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dinia - Piedmont 1936~>
1836년 2월 4일, 군비 확충이 끝난 사르데냐 왕국은 동원령을 내리고 이탈리아 반도는 긴장에 휩싸인다. 사르데냐 왕국은 하지만 이탈리아 내에서는 유일하게 동원령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동원할 수 있는 총 병력은 5개 사단으로 기존의 5개 사단과 합하면 총 10만에 이르는 병력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정도 군세에 맞설 수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에서는 나폴리 왕국 정도밖에 없었다. 사르데냐가 중부 이탈리아의 군소 공국들을 합병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위기를 느낀 Modena공은 오스트리아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오스트리아는 독일 경영에 신경을 쓰느라 이탈리아 문제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공국들은 서로 동맹을 맺어 사르데냐의 남하에 대비하였다. 사르데냐의 득세를 바라지 않는 Papal State도 동맹에 가담하였다.
2월 17일 사르데냐-피어몬테 국왕 카를로 알베르토는 Parma에 전쟁을 선포한다. 표면적으로는 Parma와 사르데냐 간의 전쟁이었지만, 이탈리아 전체를 향한 선전 포고나 다름없었다. 사흘 후 모데나 공국이 Parma와의 동맹을 존중하여 사르데냐에 선전 포고하였고, 소국 루카가 그 뒤를 이었다. 교황청은 사르데나와의 상호방위조약을 파기하고 Parma편에 가담하였다. 피렌체 정부와 나폴리는 중립을 표방하였다.
2월 20일 사르데냐의 군대는 Parma와 Massa를 향해 출발하였다. 사르데냐의 군대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기가 높고, 무장이 잘되어 있는 군대였다. 그들이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Battle of Parma
Attacker : Sardina(30,000)
Carabinieri Corps 20,000 -General Salerno
la Carabinieri 보병 사단 10,000
Carabinieri Reali 기병 사단 10,000
Bersaglieri Corps 10,000 (Reserve Army) -General Omiccioli
la Bersaglieri 보병 사단 10,000
Defender : Parma(10,000) -General Donatelli
Esercito Parma 10,000
la Fanteria di linea 보병 사단 10,000
전쟁이 벌어질 당시 팔마 공국의 군사령관은 연방주의자인 Donatelli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각국의 독립된 정부가 연합하여 연방을 구성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따라서 그는 사르데냐 중심의 무력 통일론에는 반대하였고 기회 있을 때마다 사르데냐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다녔지만, 사르데냐의 군대를 저지할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3월 5일 사르데냐 군이 수도 외곽에 도착하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Donatelli 장군은 교전 한번 치르지 않고자기 휘하의 군대를 이끌고 남하해 버렸다. 도시를 지키는 것은 오스트리아 출신 장교가 이끄는 1개 여단 뿐이었다. 이 여단은 시 방위전에서 전멸하였다. 한달 후 Carabinieri군이 수도 주변을 완전히 접수하여 Parma공국은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합병당했다. 하지만 사르데냐 측에서도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병참선의 미비로 인해 부상병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속출했다. 의료지원은 Parma가 완전히 점령될 쯤에야 도착했다.
Battle of Massa
Attacker : Sardina(20,000)
Army of Sardinia 10,000 -General Rafaldini
la Fanteria di linea 보병 사단 10,000
Granatieri Corps 10,000 (Reserve Army) -General Corleone
Granatieri di degna 보병 사단 10,000
Defender : Modena(10,000)
Esercito Modena 10,000 -General Sabbatini
la Fanteria 보병 사단 10,000
Massa전투는 전쟁 초기에 벌어진 전투 중에 가장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 전투이다.
Parma가 비교적 손쉽게 떨어진 것과 달리 Massa에서는 처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Massa는 Modena남단에 위치한 항구로, 이곳이 점령당하면 루차와 모데나 모두가 위협받는 전략상의 요지이다. 중부 소국의 맹주격인 모데나와 사르데냐 모두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데나는 자신의 거의 모든 군대를 이곳으로 파견하였고, 사르데냐도 가장 정예군인 Sardinia군단을 보냈다.
모데나의 Sabbatini는 전쟁이 벌어지자 즉각 이곳으로 달려와 항구의 해안포대를 접수하고 주요 거점마다 병력을 배치하였다. 3월 14일에 사르데냐 군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방어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사르데냐의 지휘관인 Rafaldini는 자기가 전속력으로 달여왔기 때문에 적군의 주력은 아직 북동쪽으로 수십 마일 떨어진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제로는 Sabbatina가 훨씬 먼저 도착해 있었지만, 모데나의 군사적 역량을 과소평가한 Rafaldini는 정찰도 하지 않고 Sardinia군단을 항구로 진입시켰다.
