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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무엘상 16장 12~16절
제목: 기름을 부으라
지난주로 2019년도를 행정적으로 마감하고
오늘부터는 2020년을 행정적으로 시작하는
첫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2020년 표어로 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1년간 잘 간직하셔서
이 말씀이 한해가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처음이 중요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이 출발이 좋으면
결론이 조금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임금이었던
사울이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하니까
이제 사울을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임금으로 다윗을
세우기로 마음을 먹으시고
어느날 사무엘에게 이새의 집으로 가서
그 아들 중에 왕으로 세울 사람이 있다고
16장 1절에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그 아들 중에 누가
왕이 될 사람인지 가르쳐 주지 않으세요.
단지 이새의 집에 있던
8명의 아들 중에 한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의 뿔에 기름을 담아서
그에게 부으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때 사무엘이 하는 이야기가
만약에 사울이 이것을 알게 되면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느냐?
왕을 세우러 간다고 하지 말고
너가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제사를 지낸다고 말하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사무엘은 무사히 이새의
집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이새의 첫째 아들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더니.
큰 아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나머지 아들
모두가 왕의 후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에게
“여기 모인 아들 말고 없느냐?” 물었더니
있기는 있는데 그 아들을 데려오고 싶지 않은
의사 표현을 하게 됩니다.
그때 사무엘이 말하기를
그를 내 앞에 데려오기 전에는
“네가 내어준 의자에 않지 않을 것이며,
네가 내어준 음식도 먹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을 해줍니다.
그래서 다윗을 데려오게 되어졌고
다윗을 기름 부어서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쓰실 계획을
선포하게 되어졌을 때, 하나님의 영이
크게 감동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기름을 부으라”입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은 기름 부으심을
일년간 경험해야 하는데, 기름을 바르는 것과,
기름을 부으는 것에서 개념의 차이가 있습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적은 약의 기름을
손에 묻혀서 바를 때의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붓는다는 것이 양이 뿌리에 담았던
기름을 머리에 부으라는 거예요.
그러니 굉장히 많은 기름인 거예요.
그러면 기름을 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첫 번째, 권능이 임하게 됩니다.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당시 양의 뿌리에 기름을 담아서
사람의 머리에 붓는다는 것은,
제사장을 세우거나 왕을 세울 때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아무나 세우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지파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이 집안은 제사장이 되는
지파가 아니었습니다. 유다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그가 다음 왕이 될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16장 1절에 말씀 하셨잖아요.
그리고 기름을 머리에 부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왕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름을 머리에 붓고 나서
다윗은 14년 후에 왕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하나님의 신이 감동해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되느냐?
이 이후의 내용을 잠깐 읽어 드렸는데
어느날 사울에게 악신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떠나가고 악한 영이
그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면 악한 영이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울은 신하들도
느껴질 만큼 악신이 들어왔습니다.
왕이 귀신에 들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신하들이 수금을 잘타는 자를 불러서
사울에게 들린 악신을 쫒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이 수금을 켜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니까?
사울에게 있던 악신이 떠나갑니다.
이게 기름 부은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약속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오직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다.”라고 언약을 하십니다.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단순히
전도만 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대표격인 베드로가
정말 예수님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예언을 하였더니 그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잖아요.
예수님은 절대 죽지 않으실 것이며,
또한 예수님을 자신이 지킬 것이라 말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정말 진심이 담긴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때에,
베드로는 이러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
아직 그에게 기름 부으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언약을 지킬 수 없는 거예요.
처음부터 다윗에게 귀신을 쫓을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이, 기름 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바로 사울에게 악신이 들리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신을 내쫓게 한 것입니다.
솔직히 저와 여러분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삶 가운데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들려오는 설교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우리 삶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러한 마음이 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말씀대로
살 수 없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끔 제가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목사님께서 저분에게 금요철야 좀
나오라고 이야기 좀 하세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그런 이야기 안하고 싶은 목사가
이 땅 가운데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잘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이야기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드렸잖아요.
베드로가 의리가 있었던 사람이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해요.
왜요? 기름 부으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은 있고,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 기름 부으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요.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고, 기름 부음을 받으니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요.
증인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전도만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그래요. 자기도 사랑하고 싶다고,
나도 이해하고 싶다고, 용서하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찬송가 가사를 보면
“우리 결심 깨어지기 쉬우나”
아무리 다짐을 해도 결심이 안돼요.
왜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은혜를
우리가 입지 아니하면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름 부으심의 은혜를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성령이 임하셨고, 온 집안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충만하게 그들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기름을 바른 정도가 아니라
기름이 부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났더니 삶의 변하게 됩니다.
증인의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이
기름 부으심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름을 부으시면
안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기름 부으심의 은혜가 어떻게 작용을 하느냐?
이새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새가 생각을 해도
양의 뿌리를 병으로 만들어서
기름을 담아가지고 왔었거든요.
“어? 우리 아들 가운데 지도자를
세우실 모양인가 보내?”생각을 했을거예요.
그런데 막내아들이 절대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능성 완전히 0%였던 다윗에게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부어집니다.
그랬더니 왕이 되어지게 됩니다.
아버지도 인정하지 않았어요.
데리고 오고 싶지도 않았어요.
사무엘상 16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와
키를 절대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가서 이 말씀을 일고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키를 보지 않으신다고 하니 말입니다.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요. 다윗이 얼마나 볼품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아 너 그 집에 가서 키와 용모를 보지 말라”
다윗은 형제들보다 키와 용모가 볼품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보아도 가능성 제로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니까 왕이 됩니다.
여러분의 사업장에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해요.
