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지략(島夷志略)의 교지(交趾)는 백인(白人)들의 삶터?
○ 조선사(朝鮮史)에 관심(關心)을 갖고, 공부(工夫)한다거나, 또는 연구하는 분들께서 자주 하는 말이 “원전(原典)의 대륙 사(大陸史)나 조선사(朝鮮史)는 왜곡(歪曲), 조작(造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가 어떻게 조작(造作) 또는 왜곡(歪曲)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라든가, “그럼 왜곡(歪曲), 조작(造作)된 부분(部分)의 진실(眞實)에 대해 어떤 주장(主張)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에는 구체적(具體的)인 답변(答辯)을 내 놓지 못하는 경우(境遇)가 허다(許多)하다.
이것은 “원전(原典)에 대한 이해(理解)부족(不足)과 원문(原文)에 대한 번역(飜譯)등등의 여러 요인(要因)이 있을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원전(原典)에 기록된 지형지리(地形地理), 특이지형(特異地形), 풍속(風俗), 인종(人種)등과 선대(先代)와 중대(中代) 및 후대(後代)로 이어지는 역사(歷史)전개(全開)과정(過程)에 대한 이해(理解)부족(不足)에서 기인(起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사(朝鮮史)가 전개(展開)된 곳, 조선왕조(朝鮮王朝)의 터전은, 분명(分明) 대륙(大陸)의 땅이다. 이것을 부정(否定)한다면, 대륙 사(大陸史)를 부정(否定)하는 것과 같다. 조선사(朝鮮史)를 빼놓고 대륙 사(大陸史)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왜곡(歪曲)”된 증거물(證據物)을 보면서, 새로운 조선사(朝鮮史)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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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이지략(島夷志略)』은, 『원(元)나라의 왕 대연(汪 大 淵)이 지은 지리책으로, 저자(著者)가 14세기 남해(南海)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지은 견문(見聞)기로, 사료(史料)적 가치가 크다.』고 하였으며, 또 『남해(南海) 제국(帝國)의 지리(地理)ㆍ산물(産物)ㆍ풍속(風俗) 따위를 실지(實地) 견문(見聞)하고 쓴 책(冊). 중국(中國) 원(元)나라의 옥 대연이 2권으로 편찬(編纂)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는 사실(事實)일 것이다.
이곳(島夷志略)에서 『교지(交趾)』에 대한 기록(記錄)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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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交趾(島夷志略 / 四庫全書 本)
《古交州之地,今為安南大越國.山環而險,溪道互布.外有三十六莊,地廣人稠.氣候常熱.田多沃饒. : 예전 교주(交州)의 땅이다. 지금의 안남(安南) 대 월 국(大越國)이다. 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험한 골짜기와 길이 서로 넓게 깔려있는데, 밖으로 36 장(莊)이 있다. 땅은 넓고 인민은 많다. 기후는 몹시 덥고, 경작지는 많고 기름지며 많다. 俗尚禮義,有中國之風.男女面白而齒黒,戴冠,穿唐衣,皂褶,絲襪,方履. : 풍속(風俗)과 예의(禮義)를 숭상하는데, 중국(中國)의 풍(風)이 있으며, 남자와 여자의 얼굴은 희고(白) 치아는 검다. 대관(戴冠)시에는 당의(唐衣)를 입으며, 검은 비단의 겹옷과, 명주 버선을 신고 사방을 밟는다. 凡民間俊秀子弟,八嵗入小學,十五入大學,其誦詩讀書,談性理,為文章,皆與中國同,惟言語差異耳. : 무릇 민간의 재주, 지혜(智慧ㆍ知慧), 풍채(風采)가 뛰어난 자제(子弟)들은, 8살(歲)에 소학(小學)에 들어가고, 15살에 대학(大學)에 들어가, 시를 외우고 책을 읽으며, 문장에 대한 인간의 성품과 자연의 이치를 말하는데, 모두 중국(中國)과 같은데, 유일하게 언어(言語)가 차이(差異)가 있다. 古今嵗貢中國,已載諸史.民煮海為鹽,釀秫為酒.部長以同(姓女)為妻. : 옛날과 지금도 해마다 중국에 조공하는데 여러 기록에 이미 기재되었다. 백성들은 바다에서 소금을 얻으며, 찰기장을 빚어 술을 만들고, 부족장은 같은 성씨의 여인을 아내로 삼는다. 地産沙金,白銀,銅,錫,鉛,象牙,翠毛,肉桂,槟榔. : 땅에서는 사금(沙金), 백은(白銀), 구리(銅), 주석(錫), 납(鉛), 상아(象牙), 물총새 털(翠毛), 육계【肉桂 : 계수나무의 두꺼운 껍질. 건위 제나 강장제로 쓰인다고 한다.】, 빈랑(檳榔)이 산출된다. 