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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은 반결제일을 맞아 스님들에게 “이제 월드컵도 끝났으니 더 정신차리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경책을 했다. 전계대화상을 역임한 스님은 늘 수행자들을 일깨우는 법문을 아끼지 않는다. |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6년이 되는 지난 6월25일은 하안거 결제가 꼭지점에 이른 날, 사찰에서는 이날을 반결제일이라고 한다. 음력 4월15일부터 7월15일 까지 90일간 결제 중 꼭 45일 째 되는 날이다. 이날 선원에서 화두를 참구하던 스님들은 그동안의 공부를 점검하고 남은 절반을 더 열심히 정진하기위해 각오를 새로 다진다. 큰방이나 대웅전에서 방장 조실 선원장 스님이 나서 그간의 공부를 평가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해인사에서는 방장스님의 법문을 듣고 율원장 스님의 주도로 포살법회를 열기도 한다. 많은 선원에서는 반결제 때 ‘소풍’을 가기도 한다. 소풍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앉아있어 자칫 약해지기 쉬운 다리 근육을 키우고 관절을 튼튼하게 하기위해 인근 산을 오르는 정도다. 산행 중에도 스님들은 화두를 놓지 않는다. 결제, 해제 구분 없이 늘 화두를 드는 수좌들에게 반결제는 큰 의미가 없지만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안이다.
조계총림 송광사도 이날 반결제를 맞아 법회를 열었다. 방장 보성스님이 수좌들에게 격려와 함께 더 가열찬 정진을 당부했다. 반결제 법회를 마치고 다시 부산으로 온 스님을 만났다. 이날은 마침 음력 6월 초하루. 송광사 부산 포교당 관음사는 아침 일찍부터 신도들로 북적였다. 법회가 열리기 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도들이 스님에게 차를 올렸다. 신도들이 물러간 뒤 스님은 전날 열린 반결제 이야기부터 꺼냈다. 월드컵 때문에 공부 분위기가 많이 흐트러졌다는 것이 스님의 요지였다.
“어제 반 살림이라 공부하는 스님들을 모두 모아놓고 얘기했어. ‘이제 월드컵도 끝났다. 어떤 절은 월드컵 보느라고 큰 텔레비전까지 설치했다더라. 중이 그러면 안돼. 중은 선수들에게 근본자세를 불어넣어 주어야지. 싸우는 거 보는 것은 스님들의 본분이 아니다’라고 말했어.” 월드컵이 한창일 때 캄보디아의 어느 고승도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것이 외신에 소개된 적이 있다. ‘월드컵 보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계율에 어긋난다’고. 보성스님은 경기에 이기고 지는 것을 보고 즐기거나 안타까워하는 것은 승가의 본분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스님은 그래서 “흰옷을 입었든지, 검은 옷을 입었든지 그런걸 구분하고 참견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선수가 와서 물어보면 넌 어떤 자세로 임해라는 말만 해주면 돼”라고 일갈했다.
사실 이번 월드컵 때문에 선원은 방부 들일 때부터 몸살을 앓았다. 월드컵 시청을 불허한 선원은 거의 대부분 납자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일부 선원은 아예 ‘월드컵 시청 불가’를 청규에 넣기도 했다. 받아들일 수없다는 스님들은 다른 절로 발길을 돌렸다. 물론 아예 텔레비전조차 없는 송광사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방장스님은 월드컵에 들뜬 마음을 경책했다. 왜 공부하는 스님들은 월드컵을 보면 안 되는가. 스님은 신도들의 정성과 큰 스님들의 가르침 두 가지를 들었다. “신심있는 신도들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갖다준 공양을 헛된데 쓰면 안 된다. 옛 어른들이 텔레비전 보면서 공부하라고 한 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월드컵 이야기에 이어 스님은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큰 스님들은 말한다. 공부란 거창하고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 있다고. 그래서 차를 마시는 것과 선이 같다고(茶禪一如)도 하고, 농사짓는 일이 곧 선(禪農一致)이라고도 했다. 〈임제록〉에서 임제스님은 말했다. “납자들이여, 불법은 애써 힘쓸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에 아무 탈없이 똥 싸고 오줌 누며(屎送尿) 옷 입고 밥 먹으며(着衣喫飯)〕 피곤하면 잠자면 그뿐이다.(困來卽臥)” 도는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대소변을 보는 일상생활 행위에 있다는 말이다. 부처님도 늘 그 점을 강조했다. 바른 마음을 갖고 청결하며 솔선수범하는 일상생활을 잘 할 것을 늘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반결제 법상에 오른 스님도 다른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수좌들에게 “주는 대로 먹고 불평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내렸다. “후원에서 해주는 대로 먹고 좀 짜다 싶으면 물 타면 된다. 원주한테 절대 음식 타박하지 말라. 남방불교를 보라. 탁발하면 된밥 있고 진밥 있다. 밥 종류가 무엇이든 모두 모아 한테 섞어서 똑 같이 나눠 먹는다. 