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성 사랑이 두려운 그대에게 (2)

[데코]

-2-

그날 밤, 금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구역을 모두 끝내놓고 오전에 마치지 못한 지씨 아저씨의 구역을 청소하기 위해 올라갔다.

회의실을 청소하다보니 어느새 밤 열 시가 넘어간다.

사원들은 이미 퇴근해 돌아간 지 오래였고, 건물은 텅 비다시피 했다.

마지막으로 비서실과 대표실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금별은 어두운 복도 끝 한 사무실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발견했다.

그쪽은 대표실이 있는 곳이었다.

불을 끄지 않고 퇴근한 건가 싶어 다가가 벌어진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본 순간, 금별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사무실 안엔 벌거벗은 여자가 누군가의 무릎 위에 올라 앉아 한껏 허리를 젖힌 채 교성을 지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뒤로 넘어갈 듯한 상체를 두 팔로 받친 채 여자의 가슴을 애무하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이 회사의 대표 한치산이었다.

그는 흐트러짐 없는 양복 차림 그대로였다.

다만 여자만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정신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쉿...”

흔한 포르노 영상조차 제대로 본 적 없는 금별로서는 눈앞에 생생하게 벌어진 남녀의 정사장면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굳어 있을 때 누군가 금별의 입을 막으며 문에서 떼어놓는다.

너무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상윤이 입술에 손가락을 댄 채 조용히 해 달란 신호를 보낸다.

금별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윤은 금별을 다른 사무실로 데려와 앉혔다.

“못 볼꼴을 보이고 말았네요. 열이 나는 거 같은데 괜찮습니까?”

“네?!... 아..네...”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듯 금별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쪽 담당한 지 얼마 안됐죠?”

“네...”

“종종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네?!!”

“훗.. 그렇다고 너무 놀라진 마세요. 저런 여자가 달려드는 데 마다할 남자는 없잖아요?”

“....아......네...”

어색하게 대꾸했지만 여자를 좋아해 본 적도, 사귀어 본 적도 없는 금별로서는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좋아했던 사람도 몸을 허락했던 사람도 어릴 적 첫사랑인 유환뿐이었다.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아, 참. 이름이 어떻게 되죠?”

“유금별입니다.”

“네, 금별씨. 오늘 본 건 비밀로 해 주겠어요? 물론 이쪽 담당자라면 앞으로도 종종 흉한 꼴을 목격하게 되겠지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상큼하게 웃는 비서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금별은 그곳을 벗어났다.

그동안 지씨 아저씨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듣기도 했었지만 직접 목격하고 보니 한치산이 엄청 문란하고 가벼운 남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리 본인 회사라지만 사무실에서 여자랑 저런 짓을 벌이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내일 청소하러 갔을 때 휴지통에서 쓰다 버린 콘돔이나 찢어진 스타킹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벌써부터 고민되는 금별이었다.

다음날 오후, 금별은 뜻밖의 호출을 받았다.

“너 무슨 실수한 건 아니겠지?”

반장이 사나운 표정으로 추궁하듯 물었지만 금별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대체 대표님이 왜 널 부르는 거야?”

“...글쎄요.. 저도 잘...”

“일단 빨리 가봐. 실수하지 말고 공손하게!”

“네.”

금별은 청소트레이를 두고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대표실 앞에 도착해 노크를 하자 들어와요 라는 낮지만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어서 와요.”

치산은 웃으며 금별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금별은 혹시 어젯밤 정사장면을 목격한 일 때문에 그러나 싶어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손을 마주 잡고 긴장한 모습으로 어색하게 걸터앉자 기다렸다는 듯 상윤이 쟁반을 들고 다가와 치산과 금별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커피까지 내 오는 걸까 싶어 더욱 불안해지는 금별.

“자, 마셔요. 우리 비서는 워낙 유능해서 바리스타 못지않게 커피를 맛있게 내리거든.”

“감사합니다, 대표님.”

“수고했어. 그만 나가봐. 난 유금별씨와 얘기를 좀 해야 해서.”

“알겠습니다.”

상윤은 치산과 금별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대표실을 나갔다.

둘만 남자 더욱 어색해진다.

이 소파는 어젯밤 벌거숭이 여자와 당신이 뒹굴던 곳이잖아!.. 라고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외치며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지우려 해도 꽤 강렬한 인상이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나 아침나절 잠깐 들렀을 때 휴지통에 못 볼 것들이 가득했다.

그걸 치운 게 금별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치산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다리를 꼰 채 유유히 커피를 즐기고 있다.

“유금별. 나이는 28세. 여기서 일한지는 이제 2년째. 맞지?”

