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당만부당 부처님
이홍섭
연꽃등 허방을 밝히고 가는 도심 포교당 경내
여래는 법당에 좌정해 계시고
아내는 시장통에 장 보러 가고
세 살배기 아이는 좋아라 절 마당을 뛰어다니는데
합장을 올리며 절에 들어서던 노보살님이
천방지축 뛰어노는 아이를 보며 미소 지으시더니
천부당만부당하지, 암 천부당만부당해 하며 지나가신다
며칠 뒤면 여래께서 이 사바에 오신 날
아이는 잔디밭에 들어가 민들레를 따는데
노보살님은 어쩌자고 천부당만부당 하셨을까
노란 민들레를 손에 꼭 쥔 아이를 품에 안고
연꽃등 너머 여래를 보는데
여래는 노보살님의 천부당만부당을 들으셨는지
그 큰 귀를 늘어뜨리고는 말없이 눈을 감으시고
천부당만부당한 삶을 살아온 늙은 애비도
내가 모르는 삶을 살아갈 이 여린 아이에게만큼은
천부당만부당한 일들이 일어나질 않기를
또한 간절히, 간절히 빌어보느니
―시집『터미널』(문학동네, 2011)
첫댓글 * 귀한 선시한편 -
배움이 큼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