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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생클럽 여러 회원님들의 다른 일정이 많이 잡혀있어 이번 주 모임을 쉬기로 하였으나
일부 회원님의 "쉬면 뭐 하냐?! 어디든 가자."며 가이드하겠다는 오늘날의 선비이신
준수인형의 제의에 따라 추진한바, 강준수 이철희내외 조성호 남영양 박중걸 6명이
이철희님과 남영양님의 차량에 분승하여 10시반 대구은행역1출구 앞에서 출발.
26~30℃ 구름이 끼고 미세먼지도 좋아 걷기 좋은 날씨라 승용차 이동이라
운행가성비를 감안하여 목적지인 청도읍성 가는 김에 대구의 루이스호수(?)라
할 절벽암벽하의 초록물빛 자연호수로 변한 가창체석장과 청도 유등리의
연지(蓮池)에서 연꽃과 둘레길의 배롱나무에 취해보곤 군자정(君子亭)에선
강준수 남영양 조성호 및 진외순여사의 가을바람에 실린 가창후
청도읍성으로 이동, 북문공북루 서문무회루 형옥(刑獄)과 성내지(城內池)와
청심정(淸心亭)에서 잠시 쉬고, 옛 객사인 도주관(道州館), 석빙고(石氷庫)
제법 규모가 큰 청도향교 그리고 향교내 400년 느티나무까지 관람하고
오후2시가 가까운지라 읍내 다문화식당에서 추어탕과 미꾸라지튀김으로
오찬을 하고 탁영 김일손(濁纓 金馹孫) 관련 자계서원(紫溪書院)으로.
무오사화로 35세에 처형을 당해 그 붉은 피가 계곡을 물들였다는 자계(紫溪).
자계서원 입구의 "서원길24카페". 도예가이자 서양화가인 주인의
각종 작품과 인테리어 등을 감상하며 구지뽕잎차 등을 마시고 일정 종료.
차량을 무상제공해 주신 이철희회장님과 남영양님
또한 하산식 오찬 비용전액을 지원해 주신 이철희 님
청도일정을 리더해주고 특히 굳게닫힌 자계서원 문을
열게 해 특별관람을 가능케한 강준수님은
자계서원 입구의 카페에서 茶까지
간식으로 진외순님의 오이와 방울토마토, 옥수수빵의 강준수님
그 바람에 오늘 회비없는 무상진행. 문화역사 관광걷기
대단히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 목적지인 청도읍성의 진행기록 지도와 통계. (가창채석장과 유등연지 둘레길 등은 불포함)
가창채석장대구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산 189절벽하 비취빛 물결의 캐나다의 유명 루이스호수 같다는 부품한 표현의 가창채석장
▲유등리 연지 맞은 편의 말무덤 관련 묘역
여러번 와 봤지만 최근의 못안으로 데크길을 만든 후로는 처음.
유등연지는 연꽃으로 유명하지만 최근엔 못 둘레의 배롱나무로도 회자된다.
쉼터 정자에선 가곡 한자락도 빼 놓을 수 없다. 조성호님의 석굴암, 강준수님의 마중
그리고 남영양 님의 바위고개,
특히 귀한 독창 진외순여사의 이별의 노래. 그녀는 박목월 시인의 悲哀史를 알고불렀을까?
청도읍성은 청도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화양읍 선상지에 축성된 남고 북저의 석축성이다.
지방에 읍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쌓은 성곽으로 고려 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약 2km, 높이가 1.7m이다. 산성과 평지성과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평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네모꼴이다.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협축벽이다.
임진왜란 때 동, 서, 북문이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
읍성 철거 정책으로 인해 성벽이 다시 헐리고 문루도 제거되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기저만이 남아 있어 성터 하부의 축조 형태도 알 수 없다.
청도군에서는 매년 3월 [청도읍성 밟기] 행사를 개최한다.
청도읍성 밟기는 부녀자들이 성곽 위에 올라가 산성의 능선을 따라 밟으며
열을 지어 도는 풍속으로, 액운을 쫓고 무병장수하며 극락왕생 한다고 한다.
예부터 청도읍성을 한 바퀴 돌면 건강해지고, 두 바퀴 돌면 오래 살고,
세 바퀴 돌면 소원성취한다는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북문▼ 옆에 위치한 화양읍행정복지센터 건물▲
북문인 拱北樓. 공북루, 북쪽을 향하여 두 손을 모아 공손히 받들다. 임금이 계신 북쪽 도성을 향해 충성을 다진다.
청도읍성은 동문인 봉일루, 북문인 공북루, 서문인 무회루 등 어느 구간이나 사방
수 킬로미터가 탁 트여 있습니다. 멀리 내다보면 겹겹이 펼쳐진 산이 배경이 되고, 가까이는
예스러운 돌로 쌓은 성벽이 잔디밭과 어우러져 멋을 더합니다. 눈앞에 펼쳐진 시원한 풍경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청도읍성은 전국의 성곽 중 높이가 가장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성을 중심으로 안과 밖 모두 천천히 거닐기 좋으며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한적한 시골마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습니다.
청도읍성 형옥(刑獄)
형옥은 형벌을 집행하고 죄인을 구금하던 곳이다. 형옥시설은 조선 세종대에 전국적으로
정비 되었는데 형옥의 표준 설계도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였다. 청도읍성 형옥의 위치 및
형태는 청도군 최초 사찬읍지인 오산지(1673년)를 비롯하여 여지도서(1760년), 청도군지
(1834년)등 각종 청도 관련 문헌 및 고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문헌기록인 재성외서북우로 보아
현 북쪽성벽과 서쪽 성벽의 모서리 부분의 성 밖이 형옥지로 추정되었고 이를 근거로 발굴하여
관계전문가의 고증하에 2013년에 복원하였다. 형옥의 구조는 원형의 담장 안에 남녀를
구분한 옥사 1동과 관리사 1동, 출입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청도읍성 서문 撫懷樓▲. 무회루, 백성을 어루만지고 품는 즉 백성과 함께한다는.