“..네..”

“젊은 나이에 하기 힘든 일인데 청소일 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아니요. 그냥 어쩌다보니...”

여기서 일하게 되기까지의 사연이나 이유를 꼭 알고 싶어 묻는 거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금별은 적당히 넘겨버렸다.

게다가 어느 샌가 치산은 편한 말투로 금별을 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왜 반말하냐고 따지기엔 한치산 쪽이 연상이니 뭐라 하기도 어려웠다.

“혹시 말야. 아르바이트 해볼 생각 없어?”

“아르바이트요?”

생각지도 못한 뜬금없는 제안에 금별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응. 어려운 건 아니고. 자네가 늘 하는 청소일이야.”

“청소라니.. 대체 어딜..”

“우리 집.”

“...대표님... 집...이요?”

“응. 지금 돼지우리 같거든. 이 상태로 더 가다간 집이 폭발하든 내가 쓰레기에 묻히든 둘 중 하나가 될 거야.”

“하지만....”

“부탁이야. 이런 저런 사람들을 고용해 봤는데 다 마음에 안 들어. 유금별씨는 청소의 달인이잖아. 우리 집 좀 어떻게 해 줘.”

“달인이라니... 무슨...”

“이 사무실만큼만 깨끗하게 청소해 줘. 일한 값은 톡톡히 쳐 줄게.”

엉뚱하고 어이없는 제안이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생활에 여윳돈이 생기는 일이라 평소라면 선뜻 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씨 아저씨의 일까지 떠맡은 때라 새벽부터 밤까지 일한다.

그러니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제가 시간이 없어요.”

“지금 받는 월급만큼 얹어주지.”

“정말 죄송해요. 저도 하고 싶지만 도저히 시간이 안나요. 실은 지금...”

금별은 어쩔 수 없이 남들의 두 배는 더 일해야 하는 지금 상황을 치산에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 다리 다친 사람이 돌아 올 때까지 자네가 일을 두 배로 해야 한다는 거로군. 그래서 점심시간도 없이 일했던 거였어. 흐음...”

치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생각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좋아. 그럼 이 구역을 대신 해줄 임시직을 고용하면 되지.”

“안돼요! 그렇게 하면 아저씨를 해고하고 새 사람을 뽑을 거예요. 아시잖아요. 저희 청소부들은 용역업체 소속이라 일반 사원들과는 달라요.”

“걱정 마. 내가 업체에 전화해 놓을 테니까.”

“그럼 아저씨 해고 안 되는 건가요?”

“잠깐 실례.”

소파에서 일어선 치산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짧게 통화를 마쳤다.

“문제해결. 다리 다친 그 사람에겐 3개월간의 유급휴가를 주기로 했어. 그 사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거야. 다리가 나으면 전처럼 출근하면 돼.”

“정말요? 그렇게 간단히...”

금별이 사정사정할 땐 전혀 먹히지 않았는데 치산은 전화 한 통화로 끝이었다.

허무하기도 하고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금별은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해 치산이 제안한 일을 맡기로 했다.

앞으로 평일엔 퇴근 후에 치산의 집에 들러 간단한 가사 일을 하고, 토요일엔 오전에 와서 대청소 등 큰 일거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말야.. 혹시 음식 할 줄 알아?”

청소야 잘하겠지만 남자니까 음식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뭐.. 그냥 평범한 거라면... 혼자 살고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밥이나 반찬같이 간단한 거 밖엔 못해요.”

“아.. 그래? 뭐, 모든 게 완벽할 순 없지. 알았어. 일단 집안부터 깨끗하게 해줘.”

“네, 알겠습니다.”

금별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일이 힘든 건 둘째 치고 아저씨가 해고 될까봐 늘 조마조마했었는데 고용보장을 받고 나니 한시름 놓은 기분이었다.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 이 소식을 전하자 역시나 뛸 듯이 기뻐했다.

그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뿌듯해졌다.

그러나 이내 기분이 가라앉고 시무룩해졌다.

이번 주말부터 당장 치산의 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금별은 복도를 청소하며 한치산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 전까진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털끝만큼의 접점도 없었다.

그렇기에 인간적인 관심도 전혀 없었다.

그저 브라운관 속 연예인을 보듯 먼발치로 보고 스쳐갈 뿐이었다.

그런데 여자와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니 이젠 집까지 가게 됐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인연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흘러가는 상황이 조금은 신기하고 낯설어 기분이 묘하다.

토요일 아침 금별은 가방에 고무장갑과 앞치마 등 여러 청소도구를 챙겨 집을 나섰다.

