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신> 당신도 시를 쓸 수 있다 / 임보 (시인)
로메다 님에게
오늘 아침 메일박스를 열었더니 '로메다'라는 낯선 이름의 당신 편지가 떠올랐어요. 유난히 큰 눈을 가진 황갈색 점박이 어린 사슴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편지지가 우선 내 마음을 평화롭게 했습니다.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서 내 시를 읽고 관심을 갖게 되고, 내가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고요?
로메다 님, 보잘 것 없는 내 작품을 관심 있게 읽어주었다니 우선 고맙다는 인사부터 해야겠군요. 시를 좋아한다니 반갑습니다. 가능하다면 시를 써 보고도 싶은데 아무나 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와 유사한 질문을 나는 학생들로부터 자주 듣습니다. 아니, 나도 시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던 청소년 시절 스승이나 시의 선배들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그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하고 그 다음의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로메다 님, 당신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더 적극적인 답변을 요구한다면 당신도 좋은 시를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로메다 님, 시를 쓰는 일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 제한이 없듯이 시를 쓰는 사람 역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들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즐기며 삽니다.
그러나 로메다 님, 그림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는 화가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만이 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언어를 가지고 시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를 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지만 훌륭한 시인이 되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의 중요함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노력이 중요하지요. 세상에는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노력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은 이 지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남다른 재능은 타고났더라도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의 머리 위엔 눈부신 승리의 월계관은 씌워지지 않습니다. 비록 타고난 재능은 보잘 것 없더라도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주위가 부러워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지 않던가요? 시의 재능을 비록 적게 타고났더라도 심혈을 기울여 시의 길을 간다면 좋은 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나요? 세계적인 농구 선수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아무리 농구를 좋아하고 열심히 노력해도 세계적인 농구 선수가 되려면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합니다. 즉 긴 신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농구라는 운동에서는 신장의 조건이 슛이나 리바운드 등 모든 경우에 절대적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키 작은 사람도 열심히 연습하여 농구 선수가 될 수 없는 바는 아닙니다. 단신(短身)으로도 학교나 지역의 대표선수쯤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신의 벽을 넘고 세계적인 선수로 올라서기는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장을 위시해서 육신의 여러 기능들은 대체로 선천적으로 타고납니다. 마찬가지로 정신의 기능들도 선천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시를 만드는 기능에 있어서도 타고난 시적 재능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의 감각, 상상력, 그리고 언어 구사의 능력 등 그런 탁월한 시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을 때 세계적인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로메다 님, 실망하셨나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세계적인 위대한 시인이 되겠다는 너무 큰 꿈을 갖지 않는다면 조금도 실망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시적 재능을 많이 타고나지 않았더라도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당신의 친구와 이웃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시들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당신이 시를 좋아하는 것이 어쩌면 시를 잘 쓸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누가 압니까? 바로 당신이 탁월한 시적 재능을 타고났는지― 바로 당신이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미래의 위대한 한 시인인지― 아직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만 씁니다. 좋은 꿈 많이 꾸세요. 로메다 님!
- <임보 교수님의 시창작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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