》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➊ 교지(交趾)는, 『베트남 북부를 흐르는 홍하(紅河) 하류(下流)에 있는 “하노이(河內)”를 “교지(交趾)”』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➋『지봉유설(芝峯類說) 2 제국(諸國)/외국(外國)편의 안남(安南)국 편을 보면 : 安南國在中國西南.距北京一萬三千里.秦爲象郡.漢置交趾郡.嘉靖初.中略.稱安南都統使.乃瓠犬之遺種.其性姦猾.剪髮跣足.窅目昂喙.極醜惡.廣人稱爲夷鬼貌類人者. : 안남국은 중국의 서남에 있으며, 북경으로부터 13,000 천리 덜어져 있다. 진(秦)나라 때의 상군(象郡)이며, 한(漢)에서 교지(交趾)군을 두었다. 가정(嘉靖)초 (중략). 안남도통사라 불렀다. 호 견(瓠犬)의 유종(遺種)으로, 간사하고 교활하며, 머리털은 가위로 베며 맨발(跣足)이다. 눈은 깊게 들어가 있고(深目) 입은 들려있는데(?), 극도로 더럽고 지저분하여 아주 못 생겼다(醜惡). 광인(廣人)들은 귀신같은 모습을 한 오랑캐 무리라고 칭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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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교지(交趾)”에 살고 있었던 “인종(人種)”에 대해 알아보자.
➌ 도이지략(島夷志略)은, 『원(元)나라의 왕 대연(汪 大 淵)이 지은 지리책으로, 저자(著者)가 14세기 남해(南海)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지은 견문(見聞)기로, 사료(史料)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評價)할 만큼 신빙성(信憑性)에 의문(疑問)을 제기(提起)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價値)가 있다는 말과 같으며, 또한 저자(著者)가 직접(直接)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견문(見聞)기”라는 것에 더더욱 의심(疑心)의 여지(餘地)가 없을 것 같다.
“원(元)나라의 왕 대연(汪 大 淵)”이 보고들은 바에 의하면, 『교지(交趾)의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는 모두 흰(白) 얼굴(面)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며, 곧 “백인(白人)”이었다.』는 것이며,
“조선(朝鮮)의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저자(著者) 이수광(李 晬 光)”은, 『교지(交趾)인들은, 눈은 깊게 들어가 있고(深目) 입(주둥이)은 들려있는데(?), 극도로 더럽고 지저분하여 아주 못 생겼다(醜惡)』고 설명하고 있다.
원(元)나라의 ‘왕 대연【元 : 1367년 亡】’과 조선(朝鮮)시대 ‘이 수 광(1614년)’ 과는 시대적(時代的)으로, 약 250-300 년의 시차(時差)가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念頭)에 두자.
➍ 『현 베트남 하노이(河內)지방이 옛 교지(交趾)였다.』고 했을 때, 당시(當時)의 인종(人種)이었던 『 얼굴은 희고(白), 눈은 움푹 들어가 있으며, 들려 있는 입술 모습을 가진 자(者)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인구(人口)가 굉장히 많다고 하였으니, 당연(當然)한 의문(疑問)이다!!!!!!!!!!!!!!
➎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그곳에 살고 있던 ‘인종(人種)’들이 타 종족(種族)들로부터 “인종(人種)청소(淸掃)”를 당해 “지구(地球)상에서 영원(永遠)히 사라졌다.”』는 경우(境遇)요,
둘째는, 『“조선사(朝鮮史)를 왜곡(歪曲)하는 과정(過程)에서, 엉뚱한 지방의 것이 대륙(大陸)의 남방(南方)지방에 강제적(强制的)으로 심어졌다.』 는 경우(境遇)이다.
여러 가지 주장(主張)이 있을 수 있으나, 두 번째의 경우(境遇)가 해당(該當)되며, 이는 대륙 사(大陸史) 대부분(大部分)이 이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곧 “조선사(朝鮮史)는 대륙 사(大陸史)이며, 조선(朝鮮)의 영역(領域)이었다.” 대륙(大陸)의 조선(朝鮮)을 좁디좁은 반도(半島)로 이동(移動)시키니, 넓고 넓은 대륙(大陸) 땅은 텅 비어 버렸으니, 이곳저곳의 나라와 인종(人種)과 종족(種族)들을 이동(移動)시켜 그 자리를 메우다 보니, 이렇게 희극(戱劇)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역설적(逆說的)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조선사를 찾자”고 하면서, 다시 조선사(朝鮮史)를 왜곡(歪曲)하는 일이 되풀이 한다면,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2013년 04월 27일 <글쓴이 : 문무(文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