휴일 오전이라 전철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전철에 앉아 슬쩍 졸다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역이었다.

역에서 10여분을 걸어 소란스런 번화가를 벗어나자 고급주택과 맨션들이 즐비한 동네가 나타났다.

주로 연예인이나 정치가들이 많이 사는 걸로 유명한 건물엔 입구부터 CCTV에 경비원까지 감시하며 출입하는 사람들을 통제했다.

겨우 신분확인을 마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고층까지 빠르게 상승하는 엘리베이터는 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금별은 살짝 현기증을 느꼈다.

벨을 누르자 자동으로 현관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유금별입니다.”

집주인이 보이지 않아 현관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인사했다.

“아, 어서와. 그럼 오늘 하루 집을 부탁해.”

복도 모퉁이에서 완벽히 외출준비를 마친 치산이 바쁜 듯 빠르게 인사하고 현관에 놓인 골프가방을 들고 집을 나간다.

졸지에 주인 없는 집에 혼자가 된 금별은 당황스러워 서성이다 이내 체념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우앗!”

그렇게 현관 안을 벗어나 길게 뻗은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서다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멈춰 섰다.

돼지우리 같다던 치산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대체 언제부터 방치해 둔 건지 집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빨래와 음식 찌꺼기, 서류뭉치가 뒤엉켜 있었다.

이 넓고 고급스런 호화맨션 안이 이토록 무참하게 어질러져 있다니.. 이건 사기였다.

금별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일단 베란다며 창문을 모조리 열어 환기부터 시켰다.

청소도구를 준비해가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가방을 열어 마스크부터 앞치마에 고무장갑으로 무장을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청소에 돌입했다.

금별이 한창 청소와 씨름하고 있을 시각, 치산은 라운딩을 마치고 주말마다 들르는 병원으로 향했다.

당뇨가 심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없게 된 이숙희 여사가 입원해 있는 곳이었다.

“아이고, 우리 이여사님. 많이 이뻐졌네~ 아주 한눈에 반하겠어.”

치산은 장난스럽게 말한 뒤 뒤에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척하고 내놓았다.

“도련님.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전 장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여사가 한심하단 듯 혀를 차며 냉정하게 말했다.

“네네. 압니다요. 하지만 난 장미가 좋아. 빠~알간 게 아주 정열적이잖아.”

“다음에 또 장미 꽃다발을 들고 이 늙은이를 찾아오시면 놀리는 걸로 알고 병원을 옮겨 버리겠습니다.”

“에이, 또 왜 이리 날카로우실까. 어디 근사한 할배한테 대시했다 차이기라도 했어?”

“쯧쯧, 그 경망스런 말투는 대체 언제 고치실지......”

“우리 이여사가 건강하게 퇴원하면 고쳐볼게”

“네, 도련님을 위해서라도 제가 어서 나아야겠네요.”

“정답.”

“후후”

두 사람은 모자처럼 다정하게 눈을 마주보며 웃었다.

치산의 친모는 그가 어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치산이 외롭지 않게 돌 본건 이숙희 그녀였다.

다소 엄격하기도 했지만 늘 사랑으로 바르게 키우려 애썼고 누구보다 그녀의 그런 마음을 치산은 잘 알고 있기에 엄마가 없어도 부족함 없이 사랑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쳐 너무 모든 걸 다 해주었더니 조금은 칠칠맞은 어른으로 자라버렸다.

본인 손으로 컵라면에 물 붓는 거 이외엔 해본 가사 일이 없고, 빨래며 청소는 당연히 남이 해 주는 거라 여겼다.

가사 노동할 시간에 다른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치산이었다.

만약 그가 J소프트의 CEO가 아닌 평범한 남자였다면 여자에게 몇 번이나 버림받았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요즘 집안은 어떻습니까? 새로운 가사도우미는 고용하셨습니까?”

“아아. 응. 오늘 새로운 녀석이 왔어.”

“설마 또 젊은 여자는 아니겠죠? 그동안 그렇게 당하고도 또 그러신다면 전 정말 도련님의 아이큐를 의심할 겁니다.”

“에이, 나도 학습능력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 이제 자자고 매달리는 미녀 가정부는 질렸어.”

“그럼 새로 온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원은 제대로 확인하셨어요?”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청소용역 직원이야. 솜씨가 좋아 보여 한번 맡겨봤어. 남자니까 다른 일이 벌어질 염려는 안 해도 돼.”

“그거 다행이군요. 아무리 가벼운 성격이라지만 설마 남자에게까지 손을 대지는 않겠죠.”

