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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3년 11월 18일 화요공부방
□ 상산 소광섭 교수님 강연
□ [ 불교 삼단계 완성론과 세계 불교로서의 원불교 ]
여러분 반갑습니다.
안암 교당에 청년들이 많다고 해서 한 번 와보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를
맞아서 매우 기쁩니다.
제가 원불교를 입교한지 30 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처음 원불교를 만난
것은 미국에서 학업을 끝내고 귀국해서 고 윤석 교수님 집에 인사하러
가서 원불교를 소개 받고 원남 교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원불교는 상당히 적극적인 종교다. 여러분 원불교는 적극적인 종교라고
동의 하세요? 종교가에서는 교육이라는 말을 쓰는데, 우리는 훈련이라는
말을 쓴다. 논산 훈련소에서는 훈련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 민간인을
군인으로 바꾸죠?
상시훈련과 정기훈련 있는데, 상시훈련은 평상시에 하는 훈련이고,
정기훈련은 특별한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것이 정기훈련 입니다. 그러니까
범부, 중생과 같은 보통 사람으로써 성인이나 부처와 같은 인격으로
짧은 시간 안에 훈련을 통해서 바꿔야 된다는 말 입니다.
이것이 대종사님의 적극적인 인간 개조 방식이라고 생각 합니다.
훈련이라는 용어를 쓴 걸로 봐서 인간을 바꾸는데 가장 적극적인 노력을
대종사님이 제안 하셨고, 대산 종법사님이 전국에 훈련원을 만드셨어요.
대종사님이 조계종의 한 종단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서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게 드러내어서 전 인류에게 맞도록 하였다.
좌산 상사님께서 제가 쓴 글을 보고 맘에 들어서 원불교의 표어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를 1편으로 하고 제가 쓴 불교
삼단계 완성론을 2편으로 묶어서 한 편의 소책자로 만들고자 하셔서
소책자로 만들었습니다.
□ 먼저 초록을 보면
[ 불교는 삼 단계에 걸쳐 세계의 주교로 완성된다. ]
고 했는데… 원불교가 전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불교의 완성단계다.
세계의 주교가 될 것이다.
넘겨서 서론을 보면,
[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다. ]
라고 대종사님이 일찍이 천명하신 바 있다.
대종경 서품 15장을 한 번 읽어보세요.
- 대종경 서품 15장 -
[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임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해서 그 진리를 깨치는 데에 노력하라. 내가 진작 이 불법의
진리를 알았으나 그대들의 정도가 아직 그 진리 분석에 못 미치는 바가
있고, 또는 불교가 이 나라에서 여러 백년 동안 천대를 받아 온 끝이라
누구를 막론하고 불교의 명칭을 가진 데에는 존경하는 뜻이 적게 된지라
열리지 못한 인심에 시대의 존경을 받지 못할까하여, 짐짓 법의 사정
진위를 물론하고 오직 인심의 정도를 따라 순서 없는 교화로 한갓 발심
신앙에만 주력하여 왔거니와, 이제 그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성취하여 일체 중생의 혜 • 복(慧福) 두 길을 인도하기로 하면
이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니라. 그러나, 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제도의 불법이
아니라 사. – 그만! - ]
대종사님께서는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을
보고, 조계종이라든가 하는 불교가 세계 주교가 될 것이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렇게 되는데 원불교도 교세는 미약하지만 조금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제가 이 글을 금년 봄에 썼는데, 이 때 밑줄 친 부분에서 옛날의 불교가
세계적 주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뀐 불교가 세계적 주교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불교는 부처님의 진리를 형식에서 벗어나 원래
부처님의 본뜻을 밝힌 것이다.
<원불교와 불교의 관계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항상 나옵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형식과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원래 부처님의 뜻을
다시 밝힌 것이다.
3쪽의 두 번째 문단을 보면
[ 지리적으로는 대체로 말하면 ‘인도불교’에서 ‘아시아의 불교’로 그리고
다시 ‘세계의 불교’로 넓혀진다는 것이고, 교리적으로는 ‘고전 (古典)
불교’에서 ‘대승불교’, 다시 ‘원불교’로 나간다는 관점이다.
