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편지는 제대를 앞두고 내가 봉원님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고 그 아래 [한글 전용과 나]라는 글을 내가 봉원님에게 내 심정을 쓴 글입니다. 난 본래 국어학 전공이 농업 전공자이고 농촌운동,민족운동의 하나로 국어운동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재대하면 농촌에 들어가 사회개혁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내 심정을 동지들에게 알려주고 내 대신 잘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아래 글을 보냈는 데 중간까지 쓴 초안이 있기에 여기 옮깁니다. 혹시 봉원님이 그 편지를 누구에게 주었고 잘 보관했는지 궁굼합니다.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머지 내용은 국어운동대학생회 만들고 활동한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정책을 펴고 운동해야할 것인지 들에 대한 것일터인데..난 그 때 정부가 한글전용을 시행하겠다고 했기에 잘 할 것으로 알았는 데 우리가 군대에 있는 동안 그 때 김종필 총리와 민관식 문교장관이 한글전용을 방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그것을 막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후 난 농촌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았고 농촌운동보다 국어운동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고등학생 때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해 대학생 기분으로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70년도에 외솔이 돌아가시지 않고 우리들이 군대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김종필 이희승 일파의 못된 짓을 막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듭니다.
받을 사람: 제1027부대 02부대 중위 이택로
보낸이 : 제2795부대 간부교육대 중위 이봉원
이형 보시오. 이제 정말 말년 같소. 나른한 기후도 그렇고 달력이 뜯기우는 것을 보아도 분명히 그런 것 같소이다. 이형 편지는 몇번 반갑게 받았는 데 내 편지는 못 받았다니 ...[숙소로 보낸 것 못받았다구요. 또 인편에도 한번 소식 줬었는 데] 어쨋던 이형의 변함없는 정열과 신념 뜨거운 바 있소. 얼머 전에 서울에서 김정수군을 만났는 데 요새 신문에 보니까 다시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것 같더이다. "고운이름 자랑하기" 그 다섯 번째 행사를 갖고 그 시상식이 5월 15일 11시 서울대 강당에서 있다하니 나도 그날은 꼭 참석을 할터이니 이형도 가능하면 참석해서 그날 감격적인 만남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원고 건도 의논해 봅시다. 참 우리 부대에 최근 전입한 장교들이 있는 데 - 침
쟁이 최창환 중위와 임경남중위- 그들을 통해 이형의 활약 많이 들었소. 좌우간 남은 50여일 정말 무사한 근무가 되도록 명심할 것이며 나 역시 빌겠소. 15일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오늘은 이만 줄이오. 안녕! 1972.5.1. 춘천서 이봉원
[한글 전용과 나]
1. 나는 왜 한글 전용을 주장하게 되었나?
"한글은 우리 글이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 이 말에 대해 이의를 제지할 한국인은 없으리라.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한 지금까지 한글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라고 배웠고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한글을 즐겨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는 것 같으며 우리 국어가 여러가지 개선 발전 시켜야 할 점이 많은 데도 이렇다 할만한 활동이 적은데 대해서 나는 고교시절부터 의아심을 품었었고 이에 대한 불만이 내 가슴에 가득 했었다.
문자정책과 그 생활에 있어서 어딘가 모순과 위선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 전반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차차 깨달았다. 나는 한글 전용이 좋은지 나뿐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였으며 결론은 한글전용은 꼭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글 전용은 어느모로 보나 타당성이 있었고 실지 나로서 한글은 한자에 비해 배우기 쉽고 쓰기 쉽고 이해하기 쉬었다.
고등학교 때 한글 전용에 대해 한글학자 또 일반 사회인들이 안좋다 좋다 입다툼만 일삼고 있을 때였다. 나는 내 학우들에게 한글 전용을 하면 좋은가 나쁜가 물었드니 대부분 아무런 불편이 없고 좋다고들 하는 데 어떤 애는 앞으로 진학하기 위해 또 출세하기 위해 한자를 배워야겠고 배우기 위해 한자혼용을 찬성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한자혼용을 찬성하는 사람 대부분이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아부하는 것이었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의 의견에 도무지 동감이 가지 않았다. 내 그 때 한자 혼용과 외래서 문제로 느꼈던 일을 얘기해 보련다.
