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기 무섭게 오토바이를 타고 논밭 한 가운데라도 마다하지 않고 배달 나가는 시골 다방들의 모습은 우리네 삶의 언저리에 붙어있는 색 바랜 영화 포스터와 같은 것이다. 요즘 들어 “카페”가 늘어나서 점점 줄어드는 이른바 노땅 다방이지만 서울 구석구석에서 중소 도시와 읍내까지 터주대감처럼 아직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원두 커피로 입맛을 바꾸지만, 한편으로는 그 달짝지근한 다방 커피 맛을 못내 잊지 못한다.
많은 여성들이 다방에서 일을 하고 있다. 20살부터 3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인데 밝은 태양아래 거리를 휘저으며 커피를 배달하는 여성들을 우리는 레지라고도 부른다. 레지는 영어의 register에서 유래된 말이다. 경북 하양에도 약 20곳의 다방이 있다. 한 다방에는 아가씨 세 명으로 제한을 둔다고 한다. 그녀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일을 한다.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닌 그들의 직업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오토바이로 커피를 배달한다. 오토맨이라는 젊은 남자가 있지만, 아가씨들이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오토바이 운전은 매우 위험하다. 일인승인 오토바이에 두 명은 물론이고 세 명까지 타기도 한다. 중앙선 침범은 물론이다. 그들의 한달 급료는 150만원 정도. 액수로 보기에는 많아 보이지만 다방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빚에 쪼들리고 있다. 그들의 빚 내역은 아직 미지수다. 그들만의 비밀인 것이다.
이렇게 일들을 하고 한 달에 한번 쉰다. 대부분의 고향이 타향인 그녀들은 갈곳이 없다.
친구들도 타지인 이곳에는 없다. 혼자 시내에 나가 옷을 사거나 화장품 등을 사기도 한다.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이라서 월급의 일부분이 화장에 드는 비용으로 쓰여지고 있고, 또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바람에 화장이 지워져 자주 화장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녀들은 아프지도 못한다. 아파서 하루 일을 못하면 그녀들의 월급 봉투는 가차없이 얄팍해 진다. 또한 그녀들은 한달 후면 이곳을 떠나
다른 지방의 다방에서 일을 한다. 일자리를 옮길 때마다 소개비를 주어야해서 사실상의 월급은 많지 않다. 가정형편상 일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형편의 박봉에서도 집으로 돈을 붙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티켓” 이라는 출장영업으로 그녀들은 더욱 피곤하다. 노래방이나 술집에서 이야기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손님 중엔 그녀들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 대부분이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피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녀들의 스트레스는 담배 한 모금에 잊어버리고 다시 배달을 나가 손님들과 이야기한다.
그녀들은 꿈이 있다. 간호사가 되고 싶은 서양은 학원비를 위해 다방에 들어 왔다고 한다. 손님의 무시하는
말투에 눈물을 흘리는 친구를 위로하는 모습이 이미 간호사로 보였다. 이렇게 젊은 그들의 몸과 마음은 지쳐가며 창 밖으로 그들의 오토바이 소리는 멈출 줄을 모르지만, 그녀들은 오토맨의 등에 기대 꿈을 생각하며 밤바람을 맞는다.
김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