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註 : 현재 진행중인 김동수 지도교수님의 상징주의 시학의 기반인 발레리 - 정지용- 라캉 씨리즈 강의는 문-사-철을 지향하며 시창작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가정 중요하며 매력적인 테마입니다. 특히 라캉이론은 서재내 골드라인에 모셔놓고 항상 들춰보며 공부해야 하는 기초적인 시철학 이론이라 할수 있습니다. 금번호에서는 최근 한국디카시학회 공식 온라인 밴드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졸평 한 작품을 가져와 시작노트와 단평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평단계의 이단아적인 시도이지만 강의를 복습한다는 차원에서 감행한 별난 평문이오며 가능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용어선정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온글님들의 건필을 응원합니다.
빈집의 체온
푸르던 生 다
갉아 바친
허공 맑은 자궁
어미의 유산
— 悳泉 나병훈
<시작노트>
아침 萬步걷기, 송충이들에 의해 모든 잎을 빼앗겨 버린 쓸쓸한 가지 끝. 걸음을 붙들어 맨 뽕나무 한 그루. 가만히 풍경속을 들여다보니...아!! 눈부신 생명의 반전이 꿈틀대고 있었다. 푸른 잎을 실컷 먹어 치운 어미는 뜨거운 체온만 매달아 놓은 채 자취를 감추었지만, 앙상해진 가지 끝에는 세상에서 가장 투명하고 포근한 방, 내 그리운 어미의 자궁! 경이로운 생태 디카시의 순간 포착점을 놓칠 수 없었다.
<자평해설>
비움이 낳은 생명의 역설
― 自作〈빈집의 체온> 깊이 들여다 보기
나병훈 . 문학평론가
〈빈집의 체온〉은 소멸의 풍경에서 오히려 생명의 기원을 발견하는 역설의 시학이다. 잎의 살은 사라지고 잎맥만 투명하게 남았다. 그러나 나는 그 훼손을 죽음이나 상실의 표정으로 읽고 싶지 않았다. “푸르던 生 다 / 갉아 바친”이라는 두 행을 통과하면서 사라진 푸름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생을 먹여 살린 증여의 흔적으로 이미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레리의 시적 인식을 떠올릴 수 있다. 그에게 시는 대상을 그대로 설명하는 언어라기보다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장에 가깝다.(김동수 시학강의 참조> 이 작품 역시 벌레 먹은 잎이라는 생태적 사실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허공 맑은 자궁”은 사진에 없는 것을 사진 속에서 탄생시킨다. ‘허공’은 비어 있음이고 ‘자궁’은 품고 있음이다. 비어 있으면서 품고 있다는 모순이 한 구절 안에서 충돌하면서, 훼손된 잎은 어느 순간 가장 투명한 생명의 방으로 변모한다.
또한 ,정지용의 시적 감각을 소환하면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설명보다 감각을 앞세운 절제에 있다. ‘허공 맑은’이라는 사유는 관념을 진술하지 않고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일으킨다. 특히 ‘맑은’은 사진 속 햇빛에 드러난 성긴 잎맥과 만나면서,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자칫 익숙해질 수 있는 정서를 하나의 투명한 감각으로 바꾸어 놓는다. 말이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과 말이 서로를 비추는 예술디카시적 순간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삭제된 자리다. “허공 맑은 자궁” 다음에 곧바로 “어미의 유산”이 놓인다.
허공 맑은 자궁
어미의 유산
이 여백은 이 디카시의 白眉다. 그것은 단순한 행갈이가 아니다. 한 生이 사라진 자리이며 동시에 다음의 모태적 生이 건너오는 통로요 탯줄이다. 원래 그 자리에 ‘낙엽’이나 ‘누워버림’ 같은 설명적 언어가 들어갔다면 사진이 이미 말하고 있는 사실을 반복하는 실수가 발생, 디카시는 실패했을 것이다. 그것을 지움으로써 사진이 한 행을 대신 쓰게 되었다. 이 침묵의 행이 작품의 신비평 인식에서 보면 곧 긴장(tension)이며 시의 여운과 사유를 오히려 높인다.
제목 〈빈집의 체온〉 또한 작품의 중심 역설을 압축한다. ‘빈집’에는 원래 체온이 없다. 그런데 이 빈집은 따뜻하다. 몸은 사라졌으되 체온은 남고, 잎은 사라졌으되 잎맥은 남으며, 어미는 사라졌으되 생명은 남는다. 그래서 제목의 ‘빈집’은 결핍의 공간인 동시에 생명이 머물다 간 자리이고, ‘체온’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기억이 된다.
결국, 이 작품이 포착한 것은 벌레 먹은 뽕잎이 아니다. 한 존재가 자신을 비워 다른 존재의 삶이 되는 순간이다. 발레리적 사유의 긴장이 ‘허공’과 ‘자궁’의 역설에서 발생한다면, 정지용적인 감각의 절제는 그 역설을 ‘맑은’이라는 한마디로 눈앞의 풍경으로 돌려놓는다.
그리하여 사진 속 앙상한 잎맥은 더 이상 죽은 잎의 잔해가 아니다. 다 내어주고도 아직 따뜻한, 생명의 빈집이다. 예술디카시만이 연출할 수 있는 시학적 묘미이며 셍의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 悳泉
문학평론가/디카시인/ 칼럼니스트
'18년 《수필과비평》문학평론 데뷔
'26년 《문학사계》문학평론 신인문학상 등단
평론집 : [언어의 숲,사유의 길],[詩,거꾸로 읽기]
동인디카시집: [감정계약서].[물낯에 햇빛이 비치면]
수필&칼럼집:[쌀과의 연애론 1,2 ] 外
前 <온글문학>,<씨글문학> 편집장
現 한국디카시학회 전북지부장,시사모운영위원,
글벼리 디카시 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