청심정 팔각장과 성내지. 탐방객 노부부와 아들딸의 흔쾌한 양해하에 한곡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청도읍성 성내지는 성내지 흑은 성내제로 기록되어 있으며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두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못이다.
못의 기능은 전쟁시 화재 대비 방호수, 경작 농수, 성내 배수를 위한 시설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을 통해 제방의 규모를 확인한 바 현존하는 우리나라 읍성 중 그 예가 많지 않을 뿐더러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못으로 남겨져 있던 성내지는
청도읍성의 조경과 관람 환경 개선을 위해 한국식 전통정원으로 탈바꿈 되었다
성내지 옆 주먹(?)만한 대추 따 먹고
도주관(道州館)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청도군 하양읍에 있는,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 건축물이다. 1985년 12월 30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
되었다.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청도군을 ‘도주’라고도 부른다.
객사 안에는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에 절하는 곳인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사신이 묵고 갈 수 있는 숙박시설로 되어있다.
1670년 경인 조선 현종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정청은 화양면사무소로 사용되면서
바닥과 벽이 바뀌었다.
그러나 건물의 나머지는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관아터에는 지방업무, 민사소송을
보던 동헌이 남아 있으며, 이 건물 앞에는 역대 군수들의 선한 정치를 기린 비가 서있다.
또한 고종(재위 1863∼1907) 때 대원군이 외세침략에 대해 거부하는 의지를 새긴 척화비도 있다.
<위키백과>
청도척화비(淸道斥和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
이 비는 조선 고종高宗 3년(1866)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동왕 8년(1871)의 신미양요
(辛未洋擾)를 겪은 후 서양인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들에게 경고하고자 대원군의
명령에 의해 세운 척화비이다. 이 비는 당시 서울 종로를 비롯하여 전국의 중요한 도로변에
세웠던 척화비 중에 하나인데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것을 도주관道州館내로 옮겨 놓은 것이다.
비신의 높이는 155㎝이고 폭은 45㎝이며 두께가 25㎝인 작은 비석이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는 것이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는 파는 것이다. 이를 우리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 라고 쓰여 있다. 이 비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한민족의 자주의식을
고취하는데 주는 역사자료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청도 척화비 안내문>
청도 석빙고 (淸道 石氷庫)
청도 석빙고는 겨울에 인근의 하천에서 가져온 얼음을 봄, 여름까지 사용할 수 있게 보관하던
창고로 조선 숙종 39년(1713)에 만들어졌다. 석빙고는 동서로 긴 직사각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서쪽에 문이 있다. 지면에서 1.9m 깊이에 얼음을 보관하는 빙실(氷室)이 있는데,
길이가 14.85m, 너비가 4.76m이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4.22m이다. 계단을 이용해
석빙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원래 석빙고의 천장을 덮었던 봉분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 밖에서도 석빙고 안이 들여다보인다. 천장을 지지했던 아치형 구조물, 바닥,
벽면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바닥은 동쪽으로 5° 정도 기울어졌으며, 바닥 가운데 배수로를
만들어 물이 석빙고 밖 개울로 빠지도록 했다. 석빙고 입구에는 비석이 있다. 이 비석에는
박상고(朴尙古, 1654~1718) 등이 석빙고를 만들었다는 내용과 숙종 39년(1713) 2월 11일에
공사를 시작해 5월 5일에 마치고 5월 6일에 석빙고를 세웠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석빙고를 짓는 데 5,451명이 하루씩 동원되었으며, 정철* 1,438근과 회(灰) 384석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청도 석빙고는 현재 남아 있는 전국의 석빙고 6기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조성 연대와 책임자, 조성 물자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청도향교(淸道鄕校)는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향교이다.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선조 1년(1568)에 고평동에
세웠던 것을 영조 10년(1734)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화양향교라고도 부른다.
향교 내의 건물로는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 등이 있다. 그런데 건물 배치 중 일반적으로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가 아니라 대성전과 명륜당이 좌우에 놓여 있어 특이하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청도향교는 특이한 건물 배치를 가진 유서 깊은 향교이다.
<위키백과>
청도역전의 추어탕보다 맑고 건데기 야채가 빡빡하다. 그리고 가격도. 테이크아웃 손님들이 연신 들낙거린다.
이철희회장님의 오찬식비 전액지원하니 차량운송비와 간식비 내신 분들도 모두 동참지원. 오늘 회비는 色卽是空
자계서원으로 이동. 모든 문이 모두 열쇠로 채워져있었지만
강준수님, 맑고 천진한 얼굴의 관리인(94세)과의 과거친분 교류로 서원 특별개원 혜택.
물 맑으니 갓끈을 씻는다는 청렴지조의 탁영濁纓 선생. 세조와 단종의 사초로 35세로 생을 마감하고
연산군때는 김종직의 조의제문까지 문제삼아 부관참시(剖棺斬屍:무덤 관속의 사체 목을 베어내는 처형)
앞에는 청도천이 흐르고 우뚝 솟은 청도의 안산인 남산 그리고 좌측 비껴 삼면봉, 우측 시루봉. 그 넘어엔 화악산이 있겠지.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서원길24카페에서 차 한잔. 고맙네 준수인형. 가이드에 옥수수빵에 차 커피까지.
오늘도 무한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