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우산을 쓰고 그 아이가 지나간다. 우산이 커 아이의 전면을 가려버렸다. 멀리서 보면 우산이 아이를 데려가는 것처럼 움직이는 신발만 보인다. 밀리는 차 때문에 승용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은 모두 여자아이한테 쏠린다.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잠깐씩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이 오늘따라 작게만 보인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나던 날은 하얀 벚꽃이 매혹적으로 피어 있던 봄날이었다. 가방을 벚나무 아래에 내려놓고 휴대전화기로 벚꽃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너무 작아 앉아 있던 것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지나면서 보니 아이는 서 있었다. 교복을 입지 않았다면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아이로 생각했을 그애의 얼굴은, 중학생쯤 되는 이미 성숙한 아이였다. 유난히 작은 키와 짧은 하체에 비해 상체가 훨씬 발달한 그 아이의 걸음은, 항상 자기를 낯선 인간으로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게 중독된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면 상대가 미안하지 않게 먼저 웃어주었다. 미소로 어색함을 터득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웃는 모습이 벚꽃만큼이나 예뻤다. 그 아이가 왜소증이라는 것을 여러 날이 지나고야 알게 되었다. 힘겨워 보이는 큰 가방을 메고 가는 그 아이를 볼 때면, 길가에 피어나는 노란 민들레꽃이 함께 떠올랐다. 키가 작아 난쟁이 꽃, 앉은뱅이 꽃이란 별명을 가진 노란 민들레와 그 아이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되면 지천을 노랗게 물들이는 민들레는, 짓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과 뿌리를 잘라도 싹이 자라나는 강인함 때문에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부르나 보다.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할 때에 민들레꽃은 개망초와 함께 빠지지 않던 꽃이다. 동그랗고 노란 꽃이 꼭, 계란 노른자 같아 "계란부침"꽃이라고 불렀던 생각이 난다. 어느 곳이나 눈만 돌리면 볼 수 있었던 민들레꽃이 한약 재료로 쓰인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서는, 민들레꽃도 재배한다고 한다. 작년 봄 열심히 민들레꽃을 따 모으시던 친정 부모님께서 민들레로 환을 지어 주셨다. 위장과 간장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민들레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꽃이다. 민들레의 존귀함이 어디 그뿐인가. 어떤 꽃이든지 꽃이 지는 모습은 한결같이 초라하다. 고결하고 우아함의 대명사인 목련은 물론이고, 꽃의 여왕인 장미와 청초하게 피는 국화도 지는 모습은 추하다. 그런데 민들레는 어떠한가. 민들레꽃의 지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초연하다. 애처롭고 쓸쓸해서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까칠한 잎사귀마다 돌아가며 꽃을 피우다가 가야 할 때가 되면 눈꽃 같은 홀씨를 만들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스스로 번식하고 터전을 만드는 '용勇'의 덕으로 민들레만의 영토를 만드는 것이다. 왜소증Dwarfism은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저 신장 증을 동반하는 선천성 질환이라고 한다. 성인 남자는 145cm, 여자는 140cm, 이하로 일반인보다 키가 작은 그들을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제 몸 하나 누일 틈만 있으면 어디든지 피어나는 민들레꽃도 그렇다. 바보같이 길과 뜰의 구분도 못하고 사람이 다니는 길에 피어나 다치기가 일쑤다.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이들 때문에 꽃이 떨어지면, 다시 다른 잎의 줄기에서 노란 얼굴을 내민다. 상처의 아픔을 새살로 치유하는 것이다. 아무 곳에나 피어나 천하게 생각되는 민들레꽃처럼 비정상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은 무조건 불행할 거로 생각했었다. 사람이 정성 들여 가꾸는 꽃만 꽃으로 여기고, 바람과 햇빛을 풀어 자연이 키우는 민들레꽃의 아름다움은 잊고 살았던 것이다. 정신적인 장애가 육체적인 장애보다 훨씬 무서운 병이란 것을 난 항상 밝고 씩씩한 아이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젊은 날의 내 마음은 자라지 못한 난쟁이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란 것을, 그 아이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박종희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