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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할 곳이 없다.
2013, 6, 9
요8 : 36-40
우리는 지난 주일에 “주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시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너희가 나를 믿으면” 하시지 않고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크게 유의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도 주를 믿는 것만으로 주의 제자가 되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의 제자가 되는 길은 “주를 믿음은 물론,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대로 행하는 그가 주의 제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순전히 자기 뜻대로 살면서도 주를 믿는 것만으로 주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님은 선을 그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주의 제자라 할 믿음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주의 제자인가? 누가 영생을 얻은 사람인가? 누가 아버지 집에 들어갈 하나님의 자녀인가? 를 명확하게 구별 짓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에 크게 주목해야 합니다.
주를 믿는 다고해서 주의 제자가 아니라,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대로 행하여 사는 이들이 주의 제자입니다.
그 예로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주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늘에서 오신 것을 확신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에게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거듭난 사람이 주의 제자입니다.
니고데모가 후에 주의 제자가 된 것은 주는 하늘에서 오신 분이시라는 그 확신 때문에 자기 생각을 재껴 놓고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라는 아버지의 증거에 대한 확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씀에 대한 확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는 성경 증거에 대한 확신하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냥 믿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확신하는 믿음이 중생의 비밀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확신하는 이들은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처음에는 불과 몇 마디 말씀에 눈이 열려 보지만, 후에는 많은 말씀에 눈이 열러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희미한 빛이 들어와 비추어 그들을 깨워 주었는데, 후에는 더 밝은 빛으로 보게 되고, 처음에는 한 두 마디 말씀에 순종하던 그가 후에는 많은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확신으로 갖고 있는 그 말씀이 자신의 양심이 되고, 자신의 중심이 되고, 지혜요, 능력이요, 목적이 되고 그들에게 간절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시편 42편 1절에 있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중생한 사람들이요, 그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제자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행하는 사람이 진리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그 말씀의 참 되심과 실제 됨과 그 결과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죄의 종에서 자유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죄의 종에서 벗어난 그가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활이 달린 심각한 문제입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난 그가 아버지 집에 들어간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진리를 알고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죄의 종에서 벗어나고 죄에서 벗어난 그가 아버지 집에 들어간다고 하시는 주의 말씀을 절대로 그냥 듣고 넘기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아버지 집에 들어가기를 소망으로 삼고 있는 분이라면 주의 이 말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죄의 종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죄가 자신의 본성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죄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덕적인 죄만 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행하는 사람들의 관점은 사람의 본성이 죄요, 그 본성대로 육신을 위해서 사는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죄의 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자기 본성대로 사는 것이 아니요,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임을 압니다.
중생한 이들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본성을 주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그 본성과 능력으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는 것은 절대로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하여 그 안에 성령이 계시는 이는 다 죄의 종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계시면 성령님은 끊임없이 죄를 대적할 뿐 아니라, 우리 마음에 간절한 소원을 두고 주의 말씀을 행하게 하심으로 우리 안에 있는 그 죄들을 하나하나 좇아내실 것입니다.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마침내 죄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던 것에서 성령이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36절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니라.”
우리에게 죄에서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죄에서 자유하십니까?
아니면 지금도 죄에 대한 양심의 송사를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심각성을 아십니까?
죄의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심각하게 숙고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죄의 종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 중생하는 길 뿐입니다.
오직 중생한 그리스도인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를 믿는 다고 진지하게 신앙고백 합니다.
그들의 입술의 고백은 틀림없이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우리 기독교 신앙의 큰 함정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성으로나 지적으로는 믿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행위는 아닙니다.
비극은 많은 이들이 이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뜻대로 죄 가운데 살면서도 예수 믿는 이 믿음으로 천국 간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기 때문에 천국 간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모든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에 틀리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까지는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말씀을 행하는 것은 없습니다.
정말 믿는 사람들은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들이요,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계시는 사람은 죄를 지으면 그 마음에서 심히 근심하시며, 깊이 회개하고, 그 죄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실로 믿는 이들은 말로만 아니라 행위로도 이렇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은 그 행위로 자기의 믿음을 증거 합니다.
