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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대하 13:13-22절
제 목 : 아비야가 여로보함을 이긴 비결
일 시 : 2024. 1. 10.
역대하 13:13-22/여로보암이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였으므로 그 앞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고 그 뒤에는 복병이 있는지라 14 유다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니라 15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 16 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앞에서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므로 17 아비야와 그의 백성이 크게 무찌르니 이스라엘이 택한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엎드러진 자들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18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겼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19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의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들과 여사나와 그 동네들과 에브론과 그 동네들이라 20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 21 아비야는 점점 강성하며 아내 열넷을 거느려 아들 스물둘과 딸 열여섯을 낳았더라 22 아비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행위와 그의 말은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에 기록되니라/
솔로몬 왕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나뉘어져서 서로 적대관계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남쪽 유다는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이렇게 두 지파로 이루어졌고 북쪽 이스라엘은 10지파로 이루어졌습니다. 수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훨씬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로보함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불신의 나라였고 하나님을 떠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운 제사장들을 파면하고 돈을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주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절기도 패하였습니다. 대신 여로보암이 만든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새로운 절기를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보면 여로보함이 훨씬 강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제목처럼 유다 왕 아비야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함을 이겼습니다. 어떻게 해서 열세에 있었던 아비야가 강적인 여로보함을 이기게 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도 아비야 왕처럼 항상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먼저 여로보암이 유다를 치러 와서 앞뒤로 우겨 싸게 됩니다.
여로보암의 전술전략을 보면 유다를 앞뒤로 우겨 싸는 기습공격으로 전술전략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분명히 여로보암이 유다와 아비야를 이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전혀 반대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 바울의 고백과 비슷합니다. 고후4:8-10/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자 사도 바울이 전도하면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결로 낙심하거나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에게는 주님이 항상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환난을 만났을 때 낙심한다면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하나님보다 자신의 힘을 믿은 결과 낙심했기 때문에 자신의 힘이 그만큼 약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24:10/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만났을 때 낙심하고 실패하고 넘어진다면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자신을 믿은 결과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가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16:33절의 말씀처럼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이 이겼노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환난을 당할 수는 있어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담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비야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로보함이 앞뒤로 우겨 싸는 진퇴양난의 위기에서도 아비야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2. 전술전략 면에서 열세에 있던 아비야가 승리한 비결이 있습니다.
아비야가 여로보함을 이기게 된 승리의 비결을 크게 두 가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이유는 아비야와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보시면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겼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은 1) 먼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뜻이며, 2) 둘째로 다윗 왕이 섬기던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여로보함이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라고 했기 때문에 북쪽 이스라엘과 여로보함은 금 송아지 신을 섬겼지만 남쪽 유다는 언약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지키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마1:1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친히 기름부어 세우신 다윗 왕과의 언약을 지키셨던 신실하신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여로보암처럼 금 송아지라는 가짜 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아브라함과 다윗 왕에게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나뉘어집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다윗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금 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기는 세상을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살아 계신 참 하나님과 가짜 신이 싸우면 당연히 하나님이 이길 수 밖에 없고 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가짜 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신을 선택하고 믿겠습니까? 사람이 만든 금 송아지 신을 믿겠습니까? 아브라함과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3. 그들이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한 믿음의 내용들입니다.
14절을 보시면 유다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니라/고 했습니다. 18절에서 그들은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한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은 시50: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과 일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시50: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환난 날이란 아비야가 여로보함에게 앞뒤로 우겨 쌈을 당한 것처럼 바로 그런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를 의미합니다. 바로 그런 환난 날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찾고, 주위의 열강을 찾고, 다른 신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아비야와 유다 민족은 여호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시50:15절이 약속하신 그 말씀,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약속)에 근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특히 환난을 당했을 때 말입니다.
2) 두 번째 비결은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고 했습니다.
유다가 급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나 제사장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나팔을 크게 불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사장들의 믿음을 엿볼 수 있고, 두 번째는 제사장들은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팔을 부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12절 말씀을 보시면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하13:12/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비야가 자신을 침공한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바꾸어서 말하면 아비야가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고 그 제사장이 나팔을 불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싸우시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시편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35:1/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싸워 주시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것이고 제사장들은 전쟁의 날에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이제 성경에 나오는 나팔과 나팔부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나팔은 음악적 도구(악기로 사용되기)보다는 신호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달(新月), 안식일의 시작, 유명 인사들의 죽음을 알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집회시나 전투시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본절에서 제사장이 나팔을 분 것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수6:5,20)와,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를 파괴시킬 때(삿7:20) 불었던 나팔과 마찬가지로, 먼저는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적군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왜냐하면 민10:9절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10:8-9/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도록 되어 있고, 또한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위기의 순간에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살아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습관과 상황에 따라서 처신하지만 성도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항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대하 13:12절을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똑똑히 보아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가 우리의 우두머리이시다. 그의 제사장들은 너희를 공격할 때에 불려고, 비상 나팔을 들고 서 있다. 이스라엘 자손아, 너희 주 조상의 하나님과 싸울 생각은 하지 말아라.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아니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은 그냥 나팔이 아니라 비상 나팔을 들고 서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원문에는 경고의 나팔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하는 경고의 나팔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전쟁 시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나팔소리를 들으시고 그의 천사들을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기도록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대신 일하시고 적들과 싸우십니다. 할렐루야! 구약시대의 나팔과 나팔을 부는 것은 곧 신약시대에는 복음의 나파를 부는 것을 의미하며, 전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멸망시킬 때 불었던 나팔은 곧 양각나팔이었습니다. 그것은 짐승의 뿔로 만들었습니다. 수6:1-6/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여리고 성을 돌 때에 제사장들이 불었던 양각 나팔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나팔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원수의 머리를 깨뜨리는 일이고, 원수들을 멸망시키고, 그들의 권세를 박탈하는 사건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는 것은 원수를 쳐 부수어 승리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곱 명의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불었다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 수입니다. 여리고 성을 침공할 때 일곱 제사장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불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환난 날에 구원받고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며, 나팔을 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고 반드시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대선해서 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비야가 여로보함과 싸워서 이긴 비결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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