‘고전불교 (古典佛敎, Classic Buddhism)’란 서가모니 부처님 재세 시부터
대승불교의 흥기 시까지의 불교를 이름한 것이며 ]
‘고전불교’란 용어는 제가 고심해서 만든 단어입니다. 대승불교는 북방
즉, 중국, 한국이고, 남방의 버마, 태국은 소승이다라고 말하는데, 남방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죠. 남방 사람들은 자기들이 전통이라고
하고 대승 불교를 비불 이라고 합니다. 북방은 진보, 뭔가
개혁적이잖아요. 그리고 남방은 원래 서가모니 가르침과 불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남방은 원래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고전이라는 말을 붙었습니다.
그 다음,
[ 부파불교의 현학적 치우침을 비판하고 부처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불교혁신운동이 ‘대승불교’이고 이를 주도하신 분이
나갈주나(용수보살)이시다. 대승불교 운동은 인도지역에 국한되어있던
불교를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기틀이 되었다. ]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100여 년 후에 부처님의 말씀을 교리적으로,
다시 말해서 철학적인 연구가 시작됩니다. 신앙을 할 때에는 그것을
믿고 잘 실천하면 되는데, 철학적 논리로 들어가면 갈라지는 것이다.
결국 철학적 견해가 달라서 20개 파로 갈라집니다. 현학적 이란 말은
부처님의 신앙적인 면 보다는 학문적인 면을 더 많이 논했다. 그래서
수도원 같은 데서 부처님의 말씀을 더욱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해석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승려는 연구원과 같은 학자가 되었다.
그래서 용수보살이 나셔서서 부처님의 말씀은 철학이 아니요 실천이며,
중생들과 함께 나아가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중불교인 대승, 큰 수레, 대승불교이다. 가난한 사람도 다 같이
너도 다 함께, 우리 다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 중심의 불교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본래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대승은 소승을 어떻게 비판하는가? 소승은 자기 혼자서 깨우쳐서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의 기본은 지장보살처럼 모든 중생들이 다
깨우칠 때까지 남아서 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경전이 금강경이다, 그리고 가장 작은 것이 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반야심경이 대승불교를 요약했는데, 더욱 줄이면,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것이 바로 대승 정신의 핵심 입니다. 우리 진리를 향해 함께 가자는
것이 대승 정신의 핵심 입니다.
남방 사람들은 스스로 열심히 해서 고행이나 성불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북방 사람들은 함께 가자는 것이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북방 사람들은
대승이, 남방 사람들은 소승이 각각의 정성 맞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드러내서 세계인들이 공감하도록
만들 것이냐? 이것이 대종사님이 만드신 일이고 하신 것이다.
3쪽의 맨 아래 여섯 번째 줄에서 보면,
[ 대종사님이 불교를 아시아의 지역적 전통과 관습에서 분리시켜 다시
한번 부처님 본래의 가르침을 드러내고, 세계 모든 인류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형태로 교리와 제도를 만든 것은 역사적 사명이었고 천지의
큰 뜻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는 인도불교를 아시아
불교로 확장시키는 틀을 만든 것이고, 원불교는 아시아의 불교를 세계의
주교로 끌어올리는 판을 짠 것이라 하겠다. ]
여기까지 서론 입니다.
------------------------- 2부 ------------------------
그럼, 제 글을 보면서 말하겠습니다.
부파불교는 좀 전에 철학적인 불교라고 했는데, 약 20여 개의 부파가
생겼습니다. 이때 불교의 승단이나 수행자들이 소승으로 떨어지고,
사상적으로 부처님의 무아사상에서 벗어나는 혼란 속에서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고 반야계 경전 등이 공 (空) 사상을 설하면서 불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은 경이라고 하고, 그것을 해설한 것을
논이라고 합니다.
