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성찬, 기도
* 본 자료는 김동건의 신학 이야기 '모든 사람에게'(대한기독서회) 내용의 일부를 기본으로 인용 정리한 내용임을 밝힌다. 자세한 내용을 공부하기를 원하면 해당 책자를 구입하여 공부하기 바란다.
어떤 작은 교회에서 오래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성찬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황당한 일이었다.
빵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포도주에 문제가 발생했다.
성찬 포도주 대신 간장이 잔에 채워져 있었다.
성찬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살(몸)을 상징하는 빵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잔을 나누는 과정에서 포도주 대신 간장을 마시게 된 것이다.
지혜로운 교인들은 짠 간장을 마시고도 침묵하고 잘 넘어갔다.
냉장고에 넣어 둔 간장과 포도주병을 혼동해서 빚어진 일이었다.
성찬식을 준비하신 권사님은 얼마나 마음이 어려웠을까?
아마 이런 일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찬이 갈수록 형식적이 되어간다.
개신교 교회는 성찬예배의 횟수가 많지 않다.
그나마 절기가 되면 의례적으로 치르는 하나의 행사가 되었다.
성찬을 준비하는 손길도 정성이 없다.
성찬날이 다가오면 무감각하게 성찬집기를 준비한다.
때로는 성찬 준비를 번거롭게 생각한다.
성찬에 참여하는 교인들도 무성의하다.
성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성찬식에서 자신에게 떡과 잔이 오는 동안 지루하게 하품을 하거나 조는 교인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도 있다.
현대 교회가 성찬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잊고 있다.
여기서는 성찬과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두 개의 성례 중 하나
성경은 성례전(sacrament)의 숫자를 명시하지는 않는다.
초기 교회에서 중세까지 성례전의 숫자는 다양했다.
13세기 이후 가톨릭은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신품, 혼인 등 7개를 성례전으로 지킨다.
동방교회도 용어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가톨릭과 같이 7개의 성례를 가지고 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즈음에 성례전의 숫자를 2-3개로 축소하였다.
루터(M. Luther)도 처음에는 세례, 고해성사, 성찬을 성례전으로 여겼다.
그러나 루터는 오직 세례와 성찬이 죄의 용서와 이에 대한 약속이 드러난다고 보고, 세례와 성찬을 성례전으로 간주했다.
종교개혁 시대가 지나면서 지금까지 개신교는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전으로 지킨다.
개신교가 세례와 성찬을 성례전으로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두 성례가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가들이 성례전을 세례와 성찬으로 제한한 것도 예수님과 제자들에 의해 시행된 것만을 성례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세례와 성찬이 다른 어떤 예전보다 깊은 의미를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성례전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리스도께서 시행한 거룩한 예전으로 눈에 보이는 징표에 의해 그리스도의 새 계약의 혜택이 신자들에게 다시 전해지고 봉인되며 적용된다.'
그리스도를 온몸으로 만나다
교회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종교개혁가들이 '성찬'을 두고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종교개혁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도 부족한데, 성찬 때문에 싸우고 결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성찬의 의미를 안다면 그런 의문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성찬논쟁은 성찬의 형식에 대한 다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찬논쟁의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논쟁이었다.
종교개혁가들은 성찬에 그리스도가 임재한다고 믿었던가?
그렇다.
그리스도가 성찬에 임하신다! 놀라운 일이다.
가톨릭, 동방정교, 개신교의 모든 교파가 이 부분에서 동일하다. 다만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방식'에 대해 해석의 차이를 가질 뿐이다.
그만큼 성찬이 중요했기에, '성찬'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던 것이다.
여기서 성찬에 대한 각 교파의 입장을 나열하지는 않겠고, 성찬의 의미에 집중하려 한다.
성찬의 핵심을 한 번 더 지적하자.
'그리스도가 성찬에 친히 임하신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말씀의 선포'와 '성찬'은 그리스도의 임재라는 면에서 동일하다. 임재의 방법만 다르다.
말씀선포에서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해 임재하고, 신자는 말씀을 귀로 듣고 그리스도를 만난다.
성찬에서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를 통해 임재한다.
성찬은 눈에 보이는 말씀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성례를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징표'(visible signs of an invisible grace)라고 말했다.
성찬은 상징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성찬에서 우리는 온몸으로 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우리의 전 실존으로 성찬에 임한 그리스도를 마주한다.
성찬에서 신자는 자신의 운명을 그리스도의 운명에 붙들어 맨다.
성찬에 임해 임하는 자세
당신은 성찬에 임하는 그리스도를 만났는가?
이 질문에 모든 기독교인은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대답이 선명하지 못하다면, 다시 물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답변을 해보라.
당신은 성찬에서 단 한 번이라도 그리스도를 만났는가?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성찬에 임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났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그들의 신앙은 그 이전과 달라졌다.
나 자신도 예수님을 믿고 인생의 방황의 종지부를 찍으며 맞이한 첫 성찬식에서 하염 없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성찬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찬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인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죄에 대해 고해성사를 한다. 고해성사가 하나의 형식이 된다면 문제이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좋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고해성사나 죄의 고백 같은 제도적 절차가 없다.
개신교에서는 성찬에 참여하는 준비의 과정을 각 개인에게 맡긴 셈이다.
성찬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성찬에 참여하다 보니 오늘날 성찬이 형식적이 되었다.
심지어 어떤 교인은 교회에 올 때 그날 성찬이 있는지도 모르고 와서 성찬에 참여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행하고 참여한 성찬은 아무런 감동 없이 끝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성찬 준비를 위한 예시를 간단히 제안해 본다.
교회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 될 것이다.
교회는 성찬을 가능하면 자주 하는 것이 좋다.
교회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성찬을 공지한다.
성찬 공지와 함께 교인이 읽을 성경본문과 기도제목을 제시한다. 성찬의 의미에 대한 설명도 하고, 성찬과 연관된 도서를 추천할 수도 있다.
교인들은 교회의 지도와 함께 각자 성찬을 준비한다.
최소 성찬이 있기 전 1주일은 준비 기간으로 삼는다.
준비 기간 동안 최소한 아래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행한다.
첫째, 기도로 자신의 삶을 살펴본다.
회개의 기도를 한다.
성찬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자기 결단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둘째, 준비 기간 동안 매일 시간을 정해 성경을 읽는다.
복음서를 중심으로 하는 것도 좋고, 복음의 의미가 잘 드러나는 바울서신도 좋다.
셋째, 신앙대로 살지 못한 이유를 묵상하고, 어떻게 신앙을 실천할지 계획을 가진다.
성찬 준비를 기도나 성경읽기에서 끝내지 말고, 실천을 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성찬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감격이 신앙에 생명을 준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할 때 초대교회 카타쿰에서 드려졌던 성찬은 어떠했을까?
성찬을 받는 그 시간에 모든 교인들은 하염 없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긴 기독교의 역사 동안 성찬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이 없었다면, 성찬의 전승은 사라졌을 것이다.
청년 시절 수련회 가운데 초대교회 방식의 성찬식이 기억난다.
긴 탁자에 둘러 앉은 청년들은 매우 진지하였다.
탁자 중앙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한 덩어리 빵과 큰 대접에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성찬을 하면서 빵을 뜯어 한 조각은 자신이, 한 조각은 오른편에 있는 지체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큰 대접의 포도주를 돌아가면서 마셨다.
성찬식이 진행되는 동안 지체들은 흐느끼고 있었고 성찬이 마무리 되면서 모든 청년들의 눈에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성찬식이었다.
한국교회가 성찬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회복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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