반면 우리는 원주가 일정하게 밥을 한다. 국도 끓이고. 내가 내밥 먹는거 직접 책임지지 않아도 되면 그 시간 만큼 더 노력해야 한다. 원주는 밥 짓는데 2시간이나 걸린다. 그만큼 노력도 안하면서 2시간 고생한 원주 탓만 한다. 된밥이든 진밥이든 그냥 먹어라.” 스님은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스님은 덧붙혔다. “부처님이 조건 좋은데서 공부했나. 먹을 것은 탁발하고 공부는 나무 밑에서 했다. 우리처럼 기와집에서 추우면 따뜻하게 덥히고 더우면 시원하게 하는 그런 좋은 조건에서 한 것이 아니다”며 (불교의 성쇠는) “돈이 아니라 인물이 있느냐를 갖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들 경책에 이어 세속을 위한 청량법문도 청했다.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힘든 서민들의 생활, 치솟는 부동산, 더 벌어지는 계층간 격차 등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날로 황폐해지고 이를 보듬어야할 정치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시절이다. 이런때 일수록 사람들은 큰 스님들의 ‘한 말씀’ 듣기를 갈망한다. 스님은 그러나 “사회말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사회는 조석으로 변하고 우리는 변하지 않는 공부를 한다. 그런 우리가 변하는 애기를 해서는 뭐하느냐”는 것이 스님의 침묵 이유다.
사진설명: 초하루 법문을 하기위해 송광사 율원장 지현스님과 함께 법당으로 향하는 보성스님(왼쪽). |
하지만 스님이 세상을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늘 깨어있으면서 중생들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때로는 어느 비평가보다 더 날카롭게 사물을 직시한다. 그것이 공부의 힘인지 모른다. 마침 조간이 스님 앞에 놓였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급식관련 기사가 눈에 확들어 온다. 스님이 지나가는 듯 툭 던진다. “아비 어미가 아들 딸 팔아 돈 벌겠다는데 더 무슨 말을 해.....”
스님은 부모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20여년 전 이야기다. 전남 화순에 남매가 출가했는데 누나는 가람 수호에 뛰어나고 동생은 수행력이 특출났다. 이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어머님 때문이라고 했다. 그 어머니는 동네에서 분쟁을 잘 해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번은 모친이 새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하는데 마을 사람들 사이에 큰 다툼이 일었다. 급기야 분뇨를 방에 뿌리는 폭력까지 벌어졌다. 사람들 손에 이끌려간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분뇨로 더럽혀진 방을 청소했다. 새옷을 버려가며 비누로 깨끗이 닦는 모습을 지켜본 두 사람은 싸움을 중단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다 싸웠소.” 그 한마디만 한 체 청소를 마치고 떠났다 한다.
“그같은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수행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소.” 스님은 기자를 쳐다보며 말을 맺었다. 법회 시작 전까지 1시간은 쉬어야한다는 스님의 말에 방을 나섰다. 세상과 수행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일갈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스님의 명성을 실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좁은 관음사 경내는 기도하는 신도들로 이미 가득차 있었다.
부산= 박부영 기자 / 사진 김형주 기자
절구통 효봉스님 손상좌
전계대화상 역임한 율사
경북 성주군에서 태어난 범일(梵日) 보성스님은 올해 세납 79세. 조계종 스님들에게 계를 내리는 전계대화상을 역임한 율사며 원로의원이다. 또한 삼보사찰 중 하나인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이기도 하다. 종단 단일계단의 기초가 되는 행자교육원 설립 등 종단 위계를 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45년 해인사에서 구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해인사에서 상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절구통 수좌로 불리던 효봉스님의 손상좌로 효봉스님이 득도한 금강산 신계사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송광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등을 맡아 사찰과 종단 행정을 책임진 경험도 있다.
스님은 인터뷰 말미에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며 “여수 석천사 진옥스님이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참수행자다. 많이 도와주라 ”고 말했다.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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