[ 용수보살의 대표 저술은 중론 (中論, Madhyamaka-kārika)인데,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 (空) 사상의 철학적 논리적 기반을 제시한
불후의 명저이며 불교 모든 논서 중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 ]
[ 중도사상’을 회복시키고 대승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확고히 다지었다. ]
대종사님이 서가모니의 가르침을 되살렸다. 서가모니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원불교가 불교의 이단이 아니고
서가모니의 진짜 가르침이다. 우리가 새로운 스타일의 불교를 만들었을
때 제멋대로 만든 게 아니고 서가모니의 핵심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도리어 기존 불교가 오랜 세월 전해오면서 형식과 제도에
얽매어 있다.
우리 원불교는 기존 불교와 제도나 형식이 다르므로, 그들로부터 우리가
이단 이라고 불려진다면, 불교와 형식은 다르지만 우리가 부처님의
본의를 이어 받았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의 엣관습은 부처님의 본의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정통 법맥을 이어 받았다. 이러한 문제들에 답변을 하려 하고
있고, 글로 쓸려고 한다.
전체적인 요약이 이 글이다. 대종사님이 불교의 정통 법맥이다. 그것이
나갈주나가 대승불교운동을 할 때, 부딪친 문제입니다. 보수파에서
<너희는 네 멋대로 하는 게 아니냐?> 지금도 <대승불교는 비불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갈주나가 자신들이 부처님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할 때, 그
주장의 근거가 바로 이 책 입니다. 중론. 모든 대승불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미 모든 경전이 대승경전 입니다.
대승경전은 소승 쪽에서는 읽지 않습니다. 대승 경전을 다 날조라고
말할 때, 사실은 이것이 서가모니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이고, 글로는
안 써졌지만, 이심전심으로 몇 백 년 지난 다음에 글로 쓰게 되었다.
이것이 대승불교 측의 주장이고, 소승에서는 너희들 맘대로 쓴 거라고
한다.
어쨌든 서가모니의 법에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해야 하는데, 그걸
주장한 책이 이 책 이다.
중론,
중론의 서론에 나와 있는 글 입니다. 이런걸 게송 이라고 하죠?
서가모니가 돌아가실 때, 마하 가섭에게 게송을 전달 했습니다. 게송이
정통법맥인데, 이것이 바로 정통법맥 입니다.
[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며,
연속성도 아니고 끊어지는 것도 아니며,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
인연을 설하여 모든 학파의 언어 논리적 유희를 타파하셨으니
모든 설법자 중 제일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
이것이 서가모니의 철학적 논리적 법맥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용수보살
주장 입니다. 대종사님의 법맥이 중도법맥이고, 그것이 서가모니의
가르침이라는 걸 맨 끝에 할 것이다. 결론이 그겁니다. 대종사님이
등상불을 모시지 않았어도 서가모니의 정통법맥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을 제 2 혁명 때 용수보살이 했고, 대종사님이 제 3차 대혁명 때
했다는 것이 이 글의 논지 입니다.
[ 고전불교의 전파지역은 대체적으로 말하여 인도문화권과 일치한다고
하겠다. ]
[ 대승불교는 불교의 보편성을 되살리는 불교 제2의 성립이며,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중도사상을 분명하게 다시 드러내고, 교리와 제도를
개혁하여 새로운 문화권으로 나아간 것이다.]
[ 대승불교는 인도문화권의 종교가 아니었으나, 동북아시아의
중국문화권에서 열렬히 환영받고 크게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티벳, 몽고, 한국, 일본은 그 문화적 전통과 민중의 정서가
대승불교가 자라고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풍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
소승불교가 중국과 한국에 전파를 했더라면 안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승불교이기 때문에 북방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이것은 제 생각
입니다.