우리 주님은 또 마태복음 7장 16절에서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행위로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고
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좁은 길로 가는 이들은 순종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10장 33절에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8장 51절에서도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지 않습니까?
나는 이런 말씀들에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기를 진실로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절대로 주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천국 백성이냐 아니냐는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사람이냐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느냐에 따라서 분명하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내 말에 거하는 자가 참 내 제자가 된다.”는 주의 말씀을 유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완전히 귀를 막고 자기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무서운 함정에 빠져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 중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37절에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음으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인정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그들은 주의 말씀 안에 거 하기는 커녕 주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어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도 한 때는 이런 상태였습니다.
그 때 나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까? 하고 심히 근심되었습니다.
나는 41절 아래로 말씀을 쭉 읽으면서 주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44절에 “욕심대로 행하고 사는 마귀의 자녀요,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주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올 곳이 없다.”고 하시는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욕심대로 행하며 거짓말하는 그들이 곧 마귀의 자녀라는 뜻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자식이요,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들어 올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 올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알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있을 곳이 없다는 말씀이 내게는 기가 막히게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심히 근심하고 마음이 상하여 한 동안 앓고 다녔습니다.
주의 말씀을 믿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 했습니다.
그 후 내가 거듭나게 되면서 주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거듭나면 자신이 마음을 다해 행해야할 말씀으로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거듭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믿음으로 들어와 있습니까?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살아 있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가십니까?
사도 바울은 이런 뜻을 로마서 8장 1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몇 마디 말씀부터 그리고 작은 것부터 순종해 가면서 우리의 순종이 온전한 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몇 마디 말씀이라도 순종한다면 그것은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38절에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함이라.”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하셨고,
또 요한복음 14장 10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요 8 : 38절에서도 “나는 내 아버지께서 본 것을 말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주의 이 말씀에 따라 기도하기를 “아버지 내게도 보여 주시고 또 아버지의 음성을 들려주옵소서.” 하고 오래 동안 기도했습니다.
참 무모한 기도 같지만 그러나 그 기도를 오래 동안 하면서 참 많은 것을 깨닫고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기도를 하면서 성령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가지며 살피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은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있는 말씀처럼 “주의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입니다.
또 아버지가 보여 주시는 것은 꿈이나 환상으로만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일도 보여 주시고 알게 하십니다.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전과 같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지만 전에는 내게 멀리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은 내 곁에, 또 내 안에 계시면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내 마음에 품은 생각 까지도 밝게 보고 계시고 나의 작은 것 하나라도 주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정말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을 주는 다 보고 계십니다.
이것을 내가 분명하게 느끼는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주의 눈을 의식하다보면 내 마음과 행위로 주의 뜻을 범할 수가 없게 됩니다.
전에는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주의 눈을 확실하게 의식하게 되면서부터는 이제는 전처럼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알지만 내게 멀리 있을 때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것을 의식하고 느끼면서 그렇게 됩니다.
마틴로이드 존슨도 하는 말이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늘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했습니다.
또 우리 주님은 38절 하반절에서 “너희는 너희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에 그의 생각과 말을 넣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마귀가 그 마음에 넣어 준 생각과 말을 하고 행동하는 마귀의 자녀요 마귀가 그들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믿지 않는 자들은 다 마귀의 자녀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크게 반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주의 말씀대로 행해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그가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따라서 나누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에게 순종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순종하는 그가 곧 우리의 주인입니다.
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39-40절에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을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를 알았고 주께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전하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죽이려 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대적하는 그들이 곧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스스로 마귀의 자녀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는 다 하면서도 주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아니하며 주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그들을 가리켜 내 제자가 아니요,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죄의 종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크게 두어야 할 말씀은 “죄의 종은 아버지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 믿습니까? 아버지 집에 들어가기 위해 예수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의 이 말씀을 뼛속 깊이 새겨두고 늘 되새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