“물론이지. 아! 하지만 그 녀석 남자치고 꽤 곱상한 이미지야. 시선을 끄는 화려함은 없지만 얼굴이 단정하고 차분한 게 묘하게 편안하더라고.”

“도. 련. 님”

“큭큭..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주위에 바글바글한 여자들을 놔두고 그런 남자를 어떻게 하겠어?”

“네. 부디 이성을 잃지 마시길.”

치산은 이숙희여사의 병실에서 저녁이 될 때까지 머물다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제일 먼저 확 풍겨온 음식냄새에 흠칫 놀라 멈춰 섰다.

이 익숙한 냄새와 따뜻한 온기. 누군가 맞아주러 달려오는 발소리.

어릴 때 바깥에서 실컷 놀다 집에 오면 이여사가 엄마처럼 맛있는 저녁을 차려놓고 어서오세요, 도련님 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문뜩 그때의 느낌이 물씬 풍겨와 치산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서 오세요, 대표님.”

“.. 저녁밥 했어?”

“아아.. 네. 혹시 드시고 오는 길이세요?”

금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입에 안 맞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제가 늘 해먹던 대로 만든 거라서..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다음부턴 음식 외에 다른 일만 하겠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온 치산은 또 한 번 놀랐다.

분명 아침에 나갈 때 까지만 해도 도둑 든 집처럼 난장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이여사가 들렀을 때처럼 깔끔하고 완벽히 정리되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방에서도, 손을 씻으러 들른 욕실도 퍼펙트 그 자체였다.

여태껏 고용한 어느 누구도 이 정도로 잘 해주지 못했다.

옷장을 열자 세탁소에서 한 듯 깔끔하게 다림질 된 셔츠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금별이 차린 저녁 밥상이었다.

저절로 입가가 벌어지며 흐뭇한 미소가 그려질 만큼 맛있었다.

“저기.. 맛은 괜찮으세요?”

금별이 조심스럽게 묻자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치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입주로 일해 볼 생각 없어?”

“네?!”

“난 아침은 꼭 먹자는 주의야. 학창시절부터 아침을 굶으면 학교를 안 보내는 엄격한 베이비시터가 있었거든. 이런 아침식사가 필요해. 더 이상 사먹는 밥엔 질렸어.”

“맛이 괜찮다는 의미인 거죠?”

금별의 물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치산.

“한 그릇 더.”

밥 두 공기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치산은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렸다.

맛있게 먹어주니 만든 보람이 있었다.

금별은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설거지를 했다.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아직 밥도 찌개도 남아 있으니 내일 아침 드실 건 될 거예요. 밑반찬도 틈틈이 해 놓을게요.”

“응. 고마워.”

“안녕히 계세요.”

금별을 보내고 난 후 치산은 상윤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대박이야!”

[다짜고짜 무슨 말씀이세요?]

휴일을 방해받아 잔뜩 짜증난 상윤을 무시하고 치산은 한껏 들떠 말했다.

“유금별씨 말야! 대박이라니까! 완벽해. 퍼펙트 가이야. 왜 진작 이 사람을 찾지 못한 거지? 우리 이 여사님 후계자로 제격이야. 내 집에 주저 앉혀야겠어!”

[후우.. 일단 본인이랑 상의 하고 결정하시죠. 혼자 앞서가지 마시고요.]

“흐흐흐”

[아아... 그만 끊습니다.]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쾌적한 환경과 맛있는 식사. 이보다 더한 만족감은 없을 것 같았다.

“아아, 오랜만에 포식했다.”

치산은 푹신한 침대에 벌렁 누우며 만족스러운 듯 사지를 쭉 뻗었다.

침대시트에서 햇빛에 말린 것 같은 따뜻한 냄새가 난다.

모든 게 흡족한 밤이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금별은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고는 혼자 피식 웃어버렸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무서운 속도로 음식을 먹어치우던 한치산의 모습은 평소에 보이던 샤프하고 능력있는 CEO 독신남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였다.

다가 쓰레기 더미 같던 그 집안 꼴이라니...

외모와 달리 영 칠칠치 못한 성격과 습관을 가진 게 분명했다.

온종일 그 넓은 집안을 쓸고 닦고 정리하느라 몸은 고단했지만 어쩐지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벗나무]

어떡해어떡해 너무재밌어여ㅎㅎ

[데코]

감사해요~^^ 계속 재밌게 봐주세요!

[사악공주]

금별이가 사자소굴로 들어갈듯 잡아먹힐줄도 모르고...ㅋㅋㅋ

[em109]

와우 ~ 정말 정만 재밌네요~ 치산이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