현재 원불교의 교리도가 신앙문과 수행문으로 나뉜다. 그런데 교리도를
보면 대종사님의 모든 핵심이 다 들어있는데, 정 중앙에 원불교는 어떤
종교라는 것을 써 놓으셨다. 원불교의 핵심은 일원사상이다. 둥근
하나가 바로 진리의 부처님이며,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서양식으로
말하면 우주 만물이 다 둥근 하나에서 창조 되었다. 서양은 밖으로
나가므로 창조라고 하였고, 동양에서는 안으로 들어가므로 본원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제불 제성의 심인이요, 일체 중생의 본성이다. 이것이
일원사상이다. -서양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본 따서 만든 것이라고
하셨다.-
고전불교의 핵심 – 연기사상
대승불교의 핵심 – 공 사상
원불교의 핵심 – 일원사상
이 핵심사상을 꿰뚫는 것이 같은 것이다, 다 이어받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도사상이다.
중도란, 다른 언어로 표현 되어 있는 법맥의 진체 이다.
게송을 보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무와 유이다.
모든 제불조사의 게송을 합하면 중도사상이다.
□ 게송은 교리도의 정 중앙에 있다. 일원사상으로부터 나온 것이 바로
사은사요 삼학팔조이므로, 이 것들을 모으면 곧 일원사상이 될 것이다.
□ 앞으로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지므로 감성에만 호소하는 것보다 좋은
것을 알고 느껴서 오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래서 원불교가
적합한 종교인 것이다.
□ 정산종사님 게송
석가모니 이래 대종사님까지 게송을 보면 유와 무가 어떻고 해서 모르게
되어있다. 모르게 되어 있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생각을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정산종사님의 게송부터는 확실히 다르다.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전에는 성리를 말씀하셧는데 정산종사님은
아주 쉬운 언어로 우리 이렇게 좋은 세상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다면 정산종사님은 왜 이렇게 쉬운 게송을 우리들에게 주셨을까?
[ 대종사님은 원불교가 불교의 정통법맥인 중도사상을 다시 밝히고
있음을 보인 것이고, 정산종사님의 게송은 원불교가 곧 세계불교임을,
이것이 대종사님의 뜻임을 우리 모두에게 주지시키신 것이다. ]
□ 정산종사 법어 도운편 13장
[ 불법의 정맥을 올바로 살려낸 회상이 새 세상의 주교가 되나니라 ]
□ 결론
원불교는 석가모니의 법맥을 다시 밝히신 것이며, 이렇게 하여 불교가
세계의 주교가 되도록 하여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동윤리로써
세계를 하나로 하자. 우리의 마음도 세계를 품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하고, 세계인으로 활동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와 세상, 인류가 하나되는
세상에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훈련이 되어야 한다. 원불교는 훈련을
중요시한다.
[ 질문과 답변 ]
□ 질문 – 황원공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 답변 – 소광섭
이 글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시작이다. 여러 개의 챕터가 될 것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대종사님 당대에 오셨다면 대종사님처럼
가르치셨을 것이다 하는 것도 한 챕터일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데 전에 은덕문화원에서 책 써주기를 원하여 책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다. 대종사님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문자적 의미로만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대종사님은 그 목표를 이어받은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였다.
□ 질문 – 박원허
테레사 수녀가, 아무리 신을 찾고자 하여도 오히려 신은 멀어지더라
하는 말을 하였다는데 불교는 안에서 그 진리를 찾으므로 허망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과학이 좀더 발전하는 이 때에 사람들이 종교를 많이 믿을 것인지
아니면 과학에 밀릴 것인지 궁금하다.
□ 답변 – 소광섭
결론적으로 말하면 과학이 발달되면 원불교가 정말로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과학은 상당히 미진하기 때문에 현재 과학을
발전시키고자 쓴 책이 ‘물리학과 대승기신론’이라는 책을 썼었는데
대단히 어려운 책이 되어버렸다.
현재 사람들이 생각하는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기계적인 사고를
과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과학은 사실 합리적인 사고로
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그러한 사고의 노력이 더욱 발전하면
원불교와 서가모니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물질과 마음이 완전히 분리된 과학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그러나 앞으로 가면 갈수록 인식론이 중요해질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가.
인식론은 심리학의 일종인데, 심리학과 물리학과도 연결될 것이다.
