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터지고 눈 깜작 할 사이에 서울이 떨어지고 이웃으로 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설치면서 며칠 후면 부산이 떨어지고 인민공화국이 된다고 매일 저녘 모기에 물리면서 어머니따라 강제로 참석 했던 동네 느티나무 밑 인민반상회 그래서 이젠 김일성이 밑에서 경찰 가족이라고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가 보다 하는 절망 속에서 기적이 일어나 낙동강 에서 연합군의 대 반격으로 패잔병이 되어 북으로 좆겨 가는 초라한 인민군들을 보면서 이제는 꿈에 그리던 남북 통일이 머지 않았구나 생각 했었는데 혜산진 까지 진격했던 국군이 철수를 시작하니 마침내 엄동설한에 나까지 이불 보따리를 지고 무작정 집을 나서 사람 행열에 밀려 서빙고에서 얼어 붙은 한강 얼음 위를 걸어서 정처없이 피난 길을 떠나야 했던 바로 그 1.4후퇴 시발점이 흥남 철수작전이라고 하기에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당시 흥남부두의 피난민들의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고 흥남 철수작전 중 영화와 관련된 민간 상선 빅토리아 호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내용을 요약해서 올려본다
다 알다시피 기세좋게 북진하던 연합군이 중공군의 불의에 개입으로 상황이 급박해지자 육로가 차단되어 안전하게 철수할 시간이 없게 되자 흥남에서 선박으로 철수하기로 한 작전이 흥남 철수 작전인데 1950년 12월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10일간 이루워졌는데 내용은 동부전선의 한국 군 제ㅣ군단, 미제10군단 .미제1해병사단의 병력과 장비를 수송한 작전인데 살기위해부두에 몰려 나온 피난민 수송 때문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 숫자가 어마어마한 20만(?) 정도인 것 같다고한다
그 중 절반은 군함에 나뉘어 승선했는데 영화에 나 오는 장면은 군수물자를 싣고 온 상선 이야기다
일본에서 항공유를 잔득 싣고 온 미국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아호(7600톤급으로 건조한지 5년)는 흥남부두에 항공유를 하역하러 왔다가 하역치 못하고 부산으로 가서 짐을 하역 하던 중 급히 일부 짐을 실은 채 흥남으로 다시 와서 철수작전에 참여 하게 되었는데 원래 상선은 피난민을 수송 할 의무가 없었는데도 선장인 레이너드 라루 선장이 흔쾌한 승락 함에 따라 군 장비를 내리고 대신 민간 1만 4천명을 태우고 남쪽으로 철수에 성공 가장 많은 인원을 태우고 항해를 하므로써 기네스 북에 등재 되어 있다는데 그 복잡한 와중에도 배안에서 새 생명 5명이 태어 났다고한다
당시 미1군단장 아몬드 소장을 설득 피난민을 수송 할 있도록 한 일등공신은 민간인으로 미고문관이였던 현봉학박사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엊그제 기사를 보니 영화 "국제시장" 흥남철수작전 장면에서 미국 장성의 통역으로 나오는 현봉학 박사 역의 단역배우가 새누리당 김무성대표의 아들이라는데 아버지한테 누가 될까 봐 "고운"이라고 이름까지 바꾸었다고한다
또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빅토리아호의 선장 라너씨는 그 후 수도사가 되어 베네틱토라는 수도원을 세워 운영했는데 사후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을 처지였는데 대구의 베네틱도라는 단체의 도움으로 다시 운영 되고있다고 한다
그리고 빅토리아호의 라너 선장은 생전에 흥남 철수 작전에 대해 한마디도 안 했다고한다
아마 그 때 흥남 부두의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목격했고 배를 타지 못한 체 부두에 버리고 온 수많은 피나민 생각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산에 도착한 빅토리아호는 부산에 너무 많은 피난민 (100만?) 때문에 다시 거제 도로 가서 거제포로 수용소에 피난민을 26일에야 내려 놓았다고한다
그래서 이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거제포로수용소안에 세운 흥남 철수기념비에는 10만명의 목숨을 구한 6인의 영웅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고한다
그런데 그 곳에 같이 세워 진 당시 한국 군 제1군단장 김백일 장군의 동상은 최초에는 속초에 세우려다가 속초 시민의 반대로 거제도로 옮겼는데 이 곳에서도 한 바탕 철거소동이 일어 났다는 걸 신문에서 본 적이있는데 이유는 노무현 시절 무슨 위원회에서 만든 친일 명단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여튼 남의 과거 흠집을 끄집어 내서 깍아 내리는데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민족 인 것 같다
막 말 로 "떨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는지 이젠 공과를 따져 공이 크고 죽일 놈이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게 옳지 않은 지 이러 다간 남북 통일 되면 이북사람들 중 몇명이나 살아 남을 지 의문이다
어느 분의 이야기인데 당시 살겠다고 배의 줄 사다라리를 필사적으로 오르면 한국군 헌병들이 총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바람에 수 많사람들이 바닷 물에 떨어지는 걸 목격 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미군 들이 더 많이 도와 주었다고 하니 아이로니하다
아주 오래 된 일이지만 우리의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젊은 세대는 그 당시 흥남 철수의 비극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 까?
역사의 교훈을 잊어 버리는 민족 은 불행해 진다고한다 아우스빗치에 단체로 조상의 고난의 현장을 찾아 온 이스라엘의 어린 학생들의 엄숙한 얼굴이 떠오르고 진주만에 아직도 일본의 기습으로 가라 앉은 채 있는 군함의 잔제가 역사의 교훈으로 남아 여기를 찾는 국민들에게 무언의 교육을 시킨다 고 한다"진주만을 잊지말자'고
어제 산행후 귀가 차량애서 뉴스를 보니 국제시장 영화를 놓고 이념논쟁을 벌인다고 하는 걸 보니 답답한 생각 이든다
*참고
당시 철수작전의성공으로
미군과 한국 군 장병 :10만명
피난민:10만명,
군수품 : 35만톤
차량 :1만 7천대
등을 무시히 운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피난민 수송을 위하여 배에서 내린 일부 군수물자는 모두 파괴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