그러니까 고교 1학년 2학기 한창 독서 주간이 실시되는 가을이었다.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려하니 책은 수만 권이 되겠는 데 볼만한 책,내 욕망을 채워줄 듯한 제목의 책들이 대부분 원서(일어) 또는 한자혼용된 책들이며 어문 자체도 실 사회에서 잘 쓰지 않는 용어 또는 외래어가 많아서 이해하는 데 어려웠다. 그 내용들이 쉬운 말 한글로 충분히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내 불같이 타오르는 독서열과 진리에 대한 욕망은 여지없이 꺽이고 말았다.
고등학교 도서관에 저런 책들만 있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도서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 현상 같았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우리 학문과 문화 정도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문화 문명이 왜 요모양 요꼴 밖에 되지 못하고 후진 상태에서 허덕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듯했다. 우리 말 우리 글로 글을 써 놓으면 안될 어떤 이유가 있단 말인가? 나 같은 학생이나 가난하고 교육받을 기회가 없어 한글 밖에 배우지 못한 사람을 책을 볼 자격도 권리도 아예 말할되었단 말인가? 우리가 읽어선 안될 무슨 특별한 내용들이 있단 말인가? 여러가지 의문과 함께 지금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이 문제 해결이구나 생각 되었다. 이것이 나와 민족과 국가가 부흥할 수 있는 기초 문제라 믿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한글 전용을 꼭 해야겠다고 느꼈고,국어 발전은 국가 발전이라 생각했다. 나는 내 이 뜻을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그들은 내 뜻을 이해는 하면서 동조하려하지 않았고 대원군 같은 고루한 생각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그들의 말을 부정했다. 한자는 지금 우리가 영어 공부하듯 하나의 외국어로서 공부하고 사용하자는 것이고 외국의 좋은 문화 문명과 자기의 좋은 사상과 연구 실적 같은 것을 한글과 쉬운 우리 말로 써서 누구나 쉽게 빠르고 바르게 익히고 그 기초위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하자고 얘기했다. 또한 한글 전용은 한국민의 지식 수준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 빨리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바른 사상을 확립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인생의 많은 부분을 새 역사 창조를 위해서 바칠 수 있어 선진국이 빨리 될 수 있다고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다. 이런 내 뜻은 굳은 신념이 되었다.
그래서 같이 하숙하던 박형석군과 이 군은 한자 공부를 하려해도 내 눈치를 보았고 혹시 무의식 중에 편지 같은 데에 한자를 쓰게 되면 내게 양해를 구하곤 했다. 그들이 한자를 쓰는 것을 내가 보면 (그들이 좋아 하던 않던 듣던 안듣던) 한글 전용 내 뜻을 무조건 얘기하고 설득하려 들기 때문이고 내 뜻을 이해해주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나는 도서관에서 학술 책들에 실망한 나는 신문 정기 간행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신문에서 호기심이 가는 정치 경제면은 한자 혼용이라 불편했고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은 한글로 써진 것은 살인 강간 등 보기만 해도 지저분한 얘기들로 가득찬 사회면 뿐이었다. 한글만 깨우친 사람은 이런 지저분한 것만 알고 생각하란 말인가! 정말 어이 없었다. 한탄스런 일이었다.
외래어는 언제부터 그렇게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고등학생인 나는 영어를 좀 배워서 대부분 이해 하겠으나 영어를 못배운 대부분 동포들은 이해를 못하고 눈만 껌벅이든지 눈살을 찌프릴 것이 뻔하다. 어쪄면 갈 수록 태산이라며 개탄할 지도 모르고 아예 책과 신문 같은 것은 딴 나라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닐까!
[ 봉원님에게 보낸 나머지 원문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어서 안타깝다. 봉원님이 김정수님이나 후배들에게 주었던 것 같다. 그 내용은 대학생 때 활동상황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난 30년이 하루같고 세월이 빠르단 마음이다]
덧붙임= 위 글을 쓸 때엔 그 뒤 초고가 없었는데 다음에 찾게 되었다. 어딘가 써 놓았는데 찾는대로 옮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