가능성 제로였던 사업장도 기름을 부으시면
왕이 되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 힘으로 능력으로
절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 자녀들의 모습이
가능성 제로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왕이 되어지게 됩니다.
기름 부어지니까 장로도 되고,
기름 부어지니까 권사도 되고,
어느 분이 이렇게 말을 해요.
집회에 나가서 만난 장로님인데
함께 식사를 하다가 자녀들은
교회에 잘 나오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자녀가 셋인데
둘을 그럭저럭 주일날 나오는데,
한 놈은 주일날 나오지 않는대요.
그래서 때려고 보고, 설득도 해보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봤지만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는 20대 중반이 되었다 보니까
때릴 수도 없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그 아들 놈이
장로님의 뒤를 이어서 장로가 되었으면
너무나 좋겠네요.” 이렇게 말했더니
장로님이 교회만 나오면 좋겠대요.
아버지도 어떻게 보면
약간의 포기가 있는 거예요.
이새도 이러한 마음인거예요.
가능성이 제로인거예요.
우리들 집안 중에 왕을 세울 사람이 있다면
다윗은 절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전혀 가능성이 없던
다윗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니까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가능성 제로라고 생각하는
환경과 요소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면
가능성 100%로 바뀌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자녀든, 사업장이든, 인생의 문제든 말입니다.
여러분 인생이요? 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안되는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요.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 이새는 좌절했을 것입니다.
“저 아이는 안됩니다.”
“저 아이 교회 나오게 하려고요!”
“저 아이 예배 생활 드려 보게 하려구요”
“그런데 안됩니다.”
베드로가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예수님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안되는 것을 어떡합니까?
왜? 안되느냐?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가족이든, 사업장이든, 삶의 문제든
그것은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기름을 부어달라고 기도하면
그때부터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금요일에 모이고 있느냐 하면?
보통때 금요일은 혹시 못나와도
이때 만큼은 나왔으면 하는
주님의 마음을 담아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주 금요일날 다오세요.
이번 금요일이 행정적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금요철야예배를 다 드리세요.
첫 출발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의 임재하심을 사모하느냐?
가능성이 전혀 없는 다윗이란 인생 가운데서도
왕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설레임 가운데
기다림의 영성이 성장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14년 전에 기름을 부으심으로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이
바로 왕이 되지 못해요.
14년 후에 왕이 됩니다.
그리고 이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윗은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의 강도가 강해집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윗이 숨을 은신처도 만들어주고,
다윗에게 식량도 몰래 공급해 주는데,
이게 사울의 고난이 심해지고,
다윗이 왕이 될 만한 건덕지가 안보이니
백성들이 다윗을 밀고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죽하면
블레셋의 가드왕에게
망명을 한다는 것이죠.
다윗이 기록한 시편을 보면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기록한 것도 있지만
14년의 광야 생활 시절에
기록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제일
유명한 시편이 바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14년이라는 시간이
입으로만 떠드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엄청난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심을 사모하며 기다려라”
“내가 다시 너희를 데리러 온다”
제가 우리 카페 글을 자주 올려요.
근데 어저께 “기다림”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두려움이고, 하나는 설레임입니다.
왜 두렵습니까? 오신다고 하면서
예수님 혹시 안오시는 것 아니야?
혹시 내 기도가 응답이 안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두렵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왜 설레이느냐?
확실하게 예수님이 오실 것을 알기에
옛날에 “주님 고대가”라는 찬양을
참 많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찬양인데
가사 가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먼하늘 이상한 구름이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해서
머리 들고 멀리멀리 봐라보네’
예수님 다시 오실 때,
구름타고 오신다고 했으니까
혹이나 이상한 구름이 떠있으면
설레인다는 것이죠.
지금 다윗은 두렵지 않아요.
물론 다윗도 사람이다 보니까
잠깐 흔들렸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흐름을 놓고 보면요.
다윗은 절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아요. 설레이는 거예요.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에
언제쯤 응답하실까? 설레인다는 것이죠.
만약에 기름부음이 없다면
다윗은 두려운 마음 가운데
주님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잖아요.
다윗의 고난이 점점 강해져요.
처음에는 약이예요. 그러다 중이되고,
마지막에는 강이 되어진다는 것이죠.
처음에 강이었고 나중에 약이 된다면
응답의 징조가 보인다고 생각하고
힘들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상황이 흘러갔다는 것이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다윗의 믿음은
점점 더 좋아지게 됩니다.
왜요? 자기의 힘으로 기다린게 아니예요.
기름이 부어졌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본문 가운데 보아야 할 말씀이
본문 13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이날 이후로” 기름 부으심을 받은
이후부터 쭈욱~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름을 완전히 들이 부었잖아요.
그렇기에 사람이 은혜를 받을 때,
어설프게 받으면 본인이 힘이듭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제가 가끔 금요 철야 때, 우리교회든
다른 교회 교인이든 안수기도를
오래 할 때가 있습니다.
오래 하는 사람 부러워하지 마세요.
얼마나 질기면 오래 하겠어요.
어설프게 안수를 하다보면요.
이게 안한만 못하기 때문이예요.
오히려 더 이상해져요.
그렇기에 기름을 부었다는 표현이
너무나 제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여러분 완전히 기름 범벅이 된거예요.
그래서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여러 가지 문제가 찾아오면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말로 사가지고 와서
머리에다 그냥 듬뿍 부어버리고 싶어요.
그냥 아주 좔좔 흘러 버리게
다윗이 기름 부으심을 받으니까
기다림의 영성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설레임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권능이 생깁니다.
그리고 안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설레임 가운데 기다림의 영성이 생깁니다.
저와 성도님의 삶 가운데
주님의 임재하심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