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웃음은 표정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행동을 바꾸고, 감정을 바꾸며, 생각까지 바꾼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웃음으로 넘겨보시기 바랍니다. 찡그린 얼굴을 펴기만 하는 것으로 마음까지 따라서 펴지게 되는데요. 웃음은 인생의 약이라고도 합니다. 웃는 얼굴은 얼굴의 좋은 화장일 뿐만 아니라 생리적으로도 피의 순환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도서관 가는 길, 김선희입니다. 오늘은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을 소개할게요. 첫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는 작가의 데뷔작이자 2003년 문학 동네 신인상 수상작인 <프랭크와 나>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발표한 열한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럼 첫 곡 듣고 오늘 방송 시작할게요.
2) 기존 소설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소설의 경계를 저 멀리 밀어내버린 문제작 <고래>의 작가 천명관이 또 다른 소설의 공간을 열어 보이는데요. <고래>가 소설 바깥에 존재하는 소설 이전과 소설 이후의 것들, 온갖 기담과 민담, 영화와 무협지 등 키치와 대중문화의 파편들을 모아 이야기를 펼쳐 보이면서, 그 ‘이야기’의 힘으로 기존 소설의 문법을 통렬하게 일탈하고 소설의 서사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유도했다면,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비교적 개연성과 핍진성, 리얼리티를 갖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 곡 듣고 이어갈게요.
3) 열한 편의 중단편에서 작가의 시선은 경탄을 자아내는 환상적인 이야기의 활력보다는 현실과 인간관계에서 한 개인이 부딪히게 되는 곤경이나 사소한 소동과 갈등들 그리고 그와 연루된 곤혹이나 회환과 같은 심리적 양태들을 주목하는데요. 때문에 <고래>에 출몰했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그 형태를 바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인데요. 운명과 그 운명에 의해 지배되고 조종되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무력한 개인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부조리와 아이러니로 가득한 법입니다. 그럼 다음 곡 듣고 이어갈게요.
4) 천명관의 장점은 불행한 이야기도 무협지처럼 유쾌하게, 코미디처럼 익살스럽게 펼쳐 보이는데 있는데요. 슬픈 이야기인 줄 뻔히 아는데도 포복절도하면서 눈물을 쏙 빼게 되는데, 눈물 끝에 진한 소금기가 느껴지는 것이 천명관의 소설을 읽는 맛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백수로 살아가는 남편이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사촌 프랭크와 만난 이후 조폭과 조우한다는 설정의 <프랭크와 나>와 샐러리맨에서 노숙 인으로 전락하는 기막힌 인생유전을 그린 <숟가락아, 구부러져라>가 그런 재미를 맛 볼 수 있는 대표작들입니다. 그럼 다음 곡 듣고 이어갈게요.
5) 천명관의 단편들은 ‘저 짐작할 수 없는 일들’, 내 뜻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일들의 아이러니에 대한 유머러스한 보고서인데요.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여동생과 바람난 남편에게 유서를 남기고 독이 든 샴페인을 마시지만, 자기가 죽는 대신 남편을 독살하고픈 ‘나’의 무의식을 무심코 대신 실현해주는 우리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실수로 정작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결국, 독자와 함께 천천히 유서를 읽어 내려가며 동페리뇽을 홀짝거렸던 작가 남편이었다는 통쾌한 복수극입니다. 그럼 다음 곡 듣고 이어갈게요.
6) <고래>가 끝없이 확장되는 이야기, 제 스스로 뻗어나가는 이야기였다면,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현실과의 긴장을 놓지 않고, ‘소설 밖의 이야기’를 소설 안으로, 현실을 사는 우리의 옆자리로 끌어다놓는데요. 그리하여, 예기치 않게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 우리의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삶의 비의를 별것 아니라는 듯이 무심하게 건드립니다. 해프닝으로 시작된 사건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가벼운 반전으로 이어지고, 맥없이 튀어나왔던 헛웃음은 어느새 쓴웃음으로 뒤바뀌게 되는데요. 그럼 다음 곡 듣고 방송 마무리할게요.
7) 천명관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부자든 가난하든, 평범하든 유명하든, 젊든 늙었든 하나같이 어긋나는 생에서 구원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천명관은 단단해 보이지만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얇은 껍데기 아래 있는 이 삶의 순간을, 우리 곁에 도사린 ‘잔혹한’ 일상의 면면을 더없이 경쾌하고 담백하게, 또한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고자 하는데요. 어느 하나로 정리되거나 간결하게 정의할 수 없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꼬여 돌아가는 삶의 부조리와 아이러니가 농담과 유머를 빌려 스스로 주장하는 세계, 그것이 천명관의 세계일 것입니다. 오늘 도서관 가는 길은 <유쾌한 하녀 마리사>였고요. 지금까지 아나운서 김선희, 엔지니어 김나람, 김현우, 피디 이한진, 작가 김윤혜가 함께한 방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