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선교"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 아니면, 비닐하우스에 보온덮개를 친 뒤 검은 차양막을 두른 주거공간. '집'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열악한 상황. 서울 서초동 빌딩숲을 돌아 그 이면으로 들어서자, 삶의 누추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명 '우면동 산마을'. 아직도 화재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비닐하우스촌 17가구, 산비탈 약간 평평한 대지에 잇대어 선 판자집 중 약간 번듯해 보이는 비닐하우스 한 채가 눈에 띈다. 윤종례(81) 할머니의 삶터다.
박순석(세례자 요한, 45, 서울 서초 평화의 집) 선교사는 스스럼없이 그 집 문을 연다. "할머니, 저 왔어요." 이 말에, 90도 각도로 허리가 굽은 윤 할머니가 마늘을 까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할머니, 건강은 좀 어떠세요?" "웬걸, 머리가 뻐개져 나가는 것 같애. 골이 패 죽겠어." 할머니의 걸쭉한 입담에 박 선교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매달린다. 골다공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한달쯤 된 할머니는 예상보다 정정해 안심이 된다.
박 선교사 방문 기척에 뺑소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일을 못나가는 옆집 이순자(60)씨도 설핏 문을 연다. 봉숭아꽃과 국화가 흐드러지게 핀 좁은 길가에 비스듬히 서서 박 선교사를 반긴 이씨는 "요즘 지하수가 너무 오염돼 샛노래져 아예 못먹는다"며 "언제쯤이면 상수도를 깔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에 박 선교사는 "산마을 전 가구가 논의를 해봐야 될 사안"이라면서도, "두달전 잔디마을에도 상수도가 들어왔으니 다 잘 될 것"이라고 달랜다.
박 선교사가 서초동과 양재동, 우면동 일대 비닐하우스촌 선교에 들어간 것은 2002년 3월의 일. 예수회원 출신으로, 영화 제작 일을 거쳐 광고회사를 운영하다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바울로 사도직 계획'에 3기로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91년 9년간 살던 예수회에서 퇴회,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우연히 사회교리학교를 수강하게 됐는데 숱한 교회회칙을 접하며 이론만 볼 게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흔쾌히 응해주더군요. 그래서 사업을 정리해 아내(조주연씨, 44)는 조그만 학원을 냈고, 전 그길로 비닐하우스촌에 들어왔지요. 삶 안에서 주어진 이끄심을 받아들이고 선택한 셈입니다. 제2성소였지요."
처음엔 막막했다. 우선 우면동 화훼단지 비닐하우스촌 뚝방마을에 입주했지만, 현지 주민들과 인간관계는 어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게 한국도시연구소와 함께 한 주민실태조사. 선교 교두보 확보엔 안성맞춤이었다. 조사를 통해 고령자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 박 선교사는 강남성모병원에 가정간호사 파견을 요청한다. 이어 주부 봉사자들과 함께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빨래 봉사 등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주민들과 다소 가까워지긴 했지만 서먹하긴 여전했다. 주민들과 한결 가까워진 것은 1년에 두차례씩 봄, 가을로 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초청해 하루 나들이를 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가 집수리를 전담하는 윤영호(라파엘, 56) 선교사 등과 함께 관할하는 지역은 롯데빌리지 뒷편 마을60가구를 비롯 약수터마을 23가구, 성 뒤 마을 120여가구, 양재동 산마을 17가구, 우면동 뚝방마을 140여가구, 양재동 잔디마을 27가구, 남태령 전원마을 126가구, 신원동 꽃마을 15가구 등으로 서울 서초구 일대 총 550여가구다.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 중 가장 큰 현안은 상수도 보급 문제.
그래서 한국수도사업연구소에 의뢰, 대장균 검출 여부와 질소함유량 검사 등을 실시했고 그중 3개 마을 지하수 부적합판정을 근거로 수돗물 공급을 요청, 지난 8월4일 양재동 212번지 잔디마을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를 통해 거둔 더 큰 성과는 수정마을에서 주민자치회가 결성되는 등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주민자치조직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
산마을에 이어 잔디마을에 들르자 마침 주민자치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준비모임이 열리고 있다. 박 선교사와 임덕균(프란치스코)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조직국장은 이갑순(71) 할머니 등 주민 8명과 함께 자치조직 결성과 함께 주소지 가등록, 협동조합 프로그램 개설, 철거 뒤 임대주택 확보 문제등을 논의하고 있다. 상수도 보급 문제를 해결한 탓인지 다들 희망에 부푼 표정이다.
이어 찾은 서울 우면동 353번지 뚝방마을.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화훼단지엔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고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 할머니들은 박 선교사를 보자 '자식마냥' 반기고 박 선교사는 '어머니처럼' 섬긴다. 수십년간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 간병하느라 고생하다가 얼마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파출부일을 하며 사는 김정옥(아가타, 66) 할머니는 박 선교사를 보자마자 집안으로 끌어들여 배를 깎아 내느라 여념이 없다. 훈훈한 인정이 가득한 풍경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선교센터 '바울로의 집'은 김 할머니 집 바로 옆에 있다. 센터에 들어서자 역시 눅눅한 습기에 특유의 냄새, 샛노란 수도물이 다른 비닐하우스와 하나 다를 게 없다. 박 선교사는 "비닐하우스촌 주거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없다"면서도 "그래도 이런 주거문제는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고, 우리 활동이 비록 미미하고 표시도 나지 않지만 선교사로서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자체가 선교라고 생각한다"고 잘라말한다.
박 선교사는 이제서야 '길'이 보인다고 한다. 그간 축적한 경험을 통해 이제 무허가 주택 주소지 부여나 가등록을 위한 활동, 비닐하우스촌 주민 문패달기운동, 마을지도 그리기 사업, 주거권 실현과 임대주택 확보, 협동조합활동 등을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해결해 나가도록 도울 작정이다. 이같은 의지를 드러내는 박 선교사 등 뒤에 영화 실루엣 화면처럼 고운 노을이 뚝방마을 너머로 아련히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