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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집중 토론 고구려 초기의 왕권...(유리왕의 경우..)
cciba 추천 0 조회 431 06.09.05 02:21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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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9.05 04:11

    첫댓글 헉!! 여태 키바로 읽고 있었는데.....

  • 06.09.05 11:38

    아.... 상당히 타당성 있는이야기 인 듯 합니다. 주몽이 계루부의 졸본세력을 등에 업고 건국을 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부족의 개념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리는 다물국, 즉 소노부를 등에 업고 cciba님의 의견대로 권력을 찬탈하였다고 본다면, 이는 기존에 남아있을 건국세력 혹은 기타 다른 부족의 반발을 피할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소노부의 '해'씨 고구려왕통은 언제나 '찬탈자'로써 그 입지가 미흡할 수 밖에 없다고 볼 수 있겠네요. 주몽이 성을 高씨로 삼았는데 2대왕 부터 解씨로 기록된다는 점은 유리가 정통한 계승자가 아닌 찬탈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작성자 06.09.05 14:10

    뭐..그렇게 '당연한겁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하기 위해서 많은 사학자분들이 피똥싸는 것이겠죠...당연한 것 같은데...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있고...그 당연한 것의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데 사료가 없고...뭐 그런거죠...

  • 06.09.06 14:41

    유리왕 하면 생각나는거라곤 기껏해야 황조가 정도인데 나름대로 재미있군요 ^^;; 단지 현재 잔존한 사료가 부족하여 논리가 일정범위 이상으로 뻗어나가 결정적인 결론은 낼 수가 없는 듯... 그래도 여전히 상상과 비약의 나래를 펼친 소설같은 재야역사보다는 좀더 그럴싸하게 느껴집니다. 바닐라 음모론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일종의 '절제의 미학' 이랄까요 ㅋㅋ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06.09.07 10:49

    어? 그런 사료가 있었나요? 어떤 사료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지 가르쳐주시겠어요? 나름 사료를 훓어봤다고 생각하는데...소서노의 나이나 '왕의 성씨가 해씨였다' 라고 단정해주는 사료는 못봤는데...사실 소서노라는 이름이 명확히 나온 사료도 없습니다...

  • 06.09.07 16:23

    저로서도 가히 획기적인 내용인데... 사료 출처를 좀;;;

  • 06.09.07 00:19

    --으윽..여기도 상당한고찰이!!한수배워야겟다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06.09.08 11:11

    7차 교과서에선 동명성왕이라고 나옵니다만;;

  • 06.09.10 17:05

    수험한국사를 하다보니 100% 개정교과서 위주의 내용을 배우게 되는데 그쪽에서 추모왕이라는 이름은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특히 고구려는 사실상 1세기 정복전쟁 태조왕 이전의 왕은 알 필요가 없다는..

  • 06.09.10 18:07

    실제로 태조왕 이전의 고구려 역사는 학자들도 잘 모르니까.. 그런걸 시험에 내면 논란의 여지가 생기니, 그런걸 낼수 없으므로.. 태조왕 이후부터 공부해야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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