생물학이 발전하는면 뇌과학이 발전한다. 그러면, 심리학이 지금과 같이
인문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쪽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물리학이 인식론과 만나게 된다. 서구에서는 이미 인지과학적
측면과 물리적 과학을 융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물리학과 심리학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발전하는 중간 과정으로 물질 과학이 발전하는 것이며, 앞으로는
심리학적인 물질과학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물질과 정신이 통할 것이며,
그 때는 불교를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불교의 일체유심조를 좀더 풀어 쓴 것이 대승기신론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다섯 단계의 사고이다. 물리학은 대승기신론을
이해할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승기신론의 입장에서로
물리학이 변해야 한다.
일체유심조가 맞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면 일체유심조가 맞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불교와 원불교가 모든 사람들이 다 맞을 것이다.
과거 기독교와 서양 과학이 충돌을 많이 일으켰는데 그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 질문 - 최성양
원불교가 변화 발전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부분을 변화
발전해야 할지 궁금하다.
□ 답변 - 소광섭
어려운 질문 중 하나이다. 안암교당이 그 중에 희망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원불교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원불교
발전방향의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원불교가 아직 아니다, 주세는 커녕
주한국도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듯하다. 기독교가
이스라엘에서 나왔는데 이스라엘은 아직 기독교 안 믿는다. 걱정할 필요
없다. 한국사람이 안 믿는다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안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불교이기 때문에 사오백 년 걸린다고 하셨다. 백주년도 6-7년
남았다.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노력이다.
한 사람의 노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데 반대되는
이야기냐,
아니다.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고 깨치고 교화하고 하면 그것이 크다.
세계를 비출 수도 있다. 한국도 잘 안되고 하면 한국의 모든 사람과
함께 가야겠다 그 마음으로 하면 된다. 다른 사람 걱정하지 말고…
□ 질문 –새로온 분
원불교가 세계 불교가 된다고 하는 것이 다양하게 생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다 원불교에 귀의했다고 하는 것, 교당이 전
세계에 세워지게 되는 것인지, 그럼 과거에 기독교가 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원불교라는 이름은 아니어도, 원불교와 같은 사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 답변 - 소광섭
두 가지를 다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교당이 전체에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원불교와
같은 마음으로 한다면 그게 바로 원불교이지 않겠는가.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원불교로 개종할 필요는 없을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개성이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진리를 향해 가며
살도록 되어 있으며, 진리를 향해 가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생은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정신을 얼마나 노력해서 할 것인가, 다 같이 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불교가 맞을 수도 있고 기독교가 맞을 수도 있다. 다만 그
가르치는 것이 지역적인 전통에 맞춘 것이 있고, 전세계에 맞춘 것이
있는데, 처음부터 원불교는 세계가 과학적인 사고로 변화될 때에 우리
사람들이 다 같이 진리를 향해서 나가도록 짜 주신 법이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으로 나아가고 사실적 종교의 훈련을 한다.
다른 종교는 지역적인 특색이 살아있어서 전체에 적용이 힘든 면이
있었고, 진리를 그대로 드러내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것을 보완한
것이 원불교이기 때문에, 나는 원불교를 모든 이들에게 전파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전 세계에 퍼진다면 나쁜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끝-
타이핑 : 순명나라순명공주, 아름다운 정원
편 집 : 아름다운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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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정원 교도님께서 정리하신 내용인데 일시적으로 업로드가 안되어 제가 대신 올렸습니다. 정원교도님, 감사드립니다...^^
순면교우님의 발빠른 도움 고맙습니다. ^^
이런 노고를.... 복받으실 거에요~ ^^ 감사 ~
현정교우님도 복 받으실 겁니다. ^^
감사합니다. 복은 이미 받으신것 같네요 정리하며 자세히 알으셨겠죠??!!
네 맞습니다. 복을 나눌 나이죠 뭐 ^^v
감사합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
저도 멀리에서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선중 교무 합장 _()_
교무님도 좋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 김정원 합장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