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21.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빌 4:6~7
*제목; 믿음의 삶(5) 은혜의 통로를 막는 것들
1. 삶, ‘야기 세이이치’의 “프런트 구조 이론”을 이야기하다.
‘야기 세이이치’라는 일본 신학자는 인간을 “프런트 구조”로 설명한다.
모든 인간을 사각형으로 이해한다면 다른 세 면은 실선으로 되어 있다. 이 면으로는 접촉하거나 관계할 수 없고, 서로 밀어낸다. 그러나 어떤 인간이든지, 점선의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인간이 외부와 교류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부분으로 나를 표현하고, 다른 이의 생각들을 받아들인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교류(Give & Take)하는 또 다른 인간이 있을 때에만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과는 부딪히는 면이 있고, 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통하더라도 통하지 않는 더 많은 면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고, 통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통하는 면이 있음을 알고 돌려가며 맞추려 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똑같은(최소한 비슷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2. 은혜, 막힌 것을 허물기
은혜는 공기와 같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풍성하도록 부어주셨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많은 공기라도 호흡기관을 통해서 마셔야만 생명이 된다는 것이다. 은혜도 이처럼 항상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이다.
항상 보면, 나의 욕심(내적 상태)과 불평(외적 표현)이 이 은혜의 통로를 막는다. 욕심을 버려야 은혜가 들어올 수 있고, 불평을 버려야 욕심의 침투를 막을 수가 있다.
또 이 ‘은혜의 통로’를 막는 것은 없을까?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오늘 본문에 보면 그것이 바로 “염려”라고 한다.
염려는 밤새 드린 기도도 망친다.
염려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은혜를 놓치게 한다.
염려는 가진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없는 것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염려는 인간의 본질적 “연약함”에서 오기 때문이다.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데 염려가 있다면, 그리고 멈출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염려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도라고 부른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다.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기도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믿음이 생긴다.
그 믿음을 우리의 염려를 해결한다.
염려의 대상이 그대로라 하더라도, 염려 자체가 사라진다. 이것이 응답이다.
간구는 구체적인 기도제목의 아룀이다. 소원을 드림이다. 이는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한다. 불평함이나 욕심으로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아뢰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한다. 이 또한 응답을 주신다는 의미이다.
감사함이란 철저한 신뢰를 의미한다. 가장 좋을 것을 주실 것을 믿으며 하는 기도가 바로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오늘 본문의 결론이 바로 이것이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드리면, 그리고 철저한 신뢰를 아뢰면, 하나님은 그 염려의 대상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생각”을 바꾸시는 것이다.
왜 이런 식으로 응답하실까? 염려의 대상을 해결해도 우리는 여전히 내 안에 염려를 가지고 또 다른 염려의 대상을 찾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연약한 본성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우리 염려 자체를 없애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응답이다.
욕심, 불평, 염려를 버리고, 기도하라.
기도를 통해 마음과 생각의 평화를 얻게 된다.
염려의 대상이 사라지지는 않아도, 염려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은혜에는 기도가 정답이다.
첫댓글 오늘 본문의 결론이 바로 이것이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드리면, 그리고 철저한 신뢰를 아뢰면, 하나님은 그 염려의 대상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생각”을 바꾸시는 것이다. 왜 이런 식으로 응답하실까? 염려의 대상을 해결해도 우리는 여전히 내 안에 염려를 가지고 또 다른 염려의 대상을 찾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연약한 본성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우리 염려 자체를 없애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