그러나 항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비병 몇개 중대가 아니라 Modena의 정예 군단이었다. Sabbatini는 적이 사정거리 내로 접근하자 매복해있던 병사들에게 일제 사격 명령을 내렸다. 사르데냐 군은 경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섣불리 전진하다가 도시에 접근하기도 전에 일제 사격을 받고 순식간에 백여멍의 사상자를 내었다. 첫번의 사격으로 전멸한 소대도 있었다. Sardinia군단이 아무리 정예병이라지만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왕좌왕 하고 있는 사이에 다시 '발사'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적의 두번째 사격이 사르데냐 병사들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수십명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전열을 갖출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퇴각하게 되면 절대 Massa를 점령할 수 없다고 생각한 Rafaldini는 오히려 전진을 명령하였다. 각 연대의 지휘관은 물론 여단장까지 전선으로 나서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엎드려 있던 병사들은 다시 일어나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Sardinia군단이 적의 총알받이가 되고 있는 사이 뒤에 처져 있던 Granatieri군단이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적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Sabbatini는 백병전이 벌어지면 수적으로 밀리는 자기편이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사르데냐 군은 겨우 항구 끄트머리의 한 구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희생이 너무 컸다. 단 하루의 전투로 Sardinia군단은 거의 이백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더구나 남쪽에서 루카가 조직한 수천의 용병대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들이 도착한다면 수적인 우위도 없어지게 된다.
Rafaldini 장군은 실수로 인해 많은 병사들을 잃긴 했지만 무능한 지휘관은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시일을 끌면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이튿날부터 전군을 동원해 시가전을 벌였다. 곳곳에서 총성과 총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사르데냐 군은 모데나 군보다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한 군대가 아니었다. 모데나 군은 결사적으로 Massa를 사수하려 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모든 곳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Sabbatini의 군대는 이제 7,000명 이하로 줄어 있었다. 탄약도 바닥을 드러냈다. 게다가 4월 17일에 Parma가 합병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군의 사기는 바닥을 기었다.
Battle of Massa(2단계)
Attacker : Sardina(17,000)
Army of Sardinia 7,000 -General Rafaldini
la Fanteria di linea 보병 사단 7,000
Granatieri Corps 10,000 (Reserve Army)
Granatieri di degna 보병 사단 10,000
Defender : Modena(6,000) Lucca(4,000)
Esercito Modena 6,000 -General Sabbatini
la Fanteria 보병 사단 6,000
Esercito Emilia-Romagna 4,000
la Fanteria 비정규 보병 사단 4,000
1836년 4월 28일 루카의 원군이 도착하자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하지만 시일이 지날 수록 중부 동맹군의 패색은 짙어갈 뿐이었다. 루카의 원군운 이곳 저곳에서 아무렇게나 긁어 모은 병사들이라 제대로 통제도 안되었고 모데나 수비군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게다가 5월 14일 모데나의 수도를 지키던 Donatelli의 군대(Parma전투에서 퇴각한 군대)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Carabinieri군에게 패해 교황령으로 도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방어군은 거의 괴멸 직전에 이르렀다. 결국 모데나와 루카의 연합군은 오천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남기고 퇴각하였다. 특히 루카군은 전군의 3/4이 깎이는 참패를 당하였다. 사르데냐 군의 사상자도 삼천명에 달했다. 이 전투와 앞서 벌어진 Modena의 교전으로 중부 공국들의 저항은 사실상 분쇄되었다.
6월 5일 Papal State의 최북단인 Ferrara에 교황청의 군대가 출현하였다. 그들은 Modena에서 도망나온 팔마의 패잔병들과 합류하여, Modena에 진주해 있는 Carabinieri군을 향하여 진군하기 시작하였다. 군대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대포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전쟁은 이제 사르데냐와 교황청의 대결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첫댓글 Army of Sardinia의 피해는 참호효과를 묘사하신 듯 싶은데 아주 깔끔하고 자세한 것이 빅토리아 모범 AAR로 기대됩니다 ^^;
우어어 멋있습니다. 어떻게 쓰는겁니까 ;;
감사합니다^^; 빅토리아 포럼에 있는것을 읽고 만들어보는 겁니다. 생각보다 마니 힘드네요
참호 효과를 흉내내본 건데 생각해보니 천명은 좀 심하네요 백명으로 고쳐야지^^;
아... 유로파와 호이를 전부 하고 있는데 이걸 보고 갑자기 빅토리아를 하고 싶어 졌어요.. @.@
확실히 빅토리아는 빅토리아만의 확실한 재미가 있습니다 으하하하하핫
소설제목 빅토리아로 글하나 서보시죠...^^;
소설은 좀 힘들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