냐는 문제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담론 구도다. 제도는 필요조건이며 사람은 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가 결코 아니다. 즉 좋은 제도 없이 좋은 사람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것은, 비록 성공한다고 해도, 그 한 번을 넘지 못한다. 계속 좋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제도의 마련이 언제나 우선인 이유다.
욕망과 능력의 측면에서 인간들은 거의 같다. 또한, 한 사람의 지혜와 능력보다는 여러 사람의 그것을 합한 것이 더욱 안전하고 더욱 훌륭하다. 과도한 절대권력을 갖는 한 사람의 이성과 감정, 지식과 능력에 이토록 큰 대한민국 공동체를 더 이상 맡겨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대통령의 무지와 무능, 아집과 독선도 포함된다. 현재의 대통령 1인 독점과 승자독식은 반드시 혁파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박명림 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